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여느때처럼 라켓트와 세면도구가 든 손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테니스 코트에 이르자 문이 닫혀 있다.
봉통 때는 일찍 나오는 사람들이 먼저 나와 라이트를 켜 놓고 공을 치고 있을텐데
라이트도 꺼져 있고 다른 회원들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회체육센터에서는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을 휴관으로 정해 하루 문을 닫는다.
그렇다고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개관하는 것은 아니다. 코트는 문만 열어 놓고 있으며
샤워장은 가동하는 데 회원들에게도 천원씩 샤워요금을 받는다.
목요일 휴관일자를 수요일로 하루 앞당긴 모양이다.
국민학교 시절 덩시 겨울에는 눈도 많이 내렸다.
3학년때쯤으로 기억된다.
밤새 눈이 많이 내려 온 산과 들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우리집에서 학교까지는 거리가 오리쯤 되었는 데 아무도 가지 않은 치돗길은
밤새 내린 눈으로 무릎까지 빠졌다.
고무신에 양말을 신었으나 눈 속을 걸었으므로 눈이 녹아
신발은 질퍽거렸고 발은 얼어서 터질것만 같았다.
학교에 도착해 보니 학생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한 두 명이 더 오고 말았다.
요즘처럼 일기예보나 통신수단이 있어서 미리 휴교조치를 통보할 수 있는 형편도 못됐다
교실밖에서 한참 떨고 있었더니 급사가 와서 오늘은 눈이 많이 와서 휴교한다고 알려주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졸업생중에는 12년 개근상을 받는 친구들이 있었다.
6년도 아니고 초중고 통털어서 한 번도 결석이나 지각을 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학생 혼자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 모두의 정성으로 이루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등상을 받고 좋은 대학 가서 판검사를 마치고 국회의원으로 출세한 사람보다는
우리 사회는 묵묵히 아무말 않고 제 일만 하는 대다수의 성실한 사람들로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토끼와 거북'의 우화에서 보듯이 성실함을 이길 수는 없다
내 대학 동기생중에 돈을 제일 많이 벌은 친구도 성실한 자세로 사업을 했는데
그러다가 때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해군에 있을 때도 사관학교 출신 장교중에 제일 꼼쟁이로 소문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사관학교시절부터 돈을 안쓰기로 유명했는 데 월급을 타면 500원짜리 한 장만 비상금으로 뒷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보통은 그 돈이 다음달 월급 타는 날까지 남아 있더라고 했다. 그는 월남전까지 참전했는데 월급을 꼬박꼬박 은행에 저금하자
은행측에서 자산을 불리도록 해 주어 나중에 큰 부자가 됐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동기생들로부터 밥 한끼 사지 않는 구두쇠로 천대를 받았지만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난 후에는 동기생들에게 크게 한 턱 쏘는 멋진 사람이 됐다는 이야길 전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