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넝쿨 손
봄이 중반을 넘어서고, 신록이 아름답게 솟아납니다. 꽃들을 보면서 그 꽃 잔치에 정신이 팔려서 어느덧 잎이 연하고 짙게 번진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봄을 훌쩍 보내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자주 산책하면서 그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기고 삽니다. 제일 무섭게 그 극성을 부리고 일어서는 것은 칡넝쿨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칡넝쿨을 헤집고 칡뿌리를 캐려고 덤볐는데 이제는 넝쿨이 번지는 것을 보고 차마 그 뿌리를 뽑겠다고 대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칡넝쿨을 보면 그 뿌리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잎과 넝쿨을 키웁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버팀목이 되거나 지지목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휘감고 올라갑니다. 그 무서운 기세는 나무든, 숲이든, 풀이든 상관하지 않고 죽기 살기로 덤벼듭니다.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식물은 넝쿨을 드리우는 것은 모두 그런 것 같습니다. 식물은 한 곳에서 평생을 삽니다. 등산을 할 때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적은 흙에서 낙엽이 썩은 한 줌의 거름에서 영양분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소나무를 봅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일생을 준비하고 처절하게 싸움하고, 잎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한 줄기의 햇빛을 차지하려고 고개를 내밀고, 한모금의 물을 얻으려고 뿌리를 가늘게 만들고, 벌레들을 막으려고 처절한 내면의 싸움을 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올라온 소나무에 기대서 넝쿨을 드리우며 넝쿨손을 감고 가지를 타고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칡이나 머루나 다래나 담장이넝쿨이나 다른 것들을 보면서 줄기찬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식물의 굴성은 무서운 생활력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때 각각 알맞은 생명력을 심어 주셨고, 생활력을 갖추어 주셨습니다. 식물이 자라면서 나타나는 움직임(생장운동)에는 굴성과 감성이 있다고 합니다. 굴성(屈性)은 여러 가지 자극에 의해 특정한 방향으로 식물이 휘어지는 운동이고, 감성(感性)은 자극의 방향에는 관계없이 자극의 세기에 의해 나타나는 운동을 말한다고 합니다.그런데 굴성에는 양성과 음성이 있고, 자극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굽으면) 양성이라 하고 주어지는 자극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면 음성이라 한다고 합니다. 굴성은 자극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빛이 자극이 되어서 일어나는 굴성을 굴광성(屈光性)이라 한답니다. 줄기에서는 이 굴광성이 양성으로 나타나고 뿌리에서는 음성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또한 중력이 자극이 되어서 나타날 때 굴지성(屈地性)이라고 하는데 이때 줄기는 음성으로, 뿌리는 양성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운동에는 모두 식물호르몬의 일종인 옥신이 작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굴광성은 잎과 줄기에 나타나서 위로 뻗어 나가기 때문에 향광성(向光性) 또는 ‘빛굽성’이라고 하기도 하고, 뿌리는 땅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향지성(向地性) 또는 ‘땅굽성’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넝쿨 식물은 그런 성질에 감성이 작용하여 넝쿨손이 발달하고 잡히는 것이 있으면 죽기 살기로 붙잡아서 줄을 잡거나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도 넝쿨손이 발달한 나무입니다. 하늘로 향하는 줄기와 잎은 빛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영양분을 끌어 모으고 물을 받아 올리기 위해서 뿌리는 땅으로 깊고 단단하게 내려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줄기에서 만나야 합니다. 서로 만나서 떨어지지 않도록 잘 붙어 있어야 열매도 맺고 잎도 무성하며, 숨쉬며, 양분을 합성하여 뿌리도, 줄기도 열매도 키울 수 있습니다. 서로 힘을 합하고 서로 가장 좋은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각각의 역할과 임무에 의해서 만나서 합쳐져야 하고, 서로 보완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협력관계는 언제나 식물에게서 생명력과 생활력으로 중요시되는 것들입니다
사람에게도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어른들은 언제나 말씀하셨고, 성경에서도 모든 곳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책이나 좋은 생각은 그렇게 만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붙어 있기 위해서 넝쿨손과 같이 단단하게 매달려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떨어지지 않는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 접착제로 오신 주님은 우리가 손을 뻗어 온몸에 접착제를 바르고 넝쿨손을 힘차게 뻗어 당기며 휘감고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냥 근처에만 가도 주님의 접착제는 아주 강력한 흡착력을 가져 굴성이나 감성을 느끼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참 포도나무의 주인이신 하느님과 그 아들이신 포도나무인 예수님과 그 안에서 말씀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교만을 버리고 포도 농사의 신비를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봅니다. 그러나 요즘 나는 그 넝쿨손이 영 굳어져 버렸습니다. 잡으려고 하지도 않고, 휘감으려고 하지도 않고, 빛을 향해서 굽으려고 하지도 않고, 버팀목이니 지지목을 찾지도 않고 굴성도 약해지고, 감성도 약해져서 자극에 아주 둔감해 졌답니다. 그래서 신앙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도 못하고, 어떤 설교의 말씀을 들어도 소귀에 경 읽기 형국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 이런 나의 나약한 의지를 바로 잡아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