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 고승덕은 교육감 자격이 없다’고 폭로한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딸 고희경씨(27·미국명 캔디 고)의 폭탄선언 여파가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고승덕 후보는 1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장인이었던 고(故)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일가를 비난하며, 이를 박태준 일가(一家)와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정치 야합’이라고 반격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딸 고희경씨가 평소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고 자신을 비난한데 대해 최근 고씨와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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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박태준 포스코 전 명예회장(왼쪽)과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
고승덕 후보는 1984년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할 때 박태준 전 회장의 둘째 딸인 박유아씨와 결혼했으나 2002년 말 합의 이혼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동양미술학과를 졸업한 박씨는 고승덕 후보와 미국에서 유학할 때 미술사와 드로잉을 공부했으며, 고 후보와 사이에 1남1녀 자녀를 뒀다.
고 후보의 이혼은 장인인 박태준 전 회장과의 불화 때문이라는 설(說)이 크다. 박태준 전 회장 일가와 고승덕 후보 사이의 악연은 고 후보가 정계진출을 처음 시도했던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후보는 당시 지상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고시 3관왕, 미국 유학파 출신 변호사’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정치권은 ‘젊은 피’인 고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정치권의 권유로 1998년 고 후보는 인천서구 보궐선거에 당시 여당인 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하려 했으나 처가의 반대에 부딪혔다. 부인 박유아씨는 “정치보다 더 좋은 일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데 왜 정치를 하려 하느냐”며 한사코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인인 박 전 회장도 포기를 권유했다. 당시 자민련(자유민주연합) 총재이던 박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사위와 맞붙게 될) 한나라당 조영장 후보는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이다. 서로의 정치적 진로와 무관하게 나도 그를 돕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해 사위에게 출마포기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고 후보는 이듬해인 1999년 4월 서울 송파갑(甲) 보궐선거에 다시 국민회의 후보 공천을 신청했다. 당시 국민회의는 자민련과 공동 여당이었고 고 후보의 장인 박태준 전 회장은 자민련 총재였다. 하지만 고 후보는 출마를 놓고 장인과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다. 당시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박태준 총재는 신문을 보고서야 사위의 송파갑 출마의사를 알았다”고 했다.
연합공천협상을 앞뒀던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당황했다. 국민회의는 고 후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 후보는 이번엔 국민회의를 떠나 야당인 한나라당으로 갔다. 고 후보의 선택은 여권의 연합공천구도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1998년 한나라당을 떠나 자민련 박태준 총재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조영장 전 의원은 이에 대해 당시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인륜을 저버린 행위”라고 지적했다.
박 총재는 사위를 받아준 한나라당 지도부에 강력히 항의했다. 당시 언론은 이 사태를 ‘장인과 사위의 싸움’으로 표현했다. 박 총재가 사위 때문에 망신살이 뻗쳤다고 했다. 일부 언론은 고 후보가 당선을 위해 정치적 노선과 소신을 자유자재로 바꾼다며 ‘젊은 피’가 아니라 ‘오염된 피’라고 조롱했다.
고 후보 부부의 불화설도 불거졌다. 부인 박유아씨는 1998년 자녀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두 사람은 별거에 들어갔으며, 뒤이어 고 후보와 유명 연예인과의 스캔들 소문도 터져나왔다.
박태준 총재는 고 후보와 그의 부모(사돈)이 참석한 가운데 가족회의를 열고 출마사퇴를 권유했다. 국민회의 측은 고 후보에 대해 한나라당에 공천을 받기 전에 국민회의에 공천을 구걸하고 다녔다고 공세를 펼쳤다. 고 후보는 4월 29일 결국 자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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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덕 변호사가 1999년 4월 29일 자민련 당사에서 서울 송파갑 재선거의 한나라당 후보 사퇴를 밝힌 뒤 장인인 박태준 자민련 총재의 격려를 받고 있다.
박 총재는 가족회의에서 고 후보에게 “정치를 하든지 이혼을 하든지 택일하라”고 최후통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후보의 어머니가 링거를 맞고 사흘간 몸져 눕기도 했다. 당시 언론은 이 사태를 놓고 ‘젊은 철새의 한판 코미디’라고 제목을 뽑고 조롱했다.
일각에는 고 후보와 박 전 회장과의 관계가 문민정부 시절부터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장인인 박 전 회장이 김영삼 대통령 시절 곤경에 처했을 때 고 후보가 장인을 위해 아무런 배려를 하지 않은 것이 빌미가 됐다는 것이다. 박 전 회장은 1992년 겨울 당시 대선후보였던 김영삼이 도움을 요청해왔을 때 이를 거절했다가 세무조사를 당하고 외국을 떠돌아 다녀야 했다.
고 후보와 박 씨는 2002년 말 이혼했다. 이혼한 시기가 구설에 올랐다. 2002년 말은 김대중 정부 말기이자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1998년 3월 박 명예회장으로부터 낙점 받아 취임했던 유상부 포스코 회장이 2002년 말 퇴임하면서 소위 ‘박태준 시대’ 가 막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박태준 일가의 힘이 빠지자 고 후보가 이혼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고승덕 후보는 2004년 10살 연하의 기자와 재혼했다. 경향신문 기자였던 이무경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술사학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이씨는 1991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편집부와 문화부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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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아람 기자 자신의 신혼 사진을 모티프로 그린 'Mr. and Mrs. Koh' 앞에 선 박유아 자신의 신혼 때 사진을 캔버스에 옮긴 그림‘고씨 부부’와 함께한 박유아.
박유아씨는 현재까지 활발한 미술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소격동 옵시스아트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부부’를 테마로 한 25점의 작품 가운데 전 남편(고승덕 후보)과 함께 찍은 사진을 차용한 ‘Mr.& Mrs. Koh’가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부부 얼굴을 흰색으로 처리, 그 의도에 궁금증을 자아냈다.
고 후보는 딸 고희경씨의 외삼촌이자 고 박태준 전 회장의 아들인 박성빈씨와도 악연으로 얽혔다. 박성빈씨는 지난 31일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글을 올린) 조카의 뜻과 내 가족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 고승덕과 싸워줘서 고맙다. 문 후보가 잘 싸워달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고 후보는 “박성빈이 문용린 후보에게 전화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박성빈과 문용린 후보는 2012년 2월부터 1년간 포스코 청암재단 이사로 함께 재직했다. 저는 딸의 글이 고 박태준 회장의 아들과 문용린 후보의 야합에 기인한 것이 아닌지 정황을 의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희경씨의 이모인 고 박태준 전 회장의 첫째딸도 희경씨의 글에 “용감한 우리 희경, 사랑해”라는 댓글을 달았다. 조카를 응원함으로써 ‘고 후보가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조카의 글에 동조한 것이다. 박태준 전 회장 일가와 고 후보와의 대결구도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한편 문용린 후보와 박태준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같은 시기에 교육부 장관과 총리로 재임했고, 문 후보는 박 전 회장 사망 시 장례위원을 맡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태준 전 회장과 문용린 장관 관계를 생각하면 고승덕 전 의원이 출마하는 것이 좀 그렇다”면서 “박 회장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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