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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는 임영박 같은 놈들이 너무 많다.
캄보디아 사회는 부정부패가 너무 심한 것 같다. 물론 부정부패야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나 있다. 지금 이 나라 정치판이 그러하지 않은가. 부정부패는 먹고 살기 힘든 사회일수록 심할 것인데, 우리나라도 자유당 시절이나 군사독재 시절에 참으로 부조리가 심한 사회였다. 그러나 이 나라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고 또 내가 보기엔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가 않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서 입국 절차 밟으러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말해주는 불쾌한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보다시피 비자발급 안내판에서 관광비자는 20달러라고 분명히 적혀 있는데 그들은 대놓고 21달러를 요구한다. 한 술 더 떠서 다른 한 쪽에 서 있는 관리는 우리가 한국인들인 줄 알고서, “비자, 빨리빨리, 빨리 빨리”를 외친다. 첨에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줄 서서 기다리지 말고 그 쪽으로 와서 3달러를 더 내면 ‘빨리 빨리’ 비자 발급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라 한다. 한국사람들 성질 급한 것을 어떻게 알고 1달러도 아닌 3달러씩 등 처먹으려 하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 6~70년대의 한국사회는 이렇지는 않았다. 아무리 가난했을지언정 최소한의 양심이나 자존심은 있었다. 그리고 우리 가슴 속엔 막연한 애국심 같은 것이 있어서 외국인들을 상대로는 어떻게든 우리나라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실천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렇듯 너무나 뻔뻔스러운 것이다. 캄보디아에는 임영박 같은 놈들이 너무 많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
외국 나가면 모두들 애국자가 된다는 말에 정말 동의한다. 재작년 미국에 4주간 체류할 때도 그렇고 또 이번에 캄보디아 여행을 하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해 일정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 이 글을 통해서는 ‘교육 백년지대계’라는 이 진부한 공자주의의 구호가 상식으로 잡혀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고자 한다. 사실 남성과 여성, 어린이와 어른이 대등한 인격체로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유교사상은 극복해야 할 단점이 많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사고방식만큼은 한국적 가치, 유교문화권 사회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비단 후진국뿐만 아니라 서구의 선진사회에서도 한국사회처럼 교사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과 경제적 처우 수준이 발달한 나라가 잘 없다.
그러니까 그 나라의 미래를 알려면 현재 교육 수준을 보면 답이 나온다는 이치에서 캄보디아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 내가 느낀 씁쓸한 감상이다. 물론 1주일 남짓 체류하면서 그것도 대부분을 관광지에서 보낸 나의 관점이 한계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짚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참고로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캄보디아의 학교에서는 급식 시설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점심을 못 주기 때문에 부득불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운영한다. 급식시설이야 우리도 학교에 도입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우리들 어릴 때는 도시락 싸갖고 다니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 나라 아이들은 왜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지 않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마 무더운 기후 때문에 이 나라에는 ‘도시락’이란 개념 자체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초등학생은 물론 사진에서 보는 중등 학생들도 구조적으로 반타작 공부밖에 못하는 것이 캄보디아 교육실정인 것이다. 그나마 오전이든 오후든 제때에 꼬박꼬박 등교하면 좋겠지만 이 나라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관광지에 입구에서 ‘원 달러’를 외치며 손을 내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의무교육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장기간 결석해도 ‘왜 안 오냐고’ 다그치는 학교도 없고 또 자녀를 학교에 안 보내도 부모가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현실이라 한다. 현지인 가이드를 통해 들은 말이다. 캄보디아 교육에 관해 할 말이 많은 듯 그가 계속 덧붙이기를, 캄보디아에서 교사들은 소득도 적고 욕을 많이 먹는 안 좋은 직업이라 한다. 즉, 월급이 적으니 촌지를 노골적으로 요구한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가 1학년인데, 애가 학교에서 맞지 않게 하려고 수시로 봉투를 갖다 준다고 한다. 이런 교육 부조리야 우리들 어릴 때도 있었지만 이 나라의 경우는 정도가 조금 심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을 공공연히 해도, 그래도 교사라는 직업을 우러러 봤지만 여기는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니 같은 교육자로서 씁쓸한 마음이 잦아들었다.
캄보디아의 마을에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조선시대의 서당 같은 교육기관이 많은 듯했다. 시엠립 중심 도로에서 약 1Km 떨어진 민가로 들어가니 그런 학교가 나왔다. 길을 가면서 중간 중간에 물어서 찾아낸 이 학교는 마침 몇 달 전에 폐교되어 없어진 상태이다. ‘Our Hope, Our Future’란 캐치프레이즈가 무색하게도 그 판대기 너머로 보이는 교실 모습이 얼마나 초라한지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다. 육이오 때 우리 피난민촌의 교실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들 사진 찍어주려 갔는데 아이들이 없어서 차를 돌려 도로를 달리다가 학교처럼 보이는 어떤 곳에 멈춰 들어가 봤다. 여기는 교실이 제법 학교 같은 모습을 풍긴다. 그런데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일단의 사람들의 눈빛과 태도에서 뭔가 안 좋은 느낌이 왔다. 원하지도 않은데 명함과 팜플렛을 나눠주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구호기금 같은 것을 요구하는 듯했다. 이 학교 진입하는 교문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는 영문을 해석해보면 답이 나온다.
“Cambodia Orphan Save Organization”
세상에, 교육자라는 인간들이 어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적어도 교육기관이라면, 아까 소말리아 난민촌 비슷한 그 곳처럼 “우리들의 희망, 우리들의 미래”라는 구호가 걸려 있어야 하거늘...... 세상에,
“캄보디아 고아 구제 기관”이 학교의 간판이다. 그러니까, “이 애새끼들은 불쌍한 고아들이니, 돈 보태 주세요”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하나같이 영어를 잘 하던데, 고아인 아이들에게 이 현판이 어떻게 다가갈까? 이것들이 교육자란 인간들이란 말인가?
차를 돌려 나오면서, 현지에 오래 머물러 계셨던 죽림**님이 예전에 이런 기관에서 경험한 얘기를 들려주셨다. 한국에서 온 어떤 중학교 여선생님께서 캄보디아의 어느 산골에 어떤 스님이 운영하는 학교에 한글을 가르치러 가겠다고 하셔서 죽림**님과 같이 가봤다고 한다. 그 여선생님은 육아휴직 중이었는데, 자기 자녀 셋을 데리고 태국에서 캄보디아 국경을 넘으면서 몇 십리길을 걸어오셨다고 한다. 그것도 양 손에 캄보디아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한글 교재와 노트 수백권을 들고 말이다. 그런데 어렵게 어렵게 찾아간 학교에 땡중 놈은 사라지고 없더란다. 대신 꼬붕 비슷한 놈이 나와서 한다는 말이,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라는...” 그러니까 이 여선생님은 마더 테레사를 방불케 하는 숭고한 마음으로 이역만리 먼 길을 여성의 몸으로 어렵게 어렵게 찾았건만, 중놈은 약속을 어기고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양손에 수백권의 공책이 아닌 돈봉투를 들고 왔으면 환대했겠지만......
너무나 허탈한 마음에 여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 시엠립의 호텔로 돌아왔는데, 그 땡중 놈이 후환이 두려웠던지 거짓 해명이라도 하기 위해 그 선생님을 찾아 왔다 한다. 그런데, 그 중놈이 타고 다니는 차량이 렉서스SUV, 이 차가 이곳에선 부의 상징이란다. 뿐만 아니라 휴대폰은 최신형 아이폰에 양 손목엔 금팔찌가 주렁주렁...... 그러니까 교육기관이라는 타이틀을 걸어 놓고서 애들을 앵벌이 삼아 저는 귀족 행세를 하는 것이다.
캄보디아엔 임영박 같은 놈들이 너무 많다!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에선 대중교통 수단으로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툭툭이를 많이 이용한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가 없음.)
캄보디아 교육과 관련하여 내가 겪은 마지막 일화는 툭툭이 기사 이야기이다. 마지막 날 호텔 체크아웃을 한 뒤 비행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툭툭이를 타고 박물관이랑 펍 스트리트를 전전했다. 안젤리나 졸리가 애용했다는 <레드 피아노>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다음 행선지로 어디 갈까 생각하던 중에 이 근처에 중고 책방이 있다는 말이 생각나 거기를 가보고 싶었다. 문제는 툭툭이 기사에게 ‘중고책방’이란 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캄보디아 시민들의 교육 수준은 낮아도, 관광이 주업인 까닭에 시엠립의 주민들은 순전히 실용적인 차원에서라도 영어를 제법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그날 내가 고용한 기사는 영 아니었다. 그래서 <레드 피아노>의 여종업원에게 메모지에 ‘Used Book Store’라 적은 다음 그 밑에 캄보디아어로 좀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설마 자기 나라 글자를 보여주면 안 알겠나 싶었다. 그런데 맙소사, 그 툭툭이는 까막눈이었다.
필경 이 친구는 10년 혹은 20년 전에 학교 땡땡이 치고 관광지에서 ‘원달러’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양반이 내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잔머리는 얼마나 굴려대는지 ㅠㅠ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밥벌이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캄보디아엔 임영박 같은 놈들이 너무 많다. 돈 밖에 모르고 머리속에 뭘 넣을 생각은 않고 그저 어떻게 하면 남을 속여서 한 푼이라도 더 챙길까 궁리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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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십년 전에는 이 나라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으면서 가진 자의 입장에서가난한 나라의 사회 풍속도를 자의적으로 폄하하려는 소부르주아적 근성이 내 관점 속에 기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비평은 기본적으로 캄보디아의 선량한 민중들이나 천진한 아이들에 대한 애정에 바탕한 것이라는 변명같은 사족을 덧붙인다. 태어나서 해외 여행을 두 번째 하는데, 미국에 갈 때에 비해 캄보디아는 무척 마음이 편했다. 같은 동양권이어서 그러기도 하겠지만, 가난한 나라여서 내 어릴 적 우리 나라에 온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5일 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현지인 가이드 세하와 쌍용 이스타냐로 우리를 내내 편안하게 데려다 준 드라이버 미스터사리가 그립다. 이 두 친구들은 정말 근사한 벗들이었다.
첫댓글 캄보디아 관리들의 부정과 부패에 한 몫 하는 한국인들도 있어요. 앞으로 고쳐나갈 일이죠.
만원이면 한명이 공부를 할 수있다해서,,만원 지원하는 후원단체가 있어 캄보디아여행 갔다와서부터 보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