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잽 트레이닝
“선배님은 무슨 운동하세요?”
“뭐 별로.”
“골프하세요?”
“아니요.”
“테니스는요?”
“그만 둔지 오래 됐어요.”
“그럼 조기축구는 하시죠? 아니면 족구라도?‘
“아니요.”
“아 알았다. 요가하시구나.”
“전혀.”
“그럼 무슨 재미로 사세요?”
“보시다시피 이렇게 삽니다 허허허.”
“그럼 안 됩니다. 뭐든지 하나는 하셔야지 이러다가 큰일 납니다.”
도치씨의 질문에 뭐라고 해야 하나? 자주 듣는 질문이지만 환자로 찾아 온 사람에게 정신과적인 질문을 받으니 할 말이 없었다. 기껏 한다는 말이.
“어쩌겠어요? 이게 내 직업인데.”
“그럼요. 이번에 저를 치료시켜 주시면 저랑 낚시 한번 갔다 오세요. 아마 낚시 갔다 오시면 근육이 쫄깃쫄깃해 질 겁니다. 그런 걸 느낀다니까요.”
“글쎄요. 그건 그렇고 오늘은 처방 없어도 될 거 같네요.”
“네에? 그렇게 제가 심각한 겁니까?”
“하하하! 놀라긴, 내가 보기에 도치씨는 지금 아무 이상 없어요. 신체연령도 지난번보다 더 젊어 진거 같고.”
“그런데 왜 현관문만 잡으면 후들거리죠?”
“그건 말이오. 도치씨의 양심 때문입니다. 도치씨의 양심이 아직 오염되지 않아 그런 겁니다. 내가 바로 잡아 드리지요. 토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 읽어 보셨지요?”
“그 책 안 읽은 사람 있습니까? 허지만 내용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걸요.”
“바로 그겁니다. 기억이 안 나면 좋은데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요. 죄와 벌 속의 범인이 범행 장소에 다시 간 것도 남아 있는 기억 때문입니다. 기억은 양심과 유전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은 지나간 일에 후회도하고 번민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범죄자가 범행을 저지른 후 기억을 못한다면 완전범죄가 성립되겠지요.”
“양심이라 그러셨죠?”
“네 그래요. 인간만 가지고 있는 유전자죠.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척도라 할 수 있어요. 학명으로 카운시엔스센드사이즈conscience synthesize라고 합니다.”
도치씨는 나의 말에 약간 충격적인 반응을 보인 후 세 손가락으로 입 주위를 몇 번 긁었다. 나는 도치씨의 그런 행동에서 도치씨가 현관문 앞에서 불안해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을 정신적으로 랩wrap할 수 없는 경우, 반사적으로 나타나는 신체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니까 누구나 이 카운시엔스센드사이즈로 인해 고통 받거나 불안증세를 보이지는 않아요. 다만 예민한 알러지네이처과민반응가 그런 증세에 노출됩니다.”
“네, 제가 민감한 편이긴 합니다. 치료방법은 있죠?”
“치료가 아니고 교정입니다. 실행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전 뭐든지 잘 적응합니다. 방법만 있다면 뭘 못하겠습니까? 선배님?”
나는 도치씨를 힐끗 한번 쳐다 본 후 모니터에서 데이터를 찾아 보이며 말했다.
“현재까진 잽 트레이닝이 유일한 치료법이죠.”
“네? 잽 트레이닝라구요? 그럼 운동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잽이라면 권투? 레슬링? 아, 안 돼! 전 격투기 같은 운동은 못해요. 전 윤형빈이 같은 사람은 못돼요!”
“하하하. 역시 도치씨말대로 참 예민한 사람이네요. 잽 트레닝zap training이란 반복훈련이란 뜻이에요.”
“어휴. 전 또 도장에 나가란 말인 줄 알았죠. 잽이라면 이거 아닙니까?”
도치씨는 의자에서 반쯤 일어나 나를 향해 권투선수의 펀치흉내를 여러 차례 냈다.
“그만 자리에 앉으세요. 별로 좋아 보이는 폼도 아닌데.”
도치씨가 머쓱하게 자리에 앉았다.
“잽 트레이닝은 어떻게 합니까? 주사나 약을 먹는 것 같진 않고? 아, 물리치료 하나보죠?”
진료를 하다보면 이런 환자들이 꽤 있다. 의사가 한마디 하면 환자는 열 마디 하려하는 사람. 도치씨도 그 부류중 하나지만 얄밉지는 않다. 동향, 동창, 한해 후배라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미운 짓을 해도 미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바로 도치씨다.
“잽 트레이닝은 말이요.”
도치씨가 눈을 빤짝 빛냈다.
“도치씨 자주 여행하시지요?”
“네, 낚시하니까 안가는 곳 없습니다. 울릉도 빼고 다 다녔습니다.”
“국내여행말고.”
“어? 해외엔 딱 한번 갔는데. 태국요.”
“그래 좋아요. 태국이든 대륙이든 좋아요. 그때 통과한 검색대 기억해요?”
“네, 별거 아니던데요?”
“옳아요,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세요. 오늘부터 도치씨 아파트 현관문을 X레이검색대라 생각하세요. 현관문을 열기 전 X레이검색대라 생각하고 편하게 집안으로 들어가는 거에요. 단 현관문을 X레이검색대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고장 난 검색대라고 사전에 자아최면을 걸어두는 겁니다. 그러면 불법물품을 가지고 검색대를 통과해도 삐 소리가 안날 거 아니에요?”
“아 맞아!”
도치씨가 좀비 같은 괴상한 소리를 냈다.
“이런 것을 스페이스타임spacetime이라고 하는데 전문용어로 스파트로템spatiotemporal이라고도 해요. 즉 시공을 초월한다는 뜻이에요.”
“그럼 제가 시공을 넘나들어야 한다는 뜻이네요?”
내가 고개를 꺼덕이자 도치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벌리고 박쥐처럼 한 바퀴 빙 돌았다. 그리고 철부지처럼 말했다.
“오! 제가 선배님 덕분에 배트맨이 되네요.”
한정치산자 같은 도치씨의 행동에 어이없어 내가 천천히 말했다.
“진짜 배트맨이 울겠소!”
내가 핀잔을 주었지만 도치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계속 진료데스크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돌았다.
첫댓글 교육은 제대로 받았네요
도치교육이 바로 내가받아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혼자고민하지 말고 언제든지 상담오세요. 오실 땐 필히 예약하시고 부안뽕에서 왔다고 말씀하세요. 무료상담 받으십니다....ㅋㅋㅋㅋ
못된짓 하고 현관문 들어서면 가슴이 두근반 서근반
아마도 도치가 그런가봅니다.
세상에 당당하게 현관문 여는 인간은 댕강 잘라야 해요. 양심마저 저버린 인간은 인간도 아니거든요...ㅎㅎㅎ
딱걸렸는데 고기도 걸리고 도치도 걸리려나?~~ㅎㅎ
딱걸리고 딱 빠져나가고...그런대잖아요....오늘도 형편 닿는 한 맛있는 거 사 잡수세요...ㅋㅋㅋ
사람은 잊아야만 정상인거 맞겠지요.
밖에서 별짓을 다하더라도
대문앞에 들어서면서부터 잊고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겠슴니다.
이소설에서 바람피우는 사람들 한가락 배워 볼수있겠슴니다.
정통 바람 국정교과서 만드는 중입니다....ㅋㅋㅋㅋㅋ
멋진 주말 현관앞에서 다 보내지 마세요....제가 있잖아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