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식이라는 것은 편인이라는 육신이 식신이 극되어질때 표현되는 단어입니다. 辛卯년은 계수일간이 도식되는 운세이기도 합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앞으로 넘어져도 뒤통수가 깨지는 운세이기도 합니다.
식신이라는 것은 인간사에게 가장 근본적인 행복해야 할 권리와도 같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고, 잘 거시기하고 살수 있는 기본적인 의무를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 권리로 行이라는 것은 가다라는 말인데 삶을 넉넉하게 풍요롭게 살수있도록 해주는 귀한 육신입니다.
六神중에서는 유일하게 귀신 神자가 붙어 있으니 그 것이 食神입니다. 이는 추론하건데 생명의 존귀함이 가장 으뜸이고, 결국 사람이 살아야지 죽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지 않으냐는 의미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곧 神이고 지구상에 같은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성장하게 되어 있고, 살아가게 되는데 환경이라는 것에 적응하기 위한 나 자신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진화를 거듭하게 되고 이것이 사회적으로는 적합한 능력을 가지려는 의지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결국 식신은 인간사의 행복할 권리에 편의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식신은 행복을 위해서 진화하고 변화합니다. 이러한 과정에 행복을 찾기도 갈망하기도 하고, 원인은 불편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불행해지지 않으려는 것이고, 태평성태로 행복과 자유를 갈망하려는 것이고, 잠을 자다 의식이 깨어났으니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건강하게 움직이고, 건강하게 웃고 표현하고, 먹고 잘 먹고 잘살자는 식신이 자칫 과하게 되면 개인적 편의로움이 지나쳐 자칫 태만과 본능적인 뻔뻔함으로도 보여질 수 있으나 일단 네가 좋은 것이 내가 좋은 것이고, 사람이 편의를 잘 이해하고 파악할줄 알기도 합니다.
사람이 같이 밥먹는 것, 같이 행하며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것만큼 큰 의미는 없는 것입니다. 인성이 일간을 생하는 모계혈통의 첫출발 선상이 내가 태어난 당위성에 대한 문제라면 일간이 식신을 생하는 것은 내가 이땅에 숨을 쉬고 살아가야하는 당위성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식신을 편인이 극한다는 것은 의식주 풍부하다가 반대로 부족되는 현상과 같고, 넉넉하다는 낙천적인 의지가 부족이라는 의지로 전환되고, 낙천은 근심 걱정으로 바뀌어지게 되고, 살만하다는 못살만하다로 바뀌였고, 식신은 행복시작인데 반대로 불행해진다는 말입니다.
물론 사주원국에 편인격이 식신을 보는 도식은 나는 그만 그만 먹고 사는데 내 주변에 스스로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어 도와주거나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고, 반대로 식신격에 편인도식은 나도 한번 잘 먹고 잘 살아 보고자하는데 무엇하나 뜻이 통하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편인과 식신이 무엇이 나이고 무엇이 너인지를 주객으로 구분하는 과정에서 손쉬운 방법으로 격을 중심했지만 격이 아니더라도 식신인 길신을 중심으로 하는 방법이 개인에 준한 것이라면 흉신인 편인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주변 여건으로 살필 수 있으니 이것을 엿장수 맘이라 하나 봅니다.
사주원국에 둘 다 있는것도 도식, 하나만 있고 운에서 만나도 도식이라 하는데 팔자에 둘 다 있는 도식은 쉽게 가는 법이 없으니 끝없이 반복하고 번복하는 가운데 장인이 되라는 것과 같으니 나 하고 싶은데로 하지 말고 주변환경이 원하는 것에 부합하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말고, 내가 상대에게 맞추어가는 것은 하지 말고, 주변이 원하는 것에 부합하고 뜻하는 것을 따르고 살라는 것이니 놀려고 하면 일하라 하고, 일할려고 하면 놀라고 하니 내가 변덕장이가 아니라 너의 요구사항이 뒤죽박죽이니 나가 갈피를 못잡는 것입니다.
식신격에 편인도식 옆에는 편인격에 식신도식이 함께하는 것이고, 편인격에 식신도식 옆에는 식신격에 편인도식이 함께하기도 하고, 식신격이 운에서 편인도식은 잠시 잠깐이라도 태만하거나 노는꼴 못보겠다는 사감이나 꼰데가 옆에서 채칙질하고 부추기는 인물이 있다는 말입니다.
편인격이 운에서 식신도식은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노약자로 누군가 도와주거나 거들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이 즐비하다는 것이니 이를 병자라 해도 되고, 환자라 해도 되고, 사회적으로 무능력하다고 해도 되고, 광신도라고 해도 되고, 편집증 환자라 해도 모라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글자 다 투간되어 있어 둘다 격노릇하는 사람은 둘다 생각하면 될 것이고, 사주에 월지의 기세를 장악한 것이 격이고 주도하는 세력이 격노릇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도식은 이보다 더 무섭고 짜증나는 것은 운에서 만나는 별볼일도 없어 보이는 편인 식신의 만남이니 보고 있자니 민망하여 고개를 들수가 없습니다.
팔자에는 원인이 있고, 운에서는 과정을 만들고, 세군에서 속속들이 사건으로 성적표를 던지는 것이 편인도식입니다. 어디 한구석 빠뜨릴 것 없이 무엇이 문제인가를 살피어 후까시 잡히다 상다리 부러질 것인가 이왕 맞을 매 속시원히 얻어터지는가에 대한 차이기도 합니다.
여튼 지금까지는 일차적인 문제의 도식이고 이차로 넘어가면 도식을 하는데 편관이 벌떡이면 과거 소홀했던 문제가 터지기 시작하니 과징금, 세금추징, 세무조사, 잊고 있었던 문제가 어디한번 그냥 가는 법이 없이 사감이나 꼰데같이 죽어라 달리는 말에게 채칙을 가하기도 합니다.
편인이 도식하는데 편관이 살아나 일간을 극하면 위와 같고, 비견이 있었다면 반대로 꿔준돈 받아 내기고, 조사할 수 있는 마패를 찬것과 같고, 백지수표에 어떻게 동그라미를 그려넣어야 할지가 고민이고 문제점이 저절로 해결되어 사라지게 되니 그져 사람은 쌈구경,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기도 합니다.
편인 도식하는데 정관이 있으면 원천자가 불량이니 쌍방과실과도 같은데 공급자가 불량이면 제품도 불량이 되는 것과 같아 원단이 문제면 옷을 만들어도 문제가 생기는 법과 같은 것인데 재생관 받지 못한 관은 관설이되는 것인데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독야청청한 것에 대한 대가이니 이도 소홀이기는 합니다.
이때 겁재는 글자를 깨우치지 못한 문맹가와 같아 세돈을 알아서 잘내는 세입자가 아니라 세돈 낸 것에 대한 보상금과 위자료까지 요구하는 무대뽀와 같으니 알만한 어른이 아이 코 묻은 것 닦아 줬더니 성추행이라고 떼쓰는 것과 같아 상식적으로 상대하기란 쪽팔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식신생정재하는데 도식은 종자돈 만들지 말라는 신호와 같고, 금전융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으니 매장에 먼지가 쌓이기 시작하고, 하늘에는 똥파리가 날라다니고 주인은 돈다발 대신 파리채를 손에 쥐고 꼰데 사감이 되어 손님을 상대하지 못하고 파리나 먼지를 상대하기도 합니다.
이는 쉽게 말하면 주변에서 원하는 품목이나 상품을 제공하지 못하고, 이월상품, 원하지 않는 것으로 주변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것을 제공하였으니 초등학교에 앞에서 여성복 장사하는 것과 같고, 여대 앞에서 남성복 장사하는 것과 같고, 교회앞에서 점집 차려 놓은 것과 같기도 합니다.
식신생편재하는데 도식은 나쁘게는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하고, 좋게는 가치 상승을 꾀하기도 하니 가격을 뻥튀기하던지, 가격을 폭락시켜 대응책을 강구하라는 신호와 같으니 앞서 두가지 경우는 일간의 근왕이면 견디어 긍정적으로 가려하고 근쇠하면 합병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부실한 것은 합병되어 지기도 합병하기도 하는데 일간의 근왕으로 도식하면 불편한 문제를 극복해본 유경험자를 말하고, 근약하면 불편한 문제에서 속수무책이니 결국 타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이가 있습니다. 람보는 총알을 맞아도 죽지 않는 칠전팔기의 도식입니다.
람보 옆사람은 비껴맞은 총알에도 죽어 나자빠지고, 람보는 10층에서 내려 뛰어 내려도 덤블링해서 살아나극복되니 장인이 되려다 삐꾸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인이 되어 인간승리를 이끈 사람도 있으니 이것이 도식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리그입니다.
육신으로 도식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결국 나약한 심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근왕하거나 비겁으로 왕하면 무대뽀로 가는 길이 가는 길이니 가고자 한다면 사는 것이고, 비껴맞은 총알에 재수 없게 넘어지는 것은 피하려고 했기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에서도 나죽고 너살리려고 하면 사는 것이고, 나살고 너죽이자고 하면 죽는 것이 도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도식은 철저히 나를 위하지 말고 주변사람을 위하는 중에 마음비우고 앞만 보고 가라는 신호이고 메세지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도식에 대해서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렵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해하고 알것도 같으나 나눌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다면 같이 하고도 싶으나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다 저렇다 탁상공론만 하는 것이 술사의 구차한 변명인가 봅니다. 어찌되었든 씩씩하고 꿋꿋하게 식신으로 사는 것이 제일입니다. 힘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