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브금 선정에 시간을 가장 많이 들입니다
세계박람회(구칭 만국박람회). 전신줄이라도 깔려있으면 다행이던 시절에는 산업 관련 정보를 찾아다니기 어려웠고, 그러니 한 장소에 모아놓고 둘러보는 것이 필요했기에 산업박람회라는 것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1851년 런던에서 처음 세계박람회가 열린 것을 기점으로 과학 산업 예술의 총집합소가 되었고, 이걸 잘 열면 국가 위신에도 엄청난 이득이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각 열강들은 경쟁적으로 박람회를 열게 됩니다. 1900년 파리 엑스포 때에는 무려 2000만 명 이상이 방문했으며(같은 해의 프랑스 본토 인구는 총 3800만 명이었습니다), 올림픽 따위는 동네 운동회급 쩌리로 만들어버리는 명실상부한 세계적 행사였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크게 각광받지 못하고 있죠.
베를린 세계박람회를 열어 세계 문명을 한눈에 살펴보는 장을 마련합니다.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죽은 파리 토박이 파리지앵 오스만 남작은 1852년부터 1870년까지 나폴레옹 3세의 후원을 받아 파리를 개조하는 대역사를 진행했습니다. 다만 그 이벤트(디시전?)가 1895년에야 일어났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죠.
청 제국이 동맹을 요청해오길래 놀라서 확인해보니 서양화가 끝났습니다. 비문명국은 문명국과 동맹을 맺지 않으려 하니까요. 문명화 중국이라니 이거 골치 아프게 되었습니다.
Q: 북극점을 최초로 밟을 자는 누구인가? A: 독일인이다!
드디어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노동자 황제(Arbeiterkaiser)'로 불릴 정도로 노동문제에 온화적이던 빌헬름 2세 폐하께서 국왕의 실권을 완전히 앗아간 타협적 보수주의자들과 마찰을 일으키다가 끝내 분노를 폭발, 사회주의자들을 적극 지지한 결과 이렇게 되었군요. 비스마르크가 세워놓은 보수당 우위의 제국 정치는 이로써 완전히 무너졌고, 보수주의 유권자들은 가톨릭계 정당인 중앙당(Zentrumspartei)과 프로테스탄트계 정당인 기독사회노동당(Christlichsoziale Arbeiterpartei, 현존하는 바이에른기독사회연합과는 다름)으로 흩어졌습니다.
상하원 모두가 사회노동당의 손에 떨어졌습니다만, 그래도 40%도 안되는 지지율 때문에 연립내각을 세워야 합니다. 보수정당이면서도 노동문제에 한해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태도를 견지한 기사당과 연정을 해도 고작 51.4%로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그 외의 다른 정당들은 모두 반사회주의로 뭉쳐있었기 때문에 연정을 거부, 절반을 간신히 넘긴 불안한 내각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합니다.
계획경제 때문에 세금을 강제로 50% 이상을 뜯어야 합니다. 음? 누진세? 그게 뭐죠? 역진세는 아는데 누진세가 뭔지는 모르겠네요.
영국이 쿠르디스탄 독립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터키는 아직도 부르주아 독재정인가요?
참여를 안하자니 위신이 너무 많이 깎입니다. 아니 쿠르디스탄이고 나발이고 그게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래?
눈물을 삼키며 억지로 참여해보니 러시아가 영국을 지지하고 나서는군요.
반면 프랑스가 벨기에를 지지합니다. 일본은 러시아 때문에 벨기에에 붙을 것 같고, 독일도 뜯어낼 게 많은 러시아 영국을 공격하는 게 더 좋아보이는군요. 아무래도 영국이 불리한 처지인데, 이렇게 균형이 기울어져버리면...
어라, 벨기에가 화이트피스를 요청했군요. 독일이 영국 편에 붙으리라 예상했던 걸까요? 뭐 하긴 독일과 유일하게 사이좋은 열강이 영국인 건 사실입니다만...
이탈리아도 동맹을 요청해옵니다. 크로아티아 독립을 은근히 바라고 있기 때문에 들어줄 수 없죠.
프랑스는 엘자스-로트링겐 때문에 독일을 증오하고 있군요. 코어 빼앗긴 다른 나라는 안 그러던데 왜 프랑스만 독일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실업수당을 확대합니다. 사회주의적 계획경제 하에서는 비효율 때문에 실업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말이죠. 미리 대비를 해야죠.
라인란트에 최초의 자동차 공장을 짓습니다.
자동차 수요는 129에 달하지만 아직 아무도 생산을 못하고 있어서 가격이 마구 치솟고 있습니다. 이건 비행기도 마찬가지죠.
오랫동안 독일의 스피어 소속이었으면서 근래에는 군사동맹도 맺은 운남이 청 제국의 통합전쟁 때문에 참전을 요청해오는군요. 하지만 서양화를 마친 대청제국을 상대로 동맹국도 없이 혼자 대판 싸워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서부 사하라도 식민지에서 승격시킵니다.
박람회가 끝난 뒤로는 쓸모가 없어진 베를린 세계박람회장을 어떻게든 달리 써먹을 길을 찾다가 지방산업박람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시설 사후 활용은 매우 중요한 문제죠.
베스트팔렌에 최초로 비행기 공장도 세웁니다.
노후연금 규모를 확대합니다.
산업박람회로 위신을 얻습니다. 세계박람회에 비해 돈은 1/4을 들이면서 얻는 위신은 1/2이니 개이득이네요.
대양함대에서 방어적 태도를 발명합니다. 항구에 머무르며 전투를 회피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싸워서 최대한의 결실을 얻어낸다는 거죠. 현존함대 교리인가 했는데 뭔가 미묘하게 함대결전 교리에 가까운 설명이네요.
결국 운남은 대청제국의 일개 성으로 전락합니다. 그간 수고 많았습니다. 방위조약 무시해놓고도 뻔뻔함이 극에 달하는 독일
과도한 형벌 제도를 개선하여, 사형 판결 남발을 막는 대신에 죄수를 멀리 식민지 어딘가에 던져버리도록 합니다.
열심히 개혁을 하다보니 개혁운동이 완전히 사라졌네요 ^오^
좋은 게 아닙니다. 하도 이상한 개혁만 남발하다가 전부 반군이 되어버렸을 뿐입니다.
그래도 형벌 개혁은 필요했습니다. 별것도 아닌 범죄에 사형을 남발하느라 정치개혁이 미진했거든요. 진작 개혁할 걸 그랬네요.
여전히 허전한 아프리카 각지에 수비병력을 만들어서 구색을 맞춥니다. 카메룬 사단이 만들어집니다.
카탕가 사단도 조직됩니다.
어느새 에스파냐도 카를리스타 반동주의로부터 벗어났군요.
페르난도 7세가 아들을 보지 못하자 딸을 낳더라도 왕위를 물려줄 수 있도록 1830년 3월에 살리카법을 폐지했죠. 결국 딸을 두 명 보았고 장녀인 이사벨에게 왕위가 넘어가니 그녀가 이사벨 2세입니다. 만 3세에 불과한 아청여왕(?) 이사벨 2세가 왕위에 오르자 페르난도 7세의 동생인 카를로스가 살리카법에 따른 왕위 계승을 주장하며 내전을 일으켰죠. 여기에서 카를로스 5세가 승리했으니 왕위는 카를로스 6세, 후안 3세(가계도에는 그냥 Juan이라고만 적혀 있는 카를로스 5세의 차남), 카를로스 7세까지 내려왔을 테고요.
하지만 카를로스 7세의 유일한 아들인 하이메(Jaime)가 일찍 죽었다면 결국 대가 끊겼을 겁니다(실제 역사에서도 하이메가 후사 없이 죽었기 때문에 어쨌든 대는 끊겼습니다). 살리카법에 의거해서 가장 가까운 남성 혈육을 찾아보면 카를로스 5세의 조카 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와 이사벨 2세 부부의 손자인 알폰소 13세가 나왔겠죠. 알폰소 13세는 살리카법으로 따져도 정당한 에스파냐 국왕인 동시에 이사벨 2세의 적통이기도 하니까, 카를로스파와 이사벨파 사이의 대타협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사실 이 시나리오의 최대 약점은 내전에서 쫓겨난 이사벨 2세가 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와 정략결혼을 할 수 있었을 리 없다는 점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메꿀 수 있는 설정구멍이니까 넘어갑시다. 프란시스코 공작도 왕실 내부 숙청에 휘말려서 국외로 망명했을 수도 있는 거고.
미시시피에서 시작된 트러스티 시스템은 기존의 죄수대출제도(재건 시대에 남부에서 도입된 것으로, 노예가 해방되어 부족해진 노동력을 벌충하기 위해 농장 등에 흑인 죄수를 빌려주는 제도)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외부에 노동력을 빌려주지 않고 교도소 내부에서 강제노동을 시키는 대신 그 수익으로 교도소를 운영하는 것이죠. 교도소장은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았고, 일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죄수는 채찍을 맞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선진적인 시스템은 대독일 합중국도 배워야겠죠! 독일령 콩고에서 먼저 도입해봅니다.
팔츠의 공장폐쇄 사건에 대해 사회당 정부는 위헌 소지를 언급하며 노동운동을 옹호합니다. 노동자들은 만족하지만 상류층은 사회주의에서 반동주의로 옮겨갑니다.
카노 지방도 니제르 총독부 아래에 편입시킵니다.
청과 일본이 동맹을 맺고 마카오를 되찾기 위해 포르투갈-프랑스 연합에게 전쟁을 선포했군요. 문명화 중국은 역시 무섭습니다. 언제 한 번 날 잡고 때려잡아야겠네요.
보어 전쟁은 원래 3개가 동시에 벌어지도록 설계된 건지 어떤지 모르겠네요.
사회주의가 더 확산되는 건 보기 싫지만, 그렇지 않으면 강경 탄압으로 인해 유혈사태가 벌어져 인구가 줄어드니 어쩔 수 없죠.
하우사란드 지역도 니제르 총독부로 편입시킵니다.
투카리도 니제르 총독령입니다. 나이지리아 코어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네요.
사회노동당이 평화적으로 정권을 잡았는데도 좌빨 공산주의자 놈들은 폭력혁명 생각밖에 안합니다. 어휴 노답 ㅉㅉㅉㅉ
1900년 제2회 올림픽을 독일에서 개최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군요. 당연하죠. 파리 엑스포의 후광에 업혀 가려다가 처절하게 실패한 1900 파리 올림픽 나부랭이 같은 결과는 내지 않을 겁니다. 'ㅅ')=3
근데 프랑스인 쿠베르탱 남작이 싫어할 텐데 정말 베를린에서 개최해도 괜찮은 건가 이거...?
첫 번째 북극점 탐험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젠 뭐 실패해도 별 감흥이 없네요.
사회주의 꺼졍! 차라리 투쟁도를 2 먹고 말겠다!
투쟁도가 오르는 바람에 위기를 느낀 상원이 급히 다음 사회개혁을 준비합니다. 안전규정을 강화합니다.
1899년 총선에서도 사회당이 45%를 득표하면서 여당 자리를 지킵니다. 지난 총선에서 7%대로 몰락한 보수당은 이젠 3%까지 추락해서 평범한 군소정당이 되어버렸군요. 보수당의 여당 복귀는 이제 영영 볼 수 없게 될 것 같네요.
그나저나 사회당 세력은 커졌는데 기사당이 6.9%밖에 득표하지 못해서 기사당과의 연정을 지속해도 51.92%로 여전히 위태롭군요. 자유정신당 아니면 중앙당을 더 설득하든가 해야할 것 같습니다. 둘 다 사회주의라면 치를 떠는 정당들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군요.
마카오 수복 전쟁 때문에 머나먼 프랑스까지 싸우러 온 일본군이, 전쟁이 끝났는데도 아직 슈테틴에 머무르며 독일 관광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저 친구들은 문명화를 했는데 아직도 중세식 갑주를 입고 있나...
캄보디아가 독일의 스피어 안에 있었을 텐데, 영국이 접근해서 그런지 독일 정부가 개입해서 영국을 몰아내달라고 비밀리에 접촉해왔습니다. 거부하면 캄보디아와의 관계가 손상될 것이고,
받아들이면 악명을 3 얻는군요. 지금은 다른 이유로 악명을 써야 할 일이 있으니 거절해둡니다. 어차피 캄보디아는 우리 스피어 국가이기도 하고, 언제든지 영향력을 발휘해서 다른 열강을 쫓아낼 수 있지요.
1900년 1월 1일이 되면서 새로운 디시전 몇 개가 등장했습니다. 터키와 전쟁을 하게 되면 아랍 민족주의를 조장할 수 있게 되는군요.
그리고 중앙은행도 만들 수 있게 되었네요. 뭐 근데 계획경제 때문에 세금을 강제로 많이 거둘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국고가 풍족한 시점에선 뭐 중앙은행이 있으나 없으나...
첫댓글 문명중궈라니!
문명 중꿔라니....
용...용이 깨어났다!!!
이 모드에서는 중국과 전쟁을 벌여, 승전시 베르사유조약처럼 중국을 갈기갈기 찢을 수 있나요??중국은 식민지가 알맞다!!
첫댓글 문명중궈라니!
문명 중꿔라니....
용...용이 깨어났다!!!
이 모드에서는 중국과 전쟁을 벌여, 승전시 베르사유조약처럼 중국을 갈기갈기 찢을 수 있나요??
중국은 식민지가 알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