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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999년간의 중국서법 邱振中(중앙미술학원 교수/서법이론가/서법평론가) 세 번째로는 서법에서의 형식, 내함, 관념, 제작등 각종 非文字적 혹은 非一次性의 서사작품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추상회화, 장치, 조소, 행위예술, 관념예술등이다. 이것은 하나의 개방적인 영역으로 무궁한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지금은 그것들 주로 "현대서법"이라는 명칭아래 자리잡고 있지만 성숙된 작품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따르자면, 그것은 당대중국예술의 주류 중에 들어가 서법이 당대예술에 끼친 하나의 중요한 공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世紀之門/중국예술초청전》서법부분종론
1979-1999년간의 중국예술중 서법영역에 있어서 몇가지 중요한 변화가 생겨났다. 대량의 전람회활동 및 많은
사람들의 참여, 전업교육의 신속한 발전, 서법이론의 장족의 진보 등이 그것이다. 당대예술사에서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서법이 예술영역으로서 대받은 유래없는 중요성이다.
전통 중에서 수양으로서의 서법과 예술로서의 서법은 계속 두 개의 길에서 공존해 왔다. 비록 양자가 오랜 시간동안 서로 침투하였을지라도 말이다. 전인(前人)들이 논한 서법 중에서 '功力'을 강조한 것과 '靈動'을 강조하는
것은 각기 다른 두 가지 풍격의 원류가 있었다. 바로 그 중의 뜻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그렇다.
'修養'과 '人의 表現'이라는 부분은 중국서법의 전통중에서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전통서법이 능히 이 점을 행할
수 있었던 관건은 바로 일상서 사행위를 형식과 감각의 발전을 근거로 삼아 행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사과정중
서사행위는 하나의 주의없는 활동이 되었고 형식에 대한 관심을 잠재의식 속으로 퇴거시켰다. 그래서 서사는 감각의 유형, 심미적 정취 그리고 서법에 관한 어떤 관념적인 공동작용아래 오랜시간의 서사실천을 거쳐 정신과 형식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부분에까지 도달했지만 또한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도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여기에서 필자는 서법이 하나의 문화이며 하나의 圖像으로서 독보적인 성질임을 표현하고자 한다.
당대예술중에서 서법과 관련이 있는 창작활동을 세가지 분류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는 전통적 풍격의
서법, 둘째는 현대적 풍격의 서법, 셋째는 서법으로부터 나온 예술작품이다.
첫번째부분은 바로 현재의 서법가들이 노력하는 주요부분이다. 20년간 이 부분에서의 주요한 공적으로는; 먼저
필법의 발전을 들 수가 있는데 예를 들면 林散之, 陸維釗와 같은 인물이다. 임산지가 말한 '拖泥帶水'과 같은 필법은 장봉의 붓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꺽임과 수묵, 생동감 있는 특성을 아주 잘 혼합하여 선의 복잡다양한 변화를 창조해냈다. 육유쇠는 절필과 방필을 과장하여 이전에 없던 정도를 이루었으나 조금도 작품의 문화적 분위기를 손상시키는 것이 없었다. 서법은 충분히 발전한 예술을 거쳤으며 필법은 또한 서법 중에서도 가장 미묘하고
제어하기 어려운 부분으로서 당대 서법의 창작 중 필법의 중요한 발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의 시대가 전통적
풍격의 서법에 대해 창조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게 하였다.
글자의 결구 중에서 보이는 상상력의 발전에 대해 살펴보면, 전통서법 중에서는 상상력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였지만 지금의 서법 중에서 상상력에 대한 추구는 '민간서체'뿐만 아니라 또, 서방의 현대예술 역시 모두 같은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선의 결구수준의 향상, 장법을 파악하는 능력을 표현하는 것에서이다. 장법은 서법의 형식과 기법 중 거의 말로 확정 짓거나 전수받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전통의 깊은 연구를 거치고
서법형태학의 진보에 의거하여 볼 때 지금 이 시대에 장법의 파악능력은 이미 비교적 높은 기점에 도달하여 있다. 부분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은 장법의 발전사상 중요한 수확이라 할 수 있다.
개성의 분명한 표현에 대해 살펴보면, 陶博吾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뜻을 이루지 못한 비교적 불우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거칠고 집착적인 성격은 작품 속에서 文詞,筆觸,結構를 억제할 방법이 없는 듯 하였다.--가능할 수 있는 부분에서 모두 넘쳐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의의는 그 시대에 線과 人의 관계에서 하나의 기초를 마련하였을 뿐?아니라 인간의 생존상황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독특한 창조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주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을 중명 하였다는 데 있다.
창작의 풍격화는 역시 그 시대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각에서는 20년간 아주 특출한 성과를
이루었다. 청말의 전각은 중국전각사중에서 당연 으뜸가는 최고봉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데 도상자료들을 취하고 풍격을 다양화 시키는 등의 방면에서 아주 중요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후, 제백석 등과 같은 인물이 또 한번
특출한 성과를 이루었다. 당대전각가는 이러한 상황아래서 여전히 풍부한 상상력을 창출해내어 새로운 풍격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서사와 석각의 관계에 대해 새롭고 앞사람들과 다른 인식을 자아냈으며 작품에 있어서도 개성이 강해지고 그들만의 독특한 면모가 보다 분명해졌다. 그들의 전통예술의 막막한 부분을 어떻게 개척하고 새롭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노력은 당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두 번째부분은 바로 현대적 풍격의 서법이다. 현대적 풍격의 서법은 전통적 풍격의 서법과 형식구성(필법,장법등),정신의 함축,창작방법등의 방면에서 서로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반드시 전통서법과 비교하여 정의를 내릴 수 있으므로 현대적풍격과 전통적풍격의 관련성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정의역에서 형성된다. 중간의 작품들은 아마 그 두가지 특징을 동시에 지니고 있을 것이다. 현대적풍격의 서법은 또한 결코 그리 넓지 않은 하나의 영역으로서 전통풍격의 작품들과 같이
조금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면도 있으며, 서법변계의 작품들과 같이 단순함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면도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의 관계는 당대 정신활동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서법으로 표현하기에 이르렀고 또한 서법과 같은
유구한 역사의 전통양식이 현대인들에게 상상력을 부여하고 새로운 것들은 야기시키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현대적풍격의 서법창작활동중에서 에술가들은 문자제재의 발전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주된
취지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문사는 창작이나 받은 느낌, 더 중요한 것에 작용할 뿐 아니라 진화와 심화를 형성하는 강한 영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 밖에, 사람들은 한자에 관한 도상자료들을 발굴하는 데 애를 썼으며, 현대적
풍격의 작가들은 공간과 선의 가능성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미있는 탐색을 시도하였다.
심오한 뜻에 대한 발전은 현대적 풍격의 작가들이 애쓴 또 다른 하나의 방면이다. 전통서법의 심오한 뜻은 오랜
시간을 거쳐 쌓인 것으로 상당히 안정적인 내함이 있으며 전통적의의 체계 외의 생존체험은 거의 작품 중에 들어가기가 불가능하였다. 형식의 새롭고 참신함은 작품에 심오한 뜻을 주입하는데 좋은 기회를 가져왔고 작가들은
문사나 구성, 각종 세부적인 요소들을 이용하여 작풍 중에 부단히 현대적 감각을 넣었다. 중국서법은 이러한 현대예술가들의 노력으로 인해서 조금씩 자신의 邊界와 內涵을 변화시켰다.
두 번째 유형과 세 번째 유형의 작품들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비록 邊界부분에 있는 작품들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더라도 말이다.) 서법구성의 기본 요소로은 세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붓으로 선을 긋는 것, 이차원적인 공간,
정신적인 면의 함축이다. 이것들은 전부 각각에서 진정한 공헌을 만들어 내었는데 모두 쉽지 않은 일들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서법예술가들이 반드시 해야 할 핵심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주 전통의 '顚覆'을 논하는데 그것은 거의 특정한 시기에 어떤 집단의 사람들의 상상심리를 가리킨다. 실질적으로 현대창작작품을 감상할 때 사람들의 전통적인 기억을 없애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전통과 현대라는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
현대인의 복잡한 감수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전복"이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여전히 하나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의 "발전"은 현대적 감수성을 심화시키고 서로 의존하는 양면이 있다. 두 번째 유형의 작품은 서법영역 안에 있어 전체서법전통과 거의 흡사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 작업의 난이도가 높으나, 그것이 만들어낸 공헌
역시 우선은 서법영역! 안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러한 영역으로 하여금 새로운 사고와 서법에 관한 기본적인 문제들을 촉진시켰는데 예를 들면, 필법의 변계, 어의이용의 가능한 방법, 도상자료들 및, 서법에 있어 새로운 정의 등이다. 그러나 세 번째 유형의 작품의 뜻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것들은 오직 서법 안에서만 출발점을
만들고 있고 서법자신에 대한 요구는 아주 미약하지만 세 번째유형의 작품들은 주로 당대예술의 각종 새롭고 독특하며 참신한 구성과 함유 및 관념을 제공하였다.
이번에 출품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유형의 작품들은 모두 문자를 떠나서 이루어진 것이 없다. 그러나 비교적 엄격한 서사특징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도 있다. 당대서법창작의 전체적인 면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여전히 중국 당대 정신생활의 가장자리에 있다. 몇 가지로 나누어 표현하자면
1,서법가와 당대문화,당대예술의 거리감.
2,서법창작중 가지는 느낌과 현대생활중에서 가지는 느낌의 분리--오랫동안 형성된 형식과 감상심리의 계, 전통양식을 취한 작품으로 인해서 설사 현대적인 충동을 표출했을지라도 감상자에게 비슷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서법과 중국전통문화의 서로 깊게 배인 점인지도 모르며 진정으로 서법을 장악하고자 한다면 전통문화수양을 높이는 일은 어떤 서법가를 막론하고 가장 우선되는 임무이다. 그러나, 그들은 확실히 더 많은 정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또한 더 많은 관심을 당대문화수양에 보충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서법의 여가성에 관해서는 하나의 원인이 있다. 이전에는 형식과 정신생활의 생동관계를 꼭 지켰지만 송대이후로는 수양이란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점점 폐단을 형성하고 형식이나 상상력의 경시를 조성하였다. 그러나,
현재에도 여전히 형식의 엄격성에 대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적지 않은 작가들이 작품에 있어 선과 공간의 진행에
대해 반복적으로 고민하는 인내심과 의식을 잃어가고 있다.
이 밖에, 현대적풍격의 창작과 전통풍격은 뚜렷이 두 가지 길을 가고 있으며 그것은 현대적 풍격창작의 심화를
방해하는 것이며 전통 중에서 취하는 심오한 뜻의 통로를 차단하게 될 것이다. 도형과 문화의 내포된 의미를 이용하는 것은 작품중에서 사고의 실마리를 이끌어 내기 때문에 당대예술가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수단이지만 이러한 관점을 유지하여 실행한 서법가는 점점 유실되어 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서법이 당대예술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것 외에도 서법도 중국당대예술의 한 중요한 자원이라는 것을 세인들에게 명시해 주고 있다. 서법자원의 이용은 결코 '현대서법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모든 예술가들이 끊임없는 창작활동을 통해 이러한 귀중한 자료들을 취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서법자원의 현대적인 취함과 엄격한 시각훈련는 반드시 해야 할 선결조건의 하나이다. 여기 전시된 몇 몇의 당대예술가들은 서법이 전통문화자원으로서 도상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가들은 서법의 신비감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것을 취하여 씀에 장애가 있었지만, 오늘날 서법형태학, 서법훈련이론과 상세한 이론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이미 신속하고 정확하게 서법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게끔 충분한 도움이 되고 있다. '서법으로부터의 근원'과 '문자로부터의 근원'은 이미 당대예술중에서 하나의 중요한 명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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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紀之門》은 1월1일부터 10일까지 중국의 사천성 성도에서 열린 전시로서 서법, 중국화, 유화, 조소와장치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열렸다. 모두 50여명의 예술가가 각각 5점정도씩 출품하였으며 지금까지 10여년간 중국에서 비정부적으로 열린 전시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전시였다.
이 "서법부분종론"은 이번 전시의 도록에 실린 구진중선생의 평론문장이다. 중국의 여러 잡지나 TV등의 매체에서도 이번 전시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