10시, 남한산성입구역 2번 출구. 17회원들은 다들 일찍 나와 기다리고 있다. 산행
코스가 분당 근처라 광교지부에서 참가자가 있을 거라며 10시 정각까지 기다려
보자는 박 2대장. 결국 두 분을 건졌다. 이상학(남), 강영구 전 총장. 남한산성
남문에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남문 가는 버스는 산성역에서 가깝다. 다시 전철을
타고 산성역으로 가서 9번이나 52번 버스를 타면 된다. 6명이 10분 전 먼저 출발
하고 기자를 포함한 나머지 7명은 10시에 출발한다. 그런데 먼저 출발한 앞 팀이
우리가 남문에 온 지 10분이나 지나 도착한다. 우리가 타고 온 52번은 남문으로
직행하는데 앞 팀이 탄 9번은 산성역 근처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남문으로 오는
버스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와 동행하기로 한 현총무님 동네 친구 두 분과 남문
밑에서 한담하며 놀고 있는 뒷 팀을 본 앞 팀이 어이없어 한다. 집결지를 산성역
으로 하고 버스도 52번을 타는 것이 좋다는 정보를 미리 주지 못한 박 2대장의
불찰이다. 처음이니 용서해주자. 그리고 유여사의 쾌유와 김대장의 조기 복귀를
기원하자.
至和門이란 현판이 붙어있는 남문은 성벽이 웅장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대단히
아름다운 성문이다. 오늘 동행하는 현총무님 친구 두 분은 남한산성 일대의 지리를
훤하게 꿰고 있어 원래 우리가 목표했던 갈마재 코스 대신 이배재로의 하산을 권유
한다. 갈마재 하산길이 무척 가파르고 큰길에 내려서도 버스 간격이 길어 재수
없으면 많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10시 40분 산행 시작. 발 빠른 게스트
두 분은 구바오로와 선두에 서 금세 사라져버린다.
숲이 깊어 그늘이 시원하고 길도 평평해 등산이라기보다 산책코스다. 성남 분당
쪽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코스가 있어 산책객들도 많을 뿐 아니라 곳곳에 아이스
케키나 막걸리를 파는 노점상도 눈에 띈다. 검단산(534m)까지 30분이란 이정표가
있는데 검단산 근처에 가니 군사시설 때문에 우회하게 되어있다. 갈림길이 많아
리본을 달고 간다는 바오로의 무전이 온다. 백두대간 리본을 달아 다른 사람들을
헷갈리게 할 수는 없으니 후미가 리본을 회수하며 간다. 11시 10분, 계곡 쉼터에서
쉬고 있는 선두를 만나 잠시 휴식. 장변호사님이 무겁게 지고 온 천도복숭아와
오이를 나눠준다.
오솔길을 걸으며 한영구 사진기자가 고백한다. “솔직히 산악회에서 백두대간
한다고 했을 때 완주는 무슨 완주, 중도에 대부분 탈락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해내더군. 요즘 같이 산에 따라다녀 보니까 이제 좀 이해가 된다.”
뒤늦게나마 산행의 묘미를 익혀가고 있는 한동문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12시 20분, 샘터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배도 안 고픈데 너무 이르지 않느냐
하니 점심 너무 늦게 먹으면 저녁을 못 먹게 돼서 안 된다 한다. 아니, 산행
일찍 끝내고 저녁은 집에 가서 먹으면 안 되나? 집에 일찍 가면 큰일 나나?
2주 동안 눈빠지게 기다렸는데 집에 왜 일찍 가냐? 맞습니다, 맞고요. 너른
풀밭에 여기 저기 퍼져 앉아 점심 보따리를 푼다. 멀리 떨어져 앉은 기자에게
임총장이 줄 게 있다며 빨리 이리 오라고 소리친다. 얼른 달려가니 놀랍게도
배낭에서 아사히 생맥주 캔을 꺼낸다. 밤새 얼린 캔은 흰 연기를 뿜으며 순식간에
이슬 옷을 입고, 컵에 따른 맥주에는 살얼음이 동동 뜬다. 옆에 앉은 김고문
눈치가 보여 움찔하는데 김고문께서 오늘은 등산이 아니라 산책이니 괜찮다
윤허하신다. 산악회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어찌 이 유혹을 뿌리칠 수
있으랴. 카, 이 시원함!
김경자여사가 풀어놓은 한정식 보따리는 더 놀랍다. 북어찜에 계란말이, 꽈리고추
넣은 장조림과 고춧잎나물, 현총무 배낭에 지워 올라온 오이지 물김치는 아예 한
단지나 된다. 아니 어떻게 손이 갈수록 더 커져? 오늘 유여사가 김대장 점심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을 것 같아 김대장 밥까지 싸와 그렇다는데 안타깝게도
김대장이 못 오셨다. 기자와 박 2대장, 장변호사님 등 여러 명이 거들었는데도
남아 결국 저녁 먹을 때 보충안주로 썼다. 임총장 내외분 덕에 산행이 더욱 즐겁
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산을 어디로 하느냐 두 분 게스트에 조언을 구한다. 여기서 이배재까지는 한
30분이면 내려간다 하니 그건 너무 짧고 갈마재까지는 3시간이라 너무 길다.
김고문이 차라리 검단산 정상에 갔다 남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제안한다.
아침에 온 길이 쉽고 시원한 그늘이었으니 아무도 반대 안한다. 이배재로 내려
가는 게스트 두 분과는 여기서 작별한다. 김회장이 지금 시간이 숲에 치톤피트
인지 피톤치트인지가 가장 많은 시간이라며 쉬었다 가자한다. 바쁠 것도 없는데
그럽시다. 검단산 정상에 들렀다 남문까지 가는 길에도 계속 5분 걷고 10분
쉬기다. 이렇게 한가롭게 산행하기도 난생 처음이다. 현총무가 “젬마만 안 오면
산행이 쉬워진다”며 애타게 젬마를 그리워한다. 산행안내에 검단산이 들어있는 걸
보고 팔당 쪽 검단산인 줄 안 젬마여사는 아니 하루에 어떻게 그 먼 데까지 갔다
온단 말이냐며 집 나서는 서방님한테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비장한 작별
인사를 했단다.
2시 30분, 남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명색이 문화산행을 부르짖으면서 남한산성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김고문 말씀을 따라 행궁을 보러간다. 행궁에는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이미 복원된 상궐(上闕)도 규모가 대단하다. 웬만한 절이나 사당
정도 생각하고 온 대원들이 깜짝 놀란다. 위급한 경우 대궐의 피난처로 지은 임시
궁궐인데 인조가 청군의 침입을 피해 피난 왔다가 싸움 한 번 안하고 47일만에
삼전도로 내려가 굴욕적인 항복을 한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상궐 앞마루에
나란히 걸터앉아 척화파와 항전파의 치열한 내부 싸움을 무력하게 듣고 있었을
仁祖의 답답한 마음을 헤아려본다. 잠시 옛 역사를 돌이켜보고 있는데 현총무가
느닷없이 임금 노릇 한 석달만 봤으면 좋겠다 한다. “전국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시식해 볼 수 있지 않느냐”(모든 것이 무엇인지는 상상에 맡김). 임금보다 지금
우리가 훨씬 더 호강한다, 임금은 과일도 우리만큼 못 먹었다, 망고가 있었냐,
그 좋은 부사사과가 있었냐, 노는 양이 영락없는 초딩이들 같다.
3시 30분, 산성유원지 안에는 목욕탕이 없어 버스타고 야탑역에 있는 분당서 제일
근사한, 꼭 한번 가봐야 한다는 목욕탕(현총무 말씀)에 가기로 한다. 야탑역 간다고
써있는 9번 버스를 탄다. 그런데 이 9번 버스는 이번에도 성남시내를 한바퀴 다
돌고 맨 마지막에 야탑역으로 간다. 완전 시티투어다. 성남시내를 언제 이렇게
돌아보겠냐, 지가 무슨 샌프란시스코라고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냐. 한없이
시내를 돌고 있는데 아무도 짜증도 안낸다. 우리가 떠드는 소리를 들은 기사가
야탑역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 잘못 탔다 한다. 괜찮다, 언제 또 오겠냐
하니 기사가 무슨 소리냐, 철따라 한번씩 꼭 오시라, 부탁도 한다. 그 승객에
그 기사다.
이상학동문이 저녁 6시 30분에 약속이 있다며 중간에 내린다. 목욕도 안 하고
저녁도 안 먹는데 회비 환불도 안 해준 현총무가 또 일찍 갈사람 없냐, 회비
좀 아껴보자, 하더니 마침 부인에게서 온 전화를 받는 강영구 전총장한테도
“너는 마누라 쪽으로 붙어라” 한다. 산행보다 같이 술마시는 재미에 따라
온다는 강총장이 먼저 가실 분이냐. 어림없다. 마침내 야탑역에 있는 대망의
목욕탕에서 1시간이나 느긋하게 목욕하고 저녁을 먹게 됐다. 같은 건물에
있는 생선구이집인데 음식이 맛깔스럽다. 어떻게 이 집이 좋은 줄 알았냐.
김고문이 목욕탕에 있는 구두닦이 총각한테 이 동네서 제일 음식 맛있는 집이
어디냐 물어 알아냈단다. 김고문이 누구냐. 고등어구이와 갈치조림에 돼지고기
김치 두루치기도 일품이다. 먹고 마시고 기분이 좋아 너무 떠드는 바람에
종업원한테 주의까지 받았는데도 조금도 반성의 기미가 없다.
그래도 이상학동문 회비 환불 안 해준 거는 잘못이었다는 비판이 일자 그렇다면
다음에 올 때 회비를 면제해주자는 의견이 나왔다. 김회장이 다음에 한번 와서는
안 되고 다음부터 몇 번 계속 오면 회비를 면제해준다 하신다. 아이고, 짠돌이
총무보다 더 무섭다. 이동문님, 다음에 오시면 회비 면제 해드릴 테니 꼭 오세요.
김고문이 어제 저녁 김두희 전 법무부장관과 술을 마셨는데 장변호사님을 잘
안다며 자기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이라고 했다는 말을 전한다.
그렇게 훌륭한 법조인한테 우리는 손수 구운 감자 고구마도 얻어먹고 밥도
수시로 얻어먹습니다. 오늘도 장변호사님이 저녁을 사셨다. 김고문님, 김두희
장관 말고 또 누구 장변호사님 존경하는 분 아는 사람 없어요?
대간 코스 중 특히 좋았던 곳 다시 하자. 김대장 내외와 임총장 내외가 빠진
덕유산종주 코스는 유여사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축하등반으로 계획한다.
가을이 제일 좋다는 김고문 말씀에 따라 이번 가을로 하자. 유여사님, 힘내세요.
현총무가 진부령-대간령 구간 못해 아쉽다는데 진부령도 다시 가자. 그때
조난 팀 구해준 땅꾼과 심마니도 찾아 술 한 잔 사주자. 당장 다음 산행은?
구바오로가 조만간 경기도의 주금산이란 산을 가는데 가보고 괜찮으면 안내
하겠단다.
아이스케키 먹고 가자. 맨날 아이스케키만 먹냐, 오늘은 우아하게 팥빙수 먹어보자.
롯데리아 가서 팥빙수 먹고 나오니 7시 30분, 아직도 환하다. 집에 일찍 가면 큰일
나냐 소리 한사람 누구야?
참가자(13명): 강영구, 구명회, 김숭자(장원찬), 김윤기, 김종남, 박정수(노순옥),
임종수(김경자), 이상학, 한영구, 현해수. (노순옥 기록)
첫댓글 피톤치드 가드찬 숲속에서 친구들과 어울린 하루 무릉도원이 따로 있을리 없었읍니다.행복했읍니다. 장변호사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