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시기에, 조선 수군의 원로였던 정걸 장군
당시 조선 수군 내에서 최고 커리어를 가진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많이들 망각함. 첫 승전인 옥포 해전을 시작으로 행주대첩까지 간여했던 충청수사 정걸은 1555년 이준경 휘하에서 을묘왜변을 진압했던 명장 중 한 사람이었음.
달량성 전투에서 이준경을 도와 왜구들을 격파한 공으로 남도포 만호가 된 것을 시작으로, 명종 대에 있었던 일련의 군비 정비 및 함대 정비 사업에도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었던 사람임. 판옥선이 최초로 건조되는 것도 도왔고, 총통들이 새로이 정비되어 생산된 것도 보고 이를 운용도 해봤을 것임.
즉 임진왜란 시기면 조선 수군 내의 최고 원로라고 불려도 다름없는 인물이었고, 이런 인물이 1591년 전라좌수영 조방장으로 임명되어 내려온 것은 이순신에게는 크나큰 행운이었을 것임.
당연하게도 수군에서 입지적인 인물이자 살아있는 전설이었기 때문에 일본군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지, 판옥선은 어떻게 굴려먹어야 하는지, 신형 총통은 어떻게 쏴야 효과적인지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이순신은 이를 십분 활용해서 썼음.
게다가 남쪽에서만 근무한게 아니라 북방에서도 근무했거니와, 화전에 대한 지식도 있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노장이기도 했다는 것이 엄청난 이점. 실제로 수사로도 싸웠지만 지상군을 지휘해서 일본군을 저지하는 임무도 몇 번 맡았음.
이순신의 휘하에 있을 때가 아마 77~78세 가량이었을 건데, 그럼에도 이순신을 도와서 용맹하게 싸웠고 부산포에서는 직접 조방장으로 나서서 전공을 올리기도 했음.
1593년, 79세의 노구로 충청수사에 임명되어 행주대첩 전투에 참가하여 권율의 지상군을 엄호하고, 내친 김에 한강을 타고 용산까지가서 일본군에게 총통 사격을 퍼붓기까지 했었다고.
불행 중 다행이라면 1597년 여름에 83세의 나이로 병사했는데, 이 때가 칠천량 직전이라...뭐 1595년에 사직을 했다지만 칠천량에서 죽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면 다행일듯.
어쨌거나 충청수사 정걸은 당대 수군이 가진 최고의 아웃풋이었으며 살아있는 전설 정도로 볼 수 있는 사람임. 이순신은 이러한 인물을 적시적소에 제대로 가져다 썼고, 정걸 역시 자기보다 31년이나 늦은 후배를 상관으로 모시면서 열과 성을 다해서 싸웠다고.
정걸이 굉장한 커리어 가진 사람인데 잘 모르더라고. 그냥 이순신의 막료 중 하나,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이 많아서 써보는 글임. 이순신도 막 다루기 어려워 하는 인물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