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구 입니다.
2010년 대에 접어든 후로는
2009년의 백악 갤러리 전시회 이후로 2016년까지 매년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매년 전시회라니! 지금 생각해보니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기합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그만큼 나는 작품제작에 열심이었고, 서예에 대해서 열정적이었다고 믿어집니다. 아마도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고 내 멋대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소신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때의 개인전을 잠시 훑어보면, 2010년에는 서울 이형아트센터에서, 2011년에는 서울 기온 갤러리와 대구의 봉산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2013년에는 다시 봉산문화회관에서, 2014년에는 서울의 이형아트센터에서, 그리고 2015년은 서울 인사동의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2016은 다시 봉산문화 센터에서입니다.
서울 가나아트센트 전시회는 심사를 거친 후에라야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서예는 아예 심사대상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내 작품의 실험성을 내세워 김양동 선생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크다란 의미를 부여하면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이듬해 대구 전시회는 서울의 전시회를 대구에 소개한다는 뜻도 다분히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 나는 많은 실험작품을 선 보였습니다. 순수한 서예작품이랄 수 없는 작품도 많지만, 전통적인 서예작품도 전시하였습니다.
나의 경력을 보니 그 기간에는 수많은 그룹전, 기획전에도 참여 하였습니다. 외국과의 교류전에도 많이 참여하였습니다. 2017년부터는 개인전도 그룹전의 참여 회수도 뚝 떨어졌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2010년대에 접어들어 나는 가장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한 시기이었습니다. 이제 지난날의 도록을 보면서, 내가 나를, 또 다른 분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2011년의 ‘한국서예대학파시각전’ 때는 나의 작품 경향을 내가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80년 대의 한국서예계에서 흑백의 모노톤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을 사용하고 문자를 변형하여서 표현하는 현대서예라는 시도가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현대서예라는 흐름에 동참하면서 나름대로 민화와 서각이라는 장르를 서예작품 안에 융합하는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2014년에 인사아트플라자 갤러리에서 가진 전시회에서도 앞의 글과 같은 내용을 말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토탈 아트라는 시대명제를 담아내기 위해서 다양한 실험을 해보려 합니다. 나는 서예예술에서 문자가 갖고 있는 원시적 조형형태를 현대적 미감에 적합한 표현을 하고자 합니다. 문자의 조형미와 내면적 의미성을 가진 서예를 인접 예술분야와 접목함으로 서예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합니다.”
여기서도 말하였듯이 내가 시도하는 실험은 서예를 버리자는 것이 아니고, 서예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시도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2013년에 대구의 봉산문화회관에서 가진 전시회는 내 나름으로 나의 작품세계를 종합적으로 선보인다는 뜻에서 의미를 두었습니다. 김양동 선생이 머릿글을 ‘雪江 작품의 新境’이라는 제목으로 써주었습니다.
“설강 김영자 선생은 서예가로서는 좀 특이하다. 다른 서예가와는 다르게 서예, 민화, 서각의 세 장르를 한 화면 속에 융합하여 표현하는 독자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나의 서예관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소개해 주셨다. 그리고 충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설강의 작업은 한문 서예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오늘의 관람자들에게 민화의 강한 채색으로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를 자극하고, 서예보다 조형미 구축에 훨씬 뛰어난 서각을 도입하여, 장식성이 가미된 한문서예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설명하려는데 있다. 작가에겐 이런 몸부림과 고뇌를 거쳐서 진화하고, 발전의 단계를 거쳐 간다. 서예, 민화, 서각의 결합에서 설강은 아직 서예에 의미를 두고자 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것은 장점일 수도,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세 가지 장르의 결합에서 초래하는 마찰과 충돌을 더욱 대립시켜 이미지를 강조하느냐, 아니면 멋지게 조화시켜 새로운 경지를 열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작가에게 안겨져 있다.“
근원 선생은 나의 시도를 칭찬하면서도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으셨다. 내가 처음으로 색채를 도입하였을 때는 근원 선생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실험이라면서 긍정적으로 보아 주었습니다. 근원 선생의 충고는 항상 나의 가슴속에서 해결을 못하는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하지만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듬해인 2015년의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센트 전시회에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내 나름으로 나의 작품경향을 종합적으로 보여드리려 하였지만------, 많은 실망을 남긴 전시회였급니다. 이것은 다음에 따로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