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성과 이영표가 처음으로 나란히 출격했고, 아인트호벤 구단은 이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2002한일월드컵 테마송이 흐르고 박지성과 이영표의 월드컵 활약상이 2대의 대형 전광판을 통해 방영되자 5만명이 넘는 아인트호벤 팬들은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주시했다.
하프타임이 되자 포르투갈전에서 골을 터트린 박지성과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치는 히딩크 감독의 모습이 전광판에 보이자 큰 함성이 터져나왔다. 아인트호벤 구단이 발간하는 PSV 인사이드 잡지는 1980년부터 1983년까지 아인트호벤에서 뛰었던 허정무와 박지성을 비교하는 기사를 2페이지에 걸쳐 전하며 '새로운 융무허(Jung-Moo Huh)'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경기를 마친 후 필립스 스타디온 내부를 걷다보니 특이한 방들을 볼 수 있었다. 아인트호벤이 배출한 특급 스타들의 이름을 딴 방들이었다. 네덜란드어로 방을 뜻하는 잘(Zaal)을 붙여 브라질 대표였던 호나우두 잘(Ronaldo Zaal), 호마리우 잘(Romario Zaal), 판 니스텔로이 잘(Van Nistelrooj Zaal) 등이었다. 호나우두 잘은 기자들의 프레스룸이었고, 80년대 아인트호벤의 영웅 에릭 게레츠의 방은 대형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남미 출신으로 유난히 한국 취재진들을 잘 챙겨줬던 아인트호벤의 홍보 담당자 살라자르는 "얼마 후면 히딩크 잘(Hiddink Zaal)도 생길 것이다"고 귀띔했다. "박지성과 이영표도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딴 방이 생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인트호벤 진출만으로도 가슴 벅차던 그 때 이들이 아인트호벤을 거쳐 바르셀로나로 떠난 호나우두, 호마리우와 맨유로 이적한 판 니스텔로이, AC 밀란의 전성기를 이끈 뤼트 훌리트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상상만으로 가능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2005년 여름 꿈은 다시 현실이 됐다. 박지성은 맨유로 이적했고, 곧바로 이영표가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지난 7월 영국의 대중주간지 선데이 메일 보도를 보니 박지성은 호나우두, 호마리우, 판 니스텔로이와 함께 아인트호벤이 배출한 성공적인 이적 모델 4명으로 뽑혔다.
신문은 박지성에 대해 "거스 히딩크는 동북아시아 시장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활용하며 천연 다이아몬드 채취에 나섰고, 교토 퍼플상가의 박지성을 영입했다"며 "박지성은 평범한 가격에 아인트호벤에 입단했지만 이후 400만 파운드로 맨유로 이적해갔다"고 설명했다.
#2 빅리그 직행 고속도로에 올라탄 박주영
9월 1일 박주영은 프랑스 르샹피오나 AS 모나코와 4년간 계약했다. 이적료 200만 유로(약 33억원)에 연봉은 40만 유로(약 6억5000만원). 등번호 10번.
계약을 위해 출국하던 박주영은 "지성이 형과 영표 형도 네덜란드 리그를 거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다. 나 역시 프랑스에서 기반을 닦아 더 큰 무대 진출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너무 빨리 김칫국을 마셨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지난해 8월 31일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를 빅리그 발판으로 삼겠다던 이천수가 1년도 못버티고 K리그로 돌아온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주영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005년 이후 살려내지 못하고 있는 천재성을 모나코에서 보여주지 않는한 빅리그 진출은 요원한 꿈이라는 것을. 서정원(RC스트라스부르·1998.1∼1999.2·16경기 4골) 이상윤(FC 로리앙·1999.2∼1999.7·4경기 출전) 안정환(FC 메스·2005.7∼2006.2·19경기 2골) 등 프랑스에서 뛰었던 선배들의 발자취를 돌이켜보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그럼에도 큰 뜻을 품은 그의 길을 어찌 막을소냐. 분명 그에게는 변화가 필요했고,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모나코는 그에게 최선의 선택이다. 박지성이 23살 때 아인트호벤에서 첫 도전에 나섰듯, 박주영 역시 23살에 유럽 무대에 도전한다. 박주영에게 박지성은 가장 큰 멘토이자 교과서다. 그리고 모나코를 거친 수많은 스타들 역시 박주영이 잃었던 골감각을 되살리는데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3 모나코를 거쳐간 대선배들
알다시피 AS 모나코는 빅리그로 향하는 관문이다. 빅리그로 배출한 스타들을 따져봐도 아인트호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박주영이 참고로 할 만한 5명의 선배들을 꼽아보자. 우선 올시즌 바이에른 뮌헨의 지휘봉을 잡은 위르겐 클린스만을 들 수 있다. 그는 2시즌동안 모나코에서 뛰며 65경기에서 29골을 뽑았다. 94미국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로 2골을 뽑아낼 당시 그의 소속팀은 모나코였다. 1994년 여름 그는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했고 이후 바이에른 뮌헨을 거치며 선수 생활의 황금기를 보냈다.
1990년 모나코 스카우터였던 아놀드 카탈라노에 의해 발탁된 티에리 앙리는 모나코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축구 기본기를 쌓았다. 1994년 1군에 데뷔한 그는 아르센 벵거와의 뜻깊은 인연을 맺으며 프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포지션은 측면 날개.
벵거 감독은 끊임없이 그가 최상의 활약을 보여줄 포지션을 연구했다고 알려져있다. 98프랑스월드컵 우승 당시 그의 소속팀은 모나코였다. 월드컵을 마친 후 그는 유벤투스로 이적한다. 유벤투스에서는 큰 뜻을 펴지 못했지만 아스널에게 다시 벵거 감독을 만나며 톱클래스급 스트라이커로 재탄생한다. 그는 현재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다.
앙리와 함께 모나코 유소년 아카데미를 거쳐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모나코에서 뛰었던 다비 트레제게는 114경기에서 60골을 뽑아내며 특급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2000년 여름 유벤투스로 이적한 그는 지금까지 비안코네리(Bianconeri·흑백이라는 뜻으로 유벤투스 유니폼 색깔을 빗댄 별명)를 지키고 있다. 그는 승부조작 파문으로 2부리그로 강등됐을 때도 유벤투스를 지킨 의리를 보여줬다.
지난 시즌 첼시와의 UEFA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뼈아픈 자책골로 결국 리버풀을 떠나야했던 노르웨이 출신의 아르네 리세. 2001년부터 지난 5월까지 리버풀을 지켰던 그 역시 모나코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모나코에서 맹활약한 그는 리즈 유나이티드, 풀럼의 러브콜을 모두 마다하고 리버풀로 이적했다. 프랑스 출신의 루도비치 지울리를 빼놓을 수 없다. 바르셀로나에서 황금기를 보낼 수 있었던데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뛰었던 모나코에서 쌓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독일월드컵 당시 한국의 맞상대였던 엠마누엘 아데바요르를 들 수 있다. 2006년 초 아스널로 이적하기 전까지 그는 모나코를 대표하는 특급 킬러였다. 100경기에서 20골을 뽑아냈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뛰는 등 소중한 경험을 쌓은 후 아스널로 향했다.
그는 앙리가 떠난 아스널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들 5명 외에도 모나코를 거쳐 맨유로 온 파비앙 바르테즈, 파트리스 에브라와 엠마누엘 프티, 릴리앙 튀랑, 윌리 사뇰 등 프랑스 대표선수들 다수가 모나코를 발판으로 삼았다.
모나코 유니폼을 입은 박주영에게 많은 이들이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물론 최근 몇년간 K리그와 대표팀에서 보여준 기량이라면 솔직히 우려가 앞서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변화의 흐름에서 반전을 자신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확정된게 없는 맨땅에서 다시 출발하는 그가 훗날 모나코가 배출한 스타 목록에 이름을 남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첫댓글 잘해라 ㅠㅠ 별로안좋아해도 왜 이렇게 외국에 나가면 응원하게 되는데 역시한국인이야 ㅠㅠ
222222222
아마 측면공격수로 나설것 같은데 열심히 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군대군대군대군대
리세는 은근히 의외인듯..
올림픽은 사실상 어렵고, 다음 아시안게임은 열심히 해서 군대면제를 받아야겠죠
2006년 초 아스널로 이적하기 전까지 그는 모나코를 대표하는 특급 킬러였다. 100경기에서 20골을 뽑아냈고 이거 뭥미;
모리엔테스하고 사비올라도 모나코
왠지 다른듯...;;
모나코 오기전부터 유명했었던 선수들이라....그렇게 생각하면 비에리, 디 바이오, 콜러등도...
모리엔테스는 2005년 임대로 뛴거 전에도 모나코에서 뛰었나요?
한시즌동안 모나코로 임대와서 우왕ㅋ굳ㅋ
루드 굴리트가 psv출신 인가요?? 페예노르트 출신 아닌가?;;
페예노르트 출신이요~~
그나저나 조지 웨아가 없는게 충격 적이네요;;; 튀랑도 없구.....
우리의 국민브라도 모나코출신
잘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