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현은 항상 나를 감동시키는군! 모쪼록 건강과 안전을 기원하면서 유구 신장군 댁 이야기를 글로 기록하기로 한다. 신위영장군 댁 부친께서는 만석은 안되어도 천석은 했다고 하는데 신장군 형님께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교통부 장관에 임명되어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유구로 내려와서 신장군 댁을 가려면 내 하나를 건너야 집에 당도하는데 옛날에는 무릎까지 옷을 것어 올리고 건너다고 하는데 신장군 형님도 그렇게 평소에는 생활했다고 하는데, 그날은 찝차를 타고 건너가서 부친께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부친께서는 노발대발 화를 내시면서 고향에 오면서 어른들이 머르르는 곳에 감히 차를 타고 오다니 혼쭐이 난 교통부 장관인 신상철장군(두아들이 장군 출신)은 다시 차를 타고 나가서 걸어서 내를 엤날과 같이 무릎까지 옷을 것어 올이고 부친께 인사를 드렸다는 일화가 있으며, 부친께서는 평소에도 살아가면서 주민들이 어려울 때 혹은 가문과 흉년이 들면 쌀을 나누어 주고 절대로 이자는 밭지 않고 원금 쌀만 밭아 생활했다고 하며 평소 이렿게 생활했던 덕택으로 6.25가 발발하여 인근에 있는 만석지기를 한 부자집은 패가 망신하여 멸문지화를 당했다고 하며, 한편 신장군 댁에는 아무런 해를 끼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며 그후 자손들 잘 성장하여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장군을 거쳐 교통부 장관에 오르고 나와 함께 군에서 함께 모시고 생활한 신위영 장군은 1974년 인가 5.18도끼만행 사건이 터지던 날 신장군은 내가 머물고 있는 내부반으로 찝차를 보내면서 테니스 운동을 하러 나로라고 하여 나가지 안했더니 다시 차를 보내면서 운동하려 나오라고 재차 차를 보내주어 망설이고 있는데, 내부반 요원들이 나가라고 하여 차를 타고 사단 연병장들 통과하려고 하는데 연병장에는 전쟁준비 1급비상이 걸릴 터라 모든 장병은 완전부장을 하고 신속하게 집결하고 있는데, 그 곳을 통과 하고 있는데 들려오는 소리가 누구는 국가를 위해 죽으러 전쟁터로 나가려고 하는데 한가하게 테니스나 치러 간다고 듣기 거북한 쌍스러운 욕을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 오는데, 나는 테니장에 도착하여 화가 난 목소리로 이런 날 운동을 해도 되냐고 말을 했더니 신위영 장군은 빙그시 웃으면서 운동이나 하자 라고 말을 하니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테니스를 치기 시작한 시간이 한 2시간 정도 운동을 했을까, 나는 다시 찝차를 타고 연병장을 돌아 내부반으로 돌아와 보니 완전 군장을 풀고 한가 하게 쉬고 있는 것을 보고 신위영 장군의 뱃짱에 감탄을 속으로 하고 말았지! 그 후 미루나무가 짤려 나간 그 자리에 가보았더니 사망한 미군 소령의 이름 만이 쓸쓸하게 기록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많는 생각에 잠겨 버린 적이 있었지
나는 이렇게 멋쟁이 장군 들과 군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했으며 12.12 사태때 서울시 외곽 경호를 맡은 윤흥기 장군 같은 경우는 항상 여유롭게 그러면서 온화하게 운동을 하고 나서 맥주를 얼큰이 먹고 잠시 술에 취해 살피지 못하고 차를 타려 하면 모든 운동기구 등을 챙겨 들고 뒤를 살펴 주는 자상함에 놀라적이 많아던 기억도 나고
되돌아 회고 해 보면 함께하는 사람과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덕으로 생활하면 자기를 더 지킬 수가 있는 철학이 만들어 진다는 것을 배웠고 마침 태현이가 경주 최부자집 12대의 유지 철학을 기록 해 주어 경험했던 내용을 기록하며
세상은 그냥은 만들어 지지 안는다는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지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
<천안에서 태원 그대들을 생각하며 2007. 7. 4 16: 30에 글을 마치다>
첫댓글왔다,보았다,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