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장-
강당은 화려할건 없지만 넓은편이어서 모든 신입생들이 들어와도 넉넉한 수준이었다.
태화는 나뭇결모양의 강당 바닥에 앉아서 예사롭지 않은 눈매에 백발신사의 포스가 물씬풍기는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과 1학년 교과선생님들의 소개, 신입생대표의 연설을 듣고 각각의 부들이 준비한 홍보겸 장기자랑을 관람하는 중이었다.
"야.야" 무토가 뒤에서 말을걸었다. "왜?" 돌아보며 태화는 말한다.
"너 무슨부에 들지 정했어?" 태화는 조금 생각을 해보았다. "글쎄, 딱히 생각해둔 부는 없는데. 너는?"
강당무대에서는 무술부의 송판 격파시범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도야. 아는 선배가 남자는 기타와 드럼이라며 밴드부에 들라고 했는데 시끄러운건 별로 좋아하지않거든"
"오호. 그런데 부는 반드시 들지 않아도 되는거아냐?"
"뭐?" 너가 그런말을 하면 안되지. 라는것이 노골적으로 느껴지는데, 태화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게..학교가 끝나고 집에 바로갈수있고, 공부도 중요하니까."
"뭔가 일반적인 말을 하는구나 너. 그치만 고등학교의 부활동이라고?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의 피끓는 청춘은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부활동에서 모든것이 일어난다라는말 몰라?"
"뭐가 일어난다는거야." 태화가 질린다는표정을 짓자 무토는 말이 너무많았다 싶었는지 화제를 돌렸다.
"흠. 그러니까 여러 학구적인 일들말이야.. 너 뭐 특별히 관심있는거라던가 잘하는거 있어?"
"컴퓨터라면 조금 다룰줄 아는데. 아, 그리고 요리도 좀 할줄알아."
얘기를 듣던 무토가 별 흥미가 없는지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래? 별로 재미있는건 없구만 그럼 이건 어떨까. 우리가 부를 만드는거야."
"부를?" 태화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에 눈을 크게뜨며 말했다.
"응. 부의이름은 ..러브러브나이트 부!! 너와 나라면 분명 부실은 하렘으로 가득할..쿠헉"
(*하렘 :한마리의 수컷과 다수의 암컷으로 이루어진 어느정도 지속성이 있는 집단. 암컷 방위형 일부다처라고 할 수 있다.)
"기각." 어릴적부터 무술을 연마한 태화는 손날치기로 무토를 조용히 시킨후 부들의 홍보공연을 관람했다.
'오랫동안 해온 수련은 지금을 위해 한거였구나. 그나저나 정말 무슨 부라도 입부해야 될텐데, 간단히 취미로 들만한 부는 없을까?..귀찮구만'
이후 30분정도 부들의 발표회가 있은후 폐막식이 진행되었다
"모두들 가방은 가져오셨죠? 이제 해산해도 됩니다." 반의 아이들이 모두 모인후 이솔 선생님이 말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귀가하거나 새로사귄 친구들과 어디론가 가버리고 태화역시 집으로가는 중이었다.
옆에 갈색변태 한마리를 끼고. "아야야..야 아직도 아프잖아 아까전에 나진짜 기절한듯?"
무토는 태화의 손날치기가 직격한 부분을 잡고 문지르는 시늉을 했다.
"기절은무슨, 그리고 40분은 넘게지났는데 아직도 아플리가있냐?" 태화는 한심한듯이 말했다.
"무슨! 좌뇌와 우뇌가 갈라지는줄 알았다고!! 아. 원래 분리되어있나?"
아무래도 머리에 손상을 입은것 같다. 그래도 나중에 손해배상청구는 안하겠지 암, 자신의 잘못도 있으니
"그런데 언제까지 따라올거야? 우리집은 여기서 꽤 멀리 떨어져있다고"
"따라가긴 무슨. 우리집이 이쪽방향이어서 그런거 뿐이야 그런데 집이 어디인데?"
'집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시골청년이라 그런거냐. 뭐 시골인건 맞지만.'
"금산역에서 기차타고 한시간정도 거리에 남현이라는 마을이야."
무토는 조금 놀란듯이 말했다 "으와 통학하기엔 좀 번거로운 거리아냐?"
"뭐 아침 7시 전에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되지만. 그럭저럭 괜찮아." 태화는 대수롭지 않은듯이 말했다.
"대단한걸 나는 7시 전에 일어나본적이 별로 없는거 같은데, 그런데 만약이라도 지각은 안하는게 좋을거야 우리학교의 교훈알지? 한계를 뛰어넘어라. 이것은 생활수칙에도 적용되는데 지각한 학생은 아침자습시간동안 운동장을 10바퀴 돌아야해. 물론 뛰어서"
10바퀴라니. 태화에겐 별 대단한건 아니지만 일단 놀란척을 해두었다.
"헉 10바퀴이라니? 사람은 말이 아니라고. 그거 완전 무리아냐?"
"뭐 정말 사정이있거나 몸이 약하거나, 여자, 비만인 학생은 걷게 해주지만 너처럼 건강한 녀석은 얄짤 없다구. 오죽하면 인간운송차 양성소란 말이 나오겠냐. 뛰면서 요령껏 쉬는수밖에 없어."
태화는 진지하게 말하는 무토를 따라 운을 띄워줬다.
"아무리 그래도 좀 심한거 같은데 학생들의 건의사항은 없었어?" 우리학교 학생들을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요즘같은 운동부족 시대에 그것을 한번에 다 뛸수있는 학생은 별로없을 것이다.
"불만이 많은걸로 알고있어. 하지만 운동장을 뛰면 지각한것에대한 처리를 무효로 해주기때문에 뭐라할말도 없는 실정이지. 시간이 없어서 다못뛴 학생은 방과후에 바퀴수를 다 체워야해."
운동장을보니 꽤 넓게보이는 것이, 지각한 학생들 대부분은 방과후에 남아서 운동장을 돌게될거 같았다. 그야말로 최악이다. 방과후 시간을 건드리다니, 반드시 지각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태화. 만약 지각을 한다면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아침자습이 끝나기전에 다 돌아버리겠다고 생각했다.
지각한 시간을 감안하면 자습시간까지 다 돌기위해선 아무리 태화라도 그정도로 뛰어봤자 될까말까할 것이다.
"후와. 악독하고 철저하구만 주의해야겠어."
"그래그래, 그러는게 신상에 좋다구.뭐, 네가 거주권을 얻어서 기숙사에서 지낸다면 그럴일은 없겠지만"
'그러게.' 태화일행은 그후 5분정도를 걸어 역으로 이어지는 신호등과 다음 블럭으로 건너가는 신호등에 도착했다.
"나는 여기서 역으로 들어가. 그럼 내일보자 무토"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태화. 조금(?) 응큼한 면이있지만 좋은 친구를 사귀었다고 생각했다.
"으와 웃는 얼굴이 꽤 잘생겼는데? 앞으로 썸싱 기대되 태화~. 그럼 내일보자" 능글맡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무토
"뭐가 썸싱이냐~ 잘가라"하는 말은 웃음을 머금은 체
"어어~ 잘가라" 무토는 초록불이 들어오자 신호등을 건너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무토네 집은 역에서 10분정도 거리에 있는 개인주택이라 하였는데, 다음에 한번 들러보고 싶었다. 방에 귀여운 여자애 사진이라도 있으면 놀려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태화의 신호등은 아직 빨간불인 상태. 그냥 있기 심심하여 높다란 빌딩들과 2층으로된 거리들, 고층 건물들 사이의 선로로 빠르게움직이는 자기부상열차, 지나가는 청소용 패트롤을 구경하고있는데 그것이 보였다.
"응?" 예의 태화의 동네역에서 봤던 여자애였다. 이곳으로 걸어오는데 처음으로 얼굴을 봤다. 그러고보니 눈에 잘띄지 않는 아이같았다.
인사라도 할겸 태화는 여자쪽으로 몸을 돌려 있었다.
짙은청색 머리칼을 하얀색 밴드로 한쪽으로 말아올린 헤어스타일이 포인트인 이아란 아이는 머리와 같은색의 눈에 이목구비가 꽤 뚜렷한것이.. 귀여운 편이었다.
아아, 귀여운편 내편이로구나 신이시어. 이렇게 화려한 고교대뷔를 준비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심각한 자기편애와 신의은총에 태화는 감격한듯이 얼굴이 상기되었다.
이아란 아이는 가까이 다가와서 섰다. 가까이서보니 눈동자색이 꽤 짙푸른 청색인것이 심연의 바다속 같았다.
쭈뼛쭈뼛 처다보고 있기만해도 뭐해서 태화는 말을 걸었다. "저기, 안녕? 너 같은반애지?"
히. 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사람좋게 웃어보이는 태화
고개를 쳐들어 멀뚱히 태화를 바라보는 이아. 이후 수줍은듯이 고개를 떨구는데.. 이런 망할! 이란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듣한.. 태화는 모든 남자들의 천하의 우라질놈이 된거같은 기분이었다.
"응.." 작은 목소리가 작은입에서 나왔는데 맑은듯하면서도 낯을가리는듯한 느낌. 내성적인 아이인가?
"저기, 너 혹시 남현이라는 마을에 살지않아? 그곳 역에서 너를 봤거든."
"아. 응 남현에 석천쪽..." 태화가 사는 남현이란 마을은 본래 석천지란 이름을 가졌는데, 후에 마을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강을 건설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동서 방향으로 동쪽은 석천, 남쪽은 석지로 나눠지게 된 역사가 있었다.
지금은 남현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이름을 나누는 일도 없어졌지만 동네 주민들은 자신의 집 위치를 말할때 두지역중 가까운 곳을 말하는 관습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태화는 이게무슨 우연인가 싶었다.
"석천쪽? 나도 거기 사는데. 반갑다." 하는말이 나오는것과 동시에, 신호등의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응 반가워."그말은 옅은웃음와 함께.
태화는 자연스럽게 이아과 걷게 되었다.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와 함께 걷는것은 초등학교 졸업이후 처음인거 같다.
한살어린 여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있고 살았던 동네 주변에 아는 여자애도 없었기때문이다. 중학교는 마을의 학교라서 별로 학생들도 없었고 그런데 이아는 중학교에서 본적이 없었던거 같은데.
횡단보도를 다 건넌후 태화는 이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마을이 엄청 넓은 편은아니잖아? 동네에서 너를 본적이 없었던거 같은데 어디 다른곳에서 이사라도온거야?"
"응. 원래는 이쪽도시에 살았는데 부모님 사정으로 남현에 오게됬어. 근데 학교는 이미 입학완료한 상태라, 그냥 다니기로.."
그런 사정이 있었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