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제 2차 6자 회담이 큰 성과 없이 끝났다. 북한과 미국의 견해 차이가 몹시 크다는 점을 거듭 확인하면서 북한의 배짱이나 미국의 오기가 쉽게 꺾일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예상하게 된다. 북한은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고 비난하는 한편, 미국은 북한이 몰래 핵무기를 개발하며 협상에 유연성이 없다는 의혹과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의 긍정적인 부분도 몇 가지 보인다. 첫째,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를 만들자고 선언한 것은 북한이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없애거나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과 다름없다. 둘째, ‘평화적 해결'과 ‘평화적 공존'을 다짐했다니 미국이 적어도 당분간은 북한에 대한 폭격이나 침략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다. 셋째, 6월경에 제 3차 6자 회담을 열기로 하고 그 준비를 위한 실무자 모임을 자주 갖기로 한 것은 북한과 미국이 아무리 의견 차이가 커도 대화를 지속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왜 우랴늄 핵무기인가-
한편, 이번 회담에서 큰 쟁점이 되었고 앞으로도 적지 않은 말썽이 될 문제는 북한이 가지고 있을지 모를 우라늄 핵무기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다. 요즘 언론에 ‘고농축 우라늄' 이란 말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으니 먼저 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 핵무기는 만드는 재료에 따라 우라늄폭탄과 플루토늄폭탄으로 나뉘고, 폭발 방법에 따라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자폭탄과 핵융합을 이용하는 수소폭탄으로 나뉜다. 우라늄은 플루토늄보다 독성이 적고 핵무기로 만들기 쉬우며 제작 과정에서 감추기도 쉽다는데, 천연 돌덩어리 우라늄은 U-235라는 핵을 분열시키는 물질을 1% 정도만 가지고 있어서 이 물질을 적어도 90% 이상 지닐 수 있도록 우라늄을 잔뜩 쥐어짜놓은 게 ‘고농축 우라늄 (HEU: Highly Enriched Uranium)'이다.
참고로 미국은 1945년까지 1개의 우라늄폭탄과 2개의 플루토늄폭탄을 만들었는데,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게 우라늄폭탄이었고 8월 9일 나가사키에 터뜨린 게 플루토늄폭탄이었다. 플루토늄 폭탄은 디자인이 복잡해서 시험용으로 하나 더 만들어졌으니, 이를 통해서도 우라늄폭탄이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우라늄 핵무기 프로그램에 관해 미국은 북한에게 파키스탄과의 연계 의혹을 제기하며 ‘자수'를 강요하는 식이요, 북한은 미국에게 ‘추악한 음모'를 꾸미지 마라며 증거가 있으면 내놓으라는 투다. 우라늄 핵무기 프로그램은 ‘제 2의 금창리'가 될지도 모르고 북한이 앞으로 쓸 ‘비장의 마지막 카드'일지도 모른다. 1998년 미국이 의혹을 제기했던 금창리 지하 시설이 결국 텅빈 구덩이로 판명되었듯이 북한의 우라늄 핵무기 프로그램이 실체가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북한의 새로운 무기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에 우라늄 핵무기 프로그램이 있든 없든, 있다면 얼마나 진전이 됐든, 또는 플루토늄 핵무기가 얼마나 있든,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진지하게 나설 준비도 되어있지 않고 의지도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북한에게 리비아처럼 먼저 핵무기를 포기하면 선의를 베풀 수 있다며 회유도 하고 압력도 넣어보지만, 리비아와 북한이 크게 다르다는 것은 미국이 더 잘 안다. 리비아는 군사력이 몹시 약해서 미국의 협박에 쉽게 굴복했을지라도, 북한은 대량 살상 무기를 포함하여 상당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서 미국의 협박에 버틸 수 있다. 이라크가 침략 당하는 것을 보고 리비아는 무장 해제를 선택했지만 북한은 무장 강화를 선택하는 셈이다. 이른바 ‘이라크 효과'가 리비아와 북한에서 정반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이라크는 핵무기가 없어서 미국의 침략을 당했지만, 북한은 핵무기가 있는 것 같아서 침략을 당하지 않고 있는데, 북한더러 무조건 먼저 핵무기를 포기하게 하려는 ‘리비아식 해결 방안'이란 그야말로 턱도 없는 발상이 아닐까.
그렇다고 북한의 핵무기를 무시하고 내버려두자니 미국이 공들여 지켜온 핵확산 금지 조약 (NPT)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고, 그러면 핵무기를 통한 미국의 세계 지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어려움에 처한 북한에 경제 봉쇄를 하여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는 게 가장 바람직할 텐데, 중국이 대북 지원을 멈추지 않은 한 북한 붕괴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북한에 대한 폭격이나 침략을 하면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이 적지 않게 죽을 수 있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 침략 전쟁을 산뜻하게 처리했다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북한 침략을 고려해볼 수 있겠지만 특히 선거를 앞두고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
결국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핵문제를 속시원하게 풀기 어려워 보인다. 북한의 요구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미국이 자꾸 핵무기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해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게 되었으니, 서로 먼저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자는 것이다. 둘째, 핵 프로그램은 무기를 만들기 전에 전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니 대체 전력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배경-
미국이 이렇게 간단하고 합리적인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몇 해 전부터 여기저기서 여러 차례 주장해왔듯, 나는 바로 주한미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경제적 지원에 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일본이나 남한에 떠넘기면 되니까. 그러나 불가침 협정을 맺으면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의 역할을 바꾸거나 철수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주한미군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명목상으로는'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한 것이요, ‘실질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군들은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구실로 남한에 머무르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데, 북한과 미국이 서로 침략하지 말자는 약속을 맺으면 주한미군의 ‘명목상' 존재 이유가 없어져버려 ‘실질적'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문제를 풀기 위한 협상에 진지하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요 북한을 ‘깡패 국가'로 낙인찍어야 하는 배경이다.
이렇듯 북한 핵문제의 열쇠는 바로 주한미군에 있다. 미군들이 남한에서 떠날 수 있다면 미국은 북한과 불가침 협정이나 평화 조약을 맺는 데 머뭇거릴 필요가 없고,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없앨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휴전선 근처의 병력도 뒤로 물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핵문제를 궁극적으로 풀 수 있는 나라는 바로 남한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한 국민의 힘과 의지다. 미국이 먼저 원해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지는 않을 테니, 그들이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나서야 할 주체는 바로 남한의 시민 세력이란 말이다. 미국이 아무리 무력과 오기를 앞세우는 나라라 할지라도 남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미군들이 떠나기를 바란다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숨걸고 외세에 저항하며 독립을 추구했던 숭고한 3.1절에까지 서울의 한복판에 수만명이 모여 성조기를 흔들며 지속적인 사대종속을 외치는 한심하고 얼빠진 현실을 감안하면 꿈같은 얘기다. 우리가 진정 북한의 핵문제가 풀리기를 바라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이 더 활발해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자주 의식과 독립 정신을 어떻게 길러야 할 지부터 고민해야 되지 않겠는가.
* 이 글은 평통사에서 발행하는 ??평화누리 통일누리?? 2004년 3월호에 함께 실립니다.
5년만에 다시 들어가 본 북녘
5. 방북 첫째 날 (2003년 9월 30일)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만경대를 벗어나 근처에 있는 학생소년궁전으로 옮겼다. 5년전 방북했을 때 1주일 동안 황해도까지 여기저기 돌아보면서도 들르지 못했던 터라 찾아보고 싶은 곳이었다. 북녘이 널리 자랑하는 교육 훈련 시설로 어린이들을 왕으로 받든다는 뜻에서 ‘궁전'이란 이름을 붙였단다. 유엔 인권위원회나 미국 국무부 등에서 북녘의 전반적인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면서도 아동과 관련된 부문은 높이 평가하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아이들을 배려하는 북녘 당국의 정책은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튼 여기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친 뒤 과외 활동을 벌인다는 곳으로, 남쪽에서 나온 안내 책자에 의하면 7-15세 어린이 12,000명이 60여개 소조실에서 활동한다고 했는데, 이곳 안내에 따르면 5,000명이 120개 소조실에서 활동한단다.
먼저 컴퓨터 소조실에 들르니 20-30명의 학생들이 있다. 열심히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 아이도 있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친구도 있다. 한 학생에게 뭐하고 있느냐고 묻자 프로그램 만들고 있단다. 컴퓨터 CPU는 펜티엄급인 것 같은데 17인치쯤 되어보이는 화면엔 WINDOWS98도 보이고 WINDOWS2000도 보인다. 하드 웨어든 소프트 웨어든 여기서야 최신형이 쓰이겠지만 일반 학교들에는 ?386?도 제대로 보급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쪽에서는 쓰지도 않고 버리기조차 어려운 ?486?이나 ?386? 컴퓨터들이라도 북녘에 보내주면 좋으련만, 그조차 무슨 ‘전략 물자'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고 막고 있으니 기가 막히고 애가 터질 일이다.
다음으로 들어선 곳은 바둑 소조실. 10여명의 아이들이 바둑을 두고 있는데 절반이 여자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어려보이는 소녀는 앙증맞다고 할까. 나도 중학교 다닐 때부터 밤을 밝혀가며 바둑을 익힌 적이 있는 터라 호기심을 갖고 그 아이들이 두는 것을 지켜보니 초보 단계는 지난 듯하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8살이란다. 꼭 보듬어주고 앙 깨물어주고 싶다. 여행하면서 사진기를 지니지 않아 아쉬움을 느낄 때가 더러 있지만 저 아이가 바둑두는 모습을 사진기에 담지 못하는 것은 너무 아쉽다. 그러나 다음에 들른 손풍금 소조실에서 아이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삼아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아예 그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사진으로 남기려는 남쪽 방문단의 모습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예술 체조, 태권도, 배구, 농구, 국악, 수예 등의 교실을 거쳐 끝으로 서예 소조실에 들렀다. 아이들이 붓글씨 쓰기에 열중이다. 나도 저만할 땐 붓글씨나 펜글씨 솜씨가 좀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제는 글쓰는 게 벌어먹고 사는 일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어도, 컴퓨터 때문에 손으로 글씨 쓰는 일은 옛 추억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마침 가장 뒤에 앉은 학생이 ‘우리는 하나' 등 통일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어 지켜보니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어느새 지도 교사가 내 옆으로 와 자랑을 한다. 얼마 전 서예 대회에서 1등을 했는데 지난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때 찾아온 김대중 대통령에게 ‘조국 통일'이란 글씨를 써준 학생이라고. 광명고등중학교 6학년, 남쪽식으로 말하면 고3, 주준호란다. 이왕이면 나도 작품 하나 얻고 싶어 그 학생에게 슬쩍 물었다. 그렇게 연습한 것이라도 기념 삼아 한 장 얻어갈 수 있느냐고. 선생님의 검열을 받아야 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맞다. 가장 잘 쓴 것을 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가까이 지내는 한 화가 겸 미대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대개 나에게 습작 같은 거라도 하나 달라고 부탁하는데,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 그렇겠지만, 나는 누구한테든지 마음에 안드는 작품을 줄 수 없지요. 팔든 선물하든 가장 좋은 작품을 알려야 되지 않겠어요?”
다양한 소조실을 대충 둘러본 뒤 학생소년궁전 예술소조의 공연을 구경하기 위해 공연장에 모였다. 노래와 율동 등 여러 가지 공연이었는데 테이프를 통해 종종 보던 모습이라 새롭거나 특별한 감회는 갖지 못했지만 7살배기 김동현의 신들린 듯한 장구 공연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장구채를 잡은지 몇 년 되도록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나무라게 하기도 하고.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데 누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하는 말이 “와! 이 공연 하나 본 것만으로도 방북 경비 가치가 있네.” 물론 과장이라도 지나쳤지만, 얼마나 감동을 받았으면 관람료를 거의 300만원으로까지 쳐줄까. 그런데 밖으로 나오면서 또 하나 북녘의 변화된 모습을 본다. 학생소년궁전 출구에서 남쪽 방문객들을 상대로 공연 테이프를 파는 것이다. 여기서도 외화 벌이를 한다고 할까. 금방 본 공연 내용이 다 담겨 있다는데 50달러로 꽤 비싼 편이지만 사는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그래, 그렇게라도 돈을 벌고 이런 식으로라도 보태줘야지.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어느 정도 ‘붐빈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만큼 거리에 사람들이 넘친다. 아무리 ‘남쪽의 무슨 읍내보다 사람들이 적어 보이는 평양'이라 할지라도 퇴근 무렵 아닌가. 까만 색안경을 끼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는 게 인상적이다. 분명히 지난번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두 대의 버스를 이어 붙여 철길 없이 공중의 전기줄을 따라 움직이도록 만든 무궤도 전차 안에도 사람들이 가득차 있다. 큰 건물엔 무슨 구호가 걸려 있기 마련인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가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온다. 그가 떠난지 벌써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가 통치한다고 할까. 하기야 북녘은 그의 나라고 북녘 사람들은 그의 민족 아닌가. 그는 언제 신의 위치에서 인간의 자리로 돌아오게 될까?
-기념품 가게의 구렁이술-
호텔 식당에서 북녘 초청자들이 베푸는 환영 만찬이 열렸다. 남북 양쪽의 높은 사람들이 돌아가며 인사말을 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북녘의 무슨 위원장들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만나본 사람이 있고, 남쪽의 무슨 대표들 가운데는 몹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지만, 환영사든 답사든 음식을 앞에 놓고 듣는 것은 질색이다. 나도 음식을 차려놓은 자리에서 강연을 부탁 받은 적이 한 두 번 아니지만, 밥이든 술이든 먹는 것을 앞에 두고는 가장 짧게 하는 연설이 가장 멋있는 연설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호텔 식당의 접대원들은 모두 동원된 모양이다. 저마다 한복으로 곱게 단장하고 미소를 머금은 채 식탁을 돌며 시중을 든다. 부탁을 하지 않았는데도 “한 잔 드시라요” 하며 술을 따라주니 30도짜리 찹쌀술이 꿀물처럼 달콤하게 넘어간다.
식당을 나와 기념품 가게에 들어서니 그야말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다행히 낮에 봐두었던 황구렁이술과 인삼뱀술이 많이 남아있다. 값이 5유로 짜리도 있고 10유로가 넘어가는 것도 있는데, 1유로는 1.2달러로 북녘돈으로 150원쯤 되니, 남쪽 돈으로 10,000원 안팎이면 괜찮은 술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북녘에서는 2002년 12월부터 유통 및 결제 수단으로 달러 대신 유로를 쓰겠다고 발표하며 가격 표시를 모두 유로로 바꾼 모양인데 달러도 받고 있었다. 아니 달러를 더 널리 쓰고 있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유로를 내더라도 거스름돈은 달러로 받을 때가 많았으니까. 아무리 미국 제국주의를 욕해도 말이든 돈이든 미국 것에 기대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아닌가.
저 구렁이술을 꼭 가져가고 싶은 데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난 “집에 쌀 떨어질 날은 있어도 술 떨어질 날은 없다”는 말을 즐겨 써왔는데 5년전 평양에 왔을 때는 북녘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백두산 들쭉술과 룡성 맥주를 거의 매일 들이켰다. 그러던 어느 날 고려호텔 기념품 가게에서 황구렁이술을 보았는데 은근히 호기심이 생겨 값을 알아보니 좀 부담스러운 액수였다. 더구나 그 때는 돈도 거의 챙겨가지 못했는데. 자기도 어찌나 술을 좋아했는지 말술을 마시다 병이 나는 바람에 술을 끊었다는 안내원이 날 부추겼다. “아, 교수 선생! 저 구렁이술 한 잔만 들어보시라요. 다음날 아침에 가운데가 기냥 이렇게 될거야요”하며 왼손바닥을 오른쪽 팔꿈치에 대고 팔뚝을 치켜세웠다. 노골적으로 말해 정력제로 끝내준다는 말 아닌가. 허풍엔 허풍으로 대꾸하는 법. “최선생, 내 정력은 걱정마시라요. 내 집사람이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몸에 좋다는 보약은 뭐든지 다 먹어도 정력제는 절대 먹지 마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 때 결국 구렁이술은 못사오고 병을 흔들면 금가루가 동동 뜨는 금술을 선물로 받아왔다. 그런데 남쪽에 돌아와 어느 술자리에서 동료 교수들에게 이 얘기를 꺼냈더니 한 교수가 반색을 하며 내 팔을 붙잡고 하는 말: “이 교수님, 언제 또 평양 가시면 그 술 한 병만 꼭 사다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그 때 생각을 떠올리며 황구렁이술과 인삼뱀술을 한 병씩 샀다. 값이 별로 부담되지 않으니 불로술이나 장뢰산삼술 등 몇 가지 귀한 술도 한두 병씩 사가고 싶은데 술과 담배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반입 제한 품목 아닌가. 하기야 이제는 백두산 들쭉술, 개성고려인삼술, 강계산머루술, 평양소주 등 웬만한 술은 남쪽에 수입되고 있어서 좀 비싸기는 해도 가끔 주문해 마시기는 한다. 그런데 이 구렁이술에 얽힌 얘기를 함께 간 사람들에게 전해줬더니 남자들이든 여자들이든 한 두병씩 사는 것 같았다. 북녘 술 판촉사원 노릇을 단단히 한 셈이다. 참고로 남쪽에 돌아온 뒤 이 술들은 얼마든지 값을 쳐주겠다던 동료 교수에게 바가지씌워 넘기지 않고 ?남이랑북이랑? 운영위원들과 조교들에게 한잔씩 돌렸음을 밝힌다.
술 얘기를 꺼낸 김에 북녘의 ‘명주'에 관한 얘기 한 토막 덧붙인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따르면, 조선술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평양의 감홍로 (甘紅露)로 소주에 단맛이 나는 재료를 넣고 붉은 곡식 (紅穀)으로 불그레한 빛을 낸 술이요, 그 다음으로 이름난 술은 전주의 이강고 (梨薑膏)로 뱃물과 생강즙 그리고 꿀을 섞어 빚은 소주란다. 이 두 가지 술은 아직도 평양과 전주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요즘 감홍로주는 개성 인삼 원액에 신덕 샘물 등 깨끗한 물이 섞여 빚어진다고 하니 옛 이름은 그대로되 만드는 방법과 재료는 바뀐 셈이랄까. 그런데 전주의 이강주는 좀 비싸긴 해도 큰 가게에 가면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지만, 평양의 감홍로주는 김정일 위원장과 최고 간부들에게만 공급된다고 하니 내가 맛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개성인삼술과 산삼술을 마셔본 것으로 족해야지.
한편 양각도호텔에는 기념품 가게가 서너 군데 있는데 어디나 혼잡스러웠다. 300명이나 되는 방북단 일행이 거의 한꺼번에 몰리는 탓이 컸지만 이곳 가게의 운영 방식이 서투른 데도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물건을 사려면 가게 진열대에서 먼저 구경을 하고, 가게 입구에 설치된 창구에 가서 돈을 내고 전표를 끊은 다음, 그 전표를 진열대 종업원에게 내면 물건을 건네 받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가게마다 종업원들이 너덧명씩 있지만 저마다 역할이 달라 넘치는 손님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진땀을 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에 돌아가 TV를 켜니 중국 방송이 많이 나온다. 남한의 연속극인데 중국어로 방영되는 것도 있다. 벽에 걸린 달력엔 영화 배우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박혀있다. 한 장씩 넘겨보니 모두 영화 배우들의 모습이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북녘에서도 배우들은 큰 인기를 누리는 모양이다. 잘생긴 모습들을 가까이 들여다볼 겸 달력을 아예 떼어내 첫장으로 돌리니 표지엔 아까 시내 건물들에서 많이 보았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와 함께 “새해를 축하합니다”는 인사말이 박혀 있다. 남쪽에서는 대개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건네는데 북녘에선 흔히 새해를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남쪽에서는 벽걸이용 큰 달력이라면 종이 앞면에 두 달씩 인쇄하고 뒷면은 쓰지 않는 게 보통인데, 이 달력은 종이 앞뒷면에 각각 한 달씩 인쇄되어 있는 것도 특이하다. 표지를 빼고 6장씩 쓰는 것은 같은데, 남쪽 달력은 뒷면이 하얗게 남아 있어 무슨 포장지로 쓸 수 있을테니 좋고, 북녘 달력은 한 면에 한 달씩 인쇄되어 숫자가 큼지막하고 여백이 많아 생일을 비롯한 무슨 기념일을 넉넉하게 적어 놓을 수 있을테니 좋다고 할까.
어젯밤 서울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데다 온종일 싸다닌 바람에 피곤함을 느끼고 일찍 자리에 누우려는데 전화통이 울린다. 전북 지역에서 올라간 사람들끼리 차라도 한잔 하자는 것이었다. 47층 회전 전망 식당에 들어서니 방북단 전체가 모두 와있는 듯하다. 저마다 몇 명씩 둘러앉아 다소 들뜬 모습으로 찻잔이나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번에 머물렀던 고려호텔의 45층 회전 전망 식당처럼 한 층 전체가 천천히 돌아가기 때문에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서도 평양 시내를 한 바퀴 빙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밤. 창 밖은 온통 깜깜할 뿐이다. 서울에서처럼 휘황찬란한 야경을 즐길 수 없는 것이다. 차라리 밤에는 식당 회전을 중단하여 그 전력이라도 아끼지.... 북녘의 심각한 에너지 부족을 안타까워하는 한편, 야경 대신 최고급 호텔에서도 남쪽 돈으로 치자면 1,000원 안팎에 지나지 않는 인삼차를 즐기며 방북 첫날 밤 그리고 9월의 마지막날 밤을 보낸다.
더불어 살기 위한 통일 운동 회원
다음은 2004년 1월 1일부터 2월 29일까지 회원이 되신 분들로, 이름 앞에 - 표시는 앞 회원의 가족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별도 표시가 되어 있지 않으면, 평생 회원은 100,000원, 연 회원은 10,000원, 반년 회원은 5,000원, 월 회원은 1,000원을 내신 분들입니다. 주위 분들에게 ??남이랑 북이랑??을 소개해 주시고, ?더불어 살기 위한 통일 운동?에 참여하도록 권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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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각 (서울 회사원)
♥ 반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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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월평생회비 600,000원
연회비 240,000원
합계 84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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