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볼드윈의 ‘산에 올라 고하라’
작가 ; 제임스 볼드윈(1924-1987)
초판 ; 1953
이 소설은 작가의 반자전적인 성장소설이다. 주인공 존을 둘러싼 복잡하고, 때로는 연약한 사회적 연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존의 열 네 번 째 생일날, 그는 성인식 도중에 뉴욕 할렘에 있는 양부 가브리엘 교회 마당에 쓰러진다. 존이 자신의 생부라고 믿고 있는 가브리엘은 젊은 시절에, 신의 분노를 설파하라는 사명을 받기 전까지는 매우 거친 나날을 보냈다. 그는 매우 변덕스럽고 위압적인 존재였다.
가브리엘이 존의 어머니와 결혼한 것은 그녀가 미혼모로 받을 삼판에서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그는 존의 어머니가 존에게 베푸는 애정은 손이 사생아라는 사실이나 존의 아버지였던 첫사랑과 관계에 대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은 뻔뻔스러운 태도라고 여겼다.
가브리엘 역시 첫 번 째 결혼에서 사생아를 낳은 적이 있지만 회개라는 휘장 두에 조심스럽게 감추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버린 후에 어렵게 자라 결국 비참하게 죽은 아들에 대해 언제나 침묵했다.
존은 이러한 내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직감으로 할렘에서 흑인 청소년들, 특희 교회와 같은 공공기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어떤 위험에 맞닥뜨리는 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존이 교회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엘리사로부터 받은 애정어린 후원은 동성애적인 강렬한 환희로 진동하고, 존은 이러한 바탕 위에 교회의 미래를 세우고자 했다. 하지만 양부가 교조적인 해석과 강요로 이끌어나가는 한 오직 공포와 수치심으로 교인을 복종하게 하는, 교인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여, 잔인하게 응징하는 일만 있을 뿐이다.
존은 어느날 아침에 환시를 느낀다.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진이 빠져있던 존은 이른 아침에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꿈결 같은 한 순간이었을 뿐이었다.
(작가 - 제임스 볼드윈)
제임스 볼드윈은 (1924년 8월 2일 ~ 1987년 12월 1일)은 미국의 흑인 작가이다. 엘리슨과 함께 현대 미국 흑인의 대표적 작가이며, 뉴욕의 할렘에서 목사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열네살에 할렘에서 전도사가 되었으나 당시 미국에서 살아가는 흑인이 마주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강인하고 당당히 맞서는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실망하고 17세 때 교회를 떠난다. 자신도 자신의 동성애적 정체성을 회피하기 위해서 신앙을 이용했다는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0대 시절에 목사가 된 그는 풍부한 언어 실력과 성경,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설교, 찬송가와 블루스 음악의 어조를 이용하여 작품을 썼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달은 볼드윈은 미국의 흑인과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에 회의를 느끼고 미국을 떠나 유럽 각지를 여행하다가, 1948년부터 프랑스에서 머물었다. 그러나 미국이나 해외에서 작품을 쓰던, 그는 인종적 불평등에 대항하는 열렬한 항의들을 마련하였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프랑스에서는 단순한 흑인 작가가 아닌 작가로서 글을 쓰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사람이 아닌 사람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프랑스에서 보이지 않은 존재였다. 나 또한 그것을 바랐다.’라고 했다.
할렘에서 전도사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것을 산에서 말하다>(1953)를 완성했다. <조반니의 방(房)>(1956) 등에서 흑인과 동성애자의 고뇌와 체험을 기교적으로 그리고 있다. 대륙에 있어서의 미국인 묘사는 특출하며, 인권 운동을 진행하고 국민들에게 사회적 이점을 받아들이는 데 용기를 준 <시골아이의 노트>(1955),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른다> (1961), <거리에 아무 이름도 없다>(1972) 등의 에세이가 있다. 희곡으로는 <백인에의 블루스>(1964) 등의 작품이 있다.
인종문제는 볼드윈의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 역시 시민권 운동의 초창기부터 공공연한 지지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조반니의 방’에서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시절의 미국에서 정열적인 게이의 연애를 다루었다. 이것은 당시의 문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편 볼드윈은 이 소설을 동성애에 관한 것이 아니고 고독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백인에 대한 그의 불신감은 깊어만 간다. ‘백인의 타락’을 지켜보며 ‘흑인의 힘’ ‘흑인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 한층 치열해진다.
“나를 위협했던 사회적 힘으로부터 나 자신을 떼어 놓았기 때문에 ‘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놓치고 말았다. 흑백의 차이, 그 어김없는 사실은 무자비하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흑인들의 저항이 힘을 더해 가면서 그는 더욱 호전적이 되어 간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그가 맞섰던 저항소설보다도 더 선동적이고 더 극렬하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외쳤다. “흑인 빈민가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없어지는 수밖에 없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시대였던 민권운동 시기를 뜨겁게 관통했던 볼드윈. 그는 결코 화해될 수 없다던 예술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짊어졌다.
볼드윈, 그는 ‘백인들에게 이익을 줄 목적으로 악마에게 넘겨진’ 흑인들의 작가였고, 그 대변자였다
볼드윈의 다른 작품들로는 소설 <빌 거리가 말할 수 있다면>(1974)와 <그냥 내 머리 위에>(1979),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애틀랜타에서 몇몇의 어린이들과 성인들의 살인 사건을 시험한 에세이 작품 <보이지 못한 것들의 증거>(1985)가 있다.
1987년 12월 1일 프랑스 남동부의 생폴드방스(St Paul-de-Vence)에서 위암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