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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중국의 되놈들은 우리 동방 오랑캐를 미워서 동방의 위대한 인물을 전부 깎아 내립니다. 그런 일이 많이 있어요.
(중국문헌의 인물, 동방민족 태생의) 대련(大連) 소련(少連)도 (그렇지만)그러겠지만
최고운(崔孤雲:崔致遠) 선생님도 (당나라)거기에 가서 절도사(節度使)라고,
일개의 절도사 한 사람의 부하생활 한 적이 있어요. 그건 모든 문헌에 입증되는 거.
이러니 우리 나라의 동방의 성자(聖者) 최고운도 되놈들이 저희 부하로 이용한다. 그러면 어찌 되느냐? ......(신약본초 97~98쪽)
우리 나라에 신선이 있는데, 신인 신선이 있는데 그 양반이 동해 양반이라, 이런데.
그 양반을 만나본 사람 이름이 안기생(安期生)이라.
안기생은 동해상의 신선인데 그 양반이 신선을 만났다고 해서 동해 신선은 안기생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안기생 뒤에 적송자(赤松子), 다 그 뒤의 같은 양반들이신데 그러나 이조에 양봉래(楊蓬萊)두 있어요, 이런데.
그리고 신라에 고운(孤雲) 선생님두 신선이라고 말씀하시지. 그러면 이땅에 신산(神山)이 있음으로해서 신선(神仙)이 있다.
(신약본초 124쪽)
(단군왕검)단군할아버지가 전해 준 걸 고운(孤雲) 선생님이 풀어 놓은 윷밭이 있어요. 요새 보통 놀고 있는 윷밭이오.
(그건)건 우리 나라 고유의 윷인데.
그걸 고운 선생님은 단군할아버지 《천부경》(天符經) 해석에 그 윷밭을 그려 준 일이 있어요.
그런데 윷밭은 아래 위에 북극 남극이 있고 동서가 있는데. 그러면 일적십거(一積十鉅)다. (신약본초 234쪽)
그래서 《천부경》에(의하면 단군의 시초가) 단군할아버지가 처음엔 누구냐?
환인(桓因)이었는데 이 양반이 히말라야에서 곤륜산에서 이렇게 떨어져 오는 산맥이(산맥을 타고)
그 대륙을 거쳐 가지고 백두산에 왔는데.
그래서 백두산에 올라가 보시오. 만주 들이 얼마나 장한가.
앞에는 전부 산이고 뒤에는 전부 들이오. 송화강을 봐도 흑룡강까지 보입니다,
이런데. 그러면 백두산의 웅거(雄據), 대륙의 웅거하는 백두산,
백두산은 거기에( 백두산으로) 환인이 오셨는데 (환인)이 양반은 천상에서 오신 건 사실이겠고.
그러면 히말라야 곤륜산을 거쳐서 오셨느냐? 신인(神人)들이니까 보이지 않게 댕기니 거.
(곤륜산을)거쳐 와도 괜찮을 겁니다.
또 그 다음 세대는 (배달국)환웅(桓雄)이데. 환웅인데 곰 '웅'(熊)자라.
그럼 백두산에는 임금'왕'(王)자 석 '삼'(三)자가 된, 임금 '왕'자 대호(大虎) 있어요.
그런데 흰 줄이 석 줄 되게 있거든. 그건 '왕'자 대호라고 하지만 실제 보게 되면 흰 줄이 셋이 있어요. 그럼 그건 삼이라.
그건 천부인(天符印)을 가지고 온 거이 천부인은 윷밭이오. (최치원)고운 선생님이 해석해 놓은 거라.
천부인은 윷밭이라. 윷밭을 그려 놓고 보게 되면 천부인이라.
그 인(印)을 셋을 가지고 (태어나신)오신 양반일 바로 (단군왕검) 환검(桓儉)이야.
이래서 (환인, 환웅, 단군왕검이)백두산에서 전부 탄생하셨느냐?
단군은 반드시 단군 하강비(下降碑)가 있는 묘향산, 단군대가 있는데. 단군봉에 가보면 전부가, 박달나무가 참박달은 백색이오.
눈같이 희어요. 그래서 그 앞의 설령봉(雪嶺峯)을 이름이 설령이고 눈 '설'(雪)자 고개 '령'(嶺)자 설령봉,
그 다음에 옥황상단 앞에 설령암(雪嶺庵)이 있어요. 묘향산 팔경에 들어요.
그러면 박달이 눈같이 흰 박달은 지구상에 묘향산밖에 없어요. 다른 덴 그렇게 좋은 참박달이 없어요.
그러니 단군 하강비가 거기에 있고, 이런데.
(설령암)거기에 지금 부처님도 모셔 놓은 건(석가모니 부처님 이후 불교증흥시기)중간에 승려들이 한거고.
(유교의)선비들은 (그렇게 해놓은)그런이가 없어요.
그래서 (단군왕검)환검은 천부인을 셋을 가지고 왔다.
그건 뭐이냐? 윷밭을 들고 왔느니라 이거야. 그것을 천부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왜 셋이냐? 환인도 오셨고 환웅도 오셨다.
그래서 당신은 (환웅)아버지,(환인)할아버지가지(를) 대신해 오셨다는 거야. 이래서 천부삼인이 있어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거기서 칠성봉에 올라오면 태양은 바로 그 앞에 있어요. 능라도(綾羅島)를 맑은 날엔 아주 앞에서 보이오,
이러니.
만주에 가기는 좀 어렵고(만주에가서 터를 잡기는 어렵고) 그 당시에 인구가.
(그 당시의 인구로 볼때 만주까지 가셨겠느냐)아주 창조시에 만주까지 가셨느냐?
거 칠성봉에 올라가 앉으면 능라도가 눈앞에 보이는데, 천하의 명승지라.
그 능라, 대동강 능라도를 볼 적에 천하의 명승지인데. 그러면 모란봉(牡丹峯)이나 을밀대(乙密臺)나 다 볼때
그 천하의 명승지를 만년 가도 거 도읍해요.
그런 무서운 터를 두고서 (환인)그 양반이 (만주에 터를 정했겠느냐?)만주 가느냐? 만주에,
백두산에 가(백두산에 올라가) 만주를 보면 평양 같은 명승지는 없어요. 천하의 절경인데.
그러면 (환인)단군할아버지는 신인(神人)인데, 신인이 그런 천하의 절경을 두고 (만주 뜰에 수도 터를 잡았겠느냐?)만주 들에 갔겠느냐?
난 그걸 부인하지도 않지만 시인할 생각도 없어요. 꼭 옳다고도 할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환인)단군할아버지는 아마 평양에 오셨을 거다, 짐작은 하지요.(신약본초 239~240쪽)
《천부경》이란, 백두산에 대한 얘기부터 묘향산인데.
백두산은 오란(역사적으로 오래된)이름이 아니고 그 전엔 (태백산으로 불렸고)태백산이고
그 전엔 (돼지산이라고 불렸다)돝이산이라. 그건 상고에 (인류의 숫자가 적었을때)인류가 귀할 적에,
토인족(土人族)이 생겨날 적에 짐승 잡아먹을 수 있는, 가장 짐승이 많은 곳이 백두산이라.
그래서 거기서 짐승을 잡아먹고 있는데, 그 사람들 별호가 돝이족이라.
그래서 그 돝이족의 별명을 따라서 백두산이 (고대엔 돝이산이라 불렸다)돝이산이라.
그래서 백두산에서 돝이족이 많이 쫓아댕기며 잡아먹는 짐승은 뭐이냐? 돼지라.
그래서 돼지 이름을 또 '돝'이라고 했어요. 돝이 식량이니가. 돝이족이 살던 곳이니까 백두산은 돝이산.
또 돝이족이 식량하는 짐승 이름이 돝이라고 했는데.
(돝이라는것의 사연이 또 뭐가 있느냐)그러면 여기서 그 이유가 뭐이냐?
돝이라는 건 우리 나라, 억울하게 최고운(崔孤雲) 선생님이 (돝이라는)그런 누명을 쓰고 있어요.
그건 나는 어려서 잘 알고 있어요. 저 세상에서 (최고운이라는)영물(靈物)로 왔으니까.
그걸 눈으로 보고 정신적으로 기억해 둘 수 있었는데.
그러나 내가 어려서 원래 알다 보니, 구한국 말에 이 세상에 (태어나고)나오고 보니
도저히 (진실을)말을 해선 안되고 행동으로 옮겨도 살아남지 못해요. (일제시대)왜족의 세상에 커야 되니.
그래서 내 일생은 비참하게만 살게 돼 있어요. 거 (말)할 수 없는 거라, 이랬는데.
우리 나라, 역대의 억울한 양반들 다 알고 있지만 그 중에 고운 선생님은 더욱 억울해.
순창 금돝이굴(전북 순창군 적성면 소재 금돼지굴)이라는 거이 그렇게 (순창 금돝이굴의 유례에 관해서)억울한 누명을 가진
장본이라. 근원이 그거지요, 이런데.
그러면 (백두산이 최초에 돝이산이란 불리던)돝이산이 (훗날 태백산이라 불린것도)태백산 된 것도 단군 때고
또 묘향산이 태백산 된 것도 단군 때라. 거 왜 그러느냐?
백두산에서 떨어져 가지고 (백두산 산맥이 이어지며)우리 나라의 제일 신령한 영봉(靈峰), 묘향산인데.
서산대사(西山大師)도 묘향산을 보고 참으로 웅장하고 참으로 묘하다, 빼어났다고 역장역수(亦壯亦秀)라.
그러면 지리산을 보고 장이불수(壯而不秀)라. 웅장하긴 한데 그렇게 묘한 건 없구나.
금강산을 보고 수이부장(秀而不壯)이라. 묘한 데도 많은데 그렇게 웅장하진 않구나.
그리고 오대산을 보고 부장불수(不壯不秀)라. 웅장한 것도 못되고 묘한 것도 없구나.
금강산을 보고 수이부장이니까, 아주 묘한데 웅장한 건 없어. 묘향산을 보고 역장역수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묘향산에서 탄생하신 (단군왕검)단군은 그 탄생하실 시절에 곰의 가죽을 (두르고)가지고,
묘향산에 곰이 많아요, 지금도 많아요. 곰의 가죽을 가지고 옷을 입고 계셨다 이거라.
그래서 곰하고 비슷한 양반이나 그 대단한 광채를 지니고 있는 천신(天神)이라. 그런데 그 양반이 3천년 후에,
3천여 년이오. (3천년)후에 98대 되는 회계를 따져 가지고 다시 전라도 순창 금돝이굴에 나타났는데 거 석굴(石窟)이라, 이런데.
그때에 하늘에서 서기(瑞氣)하고 황금빛이 찬란한 양반이 오는데, 이게 누구냐? 꼭 돼지 같은 사람이다 이거라.
곰의 가죽옷을 입고 왔기 때문에 그런데. 그 양반이 황금빛 찬란한 그 모습으로 내려올 적에 쳐다보는 사람이 눈이 시어서
못 보게 되니 얼핏 보는데 이상한 짐승은 짐승인데, 그게 도대체 뭐이냐? 알기 쉬운 말로 돼지 같다고 했다.
그런데 황금빛이 찬란하니까 금돝이라고 했다.
그때의 말은 돝이라는 게 돼지인데. 그래 금돝이라고 해가지고 그 후부터 금돝이굴인데(금돝이굴이라 불렸는데).
(단군왕검이 3천년후 금돝이굴에서 화현한)이 양반의 신통력으로 거 (최치원)고운 선생님(이)
자당(慈堂:어머니)은 그쪽으로(몸을 빌려 태어났다) ,
그때 봄날이라. 나물캐러 댕기는 부인들이 (같이)보았다. 같이 댕기니까.
그래서 (단군왕검)이 양반이 그 부인 몸에 접(接)하고 그 광채는 없어진다?
그래서 그걸 신태(神胎)라고도 하고 영태(靈胎)라고도 하는데.
(처녀잉태로 태어난)그 숫자가 《제왕세기》에는 굉장히 많아요.
(동이족 한민족)동방에서 태어난 순임금, 강태공. 중국에도 많은 숫자.
우리 나라의 (통일신라말 최치원)고운 선생님이 그렇게 영으로 화(化)해서 잉태된 분이라.
그래 세상에 나고 보니 그때엔 (통일신라말에 진골이 번성하던 때라.)진골(眞骨)이 행세하는 때라.
거 우리[김일훈 선생은 언양 김씨]조상에 헌안(憲安)왕이라고 있어요, 헌안. 헌안 원년에 태어나신 분이라.
그래 가지고 그 양반을 금돝이굴에서 태어났다고 돼지새끼다 하는 말까지 해요. 그건 그 양반은 위대하지만 거 억울한 누명이라.
천상신(天上神)으로 (천상신으로 화현해 왔어도)화해 와도
그 당시 (국가적 사회적)형편이 (그런 수준으로 표현하게)그리 돼 있어요.
(최치원은)진골이 아닌 양반이고
진골은 또 당나라 되놈이 (훌륭하다하면)잡아가니 안되고.
그래서 (최치원)그 양반이 정체가 (신인이라는게)확실하다면 중국에서 잡아다가 중국사람 됐을 거요.
(어려서부터 중국에서 세뇌교육 시켜가지고)어려서 키워 가지고.
그런데 이 양반이 어려서부터 천하의 문장이라. 또 기지여신(其知如神)하고, 이랬는데.
그 양반이 당나라에서 우리를 멸시할 적에, (최치원)그 양반이 당나라를 놀라게 한 것은 아홉 살이라. 아홉 살에 그랬는데.
아 이 양반을 열두살에 당나라에서 데려간 걸, 우리 나라 학자님들은 당나라 유학이라고 했어요.
열두 살에 유학갔다. 그래 당나라에서 한 일이 많아요. 그러나 당나라에서는 오랑캐라고 해 가지고 종으로 취급해요.
그러면 그 아홉 살에 당나라를 놀라게 한 건 뭐이냐?
당나라에서, 신라같은 오랑캐 속에도 아는 사람이 혹여 있을 지 모르지 않느냐?
그래서 솜에다 계란을 싸 가지고 옥함에 넣어 보냈는데. 그걸 알아맞추라 하니까 나라에선 모르지만 고운 선생님은 어려서
(당나라에서)보내는 거 다 알고 있는데.
그래서 고운 선생님이 지어 바친 글이 그건데. 그 글은 단단함중물(團團含中物)이, 둥글고 둥근 옥함 속에 있는 물건은,
반백반황금(半白半黃金)이라, 절반은 희고 절반은 황금빛이로다.
야야지시조(夜夜知時鳥)나, 밤마다 때를 알고 있는 새나, 함정미토음(含情未吐音)아라.
소리는 내고 싶어도 정은 머금고 있어도 소리는 못 낸다. 소린 내고 싶어도 울 수가 없어.
이놈이 옥함 속에 있는 병아리라. 그 속에서 울어 낼 수 없는 처지라.
그래서 그 가련한 처지를 당신하고(빗대서)비해서 같다는 거라.
그래 중국 사람들이 보고 놀랜 것이 이렇게 신통자재한 신인(神人)이 있구나. 그게 바로 최고운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이걸 처리할 수 있느냐? 중국으로 데려 오자. 그래서 신라왕이 거 진성여왕 때요.
신라왕 명령, 거 황명(皇命)이오. 명령을 내려 가 (최치원 선생을) 데려간 것이 열두 살이라.
그래서 후세의 선비들은 유학이라고 했어요, 이런데.
(최치원)이 양반이 당신이 만들어 놓은 묘향산 암상(岩上)에 (천부경)그 흔적이 있는데, 거 석흔(石痕)이라. 이 흔적이 있는데,
그 흔적은 당신이 한 거라 당신은 보면 알아. 그래서 그 흔적을 보니 당신이 한 거라 당신은 보면 알아.
그래서 그 흔적을 보니(고조선 시절)그 당시에 과두법이 있는데
과두법에 의해서 (올챙이 머리모양 글자)과두문이라.
하후씨의 구루비도 과두법에 과두문이지만 그건 (본래)과두문하곤(달라), 전자법(篆字法)으로 되어 있었고.
전자법하고 과두문하곤 차이가 있어요.
진상 이사(秦相李斯:진나라 재상 이사)가 쓴 건 진짜고 하후씨 구루비가 진짜인데.
그럼 요임금 당시의 과두문은 어쨌더냐?
(벌레)버럭지의(형상처럼) 형용을 숯거맹이(숯검정으로)그려 놓는 것뿐인데.
이것은 요순 때에 제대로 글이 되지 않아요.
(고조선-요순 시절까지도 당시엔 글이 제데로 갖춰 있지가 않었어요)
그래서 순임금의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하후씨는 구루비에다가 완전 전자에 (가까운)가차운 과두문을 기록해 놓았어요.
그건 세상이 다 아는 구루비니까, 이런데.
그럼 (최치원 선생은)고운 선생님은 (전생기억으로)그걸 분명히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이 하신 거니까. 잘 알고 있는데.
그렇지만 후세에서는(단군왕검의 화현으로 처녀잉태해 태어난)전설이 잘못되어 가지고 (금돼지)금돝이 손이라고 봤거든
(순창 금돝이 전설로 이어져왔거든).
또 순창 금돝이굴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 그게 단군이 재림한 곳인데(순창 금돝이굴이라는 유례로 되버렸다?),
단군 재림에 대한 기념은 안하고 (최치원)고운 선생님을 (금돝이굴이라고)욕되게 하는 말밖엔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사실을 난 어려서 전생에 신(神)세계 인간이니까. 어려서 잘 알기 때문에, 알고 있으나 그 당시에 내가 말하면
그 귀신세계는 자세히 말해 줄거요.
지금 정신이 희미하고 혼탁할 때엔 물론 대략을 기억하겠지요, 이런데.
그것을 내가 《천부경》해석을 할 적에 그걸 그대로 쓸 수 있느냐? (천부경에는)거기에는 말 못할 비밀이 원래 많아요.
그래서 금돝이 내용은(금돝이굴의 유례는 본래) 그게 아니다 하는 말은 할 수 있으나, 그렇게 되기 전까진 3천여년이라.
그 동안엔 어찌 돼 있었느냐? 그런 걸 세밀히 밝힐 수도 없고((그렇게 흘러간 시간동안의 세밀한 과정을)나도 그걸 붓을
들고 쓸 순 없어요, 내 재간 가지고는. 누구도 거 표현이 안될 게요.
소설가를 시켜도 소설은 만들 망정 제대로 표현은 할 수 없어요.
이래서 고운 선생님의 98대(로 이어진 단군왕검 재림),단군이 재림하신 걸 나도 쓰기를 98대 손(孫)이라고 썼어요.
그게 아니고 98대에(98대를 지나) 재림하신 분이라. 그래서 그거이 《천부경》이 세상에 (다시)나타난 거라. 당신이 쓴 거니까
나타나지, 신인이 아니면 나타낼 수 없어요.
그래서 그 증거는 상고에 돝이산에서부터 시작한 증거라.
이래 가지고 내가(하는 말이) 단군 98대 손(孫)에 (AD 857년) 최치원이라. 그건 나도 오늘 현실에 그 이상을 밝히면
너무 허망해. 그래 가지고 허황하다고 할 수도 있고. 학자들은 그 당시를 상상할 수 없으니까 (전설로만)전설을 믿어요.
그럼 이조 5백년(역사)의 (전설들이)전설이 그렇게 허황한데
4천년 전의 전설은 (전설들은 더)허황하지 않겠어요? 이것이 난해한 문제라.
그래서 고운 선생님의 행적을 말하는 것도 난(難)해. 또 《천부경》속의 어려운 이야기는 더욱 들어가면 난해요.
해석은 도저히 안돼요.
그래서 고운 선생님 억울한, 단군 재림하신 분인데도 금돝이 아들이라 하고 있어요.
지금도 세상은 (금돝이굴로)다 알고 있는 거니까.
또 묘향산에 (단군왕검 태생의)단군대와 같이, 순창 금돝이굴이 (단군왕검이 재림하신)단군대인데,
단군대라는 표현은 없고 금돝이굴이라, 이거이 우리 지금까지 (이렇게만 알고)살아온 겁니다, 살아온 건데.(신약본초252~257쪽)
애매하게 욕먹는 거, 고운 선생님이 위대한 단군의 재림하신 분이래도 결국에 그 누명을 벗지 못하고 갔어.
내가 지금 애매히 욕먹는 거. 이 욕을 면하기 어려워요. 내내 계속해요. (신약본초 268쪽)
고운 선생님도 종말은 (처자들 데리고 가야산으로 입산)솔처자입가야산(率妻子入伽耶山)이라고 했는데 그 증거도 분명치 않고.
그 당시의 진성여왕 때도(최치원 선생이 올바른 정책을 말하면) 거 혼나는 거이(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최치원 선생을) 정배(定配)를 결국 보내기까지 하고.
그래 (최치원)이 양반은 산속으로 둔갑을 하고 말았는데. 내가 그 양반을 고통 준 왕의 이름을 알아요, 아는데.
그 양반들이 우리 (김씨)조상이라. 공자님도 (당신의 조상)당신 조상 욕을 안해요.
나도 인간인데 육신 가지고 인간으로 있으며 (조상을)할아버지 나쁘다고 하기 참 힘들어.
그래서 할아버지 (조상의)잘못을 알면서 감춰 두는 건 나도 마음이 괴로워요.
고운 선생님같은 대성자(大聖者)를 그렇게 괴롭힌다? (최치원 선생이)무슨 얘길 해도(그 왕이)반박이라.
(나라에 간언하면)간(諫)하면 전부 (왕이 위에서)반박, (정책 간언을)받아들여지는 건
(시원찮은 정책이나)시원찮은 거나 받아들이고
(강대국 눈치만 보고 국가발전을 위한)아주 위험한 건 받아들이지도 않고. (신약본초 270~271쪽)
해석) * 망해가던 통일신라 말의 현상.
신무천황(神武天皇)이라고 하는 일본 역사의 인물이 있는데,
(신무천황)그 자가 (역사에)있다는 걸
(책으로 봐서 알게된게 아니고)내가 책을 보는 거 아니고
(영력을 통해 봐서)정신 속으로도 있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신무천왕)그건 누구냐?
이《천부경》에 오칠일묘연(五七一妙衍)이라고 있는데
오칠일이라는 게 뭐이냐?
오칠이 삼십오(5 x 7=35), (단군왕검)단군 35대
(BC 711년) 손(孫)에 가서 가장 아시아의 유일한
인물이 하나 나온다.
그 신무천황이라는 자가(자를),
그 (일본)미개족들이 창조시에 이야기한 거 돼
(신무천황에 대해 창조신화처럼?되서)그러지,
참말로 훌륭한 인물이야.
그래서 아시아의 유일한 신무천황이라는 자가 나온다는 거지.
그건 그때 (신무천황이란 단어로 표현한게 아니고)신무천황이 아니고
(최치원 선생이 오칠일묘연이라고 한)그 양반 말씀은
유일한 영걸지주(英傑之主), 영웅호걸, 영걸지주가
탄생한다. 그걸 의미한 거라.
오칠일이 묘연이야. '묘'라는 건 단 하나인 비밀을 말하는 거고, '연'이라는 건 단군 때까지 35대만을 이어 가지고 오다가
그런 인간이 나온다. 그래 '묘연'이라고 붙였어요.
그건 (최치원)고운 선생님의 해석이라, 이런데.
그래서 그 왜족이래도 단군할아버지가 내 35대 만에
내 핏줄에는 신무천황이란 그런 영걸지주가 나오느라,
그걸 표현했으니
그걸 볼 때에 고운 선생님도 (천부경에 대해서)탄복한 거고
나도 어려서 (천부경의)그 절구(絶句)를 탄복한 거요.
우리 (단군왕검)할아버진 그런 분이다.
(신약본초 275~276쪽)
공자님 학설을 전부 보게 되면 《주역》(周易)에는 계사단상(繫辭彖象)에 땅은 네모났다는 말씀하고 하늘이 돈다는 말씀하는데,
그건 확실히 (사리분별에)사리에 어두운 말씀이고
글에 들어가선 만고의 성자(聖者)라.
글엔 만고성자(萬古聖者)되시는 분이나
(사리분별)사리(事理)에 고운(孤雲) 선생님 같은 분에
비하면 대단할 것도 없어요. (신약본초 296쪽)
(성령잉태)노자(老子)의 성모는 이(李)씨 부인이고.
동방에 그 다음에 성령으로 잉태한 분들 중에는
단군(檀君)이 재림(再臨)하신 최고운 선생님이 계시고,
(최고운 선생)그 양반이 재림 후에
(훗날 처자식데리고 가야산으로 은거)
이 신라 말에 솔처자입가야산(率妻子入伽耶山)이라고 건
《사기》(史記)에 다 있는 말인데, 가야산 산신으로 계세요.
(가야산 그곳에)계셔 가지고 계룡산은 신도(新都:새서울)인데, 계룡산 도읍할 적에는 그 후손 중에 성자가 탄생하고
(계룡산 도읍)그 후에(는) 가야산 도읍 시절엔
(최치원선생)그 양반 후손 중에 아주 천하에 드러나는
대성(大聖) 탄생한다.
하는 거이(것이) 그 상고에 다 증거 있는 말들이고.
(신약본초 892쪽)
(질문) 요즘 천부경(天符經)에 관심을 가지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특별한 경위가 있습니까?
(仁山) 내가 천부경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고 최고운 선생이 가장 애를 쓴 경전이 바로 천부경이지.
우리나라 (성현)선배 양반들 중(에도) 흔치않은 최고운 같은 양반이 머리 쓴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뿐이야.
(질문) 그러면 고운 선생이 단군(단군왕검) 당시의 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仁山) 눈이 있었다고 봐야지. 고운 선생은 중국에서 사신이 옥함 속에 솜으로 싸서 계란을 넣어가지고 와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 속에서 이미 병아리가 부화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맞춘 양반이지.
(그건)옥함을 가지고 온 중국사신도 몰랐던 사실이야.
그런 머리를 가지고 있는 양반이 상고를 더듬어 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겠지, 없겠는가?
(질문) (통일신라말)당시에는 고운 선생 외에도 불교계에 높이 평가하는 원효대사나 의상조사도 계신데...
(仁山) 원효대사나 의상조사도 훌륭한데 성주산(聖住山)의
백월보광(白月寶光)같은 무서운 양반도
(최고운 선생)고운 선생에게 비문을 받았어.
그런 것을 모두 미루어보건대 도가 높은 이들은 고운 선생을 상당히 존대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