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금이 작가의 첫 에세이
이금이 작가가 등단한 지 38년 만에 첫 에세이를 펴냈다. 70만 부 이상 판매된 『너도 하늘말나리야』, 뮤지컬로 각색된 『유진과 유진』 등 따뜻한 문체와 깊이 있는 시선으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품을 써온 이금이 작가는 어린이부터 성인 독자까지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는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다. 등단 이후 쭉 소설을 써온 작가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이탈리아로 떠나 한 달 동안 머문 시간들로 첫 에세이를 엮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운 좋게’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다시 자유롭게 떠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책 속으로
우리 여행은 그렇게 낙폭이 큰 롤러코스터에서 한바탕 휘둘리다 내려선 것처럼 정신없는 상태로 시작됐다. 덕분에 소소한 일정 변경 따위는 즐겁게 받아들일 만한 내성이 생겼다. 여행 중에도 숱하게 계획이 어긋나고,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질 테지.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 두렵지만 그 덕분에 겁 없이 내디딜 수도 있는 것이리라.
--- p.20
나는 또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사진도 그 순간을 소유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고 무
엇이겠는가. 그 순간을 가지려고 나는 그 멋진 공간과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대신 뷰파인더만 보고 있었다.
욕심의 무게는 다름 아닌 삶의 무게다. 그동안 내게 지워진 삶의 무게를 힘겨워하며 살았으면서, 짐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지자고 떠난 여행에서조차 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 p.62
최후의 순간을 맞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문득 지금 저 화산이 폭발한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내 삶도 ‘지금, 여기’에서 멈추겠지. 새삼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여겨졌고, 성가시던 비도 생명을 축복하는 것 같았고, 몰려다니는 거대한 구름도 살아 있다는 증표로 보였다. 어제도 어제의 ‘지금, 여기’를 즐겼으면 좋았을걸.
--- p.97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 않은 길’을 품은 채 살아간다. 기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 길은 실패한 길이 아니다. 부서지고 무너진 채로도 무대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타오르미나 극장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 p.132
나는 그 아침, 아무리 짙을지라도 안개는 그 속으로 발길을 내딛는 사람에게 길을 내어준다는 것을 경험했다. 겁내거나 주저하는 사람에게는 벽처럼 견고하지만 용기 내어 다가가는 사람에게는 바늘귀만 한 틈이라도 내어주는 안개는 우리가 사는 세상, 그리고 인생과 닮았다.
--- p.175
출판사 리뷰
‘쉰여덟 살 봄, 첫 문장을 쓰듯 우리는 떠났다.'
이금이 작가의 첫 에세이가 출간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2년 전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기다. 절친한 친구들과 오래전부터 ‘환갑이 되기 전 긴 여행 다녀오기’를 버킷리스트로 삼았었다. 아무리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들어도, ‘환갑’은 역시 특별한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살아온 시간에 대한 ‘보상’ 같은 걸 스스로에게 주고 싶기도 했다.
어릴 적 나는 내가 50대가 될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 30대에는 시속 30킬로미터, 40대엔 40킬로미터 식으로 나이 들수록 세월의 체감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 나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까지보다 더 빠르게 닥쳐올 예순 살이 벌써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일정이 안 맞는 친구들을 제외하고 보니 40년 넘은 친구 진과 단둘이 여행을 하게 됐다.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유명 관광지부터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마을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친구와 함께, 혹은 홀로 다니며 발견한 이탈리아 구석구석의 풍경과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퇴고할 수 없는 시간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시간. 아무리 40년 된 친구라 해도 단 둘이 딱 붙어서 한 달을 보낸다니. 떠나기 전부터 주변인들의 걱정을 수없이 들었고, 그 걱정들은 여행지에서 현실이 되었다.
여행 계획을 아무리 잘 짜놓아도 인생은 역시 앞을 모르는 법. 계획했던 것이 어긋나고,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는 등 50대 후반의 두 여행자에게 다양한 시련(!)이 닥치기도 한다. 그때마다 지혜롭게 극복하고, 느긋한 자세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은 연륜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 말하길 어떤 일이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보내는 진과 나의 일상도 밤마다 뜨는 달빛에 물들며 우리의 신화가 돼가고 있었다.
여행 전부터 이번 여행의 테마는 ‘휴식’으로 정했을 만큼 느슨하게 일정을 짰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느슨’과 상대가 생각하는 ‘느슨’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왕 가는 거 제대로 보고 즐겨야 한다는 이금이 작가와 여유와 낭만을 즐기는 친구 진이 한 달 동안 느끼는 성격 차이, 그로 인한 갈등, 화해하는 과정도 이 에세이의 재미 포인트다.
이금이 작가는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이 장편소설 한 편을 준비하는 마음과 같다고 했다. 시작하기 전 구상하고 계획하는 과정이 그렇고, 소설과 여행 모두 기승전결이 존재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반대로 소설은 고쳐 쓸 수 있지만 시간과 함께 흘러가버린 여행은 고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그래서 여행은 마치 인생을 축소해놓은 것과 같다. 한 번 살면 그뿐인 인생과 닮았다.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여행에서 얻은 교훈과 경험을 바탕으로 남은 인생을 더 잘 살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퇴고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여행이라는 예행연습을 통해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셈이다.
페르마타로 천천히, 느긋하게
‘페르마타(fermata)’란, 이탈리아 말로 ‘잠시 멈춘다’라는 뜻과 함께 ‘길게 늘이다’라는 의미가 있다. 삶의 특별한 순간을 앞둔 이금이 작가가 이탈리아에서 페르마타로 연주하듯 여유롭게 보낸 시간은, 일상을 잠시 멈추고 삶의 행간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쉼표가 되어주었다.
페르마타라는 단어에 여행의 본질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잠시 멈추어 평소엔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것들을 여유 있게 생각하는 것. 실은 평소 일상에서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이 마비된 듯한 지금, 이 시간을 페르마타의 마음으로 느긋하게 보낸다면,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갔을 때 자연스럽게 연결하듯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상세 이미지
출처: 예스24 인터넷 서점
첫댓글 이금이작가님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6 ^
여행 에세이네요. 사서 꼭 읽어보겠습니다. 출간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