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미술의 개척자, 미즈시마 도쿠조(美津島徳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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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물에 대한 평가
미즈시마 도쿠조(美津島徳藏)는 1926년부터 1997년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근현대 격동기에 걸쳐 활약한 화상(畫商)이자 후지카와 화랑(畫廊)의 사장, 전국양화상연맹 명예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1909년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태어났으며 와세다대학교 상학부를 졸업하였다. 1936년부터 형 미즈시마 슌이치가 주재하던 갤러리 미교샤에서 조수로 근무하다가 1946년 독립하여 오사카 요도야바시에 후지카와 화랑을 창업하였고 이후 도쿄로도 진출하였다. 우시지마 노리유키, 야마구치 가오루를 비롯하여 자킨, 무어, 워키, 부르델 등 프랑스 근대 미술을 일본에 소개하며 양화상의 제일인자로서 업계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오사카부립 상업학교를 졸업하며 상업과 경영의 기초를 수학하였다. 졸업 후 1930년대 초반에는 금속 공구 등을 취급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1936년에 그의 형이 설립한 화랑인 미교샤에 조수로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품 관련 분야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는 10여 년간 화랑에 근무하며 양화의 감상력을 길렀고 1947년에 독립하여 후지카와 화랑을 설립하였다. 그는 전후 오사카의 미즈노 빌딩 2층에서 화랑을 재개하였으며, 이후 사카이즈지에 독자적인 후지카와 빌딩을 건축하여 이를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전후에는 외화를 벌기 위해 끊임없이 명작을 수출하는 한편, 각종 회화 도구를 수입하여 큰 재산을 모았다. 1949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일본양화상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업계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양화친화회를 설립하여 프랑스 화가들과 교류하며 일본에서 수차례 양화전을 개최해 인정을 받았으며 이후 프랑스 화단에서 확고한 지위를 확립하였다.
정부의 의뢰를 받아 해외 미술 시장에서 신뢰를 구축하며 국가의 외화 획득 실무를 담당하였는데, 첫 수출 작품이 미국에서 위작 의심을 받았을 때 일본 화단 연맹의 이름을 걸고 강력히 항의하여 진품임을 증명해 냈으며, 1955년 뉴욕의 윌덴스타인 화랑에 고갱의 명작을 판매할 때는 자신의 신용을 담보로 한 대담한 편지를 보내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6년에 남수포장을 받았으며, 1989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 최고위인 코망되르를, 일본 정부로부터는 훈삼등서보장을 수여받았다. 1990년에는 일불 예술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공로를 재차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문화 훈장을 받았다. 말년까지 오사카시의 근대미술관 건립을 위한 야마모토 하츠지로 컬렉션 기증 중재 및 거액의 기부 등 문화 인프라 조성에 헌신하다가 1997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2 명조 분석
이 명조는 신금(辛金) 일간이 진월(辰月)에 출생하여 본기인 무토(戊土)가 투간하였으니 인수격(印綬格)을 이룬다. 그런데 신강하고 인수가 왕하면 너무 태과(太過)한 것이 두려우므로 일간의 기운을 설기하는 식상(食傷)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사주는 인수격에 식상을 용(用)하는 인수용식상격(印綬用食傷格)이다. 다만 진유합금(辰酉合金)으로 진토(辰土)가 금(金)을 쫓아가므로 인수가 무력해질 수 있어 인수를 돕는 운 또한 희신(喜神)이 된다. 따라서 상신(相神)인 임수(壬水) 상관을 돕는 금수(金水)가 희신이며 인수를 극하는 목(木)은 기신이다.
인수용식상격(印綬用食傷格)은 지식과 학문을 상징하는 인수와 표현력 및 창의성을 상징하는 식상이 공존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인수의 신중함과 식상의 창의성이 조화를 이루어 무모한 도전보다는 충분한 준비와 신용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한다. 이러한 격국을 갖춘 인물은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데, 우선 교육 및 연구 분야와 예술 및 창작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이는 인수를 통해 내면에 쌓은 깊은 식견을 식상의 재능을 통해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작가나 예체능, 화가, 평론가로서 예술적 성취를 이루는 기반이 된다. 또한 기획 및 전략 분야에서도 큰 역량을 보인다. 지적인 분석력과 현실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 기업의 기획자나 컨설턴트, 전략가로서 적합한 면모를 드러낸다. 더불어 전문 경영 및 자문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데, 미즈시마 도쿠조의 사례처럼 고유한 예술적 안목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를 유통하고 관리하며 업계를 선도하는 화상이나 전문 경영인의 길을 걷기도 한다.
초년 목운(木運)을 지나 북방 수운(水運)과 서방 금운(金運)으로 흐르니 상당한 발전이 기대되는 구조이다. 을축(乙丑)대운에는 을목(乙木)이 인수를 극하여 급진적인 발전 대신 일반인처럼 조수(助手)로 직무를 시작하며 내실(內實)을 다졌다. 갑자(甲子)대운에는 갑목(甲木)이 인수를 극하는 듯하나 년간의 기토(己土)와 갑기합토(甲己合土)하여 오히려 인수를 강하게 하였으니, 38세에 화랑 사장으로서 문서 및 미술품을 관리하는 업을 수행하였다. 41세(1949년)에는 일본양화상협동조합을 공동 설립하였고 자수(子水)대운 중 45세(1953년)에는 도고 무라노가 설계한 후지카와 빌딩을 건축하고 난바역 앞에 평화기념상을 기증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는데 이것들은 모두 계해(癸亥)대운에 이르러 큰 성취를 이른 것이다.
3 미즈시마 도쿠조(美津島徳藏) 연혁
1909년 (己酉) 1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출생하였다.
1935년 (乙亥) 27세: 와세다대학교 상학부를 졸업하였다.
1936년~1945년 (丙子~乙酉) 28세~37세: 형 미즈시마 슌이치가 대표인 갤러리 미교샤에서 후지카와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사업을 관리하였다.
1946년 (丙戌) 38세: 후지카와 화랑을 설립하였다.
1949년 (己丑) 41세: 일본양화상협동조합을 공동 설립하였다.
1953년 (癸巳) 45세: 도고 무라노가 설계한 후지카와 빌딩이 건설되었으며, 난바역 앞에 평화기념상을 기증하였다.
1970년 (庚戌) 62세: 일본양화상협동조합 회장에 취임하였다.
1976년 (丙辰) 68세: 미술계 공로를 인정받아 남수포장을 수여받았다.
1979년 (己未) 71세: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오피시에장을 수여받았다.
1984년 (甲子) 76세: 야마모토 하츠지로의 소장품인 야마하츠 컬렉션을 오사카시에 기증하는 중개를 주도하여 현대미술관 설립을 이끌어냈다.
1989년 (己巳) 81세: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최고위인 코망되르장과 일본 정부로부터 훈삼등서보장을 수여받았다. 오사카시 현대미술관 설립을 위해 1억 엔을 기부하였고, 교토 일불 문화회관 건설을 위한 기금을 기부하였다.
1992년 (壬申) 84세: 미도스지 미화운동을 기념하여 오사카 매장에서 현대 조각 대표 작품전을 개최하였다.
1995년 (乙亥) 87세: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현대미술관 복원 기금 및 특별 구호 기금을 기부하였다.
1997년 (丁丑) 89세: 7월 17일에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