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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한국인 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김치이고, 그 김치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매운맛 혹은 그 매운맛을 내는 고추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고추는 언제 쓰이게 되었고, 왜 쓰이게 되었던 것일까? 그 원인을 추적하면서, 동시에 그 원인에 얽힌 역사적 배경을 밝혀보고자 한다.
1. 고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우리나라의 문헌에서 등장하는 김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중기의 문인인 이규보의 전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이다. 동국이상국집에서 이규보는 김치를 지(漬)라는 단어로 언급하고 있으며, “무나 오이를 지(漬)로 담그면 능히 9개월을 버틸 수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김치는 고추는 커녕, 젓갈조차도 들어가 있지 않은, 지극히 단순한 모습이다.
사실, 우리의 국사교육에서 고추를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온 외래작물로 암기(!)를 시킨 탓인지, 순창고추장을 이성계가 먹었다는 ‘전설’을 구라로 지적하는 우리의 지성으로는 임진왜란 이전의 전통김치에 고추가 들어가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추가 도입된 이후로 김장에 고추가 도입되자마자 쓰였던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우선 허균은 임진왜란동안 피난을 다니면서, 그리고 그 이후에 여러 곳에서 벼슬살이를 하면서 먹어본 음식들을 「도문대작(屠門大爵)」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직후에 쓰여진 책임에도 고추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고추에 대해서 다시 최초의 언급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며, 고추의 용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고초(苦草)는 남령초(南靈草)라고도 하며, 서울지방에서는 소주(燒酒)를 더욱 독하게 타먹기 위해서 그 가루를 타서 내놓기도 한다. 그런데 워낙 그 독성이 강하여 그것을 마신 사람은 열에 아홉은 가사상태에 이르렀다.”
사실 이수광의 부정적인 언급이 아니더라도, 고추는 왜개자(倭价子), 남만초(南蠻草)등으로 민중들에게 불렸는데, 민중들은 그 도입지가 일본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왜놈들이 좋은 의도로 심은 것일 리가 없다.”, “왜놈들이 도망가면서 조선사람이 다 죽으라고 심어놓은 독초이다.”라고 인식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고추가 당장에 식품으로 쓰이게 되었을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고추는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뛰어넘어, 현재의 우리의 식탁에까지 빠지지 않는 요소로 등장하였으며, 김장에서는 빠지지 않는 재료가 되었으니 어찌된 일일까? 지금부터는 그 원인을 분석해보기로 하자.
2. 고추가 우리의 식탁을 장악하게 된 이유.
사실 고추가 왜 김치에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가설 중 하나가, 고추를 이용해서 김치에 붉은색을 내고, 그 붉은색은 벽사(辟邪 : 악하고 잡된 기운을 물리치는)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일견 타당한 가설이나, 무엇보다도 의심인 점은, 민중들이 벽사의 의미를 중요시한다 하더라도,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오던 고추를 이용해서까지 벽사의 의미를 강조하려 하였을까?하는 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고추를 사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시대적 상황이 있지 않았을까?
우선, 1655년 신속이 엮은 「농가집성」과, 1670년경에 나온 대표적인 요리책인 「음식디미방」에서는 여러 종류의 김치의 조리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몇 가지를 살펴보자.
① 무염침채 : 산갓을 단지에 담아 따뜻한 물에 담구어 뜨뜻한 구들에 소금을 치지 않고 보관하여 숙성시키는 김치 - 음식디미방
② 생치짠지히 : 오이절임을 고기와 함께 기름에 볶아 약간의 간장에 조미한다. - 음식디미방
③ 침즙저 : 가지로 담근 장에 밀기울을 섞어 뜨거운 마분에 달포가량 담궈두어 숙성시킨다. - 농가집성
이러한 김치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소금이 아주 쓰이지 않거나, 혹은 소금보다 적은 양으로 짠맛을 낼 수 있는 장 종류를 이용한다는 점일 것이다. 즉, 동국이상국집에서 다루는 김치처럼 소금을 적극적으로 많이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드러나며, 이는 곧 소금을 적게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음을 의미한다.
또한 당시의 김치의 주 재료는 무로, 배추가 지금처럼 김치의 주 재료로 쓰이게 된 것은 20세기 초에 산동배추가 들어온 이후이다. 전체 재료량의 5~6%만의 소금을 요구하는 배추에 비해서 무는 20%가량의 소금을 요구한다는 난점이 있다. 즉 소금의 소모량도 지금의 김치보다는 많았음을 의미한다.
결국 수요의 과다나, 공급의 부족이든, 어떠한 요인에 의해서 소금의 품귀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그리고 그 주 요인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분석할 것이다.) 그러나 소금은 김치를 담구는 주 재료이자, 동시에 채소를 신선하게 저장하는 주요 요인인만큼, 사람들은 소금을 적게 쓰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자 하였을 것이고, 그러한 노력들이 바로 위에 언급한 조리법들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고추가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었으니, 고추의 효과가 있다면 ‘켑사이신’이라는 효소의 작용으로 물질의 부패를 저지시킨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고춧가루를 많이 쓰면 엷은 소금물에도 김장이 가능하며, 비교적 날씨가 온난하여 음식이 부패하기 쉬운 남도에서는 고춧가루를 다른 지방보다 많이 넣는다는 점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앞서의 조리법을 포함하여, 소금을 적게 쓰거나, 그것을 대체할 재료,조리법을 찾던 당시 사람들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고추를 김치의 주 재료로 이용하고자 시도했고, 그것은 성공적인 결과를 불러왔던 것이다.
1766년이 되면 고추를 이용한 김치에 대한 첫 언급이 나타나며, 서유구는 「임원십육지」에서 김치에 고추를 많이 쓰면 “마치 채소에 다시 봄이 찾아온 듯 하다.”라며 고추의 효용성과, 그에 대한 바뀐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러한 소금 품귀에 대한, 보관재료의 대체에서 김치의 주재료로 고추가 등장하게 된 것이고, 그를 통하여 고추는 우리의 식탁을 장악하게 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3. 고추 사용의 원인 : 조선후기의 소금 품귀현상 - 조선후기의 변화를 읽는다.
필자는 고추가 김치에 쓰이게 된 원인으로 조선후기에 발생한 ‘소금품귀 현상’을 주 원인으로 꼽았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에 왜 갑자기 소금품귀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일까?
사실, 이러한 소금품귀 현상의 주요원인은 ‘수요과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구증가’라는 선에서 단순히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선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생선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한다는 점을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 명태, 조기, 청어뿐만이 아니라 젓갈류의 소모도 크게 증가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동시에 연안어업에서, 근해어업으로 발전하여 어획량도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선의 저장 및, 젓갈의 제조는 전적으로 다량의 소금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유념하자.)
조선후기에 이러한 어물의 소비(동시에 소금의 소비)가 증가하게 된 것은, 어물의 소비를 요구하는 유교의례의 일반화가 대중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에서, 그 첫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제사와 같은 의례는 양반계층만의 전유물이었으나, 시대가 흐르면 중인계층, 부농계층 뿐만이 아니라 일반 농민층에게도 광범위하게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제사의식이라는 상류문화의 수용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문명화과정」에서 원래는 궁정귀족의 전유물이었던 ‘궁정예절,의례(Courtesy)’를 부르주아 평민층이 수용하여 지금의 ‘근대예절’로 ‘자기화’를 시켰다고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 등장한 중인계층 및 부농계층이, 양반들의 전유물인 유교의례 및 제사(즉 어물,소금을 소모하는)를 수용하여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고자 하였던 것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둘째로, 시드니 민츠가, 귀족들의 전유물이며 문화였던, ‘설탕’을 대량으로 소비하고 구매 할 수 있었던 계층이 나타났다고 지적하며, 그러한 계층이 바로 ‘근세 부르주아’의 등장을 의미한다고 지적하였듯이,
양반들이 제사를 지낼때나 올리던 어물을 구입하여, 자신들만의 제사를 지내고 소비할 수 있을정도로 재력을 갖춘 계층(중인계층, 부농계층)이 조선사회에 새롭게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 역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서양 근대사에서의 설탕의 상징,역할을 어물-소금이 떠안게 된 것이다. 16~17세기 런던의 금융자본가들이 설탕을 통해서 재력을 축적하였듯이, 이러한 어물 및 소금의 소비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여 재력을 축적하게 된 집단이 있었으니, 이것이 우리역사에 등장하는 ‘경강상인’들이다.)
이러한 새로운 계층의 자기 과시 및 자기문화 만들기는 비단 이러한 소금 및 어물의 소비에서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새로운 계층은 중인문학, 중인사학등으로 양반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사고관을 키워가고 있었고, 또한 나름데로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신분상승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조선 후기의 변화의 싹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상의 산물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제가 단순히 김치에 왜 고추가 쓰이게 되었는가?라는 사연에 주목하게 된 것은, 그 원인이 된, 소금 소비량의 증가(즉 어물 소모량의 증가)라는 사실을 통하여, 조선후기에서 양반과는 다른 경제적인 힘을 축적한 집단의 등장이라는 코드를 읽을 수 있으며, 이는 나아가서 조선 후기의 변화상이라는 시대적인 배경을 읽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현재 역사학계에서 주요 논쟁이 되는 주제중 하나가 ‘자본주의 맹아론’ 혹은 ‘조선후기 근대론’입니다. 저는 이러한 학설들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학설들은 한국(나아가서는 비서구권 세계)이 자생적으로 근대화를 준비할 수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중점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경제면에서만의 조명이 아닌, 일상사-미시사적인 시각으로 조선후기 근대론을 조명,지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여러 면에서 조잡하고, 다소의 억지가 있는 글은 ‘우리가 먹는, 고추로 담근 김치’라는 미시적 사물에서 ‘조선후기의 역사적 변화’라는 거시적 역사를 읽고자하는 조그마한 소망의 소산이며, 부족한 사고 및 논리의 산물임을 밝히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점에서 강력히 비판받아야 할 점이나, 비논리적인 면, 부족한 면 등이 있다면 겸허히 그 비판을 받아들이고자합니다.
* 주요 참고 문헌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 - 주영하 저
조선시대 생활사 2 - 한국 고문서학회
우리나라 식생활 문화의 역사 - 윤서석 저
한국사 이야기 13권 - 이이화 저
설탕과 권력 - 시드니 민츠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주요한 책)
조선후기 어물의 유통 - 이영학 논
첫댓글 아하 미시사 를 통해본 거시사군요^^ 좋은글입니다 ~~~
그런데 그 설탕과 소금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감이 안잡히는군요~~
아 그리고 독도 아바타 멌지네여~~~
언제나 부족한 글에 보내주시는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설탕 혹은 소금(어물)로 부를 축적했다는 점은 그다지 어렵게 생각하시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 단순히 사회가 서양에서는 설탕, 우리나라에서는 어물(그리고 소금)을 대량으로 요구하게 되면서, 설탕이나, 어물(혹은 소금)을 구매하여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런던의 대상인들이나, 경강상인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단 차이점이 있다면, 런던의 대상인들은 카리브해의 설탕농장에 '투자'를 하고 '경영'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비해서, 경강상인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고춧가루가 쓰이게 되었든지 간에 지금 제가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해요~ (-ㅁ-?) 술먹는 하마 님, 글 잘 읽었습니다.
사전이 따로 필요 업ㅂ다!!!!!!!!!!!!!!!!!!!!!!!!!!!!!!!!!!!!
오랜만에 글쓰신것 같군요. 정말 좋은 글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마치 작은 논문을 읽는 기분이엿습니다 + -+ 혜박하식 지식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ㅠㅡㅜ 참고 댓글입니다만 초기 조선에 들어온 고추는 지금과는 다른 멕시코나 인도지역에서나 맛 볼만한 아주 독한 고추였다고 하더군요 ....
정말~!! 짱이다~!!! 헉스헉스 이런 글을 ㅠ.ㅠ 난 언제쯤...
풍문에 따르면 일본에서 조선으로 고추가 전래된 이유가 고추의 매운 '독'으로 조선을 공략해보자는 속셈으로 들여왔다더군요. 그런데 한국인은 그 '독'을 장으로 담궈서 '독'에다가 찍어먹죠. ㅎㅎ
김치를 담궐때마다 늘 생각했어요. 그리고 육류를 잴 때도 이제 마늘에 대해서도 좀 써주시면. 육류를 바로 먹지 않을 때 고추장으로 버무려놓으면 냉동하지 않아도 오래간답니다. 마늘도 역시요. 우리 조상들 아주 기발한 사람들인게 붉은색은 식욕을 돋구기도 하거든요. 잘 읽었습니다.
독을 장으로 담궈 독에다 찍어 먹기 ㅋㅋㅋㅋㅋㅋ
정말 논문읽는기분이였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노력해나가고자 합니다. 많은 비판과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__))
언제 한 번 얼굴이나 봅시다. 좋은 글이군요.
상대와 절대의 중간지점님// 언제나 해주시는 과분한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정모나 번개때에 만나뵐 기회가 있으면 술 한잔을 감히 올렸으면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를~!
많은 자료를 섭렵하시고 우리 생활에 깊게 관련된글을 올렸네요! 좋은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