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2026-07-12
제목: 낙심하지 않는 기도
본문: 눅 18:1-8
1. 항상 기도하여야 한다
“항상 기도하고”(눅18:1)
‘항상’은 모든 시간을 기도만 하고 다른 의무와 명령은 행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어느 때라도 어디서라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자주 통상적으로’를 의미한다.
성경에서는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제사를 “항상 드리는 번제”(출29:42)라 부르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은 기도하는 백성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언제든지 그리고 때를 따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이자 의무이기 때문에 매일 그리고 항상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하는 데에 결코 지쳐서는 안 되고,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인생 길을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선하고 경건한 말들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이다.
제단의 불은 늘 꺼지지 않게 하였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늘 기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기도 시간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자유와 기쁨과 사랑을 느끼는 가장 복된 시간이다.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고 그 영원하신 사랑을 힘입는,
지상에서 누리는 천국이다.(삼위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천국)
기도는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바리새인의 장황하고 교만한 기도보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한 세리의 기도를 하나님은 받으셨다.(눅18:9-14)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2-3)
기도는 기술(방법)이 아니라 본능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반응이다.
어린 아이는 배워서 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본성으로 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지식이 우리 마음에 쌓이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기도할 소원을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친히 도와주실 때,
살아 있는 사람이 숨을 쉬는 것처럼 거듭난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의 숨을 쉬게 된다.
기도는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음성으로 하는 것이 좋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호14:2)
비록 더듬더듬거린다 할지라도 그것이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에서 나온 것이라면 열납하실 것이다.
기도 시간에 갈대처럼 자주 방황하는 우리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는 음성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음으로만 기도한다는 것은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으로 기도하면서도 우리의 생각이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고 집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유행하는 ‘관상기도’는 성경적인 기도방법이 아니고 잘못된 신비주의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관상기도는 인간의 모든 생각과 감정과 열망을 다 버리고,
그저 하나님 앞에서 한두 가지 단어를 계속 되뇌면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안식하고자 하는 기도일 뿐이다.
관상기도는 지성이나 이해력의 활동을 완전히 배제한 채 오직 의지와 정서로만 하기에 위험하다.
우리의 의지와 정서가 지성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야만스럽고도 비합리적인 것으로 만들 뿐이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사랑, 신뢰와 감사로 표현되는 믿음의 활동이 없는 기도는
괴물이나 상상력이 만들어낸 사생아일 뿐이다.
우리의 기도와 경건은 ‘분별 있는 섬김’이어야 한다.(존 오웬)
기도도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이 어떻게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특히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심정,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태도,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와 소원을 올리는 기도의 태도를 자세히 살펴보고 배우자.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자기 전에 하는 기도는 꼭 생활화하자.
2.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18:1)
기도를 주문이나 주술로 생각하고서 하다가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고 낙심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항상 기도하면서 낙심하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다.
끈질기게 간청하면 사람도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었다.
그 도시에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였다.
그가 얼마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고 늘 와서 괴롭게 할 것이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하고 해결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과부는 끈질기게 계속해서 간청하였다.
재판장이 오직 한 가지 그 간청함 때문에 귀찮아서 원한을 풀어 주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눅18:6-8)
주님은 이 비유를 들어서 기도하는 백성에게 믿음과 열심으로 기도하되
끈질기게 인내하며 기도하라고 격려하신다.
하나님이 결국에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는 것을 보장하신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했던 것처럼 축복을 하시기까지 기도의 씨름을 해야 한다.
기도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응답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해야 한다.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주리라”(눅11:8)
주야로 잠잠하지 않고 쉬지 말고 기도하여 하나님으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실 수 있고, 기도에 곧장 응답하지 않으실 수 있다.
원수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려서 오래 참으시기도 하고,
우리의 인내심을 훈련시키기 위해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으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오래 참으시다 역사하셨다.
불의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때 그때 응징하신다면 회개할 기회도 살아날 기회도 없을 것이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여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기업으로 받기 위해서는 믿음과 오래 참음이 필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려야 했고, 모세는 40년을 기다려야 했다.
예수님도 나사렛에서 30년을 기다리셨고, 요셉도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13년을 기다려야 했다.
끈질기게 구하면서 또한 믿음으로 오래 참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믿음의 길이다.
3.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인자는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고, 그 이전에도 그분의 통치가 계속될 것이다.
믿음이 필요한 것은 ‘세상에서’, 곧 이 땅에서 만이다.
믿지 않던 자들은 지옥에 가 있을 것이고, 믿은 자들은 천국에서 믿은 것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믿음이야말로 우리 주님이 찾으시고 보고자 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임을 뜻한다.
가장 약하고 희미한 믿음을 가진 자도 주님은 찾으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그러나 경건의 모양은 지닌 자들은 많겠지만 진실되고 정직한 믿음을 가진 자는 극소수일 것이다.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나서 주 예수를 믿고 영접한 사람은 많지가 않다.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믿음으로 영접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으로 주 예수를 내 안에 모시고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주 하신 책망이 무엇인지 아는가?
“믿음이 작은 자들아”였다.
믿음을 확실하게 가장 잘 키우는 길은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항상 기도하며 낙심하지 않으시기 바란다.
과부의 비유를 기억하고 끈질기게 인내로 기도하자.
때가 되면 반드시 응답된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