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회] ‘눈엣가시’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독재자 이승만 평전/[12장] 권력말기현상 드러내고 국정파탄 2012/04/30 08:00 김삼웅
장면 부통령
이승만에게 민주당 출신 장면 부통령은 ‘눈엣가시’와 같이 불편한 존재였다.
장면은 한때 국무총리를 맡기기도 했으나 이제는 격이 달랐다. 자기의 러닝메이트를 제치고 야당 후보로 당선된 것 자체가 못마땅한 일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이 장면을 밀어서 부통령이 되었다고 믿으면서 미국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않았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1956년 9월 28일 오후 2시 30분 경,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한 방의 둔탁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탄은 요행히 장면 부통령의 왼손을 스쳤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살인미수’에 그쳤다.
5ㆍ15 정ㆍ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의 이기붕을 제치고 장면을 당선시킨 민주당은 제3대 부통령으로 취임한 지 한 달 남짓 만인 이날,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등 축제 분위기였다.
야당의 전당대회에서는 으레 따르기 마련이었던 과열경쟁도 폭력사태도 없이 시종일관 축제무드에서 대회가 진행되고 장면의 연설도 순조롭게 끝마쳤다.
그런데 연설을 마치고 단하로 내려와 만세를 부르며 열광하는 당원들을 헤치고 막 시공관 동쪽 문을 빠져나가려는 순간에 저격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자유당 정책위원이자 이기붕의 측근 임홍순의 조종을 받은 하수인 김상봉의 범행으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경찰에 넘겨졌다. 범인은 권총을 쏜 후 “조병옥 박사 만세!”을 외쳐, 자신의 범행을 마치 민주당 신구파 싸움으로 몰고가려는 서툰 연극을 흉내냈다. 사전에 치밀하게 짜인 각본이었다.
이승만은 83세의 고령으로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따라서 어느 날 ‘유고’가 된다면 부통령인 장면이 자동적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하도록 되어 있었다. 때문에 장면은 정부로부터 여러 가지 질시와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중앙청에서 열린 정ㆍ부통령 취임식에서도 부통령의 자리는 마련되지 않아서 귀빈들이 앉는 자리의 맨 가장자리에 앉아야 했다. 취임연설의 기회도 주지 않아서 별도의 성명서를 만들어 배포했는데, 자유당은 성명서 내용을 트집잡아 ‘장부통령 경고 결의안’을 발의하기까지 했다. 장면은 성명서에서 “독재정치는 용납하지 않겠다. 좌시하지 않겠다. 나는 견제하는 역할을 하여 부통령의 임무를 충실히 하겠다.”고 말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눈엣가시’같은 장면을 제거하려는 권부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가 나돌았다. 그렇지만 장면은 정ㆍ부통령선거 때 전국 방방곡곡에서 활약한 당원동지들을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날 전당대회에 참석했다가 암살위기를 겪은 것이다.
전당대회장 아래층에서 해링턴 권총으로 장면을 향해 1발을 발사한 범인은 민주당 당원들에게 붙잡혀 금방 사건현장에 나타난 김종원 치안국장에게 인도되었다. 사건현장에서 부상당한 범인은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이 민주당 당원이라고 우겨댔다. 얼마 후 경찰은 범인 김상봉의 신분이 민주당 마포구당의 간부 김재연의 재종질이라 밝히고, 범인은 “민주당 내분 때문에 장부통령을 죽이려 했다”는 등 유치한 연극을 꾸며 이 사건을 민주당의 내분으로 몰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배후 조종자는 여당 핵심부에 있다”고 배후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찰의 수사에 따라 최훈이란 자가 체포되고 그 배후 조종자로 성동경찰서 사찰계 주임 이덕신 경위가 구속되었다. 최는 당시 성북경찰서 사찰주임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더 이상의 배후를 밝히려 하지 않았다.
경찰은 여론이 빗발치자 김상봉의 처 조복순, 그의 형수 이정자 그리고 김수정과 권총을 매각한 윤태봉 등을 차례로 구속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일개 경찰서의 사찰주임이 꾸몄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울시경 사찰과장, 치안국 특정과장, 치안국 중앙분실장 등에게서 자금이 흘러나온 것까지도 파악이 되었으나 그 이상의 선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4월혁명으로 이 사건의 배후도 새롭게 조명되었다. 1960년 5월 18일 곽영주사건으로 구속된, 장면 저격사건 당시 치안국장으로 사건현장에 5분 만에 출동하여 의혹을 샀던 김종원은 장면 저격배후 조종자가 임흥순이라고 주장했다.
이로써 재수사에 착수하게 되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기붕의 지시에 의하여 임흥순이 총책을 맡아 저격사건을 음모했는데, 그 당시 임홍순은 자유당의 고위정객 2명과 이 음모를 계획하여 이익흥 내무장관에게 지령했다. 이익홍은 김종원 치안국장에게 지령하고 김은 다시 당시의 특정과장 장영복과 중앙사찰분실장 박사일에게 지시하고, 이들이 또 다시 시경 사찰과장 오충환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자, 그날부터 범인은 직접 준비를 서둘러 마침 시공관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장을 이용, 이승만 정권의 ‘눈엣가시’와 같은 장면을 저격하기에 이르렀다. (주석 1)
주석
1> 김삼웅, <해방 후 정치사 100장면>, 97~98쪽, 가람기획,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