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 최문자
아, 모르고 하는 것들, 그중에 가장 위험하고 슬픈 싸움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싸워 10년 전의 잘못을 떠올리면서 우산 없는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싸워 발바닥으로 젖은 땅을 딛고 서서 싸워 발바닥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모두 찾아내면서 작은 돌이 굴러간 이야기도 용납이 안 돼 꿈속에서도 당신은 싸웠어 혼자서 싸움도 꿈이 있나 봐
쓰지 않은 시를 많이 남겨놓고 죽은 시인들 시 속에서도 싸워 비이커에 물이 가득 채워졌을 때 한 방울 한 방울 채워진 싸움을 알아가듯 아직 비가 안 오는 우주 안데스산맥 허리쯤에서 우산을 쓰지 않은 호랑이 새끼들처럼 싸워 집에 누군가 있는 사람은 산맥 중간쯤 나와 싸워 싸움을 주워 담기엔 너무너무 가난한 우주 속 싸움
ㅡ격월간 《현대시학》(2025, 1-2) ************************************************************************************* 설날 정오께 종제가 세배차 들러 안부를 주고 받았습니다 종숙께서 살아계실 때는 함께 차례도 지냈는데, 이제는 다 지난 추억일 따름이지요 서로 종교가 달랐지만, 민속을 따르는 문화만은 공유했었지요 대화 중에 현 시국에 대한 나름의 진단을 진영논리에 함몰된 탓으로 돌리더라구요 아직 환갑을 몇 해 남긴 수도권에 사는 이의 친척의 삶으로 이해했습니다 싸우기 위해 싸움을 걸고 상대 탓을 하는 현대를 무지함으로 치부하는 시를 읽습니다 비가 오는데 우산을 썼든 쓰지 않았든 싸움은 이어지니까 핑곗거리를 찾아야지요 싸움 중에 가장 못나보이는 게 집안싸움일지니 정당끼리 다툼은 그러려니 해야지요 어쨌든지 주워 담을 수 없는 싸움이라면 룰이나 지켜달라고 주문할 밖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