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의 기원
조은길
귀뚜라미가 운다
요란한 울음소리로 여름을 달구던
여름 벌레 자리에서 귀뚜라미가 운다
여름 내내 여름 벌레 울음소리만 들었는데
어느덧 그 소리 까마득히 사라지고
가을 귀뚜라미 울음소리 듣는다
그 소리 가만히 눈을 감고 들으면
청춘에 소박맞고 돌아온 반벙어리 이모 방에서 새어나오던 손틀바느질
소리같고 장터 국수집 끼니 놓친 장꾼들 목구멍으로 국수 빨려 들어가는 소
리같고 석삼년을 누운 밥을 받아먹던 큰할아버지 마지막 기침소리 같고
나는 울음이 싫어
허공에 대고 쓰는 낙서 같은 저 울음이 싫어
이불을 푹 뒤집어써보다가 귀를 틀어막아보다가
귀뚜라미가 노래한다 노래한다
애써 말을 바꾸어본다
그러나 내 슬픔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귀뚜라미는 울고 있다
잠도 없이 울고 있다
나는 기어이 울음이 난다
누군가 긴히 울음을 보내는 자가 있어
귀뚜라미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는 것인가
어느 순간 저 울음마저 뚝 그쳐지고
우리는 울음조차 함께할 수 없게 되는 것인가
<서정시학> 2007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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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13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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