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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5월1일(일)맑음
모든 과거는 지금 여기에서 종결되고 모든 미래는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모든 사건(événement)은 지금 여기로 영원히 회귀한다.
그러나 ‘지금 여기’는 좌표상에 점으로 찍히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머물 수는 없다.
지금 여기에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 지금 여기는 약동하는 생명 그 자체 elan vital이다.
그것은 모든 언어표현을 앞서면서 오히려 이끌고 간다.
-원담
인간 생명활동의 부산물인 개념과 언어문자로 생명활동을 형용할 수 없다. 개념짓기와 언어문자를 사용하는 활동 자체가 바로 생명활동이기에. 개념을 형성하는 즉시 생명은 개념을 벗어난다. 언어문자를 사용하는 즉시 생명을 언어문자를 넘어선다. 생명은 개념과 언어문자에 선행하면서 이끌고 나아가고 또 넘어선다. 생명은 차이를 만들어가는 차이기에 창조와 파괴를 놀이한다. -원담
하산거사와 연경보살과 함께 달궁, 성삼재, 정령치, 남원 광한루 코스로 한 바퀴 돌다. 꿈꾸는 사람에겐 그 꿈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연암 박지원은 조선의 200년 미래를 앞선 꿈을 꾸었지만, 그 꿈에 날개를 달아줄 仁王인왕을 만나지 못했다. 개혁군주로 잘못 알려진 정조는 오히려 연암의 개혁사상을 이단시하였으니 시대를 앞서간 사람은 늘 이런 식으로 배척을 당하는 법인가?
Naropa:
THE SUMMARY OF MAHAMUDRA
나로파: 마하무드라의 요약
Homage to the state of great bliss!
Concerning what is called Mahamudra
All things are your own mind.
'마하무드라'고 불리는 위대한 지복의 경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일체는 당신의 마음입니다.
Seeing objects as external is a mistaken concept;
Like a dream, they are empty of concreteness.
This mind, as well, is a mere movement of attention
That has no self-nature, being merely a gust of wind.
대상이 바깥에 있다고 보는 것은 착각된 관념입니다.
그것은 꿈과 같아 견고함이 없습니다.
이 마음이란 건 다만 주의가 움직였을 뿐이니
자성이 없는 한 줄기 바람일 뿐입니다.
Empty of identity, like space.
All things, like space, are equal.
When speaking of ‘Mahamudra’
It is not an entity that can be shown.
독립된 실재성이 비어 있기에 허공과 같습니다.
만물은 허공처럼 평등합니다.
‘마하무드라’라는 것은
보여줄 게 있는 어떤 실체가 아닙니다.
There the mind’s suchness
Is itself the state of Mahamudra.
It is neither something to be corrected nor transformed,
All that appears and exists is Mahamudra,
The great all-encompassing Dharmakaya.
늘 여여한 마음이 마하무드라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고치거나 바꿔야 할 그 무엇이 아닙니다.
나타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마하무드라이며
일체를 감싸는 위대한 진리-몸, 법신입니다.
Naturally and without contriving, allowed simply to be,
This unimagined Dharmakaya,
Letting it be without seeking is the meditation training.
조작함이 없이 자연스레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것이 상상이 되지 않는 법신입니다.
찾지 말라, 지금 있는 그대로 쉬어라-이것이 명상이다.
But to meditate while seeking is deluded mind.
While neither cultivating nor not cultivating
How can you be separate and not separate!
This is a yogi’s understanding.
찾으면서 명상한다는 건 미혹된 마음이다.
계발하지도 말고 계발하지 않으려고도 하지 말라.
당신이 어떻게 (전체로부터)분리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분리되지 않음이랴!
이것이 수행자의 깨달음이다.
All good deeds and harmful actions
Dissolve by simply knowing this nature.
The emotions are the great wisdom.
Like a jungle fire, they are the helpers.
모든 선행과 불선행은 그 본성을 알기만 하면 사라져 버린다.
감정이란 큰 지혜이다.
정글에 난 불을 보는 즉시 불을 끄려고 하듯이,
감정은 마음에 불이 난 것과 같아 (불이 꺼진)깨달음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므로
감정을 깨달음을 도와주는 도우미라 한다.
What meditation is there by fleeing to a hermitage?
Without understanding this, all possible means
Never bring more than temporary liberation.
When understanding this nature, what is there to bind you?
은신처로 도망가는 게 무슨 명상이겠는가?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행한다는 건
일시적인 해탈만 가져올 뿐이니,
이 본성을 깨닫는다면 당신에게 무슨 묶임이 있을 것인가?
While being undistracted from its continuity,
There is neither a composed nor an uncomposed state
To be cultivated or corrected with a remedy.
It is not made out of anything
Experience self-liberated is dharmadhatu.
지속적인 각성에서 산란되지 않는다면
안정된 상태라든지 안정되지 않은 상태라든지 라는 건 없다.
대치법을 써서 계발한다든지 고친다든지 하는 건
모두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짓이다.
스스로 자기에게서 자유로워지는 게 바로 법계이다.
Thinking self-liberated is great wisdom,
Non-dual equality is dharmakaya.
Like the continuous flow of a great river,
Whatever you do is meaningful,
This is the eternal awakened state,
The great bliss, leaving no place for samsara.
자발적인 해탈로 이끄는 이해가 반야이다.
둘이 아닌 평등함이 법신이다.
큰 강물이 끊임없이 흘러가듯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의미를 띠게 된다.
이것이 깨달은 상태의 영원함이다.
위대한 지복, 거기엔 윤회의 여지란 조금도 없다.
All things are empty of their own identities.
This concept fixed on emptiness has dissolved in itself.
Free of concept, holding nothing in mind,
Is in itself the path of the Buddhas.
만법은 그 자체성이 없어 비어 있다.
텅 비었다는 그 개념마저도 비워진다.
어떠한 관념도 남지 않아 마음은 비워져 맑고 밝다.
이것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길이다.
For the most fortunate ones,
I have made these concise words of heartfelt advice.
Through this, may every single sentient being
Be established in Mahamudra.
Mahasiddha Naropa
최고의 행운아들을 위하여
나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간략하게 말했다.
이로써 한 중생이라도 마하무드라에 입문하여 확립할 수 있기를!
마하싯다 나로빠 합장
2022년5월2일(월)맑음
천수경 강의 종강하다. 자비명상하고, 경험나누기 시간을 갖다. 참회의식을 하고 발원문을 합송하다.
Be in the newness. Recognize the power of choice.
Choice makes your life. Don`t betray yourself.
Don`t make compromise your authentic choice with some petty cause.
Every morning you get up to celebrate your day. And bless the first day of your life. Today you might see the last sun set in your life. At the breakfast table you might eat the last meal with your partner in your life. Look around the world in the eyes of dead person. Taste and appreciate what you have, and what you`re feeling through your sense organs.
새로움으로 존재하라. 선택의 힘을 자각하라. 선택이 너의 인생을 만들어간다.
너 자신을 배신하지 말라. 너의 진정성이 담긴 선택을 사소한 명분으로 타협하지 말라.
매일 아침 일어나 너의 하루를 축하하고 네 인생의 첫날을 맞이한 것을 축하하라.
오늘 아침 맞이하는 해가 네 인생에서 마지막 보는 해가 될 줄 어찌 알겠는가?
오늘 아침 식탁이 너의 배우자와 함께하는 마지막 식사가 될 줄 어찌 알겠는가?
죽은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라.
네가 이미 벌써 가지고 있는 것과 네가 지금 감관을 통해 느끼는 그것을 음미하고 감상하라.
2022년5월4일(화)맑음
일진선사의 법문을 원담이 가다듬다:
일상 이대로 참되다.
삶은 이런 참-됨의 지속이다.
지!금!은 텅 빈 거울, 그 거울에 비친 이대로 모두 참된 경험이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 짐이 다 참-되니, 오감으로 드러나는 참된 작용을 음미하라.
지!금!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이대로 본래의 참된 작용이니,
일어나는 생각 이대로 깨달음이다.
“생각해도 생각하는 내가 없다”라는 말과 “생각 이대로 참되다.”라는 표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앞쪽은 ‘비추되 고요함(照而常寂)’이어서 생각함이란 참된 작용은 있으니 생각하는 자(즉 我想)가 없기에(無我), 마음의 眞空인 측면을 드러낸다. 뒤쪽은 ‘비춤과 고요함이 둘이 아니어서, 비춤 그대로 전체작용이니, 마음의 妙有적 측면을 드러낸다.
마음의 두 측면 즉 비춤과 고요함(寂照), 지혜와 선정(慧定), 본체와 활용(體用)은 본래 화엄과 천태종에서 쓰이던 방편인데 선종에서 차용되어 널리 활용된다.
참-됨의 여여한 상태(眞如)는 온통 밝기에 그 비춤은 안팎이 없고, 비춤이라는 표상까지도 없다. 그러므로 비추되 늘 고요하고(照而常寂), 고요하되 늘 비추어(寂而常照), 비춤과 고요함이 둘이 아니라 늘 함께 원만하다(常寂常照, 寂照圓明).
눈앞에 나타난 낱낱의 사물이 모두 적조원명(寂照圓明)한 마음이 조건에 따라 나타난 현상(隨緣性)이니, 마음과 별 따로 떨어진 실체가 아니다.
천지가 한 덩어리 빛이요, 만물이 한 생명 가족이다.
진화론
-김주대 시인
벼랑 끝에 이른 삶은 허공에서 길을 찾는다.
그때 몸 전체가 허공을 만지는 눈이어야 한다.
길 아닌 길을 밟는 몸 전체가 지네처럼 섬세한 발이어야 한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공포가 생을 전향시킨다.
눈이 없던 곳에 눈이 생기고 온몸에서 발이 자란다.
허공에서 자유롭기
-원담
벼랑 끝에서 손을 놓으라. 그러면 허공이 된다.
허공은 허공에 머물지 않고 지금 여기로 와
세상과 함께 사는 삶이 된다.
오후에 보보스님 찾아오다. 쌍계사 선원에서 하안거 지낼 거란다.
2022년5월5일(목)맑음
The Bodhisattva pledge:
Sentient beings are numberless. We vow to save them all.
Delusions are endless. We vow to cut through them all.
The teachings are infinite. We vow to learn them all.
The Buddha Way is inconceivable. We vow to attain it.
보살의 서원: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어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江月照 松風吹(강월조 송풍취), 유유히 흐르는 강에 달은 비치고 소나무엔 바람 불고
永夜淸霄何所爲(영야청소하소위). 깊고도 푸른 밤하늘에 무슨 근심 있겠는가?
언어문자는 거울에 낀 때와 같아서 진상을 흐릿하게 보이게 한다.
개념을 통하여 세상을 본다는 것은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쓴 것과 같아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언어문자가 실재를 지시하는 게 아니라 기호나 상징인 줄 아는 즉시 언어문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언어문자는 놀이도구와 같아 갖고 놀다 놓아버리면 그만이다.
2022년5월7일(토)맑음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 준비하다. 김밥 먹고 커피 마시다. 일 다 해놓고 쉰다. 저녁에 아림보살과 동네 한 바퀴 돌다.
석가모니는 과거에서 오지도 않고 미래로 가지도 않는다.
현재 부처는 어디에 있나? 지금 여기 연꽃잎에 물방울, 곧 굴러떨어지네. 또르르 똑!
2022년5월8일(일)맑음
불기2566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봉축법회를 하다.
날마다 하는 기도문과 천수경 독송
2. 석가모니불 정근
3. 법문-다섯 분 불자가 낭독
4. 불공의식과 축원낭독
5. 관욕-아기 붓다 목욕시키기
꽃길 따라 불자들이 많이 오셨다. 부산에서 은사님과 김박사 부부, 대구에서 아림보살, 그리고는 진주불자들 참석하였다. 점심 공양 함께 나누고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이어가다. 오후에 경남 도의원 녹색당 이정옥 후보가 방문했길래 하산거사 및 여러분과 둘러앉아 녹색환경을 위한 정치 이야기를 나누다. 일을 마무리하고 선학산길을 포행하며 노래하다.
2022년5월10일(화)맑음
경상대 병원 흉부외과에 진료받고 약을 처방받다. 여권 갱신을 신청하다. 안거에 들어갈 짐을 싸다. 책장을 정리하다.
집안 구석마다 눈이 달린 듯 샅샅이 살펴서 치울 것은 치우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늘 떠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한번 문을 나서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야 한다. 앞발 내디딜 때 이미 벌써 뒷발의 흔적은 지워져 버린다.
땅 위에 살았던 흔적을 남기지 말라. 청정한 공간에 똥 냄새, 입 냄새를 퍼뜨리지 말라.
죽은 사람의 눈으로 삶을 보라. 이미 벌써 죽은 자가 불꽃 같은 삶을 산다.
2022년5월11일(수)흐림
초록보살이 공양청하여 사천 비란치아에서 불자님 열 분과 함께 공양하다.
첫댓글 죽은 사람의 눈으로 삶을 보라. 이미 벌써 죽은 자가 불꽃 같은 삶을 산다..!
활 발 발..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