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5장. 간자(間者)...
굽이굽이 흐르는 장강줄기 한 곳에 작은 목선이 한가롭게 떠 있
었고 그 목선 위에서 태양 빛을 가리려는 듯 초립을 깊숙히 눌
러쓰고 낚싯대를 드리운 몇몇 사람들의 모습은 흡사 한 폭의 그
림인 듯 했다
흔들림 없이 도도히 흘러가는 장강의 물결 속에 녹아든 만추의
정오는 인간사의 부질없는 탐욕과 허세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순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퐁-
너무나도 완벽한 대자연의 질서를 시샘이라도 하듯 강 안쪽으로
비스듬히 드러누운 기슭의 노송 위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먹다
남은 나무열매를 강물 속으로 떨어뜨렸고 작은 파문이 고요한
적막을 잠시 흔들었지만 금새 만추의 적막 속으로 녹아들고 가
을은 다시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흠!"
언제나 대자연의 순행에 역행하여 질서를 깨뜨리는 존재는 인간
들이었다.
기껏해야 백년을 다하지 못하고 한 평 땅 속에서 부토로 흩어질
존재들이었지만 온 세상을 혼자서 집어삼킬 듯, 자신이 없으면
온 우주의 운행이 멈추기라도 하듯 설치며 창고에 가득 채워 둔
보화에 한 줌의 보화를 더 보태기 위해 핏발 선 눈으로 목숨을
버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는 한 가지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소이다 그려!"
초립을 깊숙이 눌러 쓴 채 낚싯대를 드리운 거구의 중년인이 비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한없이 평화롭고 한 폭의 그림 같은 목선 위에
서 실상은 숨막히는 살기와 서로에 대한 질시, 그리고 무언의 대
립으로 팽팽한 긴장이 뒤덮여 있었다
"애초에 우리가 직접 나서는 게 현명한 일이었소! 허영만 가득한
당신네 정파 무림의 사람들에게 맡긴 것이 내 실수였소"
잔뜩 조소어린 한 인영의 말에 다른 인영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하 그렇게 말하는 부영주는 어쩌다 은하전장에 그동안 심혈
을 기울여 키워놓은 세력들을 하루아침에 다 잃어 버렸소? 그리
고 얼마 전에는 옛 흑유부의 거처이자 본단에 숨어든 쥐새끼 몇
마리도 잡지 못하고 아까운 수하들을 수 십명이나 잃었소? 이러
다간 뜻도 펴보지 못하고 지레 멸망하고 말겠소!"
"뭣이!"
혈영의 부영주라고 칭해진 중년인이 살기 충천한 목소리로 고함
을 질렀다
"그만 들 둡시다 누구의 잘 잘못을 따지러 이곳에 모인 것이 아
니지 않소!"
큰 덩치의 장한이 굵은 목소리로 흥분을 가라 앉혔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일로 미루어 보아 우리가 예상치 못한 변수
가 생긴 건 확실하다고 보오. 그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더 큰 걸
림돌이 될지도 모르겠소!"
장한의 사내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썰미를 좁혔다
"현재로선 그들의 정체가 무언지 전혀 아는 바 없지만 무공 면
에서는 우리의 천적인 것만은 틀림없소. 백도무림의 어떤 무공도
초식면에서는 우리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보오! 율자춘
그 난쟁이의 두뇌에서 나온 새로운 검결은 백도무림의 모든 초
식들을 짓누르고 마도의 무공 역시 제압 할 수 있는 악마적인
것이오. 그것으로 우리는 쉽게 은하전장을 손아귀에 넣었고 무림
구석구석에 우리의 세력을 뿌리내리며 우리들의 세상을 만들 만
반의 준비를 해 왔소"
잠시 목소리가 고조되던 장한이 스스로도 자신이 너무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헛기침을 한 번 하며 뜸을 들였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예기치 못한 몇 가지 사건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우리의 일을 주춤거리게 하고 있소!"
"빌어먹을!"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던 다른 한 중년인이 분통이 터진다는 듯
이 내 뱉었다
"실로 오랜 기다림이었고 빈 틈 없이 진행되고 있는 계획이었는
데 목전에 와서 사소한 장애물 몇 가지 때문에 놀란 토끼마냥
뛰쳐나와 이렇게 탁상공론을 벌인다는 것을 이해 할 수가 없소.
이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더 나은 것 아
니오?"
"허어-"
장한의 사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 쉬었다
"이것 보시오 손장문인!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소? 장문
인 눈에는 우리가 지금 사소한 몇 가지 일 때문에 메뚜기처럼
뛰어 온 걸로 보인다 말이오?"
장한의 목소리에 노기가 어렸다
"그렇지 않단 말이오? 지금까지 우리는 오랜 시간을 공들여 모
든 일을 진행해 왔소! 그리고 이젠 그 도화선이 당겨졌고 일사
천리로 밀고 나가면 모든 것은 자연히 해결 될 것을 가지고 이
런 곳에서 초립을 둘러쓰고 쥐새끼처럼 속닥거리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단 말이오!"
콧김을 내 뿜으며 말을 마친 손자겸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들
고 있던 낚싯대를 강물 속으로 던져 넣었다
무당에 입문하여 어린 시절부터 사형 한중광의 뛰어난 자질에
밀려 언제나 그의 그늘에서 울분을 삭혔고 결국은 장문인 자리
마저 한중광에 밀리자 무당을 떠날 결심까지 한 찰나 왠 일인지
한중광이 장문인 영패를 자신에게 내던지고 칩거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 사태에 어리둥절했지만 사행 한중광의 기
행은 점점 도를 더해갔고 그 믿기지 않는 상황은 점점 현실로
굳어갔다
교묘한 수단으로 임시 장문인 자리를 영구히 가로채고 한껏 기
지개를 펼 즈음 율자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전 장문인과 사
형 한중광이 그렇게 갑자기 퇴락한 연유를 알게되면서 참담한
패배감을 맛 보았다
사형의 기행과 함께 자신에게로 날아든 장문인 영패는 처음엔
하늘의 뜻으로 생각되었다. 한중광이 미쳐버린 무당에서는 실력
으로도 장문인 자리는 자신의 것이었다
미쳐버린 사형은 이젠 아무런 걸림돌이 될게 없었다
그동안 넘을 수 없던 장벽으로 남아있던 사형의 그림자는 깨끗
이 걷어졌고 이젠 그 장벽이 저 아래로 보여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사형의 그 기행은 결코 미쳐서 그런 것이 아니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무당의 전 문도를 대신하여 모든 짐을 혼
자 짊어진 채 끝없는 고독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은 것임을 알
았고 그 사실은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대 무당파의 장문인이 되어 태산의 한 준령을 차지하고 세상을
오시할 수 있을 것 같이 들떴던 자신의 행동이 결국은 사형이
떠받치고 있는 판자 위에서 춘 어릿광대의 춤에 불과했다는 것
임을 알았다. 그랬기에 남들 눈에는 미쳐서 폐인으로 보여지는
사형의 그림자가 예전보다 몇 배는 더 커 보였고 장벽의 높이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마득해 졌다
온 하늘을 뒤덮을 듯한 좌절 속에서 결국은 율자춘의 제안을 받
아들여 그의 동조자가 되었다. 그리고 율자춘이 정기적으로 보내
준 검결에 광적으로 매달렸고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세상이 오
면 그 검으로 모든 것을 대신 하리라 생각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얼마전 단 하룻밤 새 제왕성과 정도무림 사이의 깊은 비
사가 낱낱이 공개되었고 사형 한중과의 그 처절한 고독과 그 동
안의 그 혼자서 지고 왔던 무거웠던 짐을 문도들이 서서히 헤아
려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자신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
고 전 장문인 한중광이 미친것이 아니라면 이제 무당의 장문인
영패는 한중광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되돌려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들도 나오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젠 모든 것을 뒤엎고 그동안 학수고대했던
혈영천하의 깃발을 드높이는 길 밖에 없다. 그런데 혈영의 또 한
세력인 장강수로연맹의 총타주인 이자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일
을 늦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
"이제까지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소"!
장강수로연맹의 총타주 담우개가 다시 말했다
"그럼 계속 그렇게 밀고 나가면 되는 것이 아니오?"
손자겸이 여전히 고집을 피웠다
"손 장문인도 아시다시피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곰곰
이 살펴보면 지금까지 우리의 계획을 깡그리 뒤흔들 만큼 심각
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소!"
담우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쩍하고 빛났고 그 눈빛을 대한
손자겸의 가슴이 서늘하여 왔다
만날 때마다 본심을 잘 드러내지 않고 지나치리 만치 조심성이
많아 때때로 겁 많은 당나귀 같다는 생각이들어 내심 무시한 적
도 많았다. 하지만 좀 전에 자신도 모르게 번뜩인 안광을 봤을
땐 지금까지 판단한 것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자였다. 어쩌면 손
자겸 자신에 비해 결코 아래가 아니었다
이렇게 철저히 자신을 감추고 치밀하기까지 한 자들은 최악의
경우가 아닌 이상 자신의 진면목을 언제나 삼 할 정도는 숨겨놓
고 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도래했을 때 그 숨겨놓은 삼 할
까지 합해 사력을 다해 찔러오는 법이다
'무서운 자!'
다시 한 번 손자겸이 담우개를 슬쩍 쳐다보고는 강 한 가운데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의 일이 주춤거리게 된 첫 번째 사건은 은하전장에서부터
였소!"
다시 조심성 많고 우직한 모습으로 돌아간 담우개가 차분히 그
간의 일들을 짚어 나갔다
"우리는 오래 전에 은하전장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로 우리의 거
사에 필요한 자금력의 발판을 마련했소! 그런데 그 은하전장의
우리세력들이 단 하룻밤 새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소. 처음엔 같
은 낙양에 있는 풍림방을 의심했고 개연성이 짙어 두 곳을 동시
에 공격했다가 그곳에서도 똑 같은 결과를 맞았소. 그리고 그 다
음 사건으로는 옛 흑유부의 거처이자 혈영의 본단에 괴한이 침
입하여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는 유유히 사라졌소!"
"크-흠! 쑥대밭은 무슨 쑥대밭... 여 남은 명 사상자가 났을 뿐이
지"
담우개의 말에 혈영의 부단주 섭장흔이 헛기침을 했다
"우린 그때 모든 일을 일시 중단하고 계획을 수정 내지는 재점
검 해 보아야 했소. 하지만 손장문인의 강경한 태도에 밀려 손장
문인 의견대로 혈영이 아닌 백도 무림에 키워놓은 우리의 동지
들로 남궁세가를 장악하려 했다가 앞전과 똑 같은 결과를 맛보
았소"
"어-흠!"
이번에는 손자겸이 헛기침을 내 뱉었다
"기금까지의 일을 미루어 볼 때 우리는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소!"
담우개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끊었고 주위 사람들의 시
선이 자신에게로 모여짐을 확인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첫째로 우리는 그들이 누군지 전혀 모르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
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오. 그리고 우리의 계획도 어는 정도
알고 있다고 보오. 그래서 미리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인
정하지 않을 수 없소!"
"그런...!"
담우개의 말에 공동의 호법 등평부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둘째로 그들은 우리의 무공을 훨씬 뛰어 넘는 엄청난 무위를
소유한 자들이오. 저번에 혈영 본단에서 일어난 혈전에서 사망한
동지들의 상처를 조사했을 때 그들의 칼은 경악 할 만한 것이었
소. 부단주께서는 직접 혈전의 현장에 있었으니 똑똑히 보았겠구
료? 그렇지 않소?"
담우개의 날카로운 질문에 현 혈영의 부영주 섭장흔이 찔끔한
표정으로 시선을 외면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때의 사건은 평생동안 잊을 수 없는 치욕이었
다. 가히 철옹성이라 여겨졌고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될 혈영
의 본단에 첩자가 숨어들었고 본단에 있던 전체 인원들이 가세
한 결투에서 많은 사상자를 남긴 채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본단
을 빠져나갔다
그 날 오후 장강수로연맹의 인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모든 것을
덮을 수 있게끔 한편으로는 천라지망을 펼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건의 흔적을 말끔히 치웠지만 담우개는 그 일을 귀신같이
눈치채고 진상을 조사했다. 설상가상으로 천라지망을 펼쳐 그 괴
한들을 쫓던 부하들 마저 고혼이 되어버렸다
서둘러 일을 처리한 덕분으로 혈영 본단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
해서는 여기 모인 사람들 중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 모든 것이 밝혀지고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혈
영의 영주가 나타난다면 자신은 목이 열 개라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 역시 손자겸처럼 하루라도 빨리 혈영이 무
림정복의 깃발을 드높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만약 그들이 백도 무림의 비밀 세력이거나 그 비슷한 세력이라
면 우리의 계획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소!"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손자겸이 쌍수를 내 저으며 나섰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내가 모를 리 없소!"
"그렇소!"
"그건 맞는 말이오!"
공동의 등평부와 화산의 낙월봉이 그리고 철가장의 집사 국상진
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렇소? 그건 네 분 모두가 보증하니 더 이상 그 방향으로는
고려하지 않겠소!"
담우개가 자르듯이 말했다
'교활한 놈!'
손자겸이 내심 중얼거렸다
넌지시 자신들에게로 화살을 돌려 혹시라도 빚어질 나중 일의
책임소재를 확실히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 다음 세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목적이 무
엇이던 간에 결코 우리와 양립 할 수 없는 무리들이란 것이오.
그들의 목적이 우리들처럼 무림정복이라면 궁극에 가서는 우리
와 대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반대로 그들의 목적이 무림의
수호라면 당장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일이오"
담우개가 말을 마쳤고 모두들 무거운 안색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침묵하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고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
간자들의 모임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보고 있습니다~~~
즐독이랍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