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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16절은 성경의 핵심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그림처럼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출애굽기 12장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이 한 말씀 속에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이 들어있다.
이 한 말씀 속에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 들어있다.
이 한 말씀 속에
인생 최고의 영원한 생명이 들어있다.
이 한 말씀 속에
인생 최후의 멸망도 들어있다.
정말 이 말씀을 경험하고 나면,
영생을 얻고, 행복을 얻고, 구원의 감격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출애굽기 12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애굽에서 탈출하는 놀라운 역사가 12장에 들어 있는데요.
“[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출 12:1-2)
출애굽 사건은 정말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달력을 바꾸라고 모세에게 명합니다. 어떻게 바꿉니까?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달의 시작이면 1일이죠 그다음에 또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
이제 3절에 애굽에서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 한 가지만 딱 명령하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한 가지만 딱 준비를 하라고 그럽니다.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다른 것은 부수적인 것이지만, 이것이 빠지면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출 12: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비하라고 한 것은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은 딱 하나입니다.
어린 양만 준비를 하라.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우리가 지금 이 죄악된 세상에서 하늘로 가기 위해서 이 세상을 복음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이 한 가지입니다. 핵심은 뭐냐 하면 어린 양을 준비하라는 거죠.
이건 이 때하고 마지막 때하고 똑같습니다. 나중에 다 풀게 되면 완벽하게 이것이 다 정리가 됩니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출 12:5)
흠이 없다라고 하는 말이 나오잖아요.
흠도 없고 점도 없고 베드로 전서는 이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
그런데 우리가 계시록 14장에 14만 4천인의 특징이 계시록 14장 5절에 보게 되면
14만 4천이는 흠이 없다. 이렇게 돼 놓거든요.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5)
그런데 이 흠이 없다라고 하는 이 표에는 여러분 사람에게 쓰는 표현이 아니고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사실 쓰는 용어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흠이 없고 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흠이 없다는 말이지 우리의 행위가 잘 나서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14만 4천인의 특징이 뭐냐 하면 흠이 없다라고 했을 때는 이거는 어린 양의 예수 그리스도의 흠이 없는 품성을 말합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9)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 1:28)
그리고 이제 6절에 보게 되면 이달 14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이렇게 되어놓습니다.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출 12:6)
출애굽기 12장은 구속의 그림책이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인간을 구원하시고 구속하시는 그림이 그려진 책이 12장입니다.
그래서 아시는 대로 예수님은 성력에 따라서 이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데 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는 시간이 1월 14일이죠.
근데 예수님께서는 언제 돌아가셨느냐 하게 되면 마가복음 15장에 보게 되면 오후 3시에 돌아가시죠 아주 정확하게.
“[44] 낮 12시쯤 되어 온 땅에 어두움이 뒤덮이더니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다. [45] 해가 빛을 잃었고 성전 휘장이 두 쪽으로 찢어졌다. [46] 그리고 예수님은 큰 소리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눅 23:44-46, 현대인)
그리고 또 그 3절에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출 12:3)
모든 사람이 어린 양을 취한다고 그랬는데 이달 열흘이면 1월 10일이죠.
그런데 요한복음 11장의 전후 문맥을 보게 되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 날이 1월 10일입니다. 그래서 10일 날 죽이기로 결정하고 14일 날 오후 3시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이제 돌아가십니다.
(요 11: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양을 잡으면 뭐가 나옵니까? 피가 나오죠 피가 나오는데요.
7절 보세요. 그 피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면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여러분 이제 문이 있죠 그렇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출 12:7)
상상을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문이 있으면 좌우 설주는 기둥입니다.
좌우 설주는 기둥인데 기둥에 이제 우슬초를 가지고 이제 피를 찍어서 좌우 설주에 바르는 거죠.
그렇죠? 그다음에 여기 인방이라고 하는 거는 문위를 가로지르는 나무, 아래를 가로지르는 나무를 지방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인방 위에다가 이제 피를 바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이제 좌우 오른손 왼손에 못이 찔려서 피가 흐르고 또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이 있어가지고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또 발등에 또 이제 못을 박아 피가 흐르죠.
완전한 십자가에 달려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그림이 여기에서 이제 나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게 되면 자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 12:11)
그렇죠? 유월절 어린양 이렇게 표현하지 않습니까?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유월절 어린양이 됩니다. 자 이 유월절에 어린 양을 잡아서 문에다가 피를 뿌려 냈을 때에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 하게 되면 12절 한번 볼게요.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출 12:12)
무섭죠. 아주 무서운 열 재앙, 장자 재앙이 심판이죠! 심판이 이제 내립니다.
천사가 이제 애굽을 심판을 하는데 모든 집에 처음 난 것은 다 죽었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이제 그게 이제 유월절인데, 달 6월을 말하는 게 아니라 뛰어 넘는다. 재앙이 이 집에는 오지 않고 넘어간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출 12:14)
이렇게 되어 겁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 애굽 전역에 온 집에 온 땅에 이것이 내렸는데 피를 바른 집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이 표적이라고 하는 단어가 로마서 4장에 보게 되면 인이 되고 의가 된다.
(롬 4: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게 인이죠 어린 양의 피를 문에다가 뿌리니까 이게 표적이 되었다. 이 말은 인이 되었다. 그 인친 것을 보고 넘어갔다고 멸하지 않게 되죠 이걸 우리는 구원이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출 12: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여러분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습니까?
신학적으로 정리하지 말고요. 그냥 성경적으로 한번 있는 그대로 한번 정의를 한번 해봅시다.
아 구원은 뭐냐 하게 되면 애굽 사람을 칠 때 피를 보고 집을 넘은 것이 구원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출12장 13절하고 출 12장 27절을 딱 결합 시키면 아 심판이 내릴 때 표, 표적이죠. 문의 어린 양의 피가 표, 이 표적이 딱 쳐진 집에는 이 표를 보고 심판이 넘어가는 거죠 넘어가서 뭘 받은 겁니까?
그래서 이제 유월절이 되는 거거든요. 자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는 이 구원이라고 하는 단어가 처음으로 출애굽기 12장에 어린 양과 함께 탁 나옵니다.
아 구원이 이런 거구나. 자 그러면 여러분 보세요.
이제 이 그림을 여러분들이 한번 연상을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이제 심판의 밤중입니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출 12:29)
바로의 장자부터 다 쳤죠 다 죽었죠 그렇죠?
그래서 30절에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 계속 통곡이 있었죠. 왕궁에 이 천사가 바로 왕의 후계자 장자를 쳐버린 거 있죠 그냥 그러니까 바로 왕이 그 장자를 끌어안고 그냥 대성통국이 일어나는 거고요.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출 12:30)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애굽 전역에서 났습니다. 장자들은 그냥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다 죽었거든요.
살지 않고 다 죽었는데 그럼 제가 여러분들에게 한번 이제 여기서 이제 물어보겠습니다.
애굽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장자는 다 죽었는데 피를 뿌린 집은 천사가 넘어갔습니다.
죽음이 넘어가서 구원을 받았거든요. 그러면 왜 이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겠습니까?
기독교 고등 비평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큰 비평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떤 큰 죄를 지어도 예수만 믿으면 제사함을 받고 하늘 나라 간다라고 하는데, 아니 그러면 믿는 사람들보다도 더 착하고 선하게 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멸망한다라고 하는 거는 상식에 맞지 않는 게 아니냐?
자기 행위로 구원의 유무가 결정되면, 불교처럼 그렇잖아요. 불교는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자기가 그 죄를 지고 가야 돼요. 업이라고 그러잖아요. 모든 이방종교는 자기 행위, 노력에 기초되어 있어요.
사람들은 그럽니다. 값을 치러야지, 자기가 죄를 지었으면 마땅히 수행, 고행이나 값을 지불해서 값을 치러야지 믿기만 하면다 구원받는 것 불공평하지 않느냐?
예수를 그냥 믿는다고 해서 다 용서함을 받고, 믿는 사람들보다 더 착하게 산 사람들을 멸망시키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느냐?
이 유월절 심판의 때에 누가 구원을 받아요.
피를 뿌린 집은 살아도, 그 옆집은 피를 뿌리지 않아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옆집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우리 집은 저 피를 뿌려가지고 구원을 받은 저 집 사람들보다 더 착하게 살았는데 왜 우리는 멸망을 받고 저 집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 이거는 공평하지 않지 않습니까? 이걸 공의라고 그러죠 그렇죠?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을 할까요?
그냥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대답을 할 수 있어야 되거든요.
자 이 문제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 구원이 나왔죠 그런데 출애굽기 12장에 구원이 나왔습니다.
그다음에 요한복음 3장 16절 다음에 17절 18절에 예수를 독생자를 믿는 사람을 심판을 받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이 나왔거든요.
그 말은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여기서 이제 대답을 해줍니다.
이 피를 뿌린 사람들은 왜 구원을 받았을까요?
사람들이 품성이 좋았어요? 착한 일을 했어요?
아니요 여러분 출애굽 할 때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품성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딱 하나 어린 양을 준비하고 어린 양을 잡아가지고 말씀대로 피를 뿌린 것밖에 없어요.
우리는 저 집보다도 훨씬 착하고 선하게 살았는데 왜 우리는 멸망을 하고 저 집은 구원을 받았는가?
하나님께서 여러분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심판을 받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그 구원을 받은 집은 안 죽은 것이 아니고 이 집도 심판도 심판을 받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이 집은 구원을 받았는데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았다.
사람들이 반문합니다. 이 집도 장자가 죽어야 하지 않습니까?
답은 이것입니다. 장자가 죽어야 되는데 장자의 죄로 인해서 죽어야 하는 이 심판 대신에 어린 양의 대속, 곧 장자 대신 어린양이 심판을 받아 죽은 것이다.
그래서 어린 양의 피를 문에다 뿌렸지 않았니?
그런데 천사가 보고 넘어간 것은 아 이 집은 이미 심판을 받았구나 이 집의 받을 심판을 어린 양이 대신 심판을 받고 죽어서 죽은 표시로 문에다가 표시를 한 겁니다.
그래서 이 집은 더 이상 죽을 필요가 없었던 거죠. 다른 집은 대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거죠.
그래서 자기 죗값을 지고 갔지만 어린 양에 피를 뿌린 집은 이 집에 있는 사람이 죽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죽어야 하는 그 죽음을 어린 양이 대신 돌아가셨다는 거죠.
그래서 그 죽음의 표시로 문에다가 피를 갖다가 뿌려 놓은 거죠.
그래서 이 집은 죽었기 때문에 이 집을 갖다가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심판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받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에게 고했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지시고 진 죗값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거거든요.
(렘 33: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벧전 1:18-19)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래서 그 피를 갖다가 문에다가 이제 뿌려 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가 요한복음 10장에 보게 되면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이렇게 설명을 했죠 양의 문이라 이렇게 설명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문이 누구냐 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고요.
피를 좌우 문설주에 뿌린 것은 예수님의 좌우의 손에 못을 박는 것을, 인방에 피를 뿌리는 것은 가시면류관 또 발등에 못을 박음으로 완벽하게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간 이는 평안과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이해가 되셨습니까? 우리는 마지막 앞에 마지막에 심판대 앞에 다 서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을 심판 그 죄악들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를 믿고 다 완전하게 회개를 했기 때문에 그 죄를 예수님이 짊어지고 마지막에 대신 돌아가시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심판을 안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요한복음 3장 17절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표현했거든요.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에게 임할 심판을 누가 받는다는 거죠?
우리가 받을 심판을 예수님이 대신 받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한복음 3장 16절로 18절 여기 21절은 출애굽기 12장의 그림을 보게 되면 완벽하게 그 그림이 이제 그려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 심판에 대해서 너무 그렇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거고요.
중요한 조건이 출애굽기 12장에 딱 하나가 있습니다.
그 하나의 조건이 뭐냐 하게 되면 여러분 12장 몇 절을 보시느냐 하게 되면요 22절에 나오죠 그렇죠?
22절 이 하나를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됩니다.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출 12:22)
절대로 문 밖에 피 뿌린 집 그 문 안에 있지 문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겁니다.
나가면 죽음이고요. 안에 있으면 영생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문 밖에 나가지 않고 집 안에 있으라고 하는 말이 우리가 이제 신약 성경에서는 바울이 표현을 많이 했죠.
https://youtu.be/bPaA6lEt9Rk?si=6DrXDazOdlcF6Xlm
“예수 안에” 하는 말로 표현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8장 1절의 말씀입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예수 안이라고 하는 것이 문 안에 있다는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어린 양이란 단어가 몇 번 나올까요? 계시록 22장속에 28절이나 어린 양이 나옵니다. 성경 66권 가운데 제일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시록을 펴서 우리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또 우리가 이해할 때는 온통 시작부터 끝까지 그 어린 양을 설명해야 합니다.
144000인 구원받는 자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계 14:4)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의의 흰 두루마기를 입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더러운 옷이 정결케 되는 유일한 비결은 이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우리의 구원은 오직 어린 양이신 주님의 보혈과 대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찬양합시다.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계 7:10)
구원받아 유리 바다가에 설자들은 자기 자랑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어린 양을 노래하며, 평생토록, 영원토록 그 사랑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의 노래를 영원히 부를 것입니다.
https://youtu.be/z2_u3nMbtqo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 1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