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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6th Baron Byron, 1788.1.22~1824.4.19]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9.5~1840.5.7]
테오도르 제리코 [Théodore Géricault 1791.9.26~1824.1.26] Egide Charles Gustave, Baron Wappers (23 August 1803 - 6 December 1874) Claude Joseph Vernet (14 August 1714 – 3 December 1789) 퓨젤리 [Henry Fuseli, 1741.2.7~1825.4.16] 고야 Francisco Jos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 1776.6.11~1837.3.31]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1757.11.28~1827.8.12]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4.23~1851.12.19] Frederic Edwin Church (May 4, 1826 April 7, 1900) (특별출연) 엘리자벳 바렛 브라우닝 쉘리 de Goya (1746-1828)
죤 키츠
낭만주의 음악(Romantic music)의 범위에 대해서는 양식사(樣式史)나 세대론과 관계되어 매우 문제시되는 점이나, 일반적으로는 빈 고전파 이후의 19세기 전체가 해당된다.
현재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선에서 그 흐름을 추구해 보면 우선 독일 낭만파로 슈베르트에서 슈만까지를 다루고, 동기(同期)의 낭만파군(浪漫派群)으로는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나 쇼팽을 든다. 그리고 낭만파적 현실주의에서 후기 낭만파에의 길로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의 선이 주목되며, 그 밖에 그 주변이나 또는 대립으로서 브람스, 브루크너, 프랑스의 구노, 비제, 이탈리아의 베르디를 들 수 있다. 또한 스칸디나비아나 슬라브 각국에 대한 낭만파의 영향도 만들어진다.
이와 같이 포괄적으로 살핀 흐름에서도 명료하듯이, 낭만파의 음악은 미학이나 다른 예술과의 관련방식이나 대상으로 하는 곡종 등의 점에서 각각 다른 수단에 의하고 있다. 그러나 작곡이론상에서의 공통된 문제점은 개성적인 작품에 대한 심리의 미묘한 반영을 꾀한 결과, 조바꿈(轉調)이나 색채의 변화에 관련되는 화성법, 또는 관현악법에 있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모든 예술 속에서 음악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기악음악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음악은 "일반적인 말처럼 하나하나의 명확한 뜻을 지니지 않고 그것만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려는" 음의 언어로서 파악되며, 따라서 작곡가는 시적, 회화적, 설화적, 극적인 세계와 결부된 감정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음악에 나타냈다.
이번 글은 간단히(정말로) 낭만주의 시대의 화가와 시인들의 시를 감상하며 끝내겠습니다..
Lord Byron in Albanian dress painted by Thomas Phillips in 1813
바이런 [6th Baron Byron, 1788.1.22~1824.4.19]
영국 낭만파 시인. 반속적(反俗的)인 천재시인, 미남인 젊은 독신귀족이라 하여 런던 사교계의 총아로 등장했다. 주요 작품으로《카인》,《사르다나팔루스》,《코린트의 포위》 등이 있다. 그의 비통한 서정, 습속에 대한 반골(反骨), 날카로운 풍자, 근대적인 내적 고뇌, 다채로운 서간 등은 전유럽을 풍미하기도 했다.
이제는 더이상 헤매지 말자 -바이런
이제는 더이상
헤매지 말자.
이토록 늦은 한밤중에
지금도 가슴속엔
사랑이 깃들고
지금도 달빛은 훤하지만
칼을 쓰면
칼집이 해어지고
영혼이 괴로우면
가슴이 허나니,
심장도 숨 쉬려면
쉬어야 하고
사랑에도
휴식이 있어야 하느니라.
밤은 사랑을 위해 있고,
낮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돌아오지만,
이제는 더이상
헤매지 말자
아련히 흐르는 달빛 사이를......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9.5~18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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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낭만주의와 북유럽의 낭만주의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작가의 이름을 보지 않더라도 그림만 보면 남쪽, 북쪽이 보일 정도 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가장 분명한 원인은 민족성 때문일겁니다,.
프랑스는 엄밀히 따져 본다면 남쪽은 로마인의 피가 많이섞인 라틴계가 북쪽은 게르만계가 많이 분포되어 있고
사실한 여러민족의 혼혈민족이라고 해도 맞는 말입니다,.따라서 동적이고 감성적이며 가끔 괴팍 하기도 하죠.
물론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쾌적하고 살기 좋은 기후등도 그들의 문화 활동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반면에 독일등 북유럽 지방은 대부분 게르만 민족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순수한 혈통을 유지 하고 있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얼어붇은 땅과 척박한 기후 조건등은 그들에게 이성적이고 실용적이며 개인적인 생활과 문화를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혈통과 환경은 자연스럽게 문화를 구분지어 놓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민족문화 또는 개성이라고 표현 합니다.
1770년부터 80년까지 독일에서는 ‘질풍(疾風)과 노도(怒濤)’라는 문화운동이 일어 납니다
괴테도 참가했던 이 질풍노도운동(Sturm und Drang)’은 어찌보면 전혀 독일민족 답지 않은 문화운동 이었습니다.
당연히 민족성과 잘 들어맞지 않았던 이 운동은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말 그대로 질풍노도처럼 용틀임하다
사라지고 말지만 얼마후 독일 낭만주의 운동의 발화점으로서의 불씨를 남겨놓았습니다.
그 불씨를 다시 되살린것은 낭만주의 이론을 개척한 것은 슐레겔 형제였는데 그는 객관에 대한 주관의 절대적 자유를
주창하고, 무한(無限)을 동경하였습니다. 또한 환상(幻想)을 사랑하고, 모든 형식의 속박을 배척하며 자아를 숭배하였는데
독일의 문학부문에서는 제법 활발한 활동이 있었지만 미술부분에서는 상대적으로 활동이 빈약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독일 낭만주의 화파의 거장입니다'
생존시에는 거의 평가받지 못하다가 20세기 초에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진 작가중 한명입니다.
주로 풍경적화를 많이 그렸고 특히 가을 ·겨울 ·새벽 ·안개 ·월광 등동적인것 보다는 정적이고 사유적인
정경을 독특한 정적감(靜寂感) 속에 표현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Caspar David Friedrich,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38.58 × 29.13 inches, 1818, Oil on canvas, Kunsthalle Hamburg
주인공을 화면 정중앙에 배치하는 상당히 대담한 구도를 택한 그의 <안개바다위의 방랑자>라는 작품은 산뜻하면서도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분명 화면속의 인물은 프리드리히 자신일것이고 정장에 지팡이까지 든 그는 지금 산위가 아니라 험한
세상의 어렵고 혼미하고 미래를 예측 하기 어려운 세상의 모진 풍파 앞에 당당히 서있는 모습입니다.
고전주의자들의 화풍과는 분명 다른 거칠고 산만한 붓질속에(물론 이런 거친 표현이 이그림에 맞아떨어진다는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의 머리카락을 흩어지게 하는 바람결이 보는 우리에게까지 불어오는듯한 느낌을 받을수 있습니다.
첩첩이 겹쳐있는 앞으로 거쳐가야할 산들이 힘들어 보이지 않을정도로 그의 뒷모습에서는 어떤 자신감이 보여 집니다.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처럼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지도 않고 결연한 얼굴모습도 보이지 않지만 그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소박하면서도 청량감있는 그의 색채감각은 프랑스의 그 공기와는 다른 솔잎향 가득 담은 독일의
차가운 숲속 바람으로 느껴지게 만듭니다.
Chalk Cliffs on Rügen, (1818). 90.5 × 71 cm. Museum Oskar Reinhart am Stadtgarten, Winterthur, Switzerland.
Friedrich married Christiane Caroline Bommer in 1818, and on their honeymoon they visited relatives in
Neubrandenburg and Greifswald. This painting celebrates the couple's union.
프리드리히의 또다른 작품인<뤼겐섬의 백악 절벽>이라는 작품입니다.
1818년 그의 신혼여행지였던듯한 그곳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위의<안개바다위의 방랑자>라는 작품과 화면 설정이 비슷합니다.
평론가들에 따르면 이작품엔 두명의 프리드리히가 표현되어있다고 합니다.
가운데 엎드린이는 신혼여행간 프리드리히
아내의 손짓에 친절하게 반응하여 무언가 내려다 보는(모자까지 벗고) 현재의 프리드리히..
우측에 나무에 기대어 먼 바다를 관조하는 또다른 노년의 프리드리히,,
미끄러 질까바 두발로 버티고 한손은 나무 뿌리를 잡고있는 붉은 드레스의 젊은 아내는 모습이 귀엽기도 합니다.
그들앞에 드넓게 펼쳐진 바다는 이두사람이 앞으로 같이 헤쳐 나가야할 인생의 바다이겠죠.
두대의 배는 이부부를 상징하는것일 겁니다.뾰족하고 험해보이는 하얀 쵸크 절벽은 이 다람에게 다가올 또다른
인생역정을 상징하는것일것이고,,,
전체 화면을 살펴보면 상단의 두 그루의 나무들과 하단의 지면부분이 절묘하게 만나면서 커다란 하트를 만들어냅니다.
프리드리히는 역시 낭만주의자 답게 위트와 낭만이 넘치는 작가였습니다.
그의 두 그림만을 볼때 그는 북구인답지 않게 따스하고 열정적인 감성의 소유자였던게 분명 합니다.
하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 <방해>나 나무 연작들을 보면 보기만해도 추위가 느껴지고 음산한 북구인의 이성과 감성이
느껴집니다.
사랑의 철학 - 쉘리
샘물이 모여서 강물 되고
강물이 합해져 바다가 된다.
하늘의 바람은 영원히
달콤한 감정과 섞인다.
세상에 외톨이는 없는 법이라
만물은 하늘의 법칙을 따라서
서로서로 다른 것과 어울리는데
어찌 내가 당신과 짝이 못 되랴?
보라! 산은 하늘과 입맞춤하고
물결은 물결끼리 서로 껴안는다.
동기끼리 얕보는 수가 없는 법이니
꽃다운 누이도 용서하지 않으리라.
햇빛은 대지를 껴안고 있고
달빛은 바다에 입맞춤한다.
하지만 그대 내게 입맞추지 않는다면
그 모든 입맞춤이 무슨 송요이 있으랴.
The Sea of Ice (1823–24), Kunsthalle Hamburg.
This scene has been described as "a stunning composition of near and distant forms in an Arctic image".
테오도르 제리코 [Théodore Géricault 1791.9.26~1824.1.26]
Théodore Géricault, The Raft of the Medusa, 1819.
The Voyage of Life Childhood
The Voyage of Life Youth
The Voyage of Life Manhood
위 그림은 토마스콜의 <인생의 여로>4연작중 마지막 장면입니다.(소년,청년,중년,노년) 인생의 역정을 4개의 시기로 나누어
종교적인 감화와 감동을 잔잔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1829년부터 3년간은 주로 이탈리아에 체재하면서, C.로랭, A.터너 등의 역사적 풍경화와 로마의 고대유적 등에서 자극을 받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부터는 뉴욕주의 캐츠킬에 정주하면서 허드슨강 상류의 웅대한 경치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낭만적인 주제를 곁들인 풍경화를 그렸으며 《강의 물굽이》《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1828, 보스턴미술관 소장) 《캐츠킬에서》(1837,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인생의 여로》(1841) 《세계의 십자가》 등 미국 미술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다.
인생의 계절 - 죤 키츠
한 해가 네 계절로 채워져 있듯,
인생에도 네 계절이 있나니;
원기 왕성한 사람의 봄은 그의 마음이
모든 것을 분명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때이며,
그의 여름엔 화사하며
봄의 달콤하고 발랄한 생각을 사랑하여,
되새김질하는 때이니, 그의 꿈이 하늘 천정까지
높이 날아오르는 부푼 꿈을 꾸고,
그의 영혼에 가을 오나니,
그는 꿈의 날개를 접고,
올바른 것들을 놓친 잘못과 태만을,
울타리 밖 실개천을 무심히 쳐다 보듯,
방관하여 체념하는 때로다.
그에게 겨울 또한 오리니 창백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길을 먼저 가 있을 것이니.
Egide Charles Gustave, Baron Wappers (23 August 1803 - 6 December 1874)
Egide Charles Gustave Wappers
, Episode of the Belgian Revolution of 1830, 11834, Musée d'Art Ancien, Brussels a romantic vision by a Belgian painter.
Claude Joseph Vernet (14 August 1714 – 3 December 1789)
Joseph Vernet, 1759, Shipwreck , Groeninge Museum, Bruges
(바이런의시 눈물中)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에 돛을 세우고
밀려드는 파도를 헤치며
대서양에 배 띄어야 하는 비운의 뱃사람
쉬이 그의 무덤이 될
바다 물결 위를 굽어볼 때엔
남색의 파도는 한 방울의 눈물과 더불어
찬란하게 반짝인다.
퓨젤리 [Henry Fuseli, 1741.2.7~1825.4.16]
Henry Fuseli, 1781, The Nightmare, Detroit Institute of Arts
취리히 출생. 영국에서 평생을 보냈다. 1761년 취리히에서 성직(聖職)에 있다가, 정치활동에 참가하여 베를린으로 피신, 1764년 런던으로 건너갔다. 1766년경 화가로 전환하고, 1769∼1779년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미켈란젤로를 연구한 뒤, 1779년 이후 런던에서 활약하였다. 1790년 왕립미술원 회원, 1799년 동 교수가 되었고, 같은 해 폴몰에 밀턴미술관을 개설, 자작 그림 47점을 전시하였다. W.블레이크와 친교를 가져, 《니벨룽겐의 노래》 등에서 취재한 문학적 주제의 작품을 즐겨 제작하였으며 명암(明暗)의 대조를 강조한 환상성과 상상이 풍부한 독자적 화풍을 개척하였다. 주요작품은 《뤼틀리의 맹세》(1778) 《악몽》(1781) 등이다.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 엘리자벳 바렛 브라우닝
그대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어요.
그대의 미소와 미모와 다정한 언어로하여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즐거웠던 느낌만으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아요.
그대여, 이런 것들은 저절로 변할 수 있고,
그대를 변하게 할 수도 있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그렇게 깨질지도 모릅니다.
그대의 연민으로 내 눈물을 닦아내는
그런 사랑도 하지말아요.
그대의 위안으로 슬픔을 잊어버린 사람은
그 때문에 당신의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사랑만을 위해 나를 사랑해 주세요.
영원한 사랑을 통하여
고야 Francisco Jos
de Goya (1746-1828)
The Nude Maja, ca. 1800.
The Clothed Maja, ca. 1803.
마야 연작은 고야의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들 가운데 하나이다. 1800년에 《옷 벗은 마야》를 그렸고 1803년에는 《옷 입은 마야》를 그렸다. 같은 여인이 똑 같은 포즈로 그려져 있는 이 두 그림은 어떠한 비유나 신화적 연관성이 없는 현실의 여인을 대상으로 한 그림으로, "서양 예술 최초의 등신대 여성 누드"로 평가받는다.《옷 벗은 마야》는 신성 모독 논란을 일으켰고 고야는 그림에 옷을 입히라는 압력을 받았다. 이에 고야는 그림에 옷을 입히는 것을 거절하고 《옷 입은 마야》를 새로 그렸다.
그림의 모델인 마야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림을 소유하게 된 카를로스 4세의 수상 마누엘 데 고도이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마야의 후보로 알바 여공을 꼽았으나 고야는 이를 부정하였다. 여러모로 보아 마야는 실존의 어떤 인물이기 보다는 이상화된 여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1808년 고도이가 실각하자 이 그림은 그의 모든 재산과 함께 페르난도 7세에게 귀속되었다. 1813년 스페인 종교재판은 마야 연작을 외설스럽다고 압수하였으나 1836년 반환하였다. 고야는 간신히 이단 심판을 면할 수 있었다. 현재 마야 연작은 스페인 프라도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온라인 서양미술사 13번글-그리스미술을 참고 하세요(고야의 블랙페인팅)
The Third of May 1808, 1814. Oil on canvas, 266 х 345 cm. Museo del Prado, Madrid.
반도 전쟁이 가져온 결과는 참혹했다. 스페인 전역은 프랑스군에 의해 학살과 죽음의 공포에 떨었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전쟁의 참상을 그림을 통해 고발하였다. 《1808년 5월 3일의 처형》이 널리 알려져 있다. 고야는 전쟁의 참상을 담은 판화집 《전쟁의 재난》을 제작하였다. 고야는 전쟁을 기록한 이 판화 연작에서 프랑스 군인의 만행과 함께 스페인 사람들이 프랑스에 협력한 자국민에게 벌인 만행 역시 똑같이 기록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스페인 왕정이 복귀하였으나 고야는 이미 왕가의 신임을 잃은 상태였다. 외딴 집에서 살기로 작정한 고야는 퀸타 델 소르도에서 검은 그림 연작을 남겼다. 이 그림들 속에서 그는 이성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광기를 묘사하였다. 검은 그림들 가운데 〈자식을 삼키는 사트루누스〉가 유명하다.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 1776.6.11~1837.3.31]
John Constable, 1821, The Hay Wain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1757.11.28~1827.8.12]
William Blake, c. 1824-27, The Wood of the Self-Murderers: The Harpies and the Suicides, Tate
굴뚝 소제하는 아이 -윌리엄 블레이크
눈 속에 무엇인가 작은 시꺼먼 것
슬픈 가락으로 울부짖네 굴뚝 쑤셔요! 쑤셔요!
엄마와 아빠는 어디 계시니? 말해 보렴?
두 분 다 기도하러 교회에 가셨어요
풀 무성한 황야에서 제가 즐거워하고
겨울 눈 속에서 미소지었더니
엄마 아빤 저에게 죽음의 옷 입혀 주고
슬픈 가락의 노래 가르쳐 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즐겁게 춤추고 노래 부르니
엄마 아빤 어떤 해도 입히지 않은 줄 알고
하느님과 사제와 임금을 찬양하러 가셨어요
우리들의 비참으로 천국을 꾸미는 그 분들을.
영국 시인 겸 화가. 신비로운 체험을 시로 표현했다. 작품에는《결백의 노래》,《셀의 서(書)》,《밀턴》등이 있다. 화가로서 단테 등의 시와 구약성서의《욥기(記)》등을 위한 삽화를 남김으로써 천재성도 보이며 활약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비상한 환상력을 지녀 창가에서 천사와 이야기하고 언덕 위에 올라 하늘을 만진 체험이 있다고 하며, 인간정신에는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고, 상징에 의하여 생각하는 영역이 있는데, 블레이크의 신화적 상징은 바로 그러한 원초적 체험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었다.
양식으로 볼 때 중세 및 매너리즘의 회화와 유사성이 있다고 지적되기도 하지만, 정신적 내용의 표현형식으로 블레이크가 스스로 창조해낸 양식으로 본다.
Blake's Ancient of Days. The "Ancient of Days" is described in Chapter 7 of the Book of Daniel.
한낱의 모래알에서 世界를
그리고 한송이 들꽃에서 天國을 보기 위하여,
너의 손바닥에 無限을
그리고 한 시간에 永遠을 간직하라.
[순수의 前兆 Auguries of innocence]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4.23~1851.12.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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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painted (1844).
Frederic Edwin Church (May 4, 1826 April 7, 1900)
Frederic Edwin Church, 1860, Twilight in the Wilderness, Cleveland Museum of Art
허드슨 리버 화파 [Hudson River School]
유럽과 미국의 낭만주의 작가들의 그림을 낭만주의 시인들의 詩와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다음편은 신고전주의 미술입니다.
蛇足) ㅎ~,여전히 길죠? 불치병..ㅋ
첫댓글 감사합니다 스크랩해요
현재 저희 소모임 스터디는 낭만주의가 끝나고 신고전주의를 들어갈 차례입니다. 한번 놀러 오세요,ㅎ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아름답게 바라보고 보스코님의 열정에 감탄하고
좋은 날 되소서
잘 지내시고 계시죠?
시와 음악과 미술사... 터너의 작품이 참 좋네요~ ^^
감사합니다^^
한마당에 올려진 시,사,화,악 이 상응하여 하모니를 이루니 마음도 녹아 드는군요 ^^
ㅎ^^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초마차'가 등장 했군요. '건초수레'는 첨 들어봅니다. ㅋㅋ; 그거야 뭐 해석하기 나름일테니까.. 하여간 보스코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건.. 몇번은 읽어야 좀 머리에 들어오겠군요. ^^
좋은 글과 그림 감사합니다.
안개바다위의 방랑자,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인데, 유익한 글과 함께 잘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