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2. 율법을 추구하는 것.
(갈 3:1~9)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단 말입니까?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이제 와서 육체로 마치려고 합니까?’
(3절)
성령으로 시작해 육체로 마치려는 갈라디아 사람들.
거짓 교사들에게 현혹되어 율법을 통해 의를 추구하려 했던 사람들.
율법은 죽음의 표징이고 복음이 생명의 표징인데
율법을 추구하는 어리석음.
‘규정, 율법’이라 명칭 되지 않았더라도
만약 우리가 율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체들,
예를 들어
말씀을, 교회를, 기도를, 교제를, 성경을
사랑 없이 쫓거나 주장하면
그 일체가 율법을 추구하는 속성을 띈다.
율법은 강제하는 것이고
강제에 순응하지 않으면 벌이 적용되는 것인데
사랑 없는 것은 일방적 요구로 흐르고
감동과 설득이 없이 지켜야 할 규율, 강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따르는 듯, 율법을 따르고 있다.
10.27 집회는 한국의 기독교가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슬프지만 겪어야 할 일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아무런 편견 없이 순진하게 신앙생활 했을 때부터
말씀이나 소견을 들을 때 약간의 의문과 찜찜함을 가졌던
사람들이 한 명도 예외 없이 그 집회에 실행위원으로,
아니면 지원 선언으로 참여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긴가민가, 조심하자고 미뤄두었던
그들을 Grouping하는 것을 스스로 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래의 명단은 실행위원회 이름을 올린 사람이지만
지지를 선언한 인물 중에는 이찬수, 유기성 같은 목사도 포함되었다.
나는 그들을 경계, 아니 그 이상의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목자(리더)는 양들을 푸른 초장에 신선한 물가로 데려가
생명을 유지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천 길 낭떠러지로 이끌어 갈 수도 있는 존재이다.
단체와 조직의 운명이 리더에게 절대적으로 달렸다.
목자를 따르는 양들에게 나는 재기발랄함과
영특함,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마인드를 원하지만
사실 그렇게 하기는 너무나 힘들다.
대부분의 양들은 순진하게 목자를 따르기만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리더를 뛰어넘는 능력과 사랑으로
개별 양들과 깊은 사귐을 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나를 버티게 하지만,
그래서 슬픔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나님!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입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일일이 와 주셔서
악한 목자의 손아귀에서 건지소서.
10.27 집회에서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긍휼을
머리카락만큼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주도하는 자, 이를 따르는 자, 침묵하는 자
모두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주님, 저의 감정적인 모습을 절제하게 해 주십시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은혜로 매일의 삶을
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리 브리지스
소영이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합니다.
최근에 많이 회복했었는데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니
다시 이런 증상이 있습니다.
그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정환이가 내일 3차 항암에 들어갑니다.
정환이와 경민, 두 부부를 강한 팔로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은 학교에서 중요한 과업이 있습니다.
문제 없이 잘하도록 지켜주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