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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이별
그 뒤로 회원들은 물론, 동네의 인심은 동혁에게로 쏠렸다. 젊은 사람들의 일에 쫓아다니며 훼방까지는 놀지 않아도,
“저 녀석들은 처먹구 헐 짓들이 없어서, 밤낮 몰려만 댕기는 게여.” 하고 마땅치 않게 여기던 노인네까지도,
“미상불 이번에 동혁이나 어려운 일 했느니.”
“아아무렴, 여부지사가 있나. 우리네 수루야 어림두 없지. 언감생심 변리를 한푼두 아니 물다니.”
하고 동혁의 칭송이 놀라웠다. 너무나 고마워서 동혁을 찾아와서, 울면서 치사를 하는 부형도 있었는데, 그 통에 박 첨지는 아들 대신으로 연거푸 사나흘씩이나 끌려다니며 막걸리를 얻어먹고 배탈이 다 났다. 동혁은,
‘자아, 빚들은 다 갚었으니까, 앓던 이 빠진 것버덤 더 쉬원허지만, 인젠 어떻게 전답을 떨어지지 않구 지어먹을 도리를 차려야 셈[생활의 형편, 셈평]들을 펴구 살어보지.’
하고 제이단책을 생각하기에 골몰하였다. 그러다가,
‘급허다구 우물을 들구 마시나. 처언천히 황소 걸음으루.’ 하고, 저 자신과 의논을 해가면서, 회원들의 생활이 짧은 시일에 윤택해지지는 못하나마, 다시 빚은 얻지 않을 만치, 생계를 독립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끌어올리고 말리라 하였다. 농지령이라는 것이 발포되었대야, 결국은 지주들의 맘대로 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니까, 어떻게 강도사 집뿐 아니라, 다른 지주들까지도 한 십 개년 동안만 도지로 논을 내놓게 만들었으면, 힘껏 개량식으로 농사를 지어, 그 수입으로 땅 마지기씩이나 장만을 하게 될 텐데….하고 꿍꿍이 셈을 치고 있는 중이다. 회원들의 돈은, 빚을 깨끗이 청산하고도 육십여 원이나 남아서, 그것을 밑천으로 새로이 소비조합을 만들 예산을 세웠다.
그러나 형의 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화는 다른 반대파의 회원들보다도 불평이 많았다. 워낙 저만 공부를 시켜주지 않았다고 부형의 탓을 하는 터에, 제 말마따나 형 때문에 장가도 들지 못해서 그런지, 계모 손에 자라난 아이 모양으로, 자격지심이 여간 대단하지가 않다.
이번 일만 해도,
“성님두 물렁팥죽[마음이 무르고 약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 그깐 녀석을 요정을 내버리지 못헌단 말요? 겨우 변리 안 받은 게 감지덕지해서, 우리 회의 회장이란 명색을 준단 말요? 난 나 혼자래두 나와버릴 테유. 그 아니꼰 꼴을 안 보면 고만이지.”
하고 투덜댄다. 그러면 동혁은,
“네 형은 창피허거나 아니꼬운 줄 몰라서, 죽치구 있는 줄 아니? 호랑이 굴 속엘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얻는 법이란다.”
하고 섣불리 혈기를 부리지 말라고 타이르건만, 그래도 아우는,
“흥, 어느 때구 두구 보구려. 내 손으루 회관을 부숴버리구 말 테니…..”
하고 입술을 깨물며 벼른다.
“글쎄 얘야, 지금 회관을 쓰구 못 쓰는 게 시급헌 문제가 아니라니깐 그러는구나. 언제든지 우리 손으루 다시 들어오게 허구야 말걸. 왜 그렇게 성미가 급허냐.”
하면서도, 어느 때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 형은 마음이 놓이지를 않았다.
조기회는 여전히 하나, 회관은 커다란 자물쇠를 채운 채 쓰지를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쓰지를 않는 게 아니라, 그동안 기천이가 여러 번 열라고 명령을 하였어도, 동화와 갑산이가 쇳대를 감추고는 서로 밀고 내놓지를 않아서, 쓰지를 못하고 있다.
“얘 동화야, 인제 그만 쇳대를 내놔라. 이렇게 켕기구 있다가는, 필경 기천이가 남의 힘을 빌려서까지 강제루 열기가 쉬우니, 그때두 너희들이 안내놓구 배길 테냐. 무슨 회든지 우리끼리 합심만 허면 또다시 만들어질걸.”
하고 순순히 타일러도, 동화는,
“아, 어느 놈이 우리가 지은 회관을 강제루 열어요? 흥, 난 그럴 때만 기다리구 있겠수.”
하고 끝끝내 형하고도 타협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야학도 새집에서 못하고, 전처럼 남의 머슴 사랑을 빌려가지고 구석구석이 하게 되었다.
영신에게서는 하루 걸러큼 편지가 왔다. 침대 위에서 따로따로를 하다가, 송엽장을 짚고 걸음발을 타게까지 되었는데, 이제는 밥을 먹고도 소화가 잘된다는 것이며, 의사는 좀 더 조섭을 하라고 하나, 비용 관계로 더 있을 수가 없었서, 불일간 퇴원을 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뒤를 이어 왔었다. 공책에다가 일기를 쓰듯이, 감상을 적은 것을 떼어 보내기도하고, 이번에 당신이 아니었더면, 벌써 황천길을 밟았을 것을 살아났다는 만강[만음속에 가득 참]의 감사와, 떠나보낸 뒤의 그립고 아쉬운 정을, 애틋이 적어 보낸 것이었다. 이번 편지는 퇴원을 하느라고 부산한 중에 급히 쓴 연필 글씨로,
청석골의 친절한 여러 교인과 학부형들에게 에워싸여서, 지금 퇴원을 합니다. 그러나 천만 사람이 있어도, 이 영신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주신 은인이시고, 영원한 사랑이신 우리 동혁 씨와 이 기쁨을 노느지 못하는 것이 무한히 섭섭합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는 것은, 일전에 서울연합회에서 백현경 씨가 전위[전적으로 다 맡김]해서 내려왔었는데, 정양도 할 겸 횡빈[橫濱,요코하마]에 있는 신학교로 가서 몇 해 동안 수학을 하도록 주선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올라갔는데요, 여러 해 벼르고 벼르던 유학을 하게 된 것은 기쁘지만, 또다시 당신과 더 멀리 떨어져 있을 생각을 하니, 무한 섭섭해요. 지금버텀 눈물이 납니다. 어수선스러워서 고만 쓰겠어요. 답장은 ‘청석골’로 —
00년 00일 당신의 영신
동혁은 즉시 답장을 썼다. 편지가 올 때마다 간단히 회답은 하였지만 수술한 경과가 좋아서 안심도 되었고 동네일로 심정이 쓰라려서, 긴 편지는 쓰지 못하고 있엇다. 영신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간호를 해주고 있는 동안에, 무언중에 정이 더 깊어진 것을 깨달았고, 피차의 성격이나 또는 사랑하는 도수는, 가장 어려운 일을 당해보아야 비로소 알아지고, 그 깊이를 측량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동혁은 (영신도 그렇지만) 영신이가 연애하는 사람이라느니보다도, 이미 자녀까지 낳고 살아오는 아내와 같이 느껴졌다. 그만치나 믿음성스럽고 둠쑥한[사람됨이 가볍지 아니하고 속이 깊다.]맛이 있어서, 편지를 쓰는 데도 남들처럼 달콤한 문구는, 쓰려야 써지지가 않았다.
무사히 퇴원하신 것을 두 손을 들어 축하합니다. 즉시 뛰어가서 완쾌하신 얼굴을 대하고는 싶지만, 지금 내가 떠나면 동네일이 또 엉망으로 옭힐 것 같어서, 험악한 형세가 가러앉기를 기다리는 중이니, 섭섭히 아셔도 헐 수 없는 일이외다.
유학을 가시게 된다구요? 내가 반대를 한대도, 기어이 고집하고 떠나가실 줄은 알지만, 신학교로 가신다니(지원한 것은 아니래도) 신앙이 학문이 아닌 것은, 농학사나 농학박사라야만, 농사를 잘 지을 줄 아는 거와 마찬가지가 아닐는지요. 하여간 건강상태로 보아 당분간 자리를 떠나서 정양할 기회를 얻는 것은 나도 찬성한 것이지만….
우리가 약속한 삼 개년 계획은, 벌써 내년이면 마지막 해가 옵니다. 그런데 또 앞으로 몇 해를 은행나무처럼 떨어져 있게 될 모양이니, 실로 앞길이 창창하고 아득하외다.
영신씨! 우리의 청춘은 동아줄로 칭칭 얽어서, 어디다가 붙들어 맨 줄 압니까? 우리의 일이란,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끝나는 날이 없을 것이니, 사업을 다 하고야 결혼을 하려면, 백 살 천 살을 살아도 노총각의 서글픈 신세는 면하지 못하겠군요. 조선 안의 그 숱한 색시들 중에 ‘채영신’ 석 자만 쳐다보고, 눈을 꿈벅꿈벅하고 기다리는 나 자신이, 못나기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결코 동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나, 하루바삐 우리 둘이 생활을 같이하고 힘을 한데 모아서, 서로 용기를 돋워가며 일을 하게 되기를, 매우 조급히 기다리고 있소이다. 며츨 틈만 얻게 되면, 또 한 삼백 리 마라톤을 하지요. 부디부디 몸을 쓰게 되었다고, 무리한 일은 하지 마십시오! 그것만이 부탁이외다.
당신의 영원한 보호병정
어느 덧 해가 바뀌어, 음력으로 정월이 되었다. 학원은 구습에 의해서 일주일 동안 방학을 했지만, 명절이라 해도 계집아이들이, 울긋불긋한 인조견 저고리 치마를 호사라고 입고, 세배를 다닐 뿐. 흰떡 한 모태[안반에 놓고 한 번에 칠 만한 떡 덩이]해먹는 집이 없어, 떡 치는 소리 대신에 여기저기 오막살이에서, 널을 뛰는 소리만 떨컹떨컹 하고 들린다. ‘한곡리’에는 풍물이나 장만한 것이 있어 청년들이 두드리지만, 그만한 오락기관도 없는 ‘청석골’은 더한층 쓸쓸하다.
연일 눈이 쏟아지다가 햇발이 퍼져서, 땅은 질척거려 세배꾼들의 모처럼 얻어 입은 때때옷 뒤와 버선이 진흙토성이다.
지붕에 쌓인 눈이, 고드름과 함께 추녀 끝으로 녹아내려 뚜욱뚜욱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영신은 책상 앞에 턱을 괴고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의식적으로는 센티멘털리즘(애상주의)을 송충이같이 싫어하면서도, 소복[원기가 회복됨]을 잘못해서 건강이 전처럼 회복되지 못한 탓인지, 고요한 시간만 있으면, 저의 신세가 고단하고 공연히 서글픈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는 겨를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때가 있다.
‘동혁 씨 말따나, 아까운 청춘을 이대로 늙혀서 옳은가. 인생이란 본시 이다지도 고독한 것인가.’
하고 스스로 묻기도 하고, 한숨도 짓는다.
‘왜 너에게는 박동혁이가 있지 않느냐. 그 튼튼하고 미덤성스러운 남자가 너의 장래를 맡지 않었느냐.’
‘그렇다. 그와 평생의 고락을 같이할 약속을 하였다. 나는 그이를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열렬히 사랑한다. 그러나 결혼을 한다고 나한 몸을 그에게 의지하려는 것은 아니다. 밥을 얻어먹고, 옷을 얻어 입고, 자녀를 낳아주기 위한 결혼을 꿈꾸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결합이 된대도, 내가 할 일이 따로 있다. 이 현실에 처한 조선의 ‘인텔리’ 여성으로서, 따로이 해야만 할 사업이 있다. 결혼이 그 사업을 방해한다면 차라리 연애도 결혼도 하지 말어야 한다. 청상과부처럼, ‘미스 필링스’처럼 독신으로 늙어야만 한다.’
‘그러나 외로운 것을 어찌하나. 이다지도 지향 없이 헤매는 마음을 어디다가 붙들어 맨단 말이냐.’
‘너에게는 신앙이 있지 않으냐.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불러왔고, 그의 독생자에게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배웠고, 가장 어려울 때와 괴로울 때에, 주를 부르며 아침저녁 기도를 올리지 않었느냐.’
‘그렇다. 그러나 인제 와서는 무형한 그네들을 믿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다. 사람을 믿고 싶다! 육안으로 보이는 좀 더 똑똑한 것을 확실한 것, 즉 과학을 믿고 싶다! 직접으로 실험할 수 있는 것을, 노력하는 정비례로 그 효과를 눈앞에 볼 수 있는, 그러한 일을 하고 싶다!’
영신은 마음속의 문답을 제 귀로 들을수록 생각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는 퇴원을 한 후에, 달포나 누웠다 일어나보니, 학원 일은 청년들만 맡겨놓아서 뒤죽박죽이다. 그 밖에도 부인들의 모임이나 모든 것으로 보아, 그네들의 손으로 자치를 해나가려면 아직도 이삼 년 동안은 열심으로 지도를 해주어야만 될 것 같다.
영신은 더 누웠을 수가 없었다. 몸을 조금만 과히 움직이면, 수술한 자리가 당기고 아픈 것을 억지로 참고, 하루 몇 차례씩 학원으로 오르내렸다. 이것저것 분별을 하고 돌아다니려면, 자연히 운동이 과도하게 되고, 따라서 한번 쓰러지면 일어날 수가 없도록 피로하였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어쨌든 내 몸이 튼튼해지고 볼 일이다.’ 함녀서도 타고난 그의 성격이,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게 한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눈 딱 감고 건너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자. 나만한 지식으로, 남을 지도한다는 것부터 대담하였다. 양심에 부끄러운 일이다.’ 하고 다시 한 번 ‘청석골’을 떠날 결심을 하였다.
‘동혁 씨는 왜 온다 온다 하고 선문[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알리는 소문]만 놓고 아니 올까. 또 동네에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해보다가,
‘서울서 노자가 오는 대로 음력 보름께쯤 떠날 예정이니, 그 안에 꼭 와달라’고 편지를 썼다. 다시 한 번 만나서 전후 일을 의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동안 기천이는 장근[‘거의’의 뜻을 나타내는 말] 두 달째나 누워 있었다. 병을 앓는 것이 아니라, 타동에 나가서 양반 자세를 하다가, 임자를 톡톡히 만나서 졸경[몹시 시달리거나 고난을 겪음을 이르는 말]을 쳤는데, 골통이 깨어지고 가슴에 담이 들어서, 꼼짝 못 하고 누워서 음력 과세를 하였다.
회장이 된 첫 번 행세를 하려고 제 동네서는 못 해도, 저도 돈 십 원이나 기부를 한 읍내 소방조출초식(消防組出初式)에 참례를 했다가, 술이 엉망진창으로 취해서 밤중에 자전거를 끌고 오다가, 신작로 가에 있는 주막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갔다. 계집이라면 회를 치려고드는 기천은, 그 주막 갈보의 소위 나지미상[‘단골손님’이라는 뜻의 일본어]이었다. 술김에 안하무인이 된 기천은, 제가 맡아논 계집이라, 기침도 아니하고 방문을 펄썩 열었다. 허술하게 박은 돌쩌귀가 떨어지면서, 문은 덜커덕 열렸다. 방 안은 컴컴하다.
“옥화야!”
“……….”
대답이 없다. 기천은 구두를 신은 채 방으로 들어서며, 성냥불을 확 켰다. 옥화란 계집은 발가벗은 몸을 불에 데인 버러지처럼 옴츠러뜨리는데, 커다란 버선발이 이불 밖으로 쑥 비어져 나왔다. 동시에 만경을 한 듯한 기천의 눈에는, 질투의 불길이 타올랐다.
“누구냐?”
소리를 바락 지르며 이불을 홱 벗겼다.
“이눔아, 넌 누구냐?”
감때가 사납게 생긴 사내는 벌떡 일어났다. 기천은 그자의 얼굴을 보고,
“이놈, 너 용준이 아니냐? 발칙헌 놈 같으니라구, 너 이놈 양반을 못 알어 보고, 내가 댕기는 집인 줄 뻔히 알면서 이 죽일 놈 같으니…….”
기천의 구둣발길은 대뜸 용준이라고 불린 사내의 허구리를 걷어찼다. 그다음 순간, 기천의 눈에서는 번갯불이 뻔쩍하엿다. 따귀를 한 대 되게 얻어맞고, 정신이 아뜩해서 쓰러러지려는 것을, 그 왁살스러이[‘우악살스럽다’의 준말. 보기에 매우 미련하고 험상궂은 데가 있다.] 생긴 사내는,
“요놈아, 술 파는 계집꺼정 다 네 계집이냐? 타동에 와서두 양반 행세를 해. 너 요놈 의법[의식과 예법]이 어따가 발길질을 허는 거냐?”
하고 호통을 하더니,
“아무튼 잘 만났다. 양반의 몸뚱이엔 매가 튈 줄 아느냐?”
하고 기천의 멱살을 바싹 추켜잡고, 컴컴한 마당으로 끌고 나가더니,
“너 요놈의 새끼, 네놈의 집 머슴살이 삼 년에, 사경두 다 못 찾아 먹구 네게 얻어맞구서 쫓겨난 내다. 어디 너 좀 견뎌봐라.”
하고 마른 정강이를 장작개비로 패고, 발딱 자빠트려놓고는 발뒤꿈치로 가슴을 사뭇 짓밟았다. 기천은 말 한마디 못하고 깩! 깩! 거리며, 죽도록 얻어맞는 것을, 계집이 버선발로 뛰어 내려가서 간신히 뜯어말렸다.
용준이는 삼대째 강 도사네 행랑살이를 하다가, 언사가 불공하다고 기천에게 작대기 찜질을 당하고 쫓겨나서, 그 원한을 품고 잔뜩 앙심을 먹고 벼르는 판에, 외나무다리에서 호되게 걸려들었던 것이다.
기천은 아주 초죽음이 되었다가, 새벽녘에야 간신히 저의 집으로 기어들었다. 머습 놈에게 얻어맞았다기는 창피해서,
“취중에 자전거를 타다가 이 봉변을 당했다.” 고 꾸며대고, 산골[구리가 나는 곳에서 나는 푸른빛을 띤 누런색의 쇠붙이로 접골약으로 쓴다]을 캐어 오너라, 약을 지어 오너라 하고 야단법석을 하였다. 분한 생각을 허면 용준이란 놈의 배를 가르고 간을 날로 씹어도 시원치 않겠지만, 창피한 소문이 날까보아 단골 버릇인 고소도 못하고 속으로만 꽁꽁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문은 온 동네는커녕, 읍내까지도 좌악 퍼져서,
“아이고 잘코사니[고소하게 여겨지는 일. 주로 미운 사람이 불행을 당한 경우에 하는 말이다.] 나! 그래두 뼈다귀는 추다렸든가?”
하고 고소해서들 하는 소리를, 제 귀로만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면역소의 지휘로, 음력 대보름날을 기회 삼아, 한곡리 진흥회의 발회식을 열게 되었다. 낮에는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도 갑산이와 동화는 회관의 열쇠를 내놓지 않았다. 발회식만 할 테니 임시로 빌려달라고, 기천이가 사람을 줄달아 보내도,
“천만엣 말씀이라구 여쭤라.”
하고 끝끝내 버티었다. 기천이가 읍내로 장거리로 돌아다니며 ‘우리 한곡리 진흥관만은 미상불 다른 동네 부럽지 않게 미리 지어놓았다’고 제 손으로 짓기나 한 것처럼, 생색을 뿌옇게 내는 것이, 깨물어 죽이고 싶도록 얄미웠던 것이다.
집에서 형제가 가마니를 치고 있던 동혁은, 틈틈이 손을 쉬고 눈을 딱 감고는 대세를 살펴보았다.
‘허어, 이러다간 큰일 나겠군. 양단간에 귀정을 지어야지.’ 하고는,
“얘, 동화야!”
하고 아우를 넌지시 불렀다.
“너 인제 고만 회관 열쇠를 내놔라. 누구헌테든지 저의 주장을 굽혀선 못스지만, 일이란 그때그때 형편을 봐서, 임시변통을 허는 수두 있어야지, 너무 곧이곧대루만 나가면 되레 옭히는 경우가 있느니라.” 하고 타일러도, 동화는 머리를 끄덕이지 않는다.
“넌 날더러 물렁팥죽이라구 별명을 짓지만, 형두 생각허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야. 들어봐라, 입때까지는 우리 청년들 열두 사람만이 단합해서 일을 해오지 않었니? 헌 일두 없다만…….그런데 이번엔 기회가 좋으니, 우리 온 동네 사람이 다 모이는 김에, 우리의 운동허는 범위를 훨씬 넓혀서, 한번 큼직하게 활동을 해보자꾸나. 인심이 우리헌테루 쏠릴 건 정헌 이치니까, 결국은 우리들이 주장허는 대루 될 게 아니냐. 진흥회란 무슨 행정기관두 사법기관두 아니구, 그저 일종의 자치기관 비슷헌 게니까, 웬만헌 일은 우리 손으루 다 헐 수가 있단 말이다. 아무튼 강기천이 한 사람을 상대로, 끝꺼정 다투는 동안에, 동네일은 아무 것두 안 되구 그 애를 써서 지은 회관두, 우리 맘대루 쓰지를 못 허니 실상은 우리의 손해지 뭐냐? 그러니 모든 걸 형헌테 맡기구, 문을 열어놔라. 잘 질 줄을 아는 사람이라야, 이길 줄두 안단다.”
하고 진심으로 권하였다. 동화는 그제야 마지못했서,
“난 몰루. 성님꺼정 아마 맘이 변했나 보우.”
하고 갑산이와 번차례로 차고 다니던 열쇠를 끌러서, 기직 바닥에다가 퉁명스러이 던졌다.
저녁때에야 회관 문은 열렸다. 연합진흥회장인 면장과 협의원들과 주재소에서 부장이 나오고, 금융조합 이사며 근처의 이른바 유력자들이 상좌에 버티고 앉았다. 한곡리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매호에 한 사람씩 호주(戶主)가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상투는 거진 다 잘랐지만, 색의를 장려한다고, 면서기들이 장거리나 신작로에서, 흰옷 입은 사람만 보면 잉크나 먹물을 끼얹기 때문에 미처 흰 두루마기에 물감을 들여 입지 못한 사람은, 핑겟짐에 나오지를 않았다. 그래도 대동의 큰 회합이니만치 회관이 빽빼갛게 들어찼다.
기천이는 맨 나중에 단장을 짚고, 기엄기엄 올라왔다. 그 푼더분하지[생김새가 두툼하고 탐스럽다] 못하게 생긴 얼굴은, 노랑꽃이 피었는데, 머슴에게 얻어맞은 자리가, 몸을 움직이는 대로 결리는지, 몇 발자국 걷다가는 가슴에다 손을 대고 안간힘을 쓰며, 낙태한 고양이 상을 한다. 그러면서도 면장과 기타 공직자에게 최경례[가장 존경하는 뜻으로 정중히 경례함]를 하듯이, 허리를 굽히는 것은 물론, 동민들이 인사를 하면 전에 없이 은근하게 답례를 하고, 그중에도 말마디나 할 만한 사람에게는 얄궂은 추파까지 던진다.
기천이가 맨 앞줄에 가 앉자, 구석에 한 덩이로 뭉쳐 앉은 회원들의 눈은 빛났다.
기천의 사촌인 구장이 개회사를하고, 면장이 일어서서 진흥회의 필요와 역사와 또는 사명을, 거진 한 시간 동안이나 늘어놓은 뒤에, 순서를 따라 회장을 선거하는 데 이르렀다. 임시 의장인 구장이 일어나서,
“지금부터 새로 창립된, 우리 동네 진흥회를 대표할 회장을 선거하겠소. 물론 연령이라든지 이력이나 재산 같을 것을 보아, 회장 될 만한 자격이 충분한 분을 선거할 줄 믿는 바이오.”
하고 저의 사촌 형을 곁눈으로 흘려보며,
“자, 그럼 간단하게 호명을 해서, 거수로 결정을 하는 것이 어떻겠소?”
하고 동민들에게 형식적으로 묻는다. 그러나 농우회의 회원들밖에는 호명이라든지 거수라든지 하는 말조차 못 알아듣고, 어리둥절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좀 시간은 걸리지만 신중히 선거할 필요가 있으니, 무기명으로 투표를 헙시다.”
하고 동혁이가 일어서며 반대를 하는 동시에, 동의를 하였다.
“찬성이오—“
“찬성이오—“
소리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일어났다.
구장이 기천의 이름을 부르고, 찬성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면, 기천의 면전이라, 속으로는 마땅치 않으면서도, 면에 못 이겨 남의 뒤를 따라 손을 들게 될 것을 상상한 까닭이다.
동혁이 자신은, 결코 경쟁자는 아니면서, 정말 민심이 어느 편으로 돌아가나? 그것을 참고로 보려는 것이었다.
또는 기천이가 전례에 없이, 정초라고 동리의 모모[아무아무]한 사람을 불러다가 코들을 골도록 술을 먹였고, 이러한 수단까지 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단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섣달 대목에, 기천의 집의 이십 원을 주마 해도 아니 판 큰 돼지가, 새끼를 낳다가 염불이 빠져서 죽었다. 저의 집에서는 꺼림칙하다고 먹는 사람이 없고, 장거리의 육지기[육고자. 육고에 속하여 관아에 육류를 바치던 관노]를 불러다 팔려니, 죽은 고기라고 단돈 오 원도 보려고 들지를 않는다. 기천은 큰 손해를 보아서 입맛은 썻으나, 썩어가는 고기를 처치할 것을 곰곰 생각하던 끝에, 묘안을 얻고 무릎을 탁 쳤다.
그날 저녁 동네의 육십 이상 된 노인이 있는 집에는, 죽은 지 이틀이나 되어서, 검푸르게 빛 변한 돼지고기가 두 근, 혹은 세 근씩이나 세찬이란 명목으로 배달되었다. 북어 한 쾌 못 사고 과세(해를 보내다)를 하는 그네들에게…..
무기명으로 투표를 하는데도, 대필로 쓴 사람이 많았다. 여러 해 가르쳐서 ‘한곡리’ 아이들은 남녀를 물론하고 글자를 모르는 아이가 거진 하나도 없게 되었건만, 어른들은 반수 이상이 계통문[계원에게 전달 사항을 알리던 글]에 제 이름을 쓴 것도 알아보지 못하는 까막눈이들이다.
매우 긴장된 공기 가운데, 개표를 하게 되었다.
투표된 점수를 적어 들고 이름ㅇ르 부르는 구장의 손과 입은 함께 떨렸다.
“강기천 씨 육십칠 점!”
손톱 여물을 썰고 앉았던 기천의 얼굴에는, 남의 눈에 띄지 않을 만한 안심의 미소가 살짝 지나갔다.
“박동혁 삼십팔 점!”
하고 나서,
“이 나머지는 몇 점씩 되지 않으니까 읽지 않겠소.” 하고 구장은 목소리를 높여, 투표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여러분의 추천으로, 당 면의 면협 의원이요 금융조합 감사요 학교 비평의원인 강기천 씨가, 절대다수로 우리 한곡리 진흥회의 회장이 되셨소이다.” 하고 선언을 하였다. 내빈들 측에서 박수 소리가 일어났다. 동혁은 의미 깊은 미소를 띠고 앉아서 박수하는 광경을 바라다보는데,
“반대요!”
“썩은 돼지고기가 투표를 헌 게요…”
“암만 투표가 많어두 그건 무효요….협잡이 있소!”
동화와 정득이가 번차례로 일어서며, 얼굴이 시뻘개가지고 고함을 지른다. 회관에 가득 찬 사람들의 시선은, 농우회원들이 몰려 앉은 데로 쏠렸다.
기천도 그편을 할끔 돌려다 보는데, 동혁은 어느 틈에 아우의 곁으로 갔다. 동화는 눈을 부릅뜨고, 더한층 흥분이 되어서,
“아무리 우리 동네에 사람이 귀하기로서니, 고리대금업자가 아니면 회장감이 없단 말이오? 주막거리 갈보년허구 상관을 하다가 머슴 놈헌테….”
하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다가, 형에게 입을 틀어막히듯 해서, 말끝을 맺지 못하며 주저앉는다. 동혁은 아우의 내두르는 팔을 잡아 누르고 무어라고 귓속말을 하다가,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동화는 뻗디디다 못해 끌려나가면서도,
“너 이놈, 어디 회장 노릇을 해먹나 두구 보자! 이건 우리 회관이다. 피땀을 흘리며 지은 집이야!”
하고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대로, 머리를 떨어뜨리고 앉은 기천의 얼굴은, 노래졌다 하얘졌다 한다. 장내는 수성수성하고 살기가 떠도는데, 구장은,
“여러분, 조용허시오. 성치 못한 사람의 말을 탄할 게 없소이다.”
하고 내빈들의 긴장된 얼굴을 둘러보며, 연방 허리를 굽히낟.
동혁은 갑산이와 정득이를 불러내어,
“이 사람들아, 혈기를 부릴 자리가 아니야. 어서 나가서 동화가 또 못 들어오게 붙들구 있게.”
하고 엄중히 명령을 한 뒤에, 다시 회관으로 들어갔다.
기천은 여러 사람에게 눈총을 맞아서, 얼굴 가죽이 따가운 듯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가, 발딱 일어서더니,
“온, 동리에 미친놈이 있어서, 창피해 견딜 수가 있어야지.” 하고 중얼거리다가,
“몸이 불편해서 먼저 실례합니다.” 하고 내빈석을 바라보고, 나를 좀 붙들어달라는 듯이, 허리를 굽히고는 앞에 앉은 사람을 떠다밀며 나간다.
“아, 어딜 가세요?”
“아, 어딜 가세요?”
“교오상(강 선생), 왜 이러시오? 어서 이리 와 앉으시지요. 주책없는 젊은 것들의, 함부로 지껄이는 말에 개계할 게 있소?”
하고 면장과 구장은 기천의 소매를 끌어들인다. 기천은,
“내가 이까짓 진흥회장을 허구 싶댔소? 불러다 앉혀놓구 욕을 뵈니, 온 그런 발칙한 놈들이…..”하고 한사코 뿌리치는 체하는 것을,
“자, 두말 말우. 지금버텀 교오상이 회장이 됐으니, 역원[임원] 들이나 선거를 허시오.”
하고 면장은 명령하듯 하고, 회장석에다 기천을 앉혔다.
기천은 마지못해서 붙들려 들어온 체하면서도, 독을 못 이겨 쌔근쌔근한다. 동혁이도 억지로 흥분을 가라앉히며 기천의 하는 꼴을 바라다보았다.
유력한 편의 지지로 기천은, 몇 번 사양하다가 못 이기는 체하고, 회장의 자리로 나갔다.
“에헴, 에헴.” 하는 밭은 기침 소리는, 염소라고 별명을 듣는 저의 아버지의 목소리와 똑같다.
“에에, 본인이 박학천식[두루알지만 얕은 지식]임을 불고하고, 회장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은, 전혀 여러 동민이 자별히 애호해주는 덕택인 줄 아오. 굳이 사퇴하는 것은, 도리어 여러분의 호의를 어기는 것 같어서, 부득이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이오. 미력하나마 앞으로는 관청에서 지도하시는 대로, 우리 농촌의 진흥을 위해서 전력하겠으니, 여러분도 한만 한뜻으로 나아가 주기를 바라는 바이오.”
새로운 회장이 일장의 인사를 베푼 후, 금융조합 이사며 군서기와 기타 내빈들의 ‘이러니만치’ ‘저리는 만큼’ 식의 형식적인 축사가 끝났다.
역원 선거에 들어가, 동혁은 차점인 관계로 부회장 겸 서기로 지명이 되었다. 그러나 동혁은, 나이도 젊고 강 씨처럼 재산도 없을 뿐 아니라, 아무 이력도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끝까지 사퇴를 하였다. 서기가 되는 것만 하더라도, 이 회관을 같이 지은 농우회의 회원 열두 명을 전부 역원으로 뽑아주지 아니하면, 나 홀로 중요한 책임을 맡을 수가 없다고, 끝까지 고집을 해서, 기어이 농우회 회원들이 실지로 일을 할 역원의 대다수를 점령하게 되었다. 오직 동화가 역원이 되는 것만은, 회장과 구장이 극력으로 반대를 하여서, 보류하기로 되었고, 늙은 축에는 교풍부장 같은 직함을 떼어 맡겼다.
회가 흐지부지 끝이 날 무렵에야, 동혁은 서기석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회원들의 박수 소리가 일제히 일어났다.
“대동의 여러분이 한자리에 모이신 계제에, 잠시 몇 마디 여쭈어두구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우렁찬 목소리와 위풍이 있는 동작에,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