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남해안 청정미역
정 동 순
쓰레기 수거함 주변에는 빈틈이 거의 없었다. 작은 책장, 약간 망가진 회전의자, 둘둘 말린 이불, 바구니에 담긴 각종 양념통, 옷걸이며 프라이팬, 전자레인지, 실내 자전거까지 나와 있었다. 방학을 앞두고 기한 내에 짐을 빼야 하는 학생들이 내놓은 물건들로 북적였다. 아직 쓸만한 물건많았다. 쓰레기 수거함에 넣기는 아까워 필요한 사람이 집어 가라는 배려인 것 같기도 했다.
문득 눈에 번쩍 띄는 물건이 있었다. 남해안 청정미역! 한글이다. 마른미역이 반쯤 담긴 봉지. 저걸 집을까 말까? 거기는 내가 시애틀에서 한참비행기를 타야 하는 아이오와주다. 아들 졸업식을 보러 와서 아들이 살았던 대학가 타운 홈에 잠깐 들렀으니, 미역을 요리할 일은 없었다.
한국에서 유학을 온 학생이었거나 한인 가정에서 자란 학생이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오가지도 못하고 대학 생활하는 동안 오랫동안그리운 가족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 부모가 한식이 생각날 때 먹으라고 멀리서 부쳐 주었거나, 엄마가 끓여 주던 미역국을 먹고 싶어 저미역을 샀을 텐데 다 먹지 못한 미역이 그렇게 버려져 있었다.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아들의 부엌은 같이 살던 학생이 먼저 짐을 빼서 그릇이나 숟가락, 포크도 없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집에서 만들어 부쳐 준 모과 잼도 그대로고, 일 년 전에 아빠가 저를 보러 왔을 때, 사 주었다는 김치가 아직도삼분의 일이 남아있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의 건강을 생각하며 만들어준 검은깨강정이 하나도 줄지 않았다. 내가 무척 바쁜 와중에도 직접만들어 보냈던 것이다. 고춧가루도 부쳐 준 그대로이고, 끓는 물만 부어 먹으라고 보낸 건식 된장국도 아직 몇 봉지나 남아있었다. 알 수 없는 서운함이 몰려왔다. 선반에 차곡차곡 쌓인 식재료가 쿵 소리를 내며 마음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이거 하나도 안 먹었구나.”
“엄마, 미안해요. 내가 너무 바빠서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아들은 부엌에서 내게 감추고 싶은 뭔가를 들킨 것처럼 미안하다고 했다. 아들이 학교 식당에서 밥을 사 먹지 않고 직접 해 먹는다고 했기에 이것저것 보냈던 터였다.
여기저기 자세히 둘러보니, 아들은 다른 졸업생 한 명과 타운 홈에서살면서 정말 많은 물건을 사들였다. 거실에는 직접 만든 전기자전거, 사각냉동고에는 온도조절 장치를 달아 탄산음료 통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현관으로 들어가는 작은 마당에는 고기를 굽기 위해 벽돌로 화덕까지 만들었다. 근처의 마트에서 비교적 싼 가격에 단백질이 많은 돼지고기를 사다
주로 요리해 먹었단다. 아들이 김치찌개를 그리워할까 봐 안타까워했고,하얀 쌀밥을 먹고 싶어할까 봐 작은 밥솥도 사 주었는데 괜한 걱정을 했다.
나는 쓰레기 더미 옆에 놓여있는 ‘남해안 청정미역’ 봉지를 집었다. 아들의 타운 홈에 돌아와 내 가방 속에 미역 봉지를 넣었다. 아들에게 보냈던 식료품들도 아직 괜찮은 것을 추려 내 짐 속에 꾸려 넣었다.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아들에게 받은 서운함은 음식 재료들이 남아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식을 좋아하며 엄마의 아이로 자랐다고 생각했고, 엄마 음식을 그리워하리라 기대했다. 아니, 그리워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보내 줬어도 다 안 먹고 잘 살고 있었던 거다.
아들은 대학 생활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팬데믹을 맞았다.소위 인생의 황금기라는 대학 생활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거리두기로 점철되었다. 학업과 인턴 생활로 바쁜 아들을 방해할까 봐 자주 전화하지 못했다. 아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은 안부를 전하라고 당부하곤 했다. 부모의 염려를 달리 표현할 길 없어 아이가 집 생각할 것 같은 먹거리를 부쳐 주곤 했다. 그것을 받고 행복해할 아이를 생각했다.
아들한테서 가지고 온 고춧가루, 볶은 깨, 참기름 이런 것을 선반에 정리하다 보니, 아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언니가 면역력을 기르는데 좋다고 보내 준 한약 환이 몇 년째 그대로 있다. 좋은 녹차 봉지도 뜯지도 않은채 있고, 홍삼 가루도 수년째 찬장에 있다. 말린 고춧잎, 무말랭이, 날 것으로 올 수 없어 물기를 다 빼고 말려서 온 것들. 최소한의 무게로 최대한 자신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야 오래 보관되는 식재료다. 그것을 받았을 때 얼마나 행복했던가. 나는 식재료를 보다가 멍하니 주저앉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고국에 가지 못한 지 5년이 되어 간다. 가까이있을 때처럼 모든 것을 챙기고 안부를 물으며 살기에는 생활이 너무 바쁘다. 뉴스에서 들리는 소식으로 걱정스러운 안부 전화를 자주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믿어 주고 편한 방식으로 잘 지내라고 격려해주는 일이오히려 멀어지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낼 수 있게 한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본래의 성질은 지닌 채 썩지 않도록 말린 식재료처럼 견디는 마음도 필요하다.
아들은 아들 대로 부지런히 대학 생활을 하며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이것저것 잔 손질이 많이 가는 한식보다는 양념을 발라 굽거나 피자를 굽거나 스파게티를 삶는 일이 더 간편했지 싶다. 어쩌면 한식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으로 남겨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를 위로한다.
아이오와에서 주워 온 미역을 넣어 국을 끓인다. 미역을 다 먹지 못하고 짐을 꾸린 어느 아이를 대신해서, 그전에 미역국을 끓여 주었던 그 부모 마음을 대신해서. 남해안 청정미역, 고향 남쪽 바다에서 자란 미역 줄기가 파랗게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