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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crescent : 初生月 : moon) 이야기
○ 캄캄한 밤하늘에 외롭게, 저 멀리 떠있는 초승달이라 불리는 달(月)의 모습은,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지금도 그러하거니와 수백(數百), 수천(數千)년 전(前)의 인류(人類)에게, 저 신비(神祕)로운 ‘초승달’은 어떻게 비쳐졌을까?
당시(當時)를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에게, 초승달은 숭배(崇拜)의 대상(對象)이 되거나 또는 목적(目的)을 위한 상징(象徵)으로 한다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希望)과 기쁨을 주고, 또 한편으로는 슬픔과 절망(絶望)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초승달은 처음 생겨나기 시작하는 달이라는 뜻의 ‘초생(初生)달’이 어원으로, 여기에서 ‘생’이 ‘승’으로 음운변화를 일으킨 말이다. 음력으로 그 달 첫머리의 며칠 동안을 이르는 말이 ‘초승’이고, 그때 뜨는 달을 ‘초승달’이라고 한다. 따라서 초생달이 아니라 초승달이 표준어(標準語)이다…「출처 : 다음 / 우리말 1000가지 / 초승달」
○「초승달」에 대해, 혹자(或者)는 “고조선(古朝鮮)의 상징(象徵)”이라고 이야기한다. 무엇을 근거(根據)로 한 것인지, 무엇을 증거(證據)로 한 것인지, 무엇을 고증(考證)으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름대로 이유(理由)가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다.
생각해 보면 : 중국(中國) 무협(武俠)소설(小說)이나 영화(映畫)의 주제(主題)로써, 단골 메뉴라 할 수 있다. 특히 초승달은 : ‘판관(判官) 포청천(包靑天)’ 시리즈의 주인공(主人公)인 포청천(包靑天)은, 「얼굴은 검고, 이마에는 초승달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전매특허(專賣特許)와 같다. 왜 일까?
- 포청천(包青天)의 검은 얼굴과 이마의 초승달 -
‘나무위키’에서는 : 〈얼굴이 검다 하여, 포흑(包黑)이란 별명도 있었다고 하는데, 경극에서 검은색은 공정과 강직함을 상징한다. 다만 그가 실제 가무잡잡한 피부색이었는지, 혹은 그가 청렴했기 때문에 경극에서 검은 얼굴로 등장시켰기에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두산백과〉를 참고(參考)해보면 : 포청천(包靑天)【999 ~ 1062 본명(本名) 포증(包拯), 별칭(別稱) 포공(包公), 여주(廬州) 합비(合肥) 출신(出身)】은, 송(宋)나라의 정치가. 지방관으로서 부당한 세금을 없앴으며, 판관이 되어 부패한 정치가들을 엄정하게 처벌하였다. 청백리로 칭송되었으며, 병사 후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추증되었다. 문집으로 《포증집(包拯集)》《포효숙공주상의(包孝肅公奏商議)》 등이 남아 있다.
자는 희인(希仁), 이름은 증(拯), 시호는 효숙(孝肅)이다. 999년 여주(廬州) 합비(合肥:지금의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출생하였다. 포공(包公)이라고도 한다. 1027년(인종 5) 진사(進士)에 급제, 건창현(建昌縣) 지현(知縣)이 되었으나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사임하였다. 1037년 다시 천장현(天長縣:지금의 안후이성 천장현) 지현에 임명된 뒤 감찰어사(監察御使), 삼사호부판관(三司戶部判官), 하북로전운사(河北路轉運使) 등을 지냈다. 이어 삼사호부부사(三司戶部副使)와 지간원(知諫院) 등을 거쳐 1056년 개봉부지부(開封府知府)가 되었으며 1061년 추밀부사(樞密副使)에 임명되었다.
관료생활을 하는 동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정치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부당한 세금을 없애고 백성들의 억울한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다. 판관이 되자 부패한 정치가들을 엄정하게 처벌하였으며, 높은 벼슬에 오른 뒤에도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여 청백리로 칭송되었다. 1062년 병사하자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추증되었다. 문집으로 포증집(包拯集)·포효숙공주상의(包孝肅公奏商議) 등이 남아 있다.
남송(南宋)과 금(金)나라 때부터 그를 주인공으로 한 문학작품이 등장하였다. 명나라 때는 수백 권으로 된 소설화본 ‘포공안(包公案)’등, 청나라 때는 ‘용도공안(龍圖公案), 삼협오의(三俠五義), 칠협오의(七俠五義)’ 등의 장편소설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포청천 [包靑天]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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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宋)나라 때의 합비(合肥)출신(出身)이라면, 중원인(中原人) 또는 중주인(中州人)에 해당(該當)된다고 보아지는데, 인물(人物)에 대해서는 :〈얼굴은 검고, 이마에 초승달이 뚜렷하게 각인(刻印)되어 있다.〉이게 무얼 뜻하는 것일까? 왜 그런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도록 한 것일까? 당연(當然)한 의문(疑問)이다.
《초승달》에 대한 역사통설(歷史通說) 이야기, 그리고 현(現) 세대(世代)의 용어해설(用語解說)등을 살펴보기로 하자. 「블로그·카페·백과사전·위키백과·네이버·다음」등등의 설명(說明)을 참고(參考)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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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슬람과 초승달 : 마호메트를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메카의 지배자들은 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험악해 지자 이슬람교도들은 다른 도시인 메디나로 이주, 마호메트는 끝까지 버티려 했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결국 메디나로 도망을 가는데, 이슬람교에서는 마호메트의 이 도망을 ‘성스러운 도망’이라는 뜻으로' 헤지라' 라고 하고, 이 해(AD 622)를 이슬람력의 원년(元年)으로 삼고 있다.
「헤지라를 했던 그날 밤, 하늘엔 초승달이 떠 있었다고 하여 초승달을 이슬람의 상징으로 쓴다고 한다. 그래서 이슬람국가의 국기엔 대부분 초승달이 그려져 있다.」〈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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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흐메트’가 신(神)으로부터 처음 계시를 받을 때, “초승달과 샛별이 떠있었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하느님의 진리가 인간에게 전해졌다」고 생각하여 초승달을 증표로 중요하게 여긴다. 〈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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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앙아세아 유목족의 초승달 : 〈중앙아세아 유목족의 상징이 초승달인데, 달의 신을 섬겼다.〉는 주장도 있다. 또 〈오스만족이나 셀주크 투르크가 이슬람교 국가들을 정복하면서 이슬람교의 상징이 된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다. 〈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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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절대영어상식 200 / 영어잡학사전 - 이슬람의 Mahomet(마호메트)와 초승달은 아무 관련이 없다? (오토만 제국) 게시판 2017.04.09. 21:06 / 복사 http://blog.naver.com/styleleader9/220979096577
half moon보다 작은 달이 crescent(초승달)인데, 커지는 초승달은 waxing crescent(wax; 달이 점점 커지다)이고, new moon(그믐달)을 향해 작아지는 초승달은 waning crescent(wane; 달이 점점 작아지다) 또는 드물게 decrescent라고 부릅니다.
half moon에서 full moon 사이에 있는 달은 gibbous moon입니다. gibbous는 ‘볼록 튀어나온’이라는 뜻인데 요철에서 `철`에 해당합니다. 보통 moon을 빼고 그냥 gibbous라고 부르는데, 당연히 여기에도 waxing gibbous와 waning gibbous가 있습니다.
crescent는 이슬람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고, 많은 이슬람 국가의 국기에는 초승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기에 crescent가 들어간 것은 1950년대 이후이고 이슬람과 초승달은 무관합니다. 지중해 인근,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지역의 고대 유물에서 crescent 문양의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어 왔는데 이슬람과는 무관합니다. Turkey의 전신인 Ottoman Empire가 19세기에 a green star and crescent를 제국의 symbol로 삼으면서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에게 crescent가 친숙하게 되었다라는 주장도 있다.
[출처] 절대영어상식 200 / 영어잡학사전 - 이슬람의 Mahomet(마호메트)와 초승달은 아무 관련이 없다? (오토만 제국)|작성자 절대영어상식 200.〈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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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두산백과 / 초승달[crescent, 初─ ]
월령 3의 달, 즉 음력 초사흗날 저녁에 서쪽 하늘에 낮게 뜨는 눈썹 모양의 달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삭(朔), 즉 월령 0의 신월(新月) 전후에 보이는 달을 넓은 의미로 초승달이라고 한다. 초승달에서 양끝의 뾰족한 부분을 월첨(月尖)이라 한다. 또 지평선 근처의 기상상태가 좋을 때에는, 달에서 태양빛을 받지 못한 부분이 지구로부터 반사된 빛으로 인해 불그스름하게 보이는 일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초승달 [crescent, 初─] (두산백과). 〈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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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초승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초승달은 일반적으로, 양 끝이 눈썹 모양으로 한 쪽으로 긴 달을 의미하며. 그림이나, 상징물에 주로 이용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서쪽의 가는 달을 초승달이라고 부른다. 초승달은 실제적으로는 아침(오전)에 떠서 한낮쯤이면 남쪽에 이르는데 이 무렵에는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있는 초승달은 거의 서쪽에 지는 경우에만 관측이 가능하다. 그래서 초승달은 초저녁에 서쪽에 잠시 보였다가 이내 진다. 초승달은 대개 달이 3-4일쯤 되면 초승달이라고 부르는데 달이 제일 처음으로 보일 경우에는 월령 2일부터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도 초승달의 월령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초저녁 서쪽하늘에 보이는 가는 달을 무조건 초승달이라고 부른다.〈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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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교회용어사전 : 교파 및 역사 / 초승달 지역[-地域, Fertile Crescent ]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하여 시리아·팔레스타인의 동지중해 연안 지역을 거쳐 애굽의 나일 강 유역에 이르는 초승달 모양의 땅. 주변 지역은 황폐하나, 이 지역은 비옥하여, 일찍부터 인류 문명이 발생하였고, 헬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중심 역할을 했다. 성경의 중심 무대이기도 한 이스라엘은, 이런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사이에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수행하기 위해 일찍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으로도 불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초승달 지역 [-地域, Fertile Crescent] (교회용어사전 : 교파 및 역사, 2013. 9. 16. 생명의 말씀사). 〈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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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미술대사전(용어편) / 초승달 지대[~地帶, Fertile Crescent ]
이집트의 나일 강 유역으로부터 시리아 · 팔레스티나의 동지중해역을 거쳐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양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초승달모양의 지대. 문명의 발상지로서 브레스테드에 의해 그 명칭이 주어졌다. 그러나 제2차 대전 후 농경, 목축에 의한 촌락문화의 탄생지대로서 브레이드우드에 의해서 그 범위가 확대되어, ‘동쪽은 이란 고원에서 아나톨리아 고원 동부를 포함하여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티나를 거쳐 이집트 북부에 이르는 지역’을 막연히 이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초승달지대 [~地帶, Fertile Crescent]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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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고대 근동의 신화와 종교 / 비옥한 초승달 지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대 근동(古代近東, AncientNearEast) 세계는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시작하여 시리아–팔레스타인을 거쳐 이집트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일컫는다. 지금의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의 나라들이 이 지역에 속해 있다. 그런데 이 일대는 그 모양이 꼭 초승달 같다 하여, 일찍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theFertileCrescent)로 불리기도 했다. 이 지역이 비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문명의 기초를 이루었던 세 개의 강이 그 일대를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이 북쪽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남쪽의 이집트에는 나일 강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강들이 있었기에 고대 근동 지역은 일찍부터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
그러나 오늘날에는 고대 근동 세계를 일컬어 더 이상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 부르지 않는다. 그곳이 문명의 발상지였을 때는 그러한 표현이 너무도 적절한 것이었지만, 오늘날 아랍권과 이스라엘로 대별되는 이 일대가 지금까지도 문명의 꽃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찬란한 고대 문명의 기초를 이루었던 세 개의 강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각종 공해 물질로 인한 수질 오염과 댐 건설로 인한 수량 감소 탓에 그 강들의 비옥함은 예전 같지 않다. 그리고 그 강들을 중심으로 하여 꽃피었던 문명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유적지들이나 박물관에서 겨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비옥한 초승달 지대 (고대 근동의 신화와 종교, 2006. 2. 28., ㈜살림출판사).〈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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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실크로드 사전 /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 ]
최초의 농경문화 발상지. 서(西)는 지중해 동안의 팔레스타인에서 북부 메소포타미아, 동(東)은 이란 고원에 이르는 초승달 모양의 지대다. 두 강(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따라 비옥한 충적평야가 펼쳐져 일찍부터 농경과 목축업이 발달했으며, 여러 고대문명이 출현하였다.
기원전 6500~기원전 5000년의 카림샤히르 · 자르모 문화기에는 초기 농경과 목축업의 흔적이 보이며, 뒤이은 하수나 문화기에는 토기가 널리 쓰이고 방적도 시작되었다. 이어지는 하라프 문화기에는 사회가 진일보해 관개농업이 선을 보이고 벽돌건물이 나타나며 배가 등장해 교역이 시작되었다. 청동기시대에 접어든 우바이드 문화기에는 신전과 계급이 등장하며 도시문명의 틀이 잡혀갔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옥한 초승달 지대 [Fertile Crescent] (실크로드 사전, 2013. 10. 31. 창비).〈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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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백제는 둥근달, 신라는 초승달
660년(의자왕 20) / 백제가 망하기 직전 660년 봄, 백제의 수도 사비성(지금의 부여)에서 때 아닌 귀신소동이 일어났다. 밤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웃음소리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로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 하면서 궁궐 안팎을 누비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공포에 떨게 되었다.
이러한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맨 처음 사비성 안에 있던 궁녀들로부터 흘러나왔다. 어떤 궁녀는 그것이 사슴 비슷하게 생겼다고 했고, 또 어떤 궁녀는 뿔 달린 여러 마리의 개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사람소리를 낸다고도 했다. 또 그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궁녀도 있었는데, 그것은 사슴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귀신이라는 것이었다. 진실이야 어떻든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 괴물이 꼭 궁궐 근처에서만 돌아다니며 이상한 소리를 내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상한 소문이 겉잡을 수 없이 퍼져 민심이 흉흉해지자, 의자왕은 마침내 괴물 검거령을 내리고, 밤마다 대궐 안팎의 경비를 철저히 하도록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궁궐을 수비하던 군졸들이 괴물을 발견하고는 한밤중에 추격전을 벌였다. 괴물은 대궐 안에까지 들어와 “백제는 반드시 망한다.” 하고 소리치며 난동을 부리다 쏜살같이 담벼락 아래로 몸을 숨겼다. 군졸들이 뒤쫓아 갔을 때는 파 놓은 지 얼마 안 되는 듯한 구덩이 하나만 눈에 띄었다. 보고를 받은 의자왕이 그곳에 이르러, 그 구덩이를 파보게 하자, 땅 속에서는 놀랍게도 거북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북이의 등에는 “백제는 둥근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는 글씨까지 선명하게 씌어져 있었다.
의자왕은 곧 무당을 불러 그 글귀의 뜻을 해석하도록 했다. 그러자 그 무당은 머리를 조아리며 “달이 둥글다는 것은 가득 찼다는 것이니, 이제 곧 기울 때가 되었다는 뜻이고, 초승달은 아직 차지 않았으니 머지않아 보름달이 된다는 뜻입니다.”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결국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한다?’이런 생각을 한 의자왕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 왕은 다른 무당을 불러 똑같이 그 글귀의 뜻을 새겨보라고 했다. “달이 꽉 찼다는 것은 그만큼 기운이 왕성하다는 것이니, 이는 우리 백제가 초승달 같은 신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더로 강대국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에 의자왕은 불길한 예언으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첫 번째 무당을 죽여 버리고 두 번째 무당에게는 푸짐한 상을 내렸다.
마땅히 바른 말을 잘 들어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한 의자왕은 결국 백제를 망하게 한 마지막 왕이 되고 말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제는 둥근달, 신라는 초승달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민족 전투),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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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고등교과서 세계사
왜 많은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에는 초승달과 별이 그려져 있나요?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에는 대부분 초승달과 별이 그려져 있다. 그 이유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최초의 계시를 받던 밤하늘에 초승달과 별이 나란히 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슬람교에서 초승달과 별은 진리의 시작을 의미한다. 또한 이슬람에서는 우상 숭배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 대신에 추상적인 문양이 자주 쓰였다. 초승달과 별이 이슬람을 상징하며 건축물이나 국기 등에서 자주 사용된 것도 이러한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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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터키의 국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붉은색 바탕에 흰 초승달과 별이 그려져 있다. 터키의 국기는 빨간 바탕에 흰 초승달과 별로 이루어져 있고, 아이 이을드즈(터키어: Ay Yıldız 월성기)라 부르며, 비율은 2:3이다. 초승달과 별은 이슬람교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군대가 비잔티움(현 이스탄불)의 성벽 밑을 뚫고 침입하려 했을 때 초승달 빛으로 이를 발견하여 나라를 구하였다는 전설을 그리고 있다. 그 밖에 1,398년의 코소보 전투가 끝난 후 피바다 속에 나타난 신비로운 달과 별을 가리킨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기의 기본 형태는 술탄 셀림 3세가 지배하던 1793년경에 나타났고, 1844년에 별이 추가되었다. 이는 오스만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사용하였다.
현재의 국기 형태는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고, 터키 공화국이 건국된 이래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1936년 6월 5일 추인한 것이다.〈인용(引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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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슬람과 초승달 (블로그 ‘청교도개혁신앙’에서 펌) http://choys0000.blog.me/10179734357 [출처] 이슬람에서의 초승달과 별이 가지는 상징성 | 작성자 주안에
초승달이 이슬람교에서는 유일신 ‘알라’를 상징한다고 일반에게 알려져 있지만, 의미로 본다면, ‘진리의 시작’을 뜻한다. 깜깜한 그믐이 지나고 처음 떠오르는 달이 바로 초승달이고, 그 옆에 있는 샛별과 함께…
이슬람 상징은 유일신을 뜻하는 초승달이며, 신앙고백(샤하다), 기도(쌀라), 금식(라마단), 희사(자카트), 성지순례(하지) 이상 5가지 율법을 뜻하고 있는 것은 별 모양이라 한다.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엔 공통적인 초승달과 별 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14세기 한 전쟁에서 국왕이 전선을 방문했을 때 초승달과 별이 떴었고, 이는 진보를 상징한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저 달은 그믐달이다. 하지만 터어키 국민의 99%가 무슬림이고 이슬람국가는 초승달과 별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참고로 이슬람력 9월을 의미하는 라마단은 초승달의 목격시점에 따라 5∼6일에 시작돼 한 달간 진행된다. 라마단은 1400년 전 예언자 모하메드가 코란을 계시받은 달로, 이 기간에 무슬림(이슬람 신도)들은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흡연과 성행위를 피해야 한다. 해진 다음에 금지가 해제되며 노약자와 임신부, 여행 중인 사람은 낮 동안에라도 금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만큼 이슬람 사람들은 우리와는 반대로 해보다는 달을 중심으로 생활을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마호메트가 알라 신(하느님)으로부터 최초의 계시를 받을 때 초승달과 샛별이 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느님의 진리가 인간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초승달을 징표로 중시한 것이지, 초승달 자체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초승달은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의 상징이고, 오스만 족이나 셀즈크 투르크가 이슬람 세계를 정복하면서 이슬람의 상징이 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 붉은 초승달 적신월 / 적신월의 유래가 된 초승달 무늬는 3세기 초부터 7세기 중반까지 중동 지역을 지배했던 사산왕조 페르시아(현 이란)에서 왕권을 의미했다. 사산왕조 왕관에 장식됐던 신월(초승달)은 그 후 이슬람 왕국에서도 권력과 군사력의 상징으로 계승됐다. 오스만 제국 때는 국기에도 그려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초승달 무늬는 점차 무슬림의 형제애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변했다.
전장에서 간호부대를 가리키는 표식으로 적십자 대신 붉은 초승달(적신월)이 쓰이게 된 계기는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으로 비롯된 러시아-터키(오스만 제국)전쟁(1877~1878년)이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적십자 대신 적신월을 사용했고, 전쟁 상대편인 러시아는 이를 존중했다.
이후 1929년 제네바 협약이 개정되면서, 적신월은 국제적인 공인을 받았다. 초기에는 터키와 이집트에서만 적신월 표지를 사용했지만, 차츰 다른 무슬림 나라들이 뒤따랐다. 현재는 국제 적십자· 적신월사연맹에 가입한 185국 가운데 33개국이 적신월을 쓰고 있다.
● 초승달 지역
오리엔트를 최초로 통일한 앗시리아(BC 8세기경) 영역.
비옥한 초승달의 동부 산악지대는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이며, 메소포타미아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중동의 유목민들이 과거 다신교시절에 이미 초승달을 숭상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중동에는 옆 지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이집트 연안에서 지중해 그리고 코카서스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이르는 아시리아가 처음으로 오리엔트를 통일한 영역이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인류 문화의 발상지였고,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 중동은 과거나 현재나 그 지방은 대륙의 연결 통로인지라 이슈도 많고, 항상 전쟁의 중심지였었다.
현재도 석유가 많이 나는 국가들이 모여 있고, 무슬림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이스라엘과의 팔레스타인 분쟁, 반미를 외치는 테러들의 은신처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페르시아와 터키 등의 중동지방은 지금도 세계에서 따끈한 주목을 받고 있다. 중동지방의 위치와 지리적 특성, 특징을 알아보자.
중동지방은 말 그대로 Middle East, 즉 이것은 중, 근대 시대의 유럽인들에 의해 지어진 명칭인데, 유럽을 중심으로 놓고 봤을 때, 가까운 동쪽에 있다고 해서 중동이라고 붙여졌다. 이 관점에 의하면 한국, 중국, 일본은 머나먼 동쪽이라서 Far East, 인도보다 동쪽에 있는 인도차이나반도, 필리핀 등은 Further India라고 명칭이 붙여졌다. 중동지역은 다른 말로 하자면 서아시아라고도 불리우며, 이 지역에 속하는 나라로는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 예멘, 이스라엘, 요르단, 팔레스타인(미승인국가), 시리아, 레바논, 터키(3%가 유럽에 속함)가 속한다. 즉, 중동지방은 동쪽으로는 페르시아고원, 북쪽으로는 흑해, 코카서스산맥, 카스피해를 맞고, 남쪽으로는 홍해와 아라비아해, 인도양을 서쪽으로는 이집트, 지중해, 발칸반도를 맞고 있다. 중동지방은 세부지역으로 나뉘면 방위에 따라서 나눌 수 있는데 동쪽을 페르시아, 서쪽을 레반트, 남쪽을 아라비아반도, 북쪽을 아나톨리아반도, 중앙부를 메소포타미아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특징을 보자
● 페르시아 / 이 지역은 지금의 이란 지역 전역을 말하며 이란의 과거 국명이기도 했다. 또한 이 지역은 고대부터 셀주크투르크제국, 메디아제국, 페르시아제국 같은 여러 강대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한 곳이며 고대의 페르시아종교가 싹텄던 곳이다. 6세기 이후 마호메트의 이슬람교에 의해 이슬람이 뿌리내렸지만 기타의 중동지방과는 많이 다르다. 기타 중동지방은 셈함족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페르시아지역은 페르시아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페르시아인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중세 이후에는 오스만 투르크의 강력한 세력에 밀리게 되었고 근대에는 남쪽의 영국, 북쪽의 러시아에 의해 샌드위치 신세를 겪기도 했다. 페르시아, 즉 이란지역은 건조성 기후를 띠며 소규모의 사막이나 고원들이 많으며 겨울에는 눈이 오기도 한다.
● 레반트 / 이 지역은 중동의 서부, 즉 지중해 연안을 맞아들이고 있는 초승달 지역의 한쪽 끝을 말하며 지금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가 속한다. 이 지역은 중동임에도 불구하고 지중해의 영향으로 온화한 온대성 기후가 나타나 고대부터 인구밀집지대였으며 유대국가는 물론 미디안, 모압, 암몬, 에돔, 시돈, 가나안, 아모리, 블레셋, 아람, 앗수르 같은 고대국가들의 흥망성쇠가 많았고 최근 이스라엘과의 분쟁으로 핫이슈가 되고 있는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다른 국가와 다른 점이 많은데 다른 국가들은 셈함족에 속하는 아랍인이지만 이스라엘은 유대민족이라는 것이 다르다. 또한 다른 국가들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지만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국교로 한다. 중세에는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으며 근대 이후에는 주로 영국의 세력에 놓이게 되었으며 2차 대전 후에는 이스라엘과의 분쟁이 오로지 지배하였다. 레반트는 중동의 여러 강국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게 하는 통로가 되었으며 이집트를 거쳐 북아프리카로 갈 수 있는 교두보가 되기도 하였다.
● 아라비아반도 / 이 지역은 중동의 남부, 즉 지금의 아라비아반도 전체를 지칭하며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예멘등이 이에 속한다. 이 지역은 강한 건조성 기후와 낮은 위도의 열대성 기후가 겹쳐 8개월 이상의 고온 건조를 나타내며 중앙부에는 광대한 사막이 나타난다. 또한 갇혀 있는 페르시아만은 염도가 높고 가장 높은 수온을 나타낸다. 남쪽으로는 홍해와 페르시아만, 인도양을 맞고 있어 아시아의 서남쪽 끝을 이루게 된다. 아라비아반도는 고대부터 여러 강국들이 출현하지 못했고 중동역사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스바 같은 몇몇 고대 왕국도 나타나기는 했지만 잘 알고 있는 제국들은 거의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는 마호메트의 이슬람교를 믿는 순례자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고 UAE의 두바이는 강한 자본과 외국투자자들의 지원으로 사막 위에 세워진 거대한 현대빌딩 도시가 되었다. 이 지역은 중동에서도 석유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인데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바레인은 전형적인 석유 부국이며 1인당 국민소득도 매우 높아 웬만한 유럽 선진국들 못지않다.
● 아나톨리아반도 / 이 지역은 터키의 아시아부분을 지칭하며 중동의 북부를 이룬다. 북쪽으로는 흑해를 맞고 서쪽으로는 에게해와 발칸반도를 접하고 아나톨리아반도는 대부분이 높은 고원으로 이루어졌다. 이 지역은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유럽과 중동을 잇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유럽강국들이 근동으로 진출할, 중동의 강국들이 발칸반도로 진출할 교두보의 역할을 했었다. 아나톨리아반도를 지배하는 지금의 터키는 이 특성 때문인지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역할을 하며 유럽권에 편입될려고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아나톨리아반도는 문화적, 역사적으로도 기타 중동지역과는 약간 다른데 과거부터 그리스문화, 비잔틴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유럽지중해의 문화도 녹아 들어가 있다. 또한 남동부, 남서부지역은 고대 바울의 전도여행지역이어서 기독교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아나톨리아지역은 고원이 많고, 고도가 높아서 대륙성기후와 연교차가 큰 기후를 보이는데 대체로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특성을 보인다.
● 메소포타미아 / 이 지역은 초승달 모양의 다른 한쪽 끝인, 지금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사이 부분을 지칭하며, 지금의 이라크, 쿠웨이트를 말한다. 이 지역은 고대시절부터 두 개의 강으로 땅이 비옥해 농경지대였으며, 대규모의 문명지역을 이루었다. 중동역사의 핵심부분이며, 중동의 정체성의 중심부분이다. 과거에 바벨탑이 세워졌다 무너진 곳이기도 하며 앗수르, 바벨론 같은 고대왕국들이 번성하였으며, 지금의 고대도시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중동의 중심부를 이루는 만큼 가장 핫 이슈를 받는데, 이라크는 반미로 인해 미국의 폭격, 반미정부 퇴출, 석유 유전 개발 같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고, 쿠웨이트는 이라크를 반대하며 적극적인 친미로 인해 서로 대립되었다. 이 지역도 역시 유전이 풍부하며, 쿠웨이트는 전통적인 석유 강국이다. 페르시아만의 입구에 위치해 이 페르시아만을 잡는 자가 중동을 지배한다는 말들이 나온다.
● 이슬람에서의 초승달과 별이 가지는 상징성 / 이슬람 국가에서는 국기에 위와 같이 초승달과 별을 상징하는 문양을 넣은 경우가 종종 있다. 국기 외에도 이슬람 성원의돔지붕이나 첨탑의 뾰족한 끝 등 많은 곳에서 초승달과 별이 상징화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이것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칫 '이슬람이 초승달이나 별을 숭배'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이슬람은 오직 유일신 알라만을 섬기는 종교이다. 이슬람을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잘못된 표기 '마호메트'의 이름을 따서 '마호메트교'라 부르는 것은 마호메트를 섬기는 종교인 냥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어 대단히 몰지각한 표현이다. 당사자 무함마드는 후대 사람들이 자신을 신성하게 여기게 될 것을 염려하여 자신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나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게 하였고, 역사적인 사료로 남게 될 삽화에서도 자신의 얼굴을 그리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슬람에서는 신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고개를 숙이거나 절하지 않는다. 신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신성시 여겨질 수 없다. 이것이 이슬람의 전통적 관념이다.
이런 이유로 이슬람에서는 기독교나 불교에서 발전한 다양한 '종교적 상징물'이 전무하게 되었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에 가면 흔히 찾을 수 있는 예수나, 성모마리아, 성인들의 조형물 혹은 그림이 이슬람 성원에는 전무하다.
과거 비잔틴제국의 수도 한복판에 자리하던 '성 소피아 대성당'(오스만 제국이 비잔틴을 정복한 이후 이곳은 이슬람 성원으로 개축되었다.)에 가면, 터키의 상징처럼 굳어져버린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외관에 비해 정작 내부는 소박하고 간소하기 이를 데 없다. 벽에 단지 글씨로 '하나님께서는 가장 위대하시다.' 라는 아랍어 문구가 장식되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단기간에 수많은 전쟁을 통해 광범위한 영토를 장악해 대 제국을 이뤘다. 이들이 치른 수많은 전투에서 분명 무슬림 군대는 믿고 따를 '상징'이 필요했다. 중세 십자군들이 방패와 갑옷, 깃발에 십자가를 새겨 넣을 때, 무슬림들은 이 초승달과 별을 본격적으로 상징화하기 시작했다.
● 초승달과 별이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가 그 최초의 계시를 받던 날 밤에 '초승달과 별'이 나란히 떠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일종의 종교적 기념으로 '권능의 밤'이라 불리는 이때, 즉 '초승달과 별'은 바로 유일신 알라께서 그들에게 새롭고 영원한 '진리의 빛'을 내려준 순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게 굳어진 초승달과 별의 '상징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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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古朝鮮)이 달(月)을 숭상(崇尙)했다? 또는 초승(初生)달을 숭배(崇拜)했다? 많은 종족(種族), 부족(部族)들이 “태양(太陽)이나 달(月)을 숭배(崇拜)하고 경외(敬畏)로운 대상(對象)으로 섬기는 풍속(風俗)을 가지고 있었다.” 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事實)이다.
동구라파(東歐羅巴) 또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지방(地方)에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유물유적(遺物遺蹟)과 동일(同一)한 유사(類似)한 것들이 발굴(發掘)되고, 언어학적(言語學的)으로, 또는 풍속(風俗)으로 유사(類似)한 것들이 있다고 해서, 그곳이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중심지(中心地)였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로 코메디라 할 수 있다.
동방(東方)의 이족(夷族) 중심(中心)이었던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문물(文物)과 문명(文明)이 이들 지역으로 영향(影響)을 미쳤다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발전(發展)된 문명(文明)은, 물이 흐르듯 전파(傳播)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물(文物)교류(交流)는 필연적(必然的)이며, 그 대상(對象)은 일차적(一次的)으로 인간(人間)과 인간(人間)이 되기 때문이다.
수만(數萬)년 또 그 이전(以前)의 인류(人類)가 서(西)쪽에서 동(東)쪽으로 퍼졌는가? 또는 동(東)쪽에서 서(西)쪽으로 펴졌는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說往說來)하며, 오늘날의 서구(西歐)중심(中心)의 역사해설(歷史解說)은 수만(數萬)년 또는 그 이전(以前) 인류(人類)초기(初期)엔 서(西)쪽에서 동(東)쪽으로 퍼졌으나, 그 뒤엔 동(東)쪽에서 서(西)쪽으로 이동(移動), 이주(移住)했다는 주장(主張)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다.
서구(西歐)중심(中心)의 역사해설(歷史解說)은 철저(徹底)하게 대륙(大陸)을 배제(排除)한다. 지들 중심(中心)으로 써져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것들을 간과(看過)한다면 아세아(亞細亞)의 중심(中心)이었던 조선왕조(朝鮮王朝)는, 서구(西歐)아이들의 자존심(自尊心)을 위한 도구(道具)로 전락(轉落)될 수밖에 없다.
○ 고조선(古朝鮮)의 지배층(支配層), 백성(百姓)들은 어떤 인종(人種)이었을까? 당연(當然)한 이야기지만 : 우리들과 똑같은 인종(人種)이었고, 종족(種族)이었다.
만약(萬若) 고조선(古朝鮮) 또는 그 이전(以前)의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들의 종족(種族)이나 인종(人種)이 달랐다고 한다면 수백(數百)년, 수천(數千)년 후대(後代)에 만들어진 기록물(記錄物)에서, 분명(分明) 그 연유(緣由)가 기록(記錄)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나, 징후(徵候)조차 발견(發見)되지 않고 있다.
특히「열도(列島)로부터 반도(半島), 중원(中原) 대륙(大陸)을 거쳐, 총령(葱嶺)에 이르기까지, 이곳 땅(地)에 대한 역사(歷史)는 있었는가? 누구의 역사(歷史)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나 근대(近代)의 조선왕조(朝鮮王朝)나 그 땅(地)위에, 그 백성(百姓)들로 이루어진 봉건왕조(封建王朝)였다. 이게 중요(重要)한 것이다.
2017년 11월 18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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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선사에 대한 많은 관심들이 이젠 차분해 진 것 같습니다.
역사 공부나 연구에 사실 "붐"이란 것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대륙조선(大陸朝鮮)이란 말은, 사실 필요없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만 하는 단어이기도 하죠. 반도조선과 대륙조선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사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조선의 땅과 조선의 백성들입니다."
<옛 조선왕조의 땅은 어디냐? 조선왕조를 이루고 있었던 백성들은 누구냐?> 하는 것이죠.
우리들은 옛 조선왕조의 후예 또는 후인들이라고 하며, 외국에서도,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말합니다.
따라서 그 분들을 모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도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이후 지금까지, 역사인식과 그 강역은 대동소이합니다.
반도를 포함한 그 부속도서를 한계로 합니다.
이러한 강역은 누가 정해주었고, 누가 이렇게 해야 만 한다고 가르쳤을까? 아니면 정말로 옛 조선왕조의 땅은 반도 중심의 역사였는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변화와 굴곡이 있었지만, 오직 '반도와 그 부속도서 한계'라는 '역사강역'은 변함없이 철칙과도 같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워 해야 할까요?
왜 당시의 조선 백성들이 남겨 놓은 많은 기록속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동서 일만리, 사방 6천리가 반도와 부속도서가 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九月山이 이와 관계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