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헌 정태수의 서예이야기 20
술과 광초에 취한 괴짜 스님 회소
"술을 마시면 미친 듯이 초서를 쓴 회소(懷素, 725~785)는 당나라 장욱의 뒤를 이은 광초(狂草)의 대가였다. 그는 승려 출신으로 속성이 전(錢)이고, 자(字)는 장진(藏眞)이며, 장사(長沙, 지금의 하남성)에서 자랐으나 뒤에 경조(京兆, 지금의 서안)로 이사했다.
회소는 어린 시절 집안이 어려워서 출가하여 당대의 고승인 현장법사의 문하가 되었다. 그는 평소 술을 좋아하여 취하면 세속의 법도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여 사람들로부터 미치광이 중(狂僧)으로 불렸다.
이런 회소에 대해 육우(陸羽)는 ‘당승회소전(唐僧懷素傳)’에서 “회소는 소탈하고 방탕하여 자잘한 행실에 구애받지 않았다. 술을 마셔 성품을 기르고 초서로 뜻을 펼쳤다. 술이 거나하여 흥이 나면 사찰의 벽과 마을의 담장에 닥치는 대로 모두 글씨를 썼으며 가난하여 종이가 없으므로 마침내 파초 만여 주를 심어서 파초잎에 붓을 휘갈겼다”라고 적었다.
또한 당나라 이조(李肇)는 ‘국사보(國史補)’에서 “장사의 승 회소는 초서를 잘하여 다 쓰고 버린 붓이 쌓이자 산 아래에 붓 무덤을 만들어 필총(筆塚)이라 했다”라고 하였고, ‘선화서보(宣和書譜)’에는 “처음에 율법(律法)에 힘썼고 만년에는 한묵(翰墨)에 정진하여 다 쓰고 버린 붓이 무덤을 이루었다.
어느 날 저녁 여름 구름이 바람을 따르는 것을 보고 문득 필의(筆意)를 깨달아 초성삼매(草聖三昧)를 얻었다. 당시의 명류(名流)인 이백(李白)·대숙륜(戴叔倫)·전기(錢起) 등이 시를 지어 찬미하였는데, 그의 필체를 형용하여 ‘소나기가 몰아치고 광풍이 부는 듯하다(驟雨狂風)’라고 하였으며, 장욱과 나란히 일세에 이름을 떨친 명인이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특히 당나라 이백은 ‘초서가행(草書歌行)’을 지어 회소에게 주었다. 그 시의 부분을 옮겨보면, “젊은 스님이 호를 회소(懷素)라 하는데, 초서(草書)가 천하에 독보적이라 하네./ 회오리바람과 소낙비처럼 휙휙 하는 소리에 놀라게 하고, 지는 꽃 나는 눈과 같으니 어이 그리 엄청난가./ 정신이 아득하여 귀신도 놀라는 소리 듣는 듯하고, 때때로 다만 용과 뱀이 달리는 것만 보는 듯하네./ 왼편으로 구부리고 오른쪽은 끌어당겨 나는 번개 같으니, 모양이 흡사 초한(楚漢)이 서로 공격하고 싸우는 듯하네.”라고 읊조렸다.
회소의 작품은 ‘선화서보’에 백여 건이 수록되어 있지만, 현재 전하는 작품은 서너 개에 불과하다. 묵적으로 전하는 첩은 자서(自敍)·고순(苦筍)·논서(論書)·식어(食魚, 혹자는 古摹本) 등이며 ‘초서천자문’ 각본이 전한다. 이런 첩과 각본을 통해 회소의 초서는 필획이 가늘고 운필은 솜을 연결하듯이 이어지며, 결구는 점획의 대소가 어울려서 다양한 자태를 드러내고, 글자의 강약과 대소가 섞인 자연스러운 장법이 돋보인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자서첩’은 회소 초서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첩은 53세(777년)에 쓴 만년의 대표작으로 120행에 702자로 된 광초이다. 앞부분 6행은 소실되어 현재 우리가 보는 첩은 송나라 소순흠(蘇舜欽)이 보충한 것으로 대만의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는데 오대·원·명·청 명가들의 제발과 수장인이 찍혀있다.
회소는 ‘자서첩’ 앞부분에 자신의 학서과정 및 영향을 받은 것에 대해 60여 행으로 느긋하고 생동감 있는 자태로 서술하고, 후반부에 다른 사람이 그의 초서에 대해 칭송하는 말을 광기가 번뜩이고 파도가 몰아치듯이 격정적으로 휘호하고 있으며, 마지막 22행에서는 태산에서 폭포가 쏟아지듯이 단숨에 휘호했다.
특히 105행 ‘대공(戴公)’ 두 글자의 구성에서 감상자의 의표를 찌르는 대담하고 기이한 묘미를 느끼게 된다. ‘논서첩’은 9행으로 된 행서인데 그의 초서와는 다른 풍격의 초년작으로 살펴진다.
송대 동유(董逌)는 ‘광천서발(廣川書跋)’에서 “장욱 이후 회소가 초서의 진수를 얻었다”라고 평하였듯이 오늘날 서예가들도 미친듯하나 법도를 따르고, 어지러운듯하나 문란하지 않은 회소의 초서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2025. 2. 20 서라벌신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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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헌 정태수의 서예 이야기 <20> - 서라벌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