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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11 - 어둠 속에서
#1. 도로 / 밤
문호가 운전하는 차가 달려오고 있다. 기억 속에 들리는 영신의 소리.
영신소리 : 죽을 뻔 했는데.. 그 사람이 구해줘서..
플래시처럼 스치는 기억의 장면.
#2. 회상 / 9회 #1. 옥상
영신이 정신없이 말하고 있다.
영신 : 그 사람 맞거든요. 힐러요. 아시잖아요.
#3. 호수공원 (문호 집 근처?)
물 위에 어리는 밤의 불빛들.
문호가 바람을 맞으며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반은 부서진 영신의 휴대폰이다.
폴더를 열어본다. 깨져있는 액정.
영신소리 : 힐러님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4. 회상 / 8회 #20. 문호 집무실
영신 : 이 힐러.. 그 힐러 맞아요?
(중간 편집)
순간 메모지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정후. 어이구...
고개 숙였던 정후가 고개를 드는 그 얼굴 위에서 잠깐 스톱.
#5. 호수공원
멈춰선 문호가 얼굴을 쓸어 올리고 머리를 쓸어 올린다. 잡힐 듯 말듯한 얼굴의 기억.
#6. 회상 / 4회 #52. 썸데이 복도
문호를 발견하고 놀라서 일어서는 영신. 그리고 그 옆의 정후. (방송시에는 나오지 않았던 장면입니다. 예고에만 나왔던)
정후가 영신을 보고 문호를 바라본다. 그 잠깐 드러났던 진지했던 눈빛.
정후의 얼굴이 고장난 화면처럼 잠깐 지직거리다가 선명하게 멈춘다.
#7. 문호의 거실
현관문이 열리고 문호가 들어선다. 거실 쪽으로 이동하며 불을 켠다. 그리고 멈춰 선다.
환해진 거실에 드러나는 테이블 쪽.
거기 테이블 위의 유리상판 위에 올려 있는 트렁크. 활짝 열려져 있고 그 안의 내용이 그대로 보이고 있다.
놀라서 다가서는데. 휴대폰 벨소리.
문호가 휴대폰을 받아 화면을 본다. [발신번호 표시제한]
문호가 받아서.
문호 : 여보세요.
정후소리 : 김문호 기자님. (휴대폰의 프로그램을 통해 음성을 변조시킨)
문호 : 누굽니까.
정후소리 : 힐러라고 알고 계실 겁니다.
문호 : (마음의 격동을 숨기고) 직접 통화는 안한다고 들었는데..
정후소리 : 그러니까요. 이게 원래 안하는 짓인데. 제가 급히 물어볼 게 생겨서요. 이렇게 얼굴을 보면서.
문호. 주위를 둘러보고 뒤로 돌아서는데.
순간. 거실 등이 다시 꺼진다.
현관으로 통하는 긴 복도 저 끝, 현관문 앞?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정후.
정후 : 정보의 댓가는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면 저 같은 업계 최고의 심부름꾼. 최우선 무료 사용권이라든지.
문호 : 질문. 먼저 들어볼까요. 거래는 그 다음에.
정후 : 그 상자 안에 사진. 거기 있는 다섯 사람. 아시죠?
문호 : 알아요.
정후 : 1992년 2월. 그 사람들한테 있었던 일.. 알고 있습니까?
문호 : ... 알고 있어요. 내가 본만큼.
정후 : 어떤 조건이면 말해줄 겁니까?
문호 : (잠시 보다가) 얼굴을 보여줄래요?
정후 : (웃는) 저기요.. 그건..
문호 : (주머니에서 영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어 보이며) 박 봉수.
그늘 속에서, 정후가 멈췄다.
문호 : 그 이름을 가진 기자의 옷에서 나온 이 휴대폰. 요즘 보기 힘든 거라 잘 기억하고 있는데.
채영신 거죠. 엘리베이터 사고 때 잃어버렸고. 그 자리에는 사고를 냈던 자와 힐러가 있었고.
정후가 천천히 들고 있던 휴대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는다.
문호 : 박봉수. 그 얼굴. 다시 한 번.. 제대로 봐야겠어. 보여주겠나?
어두운 그늘 속에서 정후가 움직이지 않는다.
문호 : 그게 내 거래 조건이야. 얼굴을 보여줘. 그럼 알고 싶다는 거 다 대답을 하지.
잠시 후. 정후가 스위치로 손을 뻗는다. 그러자 거실 등이 일제히 켜진다.
문호 눈이 부셨다가 다시 본다.
정후가 뚜벅뚜벅 걸어와 거리를 두고 멈추더니 둘러썼던 후드를 뒤로 젖힌다.
검은 안경을 벗는다. 얼굴을 드러내며.
정후 : (본 목소리) 그새 썸데이에 정이 들어서.. 좀 더 오래 버틸까 했는데 아쉽게 됐네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문호 : (격동되는 마음을 감추고 탁자 위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들더니) 여기 다섯 중에 누구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정후 : (잠깐 문호를 보며 그 질문의 의중을 살피다가) 거기 맨 왼쪽 붉은 옷.
문호 : 서 준석.
정후 : 92년. 그 사람이.. 저지른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문호 : 그런데 혹시 (떨려오는 마음) 모르모르섬이라고 알고 있나?
정후 : ... 뭐요?
문호 : (애써 담담하게)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몰라서.. 그 이름도 몰라서 모르모르섬.
정후. 이 인간이 뭐래는 거야.. 해서 보다가 뭔가 멈칫 걸린다.
정후의 깊은 기억 속에서 언뜻 들리는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
소리 : (아이 두 명. 까르르 웃는)
정후 : (떨치고) 제가요. 지금 얼굴까지 드러낸 건 엄청 진지하다는 얘긴데요. 그러니까..
하는데 다시 멈칫.
기억 속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아소리 : 모르모르섬이다.
정후 : (무시하고) 얘기를 계속하죠.
문호 : 얼마 전 누나가 전화를 해왔지. 도둑이 들었었는데 옛날 친구와 아주 닮아서 놀랐다고.
정후 : ... (본다)
문호 : 아무래도 누나는 나보다 더 잘 기억하고 있었을 거야. 시간이 멈춰 있는 사람이거든. 92년에.
정후 : (이제 문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문호 : 나는 이제야 알겠는데. 이렇게 닮은 거.
정후 : ..
문호 : 비밀이 목숨인 밤심부름꾼 주제에, 얼굴까지 드러내면서 알고 싶어 하는... 사진 속에 이 사람 준석이형.
이렇게 닮은 눈을 가진 너. 서정후.. 너.. 정후니?
그렇게 떨림으로 물어보는 문호를 말없이 보고 있는 정후.
좀 더 선명하게 들리는 기억 속의 목소리.
여아소리 : 정후야.
#8. 회상 / 과거의 집 방 안
까르르 웃으며 달려 지나가는 다섯 살의 정후.
역시 웃으며 그 뒤를 쫓는 지안(영신).
지안 : 정후야아.
그 뒤쪽에서 고등학생인 문호가 (지안이 정후가 잠든 사진을 찍던 그 나이대입니다. 다른 날이라 옷차림은 다른)
의자와 책상 등을 이용, 그 위에 여러 개의 이불 등을 둘러서 텐트?같은 것을 만들고 있다.
그 앞을 아이들이 달려 지나가며 간신이 걸쳐 놓은 것이 떨어질 뻔 하자 얼른 잡으며
문호 : 고만 좀 뛰어라. 어? 니들 계속 뛰면 이 섬에 안 넣어준다.
지안이 정후가 겨우 멈춰서 문호 쪽을 본다.
지안 : 모르모르섬이다. (앞에 기억 속에 들렸던 그 대사)
문호 : 그래.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몰라서. 그 이름도 몰라서 모르모르섬.
정후 : 들어가도 돼요?
문호 : 아직 안되지. (하며 이불 위에 방석 같은 것을 올려 고정시키며) 여기가 어디라고?
애들 : (동시에) 모르모르섬
문호 : 어디 있는 섬이라고?
애들 : (신나서 함께 외치는) 아무도 몰라요.
문호 : 이름이 뭐라고?
애들 : 모르모르섬
문호 : 어허 이름도 모른다니까. 그래서 이 섬에..
하더니 입구처럼 이불 한 쪽을 들춰준다.
문호 : 들어가고 싶은 사람?
애들이 좋다고 꺄 거리며 그 안으로 둘이 들어간다.
문호가 얼른 이불을 내려서 입구를 막아주며.
문호 : 그 안에서는 조용히 노는 거다. 시끄럽게 굴면 해적이 쳐들어오는 거 알지?
문호, 휴우 해서 이쪽에 벌렁 드러눕는다. 보다가 엎어놓은 책을 들어 마저 읽기 시작한다. (무협지 정도?)
그 옆. 이불로 만든 텐트 안에서 애들이 킥킥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불이 안에서 여기저기 찔러대고 울렁거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점점 어두워지며..
#9. 문호의 거실
문호가 부엌 쪽에서 양주를 잔에 따르며.
문호 : 한번 모이면 형들하고 누난 밤새 술 마시고 얘기하고. 그럼 니들 돌봐주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어.
(술잔을 들어 보이며) 마실래?
정후는 아직 혼란 속에 있다. 불편한 표정으로 우뚝 선 채.
정후 : 난 아무하고나 같이 술 안마십니다.
문호 : (씁쓸한 미소) 니들.. 나하고도 친했는데.
정후 : 니들.. 이 나하고 어떤 여자앤가요? 나하고 나이가 비슷한..
문호 : 그래. 길한이 형한테 딸이 있었지.
정후 : 그 애는..
문호 : (끊어서) 죽었어.
정후 : (그런 문호를 빤히 본다)
문호 : 92년에. .. 죽었어.
정후 : 그 해 많이도 죽었네요.
문호 : 어디서부터 얘기해줄까. 그 날..
정후 : (끊어서) 내 아버지가 죽인 사람이 누굽니까.
문호 : 아무도 얘기 안 해주던가?
정후 : 내가 인간관계가 좀 빈약해서요. 누굽니까. 내 아버지가 죽였다는 사람.
문호 : ... 오 길한.
정후 : (그 이름을 들었었다. 저도 모르게 옆의 탁자에 얹혀 있는 다섯 친구의 사진을 본다)
문호 : 그래. 그 다섯 친구 중에 하나야.
정후 : (갑갑해진다. 뭐야 이건) 친구...를 죽였다고.
문호 : 그런데 너, 질문이 틀렸어.
정후 : (속이 편하지 않다. 노려보는)
문호 : 니 아버진 어디까지나 살인용의자였어. 살인범이 아니고. 그 차이를 아나?
정후 : (머뭇..) 알죠. 내가 당해봤으니까.
문호 : 그런데 그 누명을 벗기 전에 죽었지.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니 아버진 계속 살인용의자야.
그걸 벗겨 주고 싶은 거니? 그래서 날 찾아온 거야?
#10. 건물 지붕 위/ 밤
한밤중의 서울 야경. 저 아래 보이는 길에 차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오간다. 사람들도 오간다?.
지붕? 위에 주저앉아 그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정후. 이어셋으로 통화 중이다.
정후 : 아버지 누명을 벗기고 싶으면 같이 하재. 도와주겠대.
민자소리 : 그래서.
정후 : 당분간 썸데이 나갈 생각이야. 박봉수로. 그렇게 옆에 있으라는데?
민자 : 난 그 생각 반댈세. 나 김문호 그 놈, 첨부터 별로였어.
#11. 민자 아지트
민자가 메모지에 낙서를 하면서 전화를 받아주고 있다.
민자 : 너도 봤잖아. 그 놈 언제든지 쉽게, 아주 정말처럼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놈이야.
그런 놈 앞에서 니 맨얼굴을 깠다는 것도 드럽게 맘에 안 들고.
민자가 그리고 있는 낙서는 자기 모습 캐리커처다.
낙서 중인 캐리커처에 콧털도 그려 넣고. 눈에 멍도 들게 하면서.
정후 : 나 어렸을 때 같이 놀아주곤 했대. 나도.. 기억나는 거 같기도 하고.
민자 : 좀 묻자. 이제 와서 니 아버지가 살인 누명을 썼다는 거, 그거 밝히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거냐.
그럼 니 아버지가 하늘에서 감사장이라도 보낸대? 뭐. 택배로?
정후 : 그게..
민자 : 그게 뭐.
정후 : 말을 하고 싶어졌거든.
그림을 그리던 민자의 손이 멈춘다.
#12. 지붕 위 / 밤
정후 : 채영신이한테 말을 하고 싶어졌다고. 내가 사실은 도둑놈이라고.
근데.. 우리 아버진 살인범이라고 말하는 건 좀 그렇잖아. 그건 완전 다르지.
민자 :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한다고?
정후 : 아줌마가 그랬잖아. 내 무인도에 따라가 줄 여자면 괜찮다고. 그럼 시작해도 된다고.
영신이 그 녀석이라면 말해도 될 거 같거든. 내가 누군지. 나랑 같이 가줄 수 있는지.
아마 첨에는 그동안 속인 거 땜에 날 팰라 그럴 거야. 발로 차고.. (혼자 생각에 좀 웃고) 뭐.. 몇 대 맞아주면 되고.
근데 금방 괜찮아질 걸. 그런 놈이거든. 이상한 노래 좀 부르고. 말도 안 되는 춤 한 번 추고. 그럼 풀린다고.
(그러다 귀 기울여) 아줌마? 듣고 있나?
대답이 없다.
정후 : (웃는) 지금 뭔 생각하는지 알거든. 힐러 이놈은 종쳤다. 딴 놈 뽑아야겠다. 으이구 귀찮아라. 그러고 있지?
알어. 아는데.. 내 아버지 누명 풀 때까지만. 응? 내 감이 뭔가 불안해서 그래. 뭔가 자꾸 걸려.
그니까 좀만 더 내 뒤를 봐주라. 내가 잘할게... 아줌마?
#13. 민자 아지트
민자. 웅크리고 그림 그리던 걸 멈추고 허리를 펴고 앉는다.
옆의 모니터를 본다. 거기 메일 박스 리스트. 그 중의 하나 메일 제목이 ‘채영신입니다’
#14. 문호의 거실 / 밤
좀 어둡게 세팅된 조명. 그래서 유리창 밖의 야경이 현란하게 보인다.
거실 탁자(책상)에 앉은 문호가 또 양주잔에 양주를 따른다.
그 앞에는 낡은 카세트테이프 레코더가 놓여져 있다. 그 안에는 카세트 테이프가 들어있다.
문호, 술을 마시며 녹음 버튼을 누른다. 들들 돌아가는 테이프가 투명창 안으로 보인다.
문호가 녹음을 시작한다. 일기를 쓰듯 항상 해온 작업이다. 편하게 수다라도 떨 듯.
문호 : 오늘 준석이형 아들이 찾아왔어. 누나가 맞았어. 준석이 형 닮았다는 도둑. 그 놈이었어.
(취기가 오른 얼굴을 쓸어내리며) 정후가 그날의 일을 알고 싶어 해. 그래서 나.. 그 놈을 끌어 들일 생각이야.
(일어나 서성거리며) 위험하겠지.. 위험한 거 아는데. 누나. 그 놈은 그냥 학교 졸업해서 회사 다니고 그런 애가 아냐.
도움이 될 거라고. 그래서.. (멈춘다) 손을 잡자고 했어. 그래도 되겠지?
문호. 카세트녹음기를 돌아본다.
문호 : 누나 딸. 지안이는 다치지 않게 할게. 아무도 모르게 할게.
테이프는 여전히 돌아가며 녹음중이다.
#15. 썸데이 건물 앞
영신이 출근해서 오고 있다. 속으로 중얼중얼 노래를 부르고 있는 중이다.
걸음걸이가 그 노래에 따라 건들거리고 있다.
슬쩍 주위를 본다. 보는 사람 없다.
영신, 얼른 스텝을 밟아본다. 잘 안 된다. 다시 한 번 밟아본다.
그러는데 뒤에서.
종수 : 채영신 기자.
영신 : 아씨 깜짝이야.
돌아보면 종수가 총총 달려오고 있다. 영신의 옆을 달려 지나치며.
종수 : 뭐하고 있어요. 지금 완전 난리 났는데.
영신 : 뭔 난리. (따라 뛰며)
종수 : 전화 안 받았어요?
영신 : 뭔 전화.
#16. 썸데이 건물 내 계단
뛰다시피 올라오는 종수. 그 옆에 속도를 맞추는 영신.
종수 : 황재국이 자살했답니다.
영신 : 황재국? (놀라서) 설마 그 황재국?
종수 : 예에.
영신 : 말도 안 돼. 그 인간이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아닌데. 장난치는 거죠. 장난이네.
#17. 썸데이 편집실
들어서는 종수와 영신.
사무실 내부는 시끌벅적하다. 여기자는 전화를 하는 중이고.
여기자 : 어제 밤 열한시부터 트래픽 때문에 우리 썸데이, 완전 다운 됐거든요.
그걸 아직도 손봐주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장부장은 자기 자리에서 전화중이고.
장부장 : 몇시라고요. 이야 그거 너무 급한 거 아냐.
뭔 수사발표를 그렇게 일사천리로 해요. 지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부지런했다고.
저쪽에서는 문호가 찬영과 선재에게 수사 지시를 내리고 있다.
문호 : 가면 포토라인이 있을 거야. 되도록 앞쪽에 붙어서 앵글 확보하고. 질문 기회 생기면 어떻게든 끼어들고.
선재 : 근데요. 뭐라고.. 무슨 질문을 하면 되는지 모르겠는데요.
문호 : 필기.
선재 찬영이 얼른 노트 준비를 한다.
종수는 그쪽으로 뛰어가는데 영신은 어쩔 줄 모르고 이 모든 상황을 보다가 이쪽을 본다.
거기 탕비실 안에 정후가 보인다.
#18. 탕비실
정후가 쟁반 위에 얹힌 여러 개의 일회용 컵에 커피를 따르고 있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영신. 정후의 바로 뒤로 오며.
영신 : 박 봉수. 밖에 저거 다 뭐냐. 황재국이 자살했대매.
설마 그거.. 나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 그치? 설마 아니겠지?
하는데. 정후는 전혀 못 들었다는 듯. 쟁반을 들고 영신을 피해 문 쪽으로 간다.
영신. 어라.. 해서 본다. 정후. 나가버렸다.
#19. 썸데이 편집국
정후가 쟁반을 들고 나오는데 뛰어나가던 선재와 찬영이 하나씩 들고 가며 고마워요..
탕비실 문을 열고 나오는 영신. 정후의 옆까지 왔는데. 뭔가 말을 붙이려고 하자
정후는 마치 영신이 안 보이는 듯 그 옆을 지나가며 여기자에게 쟁반을 내밀어준다.
여기자가 커피를 받으며 저만치의 문호에게.
여기자 : 아무래도 서버 호스팅 쪽에서 계속 핑계를 대고 미루는 거 같습니다.
아직까지 트래픽을 처리 못해준다는 게 말이 안 되거든요.
문호 : (가까이 오며 정후의 커피를 받으며) 우리가 자체 서버를 확보하면 어떤가.
여기자 : 밖에서 외압을 넣을 수도 있다.. 라고 생각하면 소용없습니다.
문호 :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여기자 : 외국 서버로 망명가는 방법도 있구요.
정후는 장부장에게 커피를 주러 이동.
영신은 그런 봉수가 몹시 신경쓰이고.
문호 : (여기자와 대화 계속) 그렇게 합시다. 이사 하죠.
여기자 : 지금요?
문호 : (이미 얘기 끝났다) 채영신.
영신 : (봉수에 신경쓰고 있다가 깜짝) 예.
문호 : 느이 집에 주연희씨 있지.
영신 : 예. 우리 집에..
문호 : 황재국이 유서에 주연희 이름이 들어있대. 기자들이 주연희 찾고 있을 거야.
그 전에 먼저 단독으로 인터뷰 따. 그리고 주연희씨는 빼돌려.
영신 : 인터뷰 따고 빼돌린다. 라저. 박봉수.. (같이 가자고 부르는데)
문호 : 종수야.
종수 : 예. 선배.
문호 : 채영신 따라가. 카메라 잡고.
종수 : 알겠습니다.
영신 : 어.. (이게 아닌데 싶어 정후를 보는데)
문호 : 박봉수.
정후 : 예.
문호 : 나갈 준비해. 오늘 나하고 같이 움직일 거야.
정후 : 아 예.
문호는 (웃옷을 가지러)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봉수가 손에 든 쟁반을 어쩔 줄 몰라 하며 자기 책상으로 가서 쟁반을 대충 놓는데..
그 앞에 와 서는 영신.
영신 : 너 지금 나 피하고 있냐?
정후 : (생각해보는) 아..
영신 : (남들 안 듣게 작게) 너 설마.. 거기 니 비밀장소에서 우리가 한 얘기 때문에 이래?
정후 : 선배.
영신 : 그래. 우리 대화로 풀어보자. 나 너하고 이런 거 진짜 불편하거든. 그러니까..
정후 : (봉수답게 순하게. 그러나) 좀 비켜줄래요.
영신 : 뭐?
정후 : 그거. 내 가방.
영신이 내려다보면 책상 위, 정후의 가방을 짚고 있었다. 손을 떼 준다.
정후가 집어 든다.
영신 : (풀이 죽어서) 나하고 얘기하기 싫어?
정후 : .. 예.
하더니 정후가 웃옷에 가방 등을 챙겨 가버린다.
영신이 서운해서 가는 정후를 보고 있는데.
옆으로 와 붙는 종수. 카메라를 든 채.
종수 : 갑시다. 안 가요?
종수가 영신의 시선을 따라 돌아보면
거기 문호와 봉수가 나란히. 뒤에서 보면 사이좋게 둘이 같이 나가고 있다.
#20. 도로 / 낮
정후가 운전하는 차가 달리고 있다.
조수석에는 문호. 운전하는 정후를 힐끗 본다.
이제는 봉수 얼굴에서 벗어나 무뚝뚝해져 있는 정후가 그 시선에 힐끗 돌아본다.
문호, 다시 앞을 보다가 혼자 웃는다.
정후, 불편하다.
문호 : 진작 눈치를 챘어야했는데.
정후 : 절대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문호 : 힐러란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어.
정후 : 온라인 게임마다 많이 나옵니다. 힐러.
문호 : 니 어머니. 한번 찾아뵌 적이 있어. 굉장히 어렵게 찾았었는데. 그때 넌 유학 가 있다고.
정후 : 계속 하실 겁니까? 그거. 친한 척 하는 거.
문호 : (쓰게 웃는) 어쩌다 밤심부름꾼이 됐는지.. 그런 거 물어봐도..
정후 : 물론 대답할 생각 없구요. 사장님.
문호 : 너, 나 삼촌이라고 불렀었는데. 기억 안나?
정후 :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요. 밥 먹을 때. 잘 때. 운전할 때. 누가 말 시키는 겁니다. 그거 아주 열 받거든요.
문호. 웃고. 이제 더 말하지 않고. 앞을 본다.
#21. 페차장
예전과는 다른. 요즘의 분위기로.
정후가 운전하는 차가 들어와서 멈춘다. 문호와 정후가 차에서 내린다.
문호 : 여기가 우리 집에서 하던 폐차장인데. 그 때 다섯 친구들에겐 아지트 같은 곳이었어.
정후가 불퉁한 얼굴로 둘러본다. 뭐.. 딱히 감흥은 없다.
문호 : 그 다섯 명은 말하자면 해적방송 같은 걸 했어. 술집에서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잡혀가던 시절이었는데.. 정말 용감했지.
그 시대에 대해서 좀 아나?
정후 : 모르고요. 알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으니까 본론으로 좀 바로..
문호 : 저기 (하며 가리키는 곳) 저쯤에 모여 있곤 했어.
문호가 기억을 더듬으며 바라보는 곳.
정후도 할 수 없이 그쪽을 본다.
그 폐차들이 쌓여 있는 빈 장소에서 디졸브되며..
#22. 회상 / 2회 #54. 폐차장
준석이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방송 도구들을 조립 내지는 수리하고 있다.
문호소리 : 니 아버진 언제나 무슨 기계를 고치고 있었어.
(디졸브) 버스 안을 뛰어가는 어린 문호.
문호의 시선에 보이는 명희와 길한.
문호소리 : 길한이형하고 명희누나는 다음 방송 대본을 쓰거나 웃고 있었고.
#23. 회상 / 7회 #43. 폐차장
(디졸브) 영재와 함께 놀고 있는 청년들..
문호소리 :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다 그래. 웃고. 다정하고. 따뜻하고.
그들의 웃음소리.
#24. 폐차장
기억에 잠겼던 문호가 돌아보자 정후가 불퉁한 얼굴로 보고 있다가.
정후 : 그게 언제라고요?
문호 : 81년.
정후 : (갑갑하다.) 설마 81년부터 우리 아버지 죽은 92년까지 연대순으로 다 읊을 생각은 아니시겠죠?
우리... 그러지 말죠.
문호 : 누구하고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거나.. 그동안 어찌 지냈는지 알고 싶다거나 그런 기분 모르나?
정후 : 알아야 됩니까?
문호 : (따뜻하게 보다가) 너. 친구는 있니?
정후 : (어이없다)
문호 : 친구가 있냐고 물어봐 준 사람은 있고?
정후가 문호를 딱하다는 듯 보다가.
정후 : 죄송한데요. 저 아직 사장님 못 믿습니다. 나 같은 밤심부름꾼에게 돈 쳐 들여서 사람 뒷조사하고.
그 사람이 일하는 회사까지 돈 쳐들여 사더니. 이제 그 사람 옆에 붙어서 선배 소리 듣고 계시죠?
그러면서 그 당사자한테는 아무 말도 안하고.
문호 : (조용히 보는)
정후 : 대체 채영신을 왜 찾았냐. 지금 뭐하시는 수작이냐. 묻고 싶은데요.
문호 : (고개를 젓는)
정후 : 고객의 비밀은 묻지 않는 게 제 직업신조니까. 더 묻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장님도 그만하시죠. 내 친구는 알아서 뭐하시게요.
문호가 좀 웃더니 다른 쪽으로 걸어간다.
정후가 내키지 않아서 따른다.
문호 : (한쪽을 가리키며) 지금은 없어졌는데 저쪽에 폐차장 사무실이 있었어.
이 폐차장은 그 때 내 형이 물려받아서 운영하고 있었고.
문호가 가리키는 곳.
이제는 아무 것도 없는? 과거에 사무실용 가건물?쯤이 있던 장소.
#25. 과거 / 사무실 내부
92년도의 폐차장 사무실이다.
좁은 실내. 싸구려 손님용 소파. 낡은 철제 책상. 장부 등이 꼽혀진 싸구려 책꽂이 등.
젊은 시절의 문식은 책상에서 장부 정리 중이고.
고등학생인 문호가 소파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린다.
젊은 길한과 준석이 들어선다. 신문기자 차림.
준석은 사진기자. 큼직한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고.
문호가 인사를 하고 문식이 웬일이야.. 하며 맞아들이고.. 하는 위로.
문호소리 : 92년 그 날. 길한이 형하고 준석이 형이 찾아왔지.
두 사람은 그 때 제법 이름난 기자 콤비였어.
길한의 얼굴에서 잠깐 스톱하며.
문호소리 : 길한이 형은 기사를 쓰고
준석의 얼굴에서 잠깐 멈추며.
문호소리 : 니 아버지 준석이 형은 사진을 찍고. 둘이 특종도 꽤 많이 터뜨렸어.
// 동장소 시간경과
문식의 책상에 앉아 영어 단어를 쓰며 외우고 있던 문호가 슬쩍 고개 들어 본다.
세 형이 소파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길한 : 정보가 틀림없어. 내일 그 비자금을 실은 차가 이동할 거야.
우리는 그 뒤를 미행해서 누구한테 전달되는지 볼 생각이야.
준석 : 보기만 해선 안 되고 내가 찍어야지. 찍어서 올해의 보도상도 타고.
길한 : (준석의 머리통을 눌러 말을 막으며 계속 문식을 설득하는 중) 그래서 차 좀 빌리러 왔다. 쓸 만한 놈으로 하나 골라주라.
준석 : (길한의 손에서 벗어나며) 우리가 추격전을 해야 되거든. 영화에서 봤지. 카액션. 예이.
길한 : 아 쫌.. 넌 어떻게 세상 모든 게 그렇게 재밌냐.
준석 : (당연하다는 듯) 재밌는데.
문식 : 차만 빌려주면 되고?
길한 : 에이.. 그건 아니지.
준석 : 드라이브킹. 김문식이 빠지면 카액션이 아니고 카멜러가 되지.
길한 : 고만해. 안 웃겨.
준석 : (진지하게) 웃긴데? 카가 하는 멜러. 카멜러. 안 웃겨?
그런 둘을 보며 웃는 문식. 그때만 해도 해맑게.
#26. 폐차장 / 현재
문호 : 그 다음날 아침. 내 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세 사람은 함께 떠났어.
그리고 그 날. 길한이 형은 죽었고. 니 아버지는 그 형을 죽였다는 죄로 잡혀갔고.
정후 : 또 한 사람은요. 사장님 형.
문호 : (잠깐 사이) 그 살인사건의 증인이었어.
정후 : (머리칼을 긁는다. 아직 뭔 소린지 모르겠다)
문호 : 우리가 찾아야 될 건. 그 날 잡혀간 준석이 형의 조서야.
경찰 조사에서 준석이 형은 분명히 그 날에 있었던 일을 몇 번이고 말했을 거야.
정후 : 그런데요.
문호 : (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며) 내가 여러 루트로 조사했는데 계속 막히더라고.
경찰조서는 보여줄 수 없대고. 부검 결과는 분실됐고. 이건 내가 그동안 취재한 것들이야. 다 넘겨줄게.
정후 : (받아든다)
문호 : 조심해라.
정후 : 그러죠.
문호 : 나도 널 믿지 못했어. 여러 번 당했거든. 내가 고용했던 자들이 다음날이면 내 적한테 넘어가는 거.
그래서 경찰에 말했었다.
정후 : 아아..
문호 : 채영신이 옆에 힐러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아마..
정후 : 봤습니다. 채영신을 따라다니는 분들. 오늘은 먼저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조사해야 될 게 좀 많아서..
문호 : 그래.
정후, 차 열쇠를 휙 던진다. 받아드는 문호.
정후 : 그럼.
봉투를 들어 보이더니 선뜻 돌아서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는 문호. 그 눈에 보이는 모습.
걸어가는 정후의 옆에 준석이 나란히 함께 걸어간다. 비슷한 걸음걸이로.
정후가 걸어가다가 발에 걸리는 깡통을 툭 걷어차자. 그 옆에서 준석도 뭔가를 툭 걷어차는 시늉을 한다.
다시 걸어가는 정후.
그 옆을 걷는 준석. 문득 이쪽의 문호를 돌아보며 활짝 웃는다.
문호. 마음이 아파서 그저 보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정후의 옆을 준석이 나란히 걸어간다.
#27. 경찰서 외경
#28. 경찰서 내부 회의실 앞 복도
윤동원 형사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다 보면.
거기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막 회의를 끝낸 듯. 형사들이 몇 명 나오고 있다.
그 중에 차형사가 나오다가 윤동원을 본다.
윤동원 : 어라. 벌써 끝났어요? (하며 자기 시계를 보는데)
차형사가 다른 형사들을 보며 윤동원을 밀어서 다시 회의실로 들어간다.
#29. 회의실 내부
차형사가 속이 안 풀리는 듯. 서성거리면서
차형사 : 이렇게 빠를 수가 없습니다. 황재국 사장. 부검 결과 벌써 나왔어요. 자살할 때 복용했을 거라고 추정되는 약물 검사
바로 나왔구요. 그 약물이 고성철을 죽였던 바로 그거다. 봐라 기차표도 있잖냐. 그러니 황재국은 고성철의 살해범이다. 끝.
윤동원 : 그래서 수사 종결 된 겁니까?
차형사 : 예에. 끝이라니까요.
윤동원 : 뭐.. 이렇게 담당 사건을 빨리 해결하셨으니 축하라도..
차형사 : 그 뿐이 아닙니다. 황재국이 유서가 무슨 종합선물세트에요. 그 유서에 (하다가 멈춘다)
직원 하나가 들어와서 설치되었던 프로젝트?를 치우기 시작한다.
차형사가 윤동원을 더 구석으로 몰고 가며 낮은 소리로.
차형사 : 그 유서에 이름이 몇 개 있었잖아요. 그 중에 김의찬 의원도 있고. 그 사람들이 무슨 상납을 받고 뭐 어쩌고..
윤동원 : 힐러. 그 놈이 아주 높은 분하고 손잡은 거 같네요. 살인용의 같은 건 아주 쉽게 풀어줄 수 있는 분하고요.
차형사 : 또 그 힐러란 놈입니까?
윤동원 : 5년이라니까요. 그놈이 저를 이렇게 물 먹인 세월이.
윤동원이 사람 좋게 웃는다.
#30. 민자 아지트
민자가 잔뜩 집중을 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민자가 작업하는 메인 모니터에는 제복의 경찰이 찾았던 진짜 박봉수의 사진이 찍혀 있는 주민등록증 사본.
민자가 혀까지 빼물고 마우스를 조작해서 실제 박봉수의 사진을 도려내고 정후의 사진을 얹어 넣고 있다.
제대로 들어맞은 거 같다. 휴.. 해서 오른쪽 어깨를 돌리다가 멈칫.
저쪽에 있는 모니터를 본다. 거기 뉴스가 방송되고 있는데. 아래 자막이 흐르고 있다.
[성접대 의혹 건설업자 황모씨 자택에서 자살 ]
민자가 급히 키보드를 쳐서 그 모니터의 볼륨을 높힌다.
황재국 사장의 집 앞에서 하는 듯한 리포트. 화면을 향해 남자 기자가 리포트를 하고 있다.
기자 : (강남구 대치동 소재의) ...자택에서 재국건설 황모 사장이 숨져 있는 것을 경호원이 발견하고 신고했습니다.
시신이 발견된 서재에서는 약물과 유서가 발견되었으며..
#31. 영신네 집 거실
그곳에 놓여있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같은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채 치수가 심각한 얼굴로 휴대폰 전화를 하고 있고.
철민이 혼자 심각하게 리모컨을 들고 서서 뉴스를 보고 있다.
화면에서는 기자가 리포트 중.
기자 : 유서에는 고위직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하고 특혜를 받은 사실 등이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화면이 바뀌고 경찰서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어눌하고 딱딱하게.
서장 : 저희 경찰에서는 특별 수사팀을 꾸려서 조사 대상의 지위 고하 여부와 상관없이 성역 없는 수사를 해나갈 각오입니다.
안쪽에서 연희가 나오고 있다. 그 옆에서 영신이 연희의 가방을 들고 나온다.
영신 : 아부지. 연희씨 준비 다됐는데.
치수 : (전화를 끊고 오며) 연희씨하고 황재국이 껀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처리가 날거 같고요.
김의찬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문젠데. 연희씨는 아무 걱정 말고 일단 속초에 가 있어요.
철민 : 그 집에 아들이 감옥 갈 뻔 했는데 우리 형님이 거의 무료로 손을 써줬거든요. 연희씨 가면 아주 잘 돌봐줄 겁니다.
뭐 섭섭하게 굴면 전화하세요. 내가 바로 달려가서 사람의 도리에 대해서 약간 가르쳐주면서..
치수 : (철민의 뒤통수를 때려서) 넌 어떻게 그렇게 끊을 데를 모르니. 가요. 터미널까지 태워줄게. (영신이 든 가방을 받아드는데)
연희 : 변호사님.
치수 : 부탁인데 우리 인사 같은 건 하지 맙시다. 내가 그런 걸 아주 힘들어 하거든 ..
연희 : 고맙습니다.
연희가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치수.. 에혀.. 철민이 옆에서 이거 뭐 어쩌겠냐고 손짓으로..
고개를 든 연희가 영신을 돌아본다. 영신도 난감해서.
영신 : 저도 인사는 별로 안 좋아합니다.. 우리 서로 했다고 치고 넘어가면..
하는데 연희가 영신을 끌어안는다. 영신이 아..하하.. 당황.
연희 : 평생 안 잊을께요.
영신 : 잊으면 안 되죠. 내가 언제 찾아가서 빚 갚으라 그럴지 모르는데.
웃으며 치수를 보면. 치수는 자기 손목시계를 가리켜 보인다. 빨리 끝내라고.
#32. 까페 일층
철민이까지 자리를 비운 까페.
종수가 카운터 뒤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데.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선다.
종수 : 어서 오십셔.
하고 보는데 들어서는 이는 윤동원이다.
종수 : 뭐 드시겠습니까. 그냥 커피는 제가 드릴 수 있고. 복잡한 커피는 사람을 불러야하는데.
윤동원 : 채영신씨.. 여기 계시죠? 아까 일루 왔다 그러던데.
#33. 치수 사무실
영신이 윤동원을 안내해 먼저 들어와 소파를 가리키며
영신 : 일루 앉으세요.
윤동원 : (앉지는 않고 사무실을 구경하며) 어우. 신선하네요. 까페와 변호사 사무실의 합체.
영신 : 한 쪽은 아버지 직업. 다른 한 쪽은 취미라고 하시네요.
윤동원이 이리저리 다니며 구경하며
윤동원 : 황재국 사장이 죽었드라구요.
영신 : 예. 저도 듣고 놀라서..
윤동원 : 혹시 아버님. 변호사일 하시면서요. 여기 의뢰하러 오시는 분들. 상담 내용을 녹화하고 그러세요? 몰래?
영신 : (어이없어 웃는) 말도 안돼. 아뇨오.
윤동원이 가구 사이에서 몰래카메라(정후가 심어놓은)를 하나 꺼낸다.
윤동원 : 여기 하나. 그리고... (방을 둘러보더니) 사각이 없게 다 찍으려면 저쯤이 좋을 거 같은데..
그쪽으로 걸어가더니 기웃기웃.. 그리고 카메라 하나를 더 찾아낸다.
영신이 놀라서 다가와 윤동원의 손에 있는 카메라를 들여다본다.
영신 : 아니 대체 어떤 시러배 잡놈이 남의 집에 이런 걸.. (하다 아차해서 보면)
윤동원 : 첨 보는 거에요?
영신 : (살피듯 윤동원을 보다가) 여기 왜 오신 거에요? 이런 게 있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윤동원 : 힐러 아시죠?
영신 : (표정 변화 없이 보기만)
윤동원 : 누가 제보를 해줬어요. 채영신 기자 옆에 힐러가 있을 거라고. 모르세요?
영신 : 힐러. 밤심부름꾼. 아주 비싸고. 아무도 그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여기까지 알아요.
윤동원 : 황재국 사장 집에서 중요한 동영상이 없어졌어요. 그러더니 썸데이 뉴스에서 그 동영상을 터뜨렸죠.
그리고는 황재국이 죽었어요. 신기하죠?
영신 : 그 중에 어느 부분이요?
윤동원 : 황재국 집에서 동영상을 빼낸 거. 힐러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황재국이 죽은 것도.. 혹시.. 아닐까요?
영신 : 제가 듣기로.. 힐러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던데요.
윤동원 : 그 정보. 업데이트가 좀 늦는 거 같네. 우리는 힐러를 최소 두 건 이상의 살인사건 용의자로 생각하고 있어요.
영신. 아무 표정을 짓지 않으려 애쓰며 윤동원을 본다.
윤동원 : 더 신기한 건 말이죠. 힐러의 첫 번째 살인용의를 이번에 죽은 황재국이 자기 짓이라고 자백을 했어요. 유서에다가.
아무도 안 물어 봤는데.
영신 : 근데요.
윤동원 : 기자분이시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혹시 그 유서. 누가 옆에서 불러주면서 쓰라고 강요한 건 아닐까요. 아님 대신 써줬나.
난 막 그런 상상이 드는데..
영신. 그저 보고 있다.
#34. 정후 스튜디오
정후가 소파 앞의 테이블에 늘어져 있던 쓰레기를 주욱 쓸어서 쓰레기 봉투에 한꺼번에 쓸어 넣는다.
그렇게 비워진 테이블 앞에 앉아서 문호에게서 받은 봉투를 꺼낸다.
봉투 안의 내용을 꺼내 테이블 위에 늘어놓으며. 하나씩 들춰보며 (별첨)
정후 : 김문호의 취재 노트 같은 게 있고. 신문기사도 있고.. 이건 뭐지. (메모한 종이 같은 것을 들춰보는데)
민자소리 : 힐러야.
정후 : 그때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서. 검찰. 담당형사 이름. 그런 게 쭉 적혀 있는데..
민자소리 : 메일이 하나 왔다. 사실은 온지 쫌 됐는데. 내가 고민이란 걸 해보느라고..
정후 : 아줌마. 미안한데 나 이거 끝내기 전에 다른 일 못 받거든. 이해 좀 해줍시다.
민자소리 : 발신인은 CYS골뱅이 에스오엠이디에이와이....
정후 : (앞에 있는 자료에 정신이 팔려서 대충 들으며) 읽어봐봐.
민자소리 : 나더러 읽으라고?
정후 : 언제는 뭐 내가 읽었나. 뭔데.
민자소리 : 메일 제목. 채영신입니다.
정후 : (멈췄다.)
민자소리 : 힐러에게 의뢰를 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하는지.. 얼마큼 큰 수고비가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대충 잘라서)
정후 : 스톱.. (테이블을 건너 휴대폰이 있는 사이드 의자까지 가느라고 엎어질 뻔 하며 휴대폰에 대고 소리 지른다.)
내가 읽어. 내가 읽으니까 보내라고. 아줌마아.
정후 휴대폰을 부여잡고 기다린다.
잠시 후. 휴대폰에서 디링 소리가 난다. 후딱 메일을 연다.
휴대폰 화면에 보이는 메일 제목. (전달로 온)[채영신입니다]
#35. 민자 아지트
민자가 의자에 길게 기댄다. 두 발을 테이블에 올리고. 까딱거리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몸짓도 좀 하며.
민자 : 내꺼 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 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36. 정후의 스튜디오
정후가 휴대폰의 메일을 들여다보고 있다.
영신소리 : 이 메일이 제대로 힐러님에게 전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정후. 뭔가 얼떨떨한 기분이 돼서 고개를 든다. 멍하다가 다시 읽는다.
영신소리 : 그래도 쓰겠습니다.
#37. 영신의 방
샤워를 마친 영신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들어와 거울 앞에 앉는.
영신소리 : 나는 채영신입니다. 난.. 힐러님. 당신을 만나야겠습니다.
#38. 정후의 스튜디오
정후가 어쩔 줄을 모르고 휴대폰을 보며 생각에 잠겨 서성이다가 아까 옆에 모아놓았던 쓰레기 봉지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 한다.
영신소리 : 보지 말라고 하면 또 눈을 가릴게요.
#39. 영신의 방
영신이 화장을 한다. 서툴게 눈을 찌푸리고 입까지 비뚤어져서 마스카라를 칠한다. 된 거 같다.
만족해서 눈을 깜박이며 마스카라 뚜껑을 닫고 다시 거울을 봤더니.
너무 두껍게 칠한 마스카라가 눈 아래로 죽죽 흔적을 남기며 묻어있다.
영신소리 :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면 아무 소리 내지 않고 가만있을게요.
#40. 정후의 스튜디오
정후가 창문 앞에서 야경을 내다보며 서 있다.
영신소리 : 내가 이렇게 원하면 당신이 내 말을 들어주고.. 나에게 와주고.. 내 뒤의 어딘가에서 나를 봐준다고...
그것만 알 수 있음 좋겠어요. 그거면 돼요. 그러니까 이건 데이트 신청이기도 합니다. 받아주겠어요?
정후가 문득 빠르게 걸어간다. 그 옆엔 무인도의 사진이 있지만 그 쪽은 돌아보지 않는다.
// 옷방. 정후가 커튼을 휙 젖힌다. 주욱 걸려 있는 검은 작업복들.
들리는 민자의 소리.
민자소리 : 그래서 어쩌겠다고.
정후, 대답하기 싫다. 그냥 옷들을 손으로 훑어보는...
민자소리 : 데이트라는 걸 하겠다고? 하지 마.
정후, 옆의 커튼을 젖힌다. 거기는 일반인용 색깔 옷들이 걸려 있다.
민자소리 : 니가 니 입으로 그랬자네. 니 아부지 일. 깨끗하게 마무리 지을 때 까지는 채영신이하고 엮이지 않겠다.
정후 : (일반인용 옷을 하나 골라내며) 눈 가려 준대잖아. 말 한마디 안 해도 된대. 지가 지입으로 그렇게 말하잖아.
민자소리 : 그런 그지 발싸개 같은 데이트가 세상에 또 어디 있냐.
정후 : (멈칫해서) 왜. 뭐.
#41. 민자 아지트
민자가 뜨개질하던 것을 탁 던져 놓으며
민자 : 까놓고 말하자. 채영신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괜찮아. 지 아버지 직업 괜찮고. 지도 번듯한 정규직 갖고 있고.
성격도 그만하면 나쁘지 않아. 가끔 골 때려서 그렇지. 생긴 거? 상급이지.
정후소리 :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아줌마 난..
민자 : 닥치고 끝까지 들어봐. 그런 애라면 성격 좋고. 직장 탄탄한 훈남. 충분히 만날 수 있어.
#42. 정후 스튜디오
정후는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이다.
민자소리 : 평생 알콩달콩 지 마누라 새끼 챙기면서. 아파트 평수 늘려가면서. 노후 연금보험도 들고,
그렇게 같이 살아줄 놈, 널렸다고.
정후. 반박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할 말이 없다.
민자소리 : 근데. 얼굴 한번 제대로 보여준 적 없고. 지 이름 하나 제대로 깔 수 없고. 기껏해야 무인도 가잔 소리밖에 못할.
너 같은 놈이 왜 그런 애 마음을 흔들어.
정후 : ... (머뭇거리며) 보여주면 되지. 내 얼굴 같은 거..
민자소리 : 야 이 똥강아지야.
#43. 민자 아지트
민자 : 채영신이 힐러의 얼굴을 알게 됐는데, 경찰에 입을 다물어? 그럼 걔는 바로 공범이 되는 거야.
그게 몇조 몇항에 무슨 범죄인지 알려줘?
민자 기다린다. 정후는 대답이 없다.
민자 : 그러니까 힐러야.
#44. 정후의 스튜디오
정후가 우뚝 서 있다.
민자소리 : 하지 마. 걔 그냥 냅 둬.
정후.. 자기 손에 들린 옷을 보고 있다가.
정후 : 그래도.. 물어봤는데.. 대답은 해야 되잖아. 대답은..
#45. 영신의 방
다시 말짱해진 얼굴의 영신이 마지막으로 화장대? 앞의 립스틱을 집어 든다. 정성껏 입술에 바른다.
#46. 까페 일층 / 밤
문을 닫은 뒤의 까페. 불은 다 꺼져서 어두운데.
영신이 외투와 가방을 껴안은 채 살금살금 내려온다. 아버지 몰래 나가려는 중이다.
입구 쪽으로 가려다 문득 멈춘다. 채치수 사무실 쪽을 돌아본다.
윤동원소리 : 제보해준 분은 채기자의 안전을 몹시 걱정하더라고요.
#47. 회상/ 채치수 사무실
윤동원과 영신. 아까의 상황
윤동원 : 나도 힐러를 잡으려면 채기자 주위에서 조용히 잠복하는 쪽이 훨씬 유리한데 말이죠. 걱정이 돼서요.
내가 힐러 전문이거든요. 그 놈은 선악도 없고, 사회정의, 애국애족 이딴 거 다 없어요. 그냥 돈 많이 주는 놈 편이에요.
그런 놈이 살인도 하기 시작했다? 무섭잖아요.
#48. 까페 일층
영신, 생각을 떨치고 창문 쪽으로 가서 몰래 밖을 엿본다.
#49. 채치수 가게 앞 / 밤
이만치 떨어진 곳에 주차되어있는 승용차. 그 안에서 형사 둘이 잠복 중이다.
하나는 의자를 뒤로 젖혀놓고 잠이 들어있고, 또 하나는 졸린 얼굴로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치수네 가게 입구 쪽을 본다.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인다. 다시 게임을 한다.
// 치수 가게 앞 , 입구 쪽이 아닌 담장 쪽으로 영신이 납작 기어서 이동하고 있다.
나무 틈새로 몰래 형사 쪽 차를 살핀다. 다시 오리걸음으로 이동해서 반대쪽의 낮은 담장을 넘어간다.
#50. 도심 거리
늦은 도심의 거리를 걸어가는 영신. 춥다. 호오.. 두 손에 입김도 불어넣으며.
영신소리 : 데이트는 어떻게 하는 건가하면요. 일단 둘이 같이 걸어야 돼요. 나란히 웃고 떠들고.. 뭐.. 가끔 싸우기도 하면서.
같이 걷는 거에요.
영신, 걷다가 보는 곳. 저 앞에 오고 있는 커플. 남자가 여자를 감싸다시피해서 걸어오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둘이 뭔 얘기를 했는지 웃으며 영신의 옆을 지나쳐간다.
영신. 어쩔 수 없이 슬쩍 돌아본다.
#51. 노점상
영신이 꼬치 어묵을 들고 먹고 있다. 컵의 국물도 마신다.
옆에 커플 한 쌍이 끼어드는 바람에 옆으로 밀린다.
어묵을 베어 먹으며 옆을 슬쩍 본다. 둘은 번갈아 주문을 하고 있다.
영신소리 : 걷다 보면 배고플 거 아니에요. 그럼 먹어야죠. 뭐 먹을까. 난 이거. 아니야. 난 저거.
야아 넌 어떻게 맨날 지 좋아 하는 것만 먹자 그러냐. 아 내가 언제?
#52. 영화관 앞
영신이 다가온다. (영화 포스터들이 보여도 좋고)
영신이 영화 포스터를 보며
영신소리 : 역시 데이트라면 영화를 봐야죠. 사람 많은 데 안 좋아하죠? 그럼 심야극장 어때요. 사람들 별로 없고. 있어도 깜깜하고.
...어떤 영화 좋아해요? 나란히 앉지 못해도 좋으니까 그냥 같은 영화를 봐요.
우리. ...이번 금요일 밤. 영화관에서 기다릴게요. 얼마나... 기다리면 돼요?
영신, 춥다. 유리문의 가운데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자동 회전문이다.
영신. 그 회전문으로 안에 들어간다.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시간이 흐른다.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영신. 벽에 기대기도 하고.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기다리기도 하고.
자동회전문으로 돌아서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기도 하고. 벽에 이마를 박고 서 있기도 하고..
마지막 영화가 끝났는지 우루루 사람이 나오고. 더 들어가는 사람은 없고.
점점 지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이제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정말 심야.
유리창으로 보이는 안의 상황. 극장 직원인 듯한 사람이 오더니 영신에게 뭐라 말한다.
영신이 할 수 없이 유리문 밖으로 나온다.
안에서 직원이 문을 잠근다. 회전문도 잠기고 멈췄다. 안의 불이 다 꺼진다.
영신. 할 수 없다. 몇걸음 걷다가 멈춰 미련이 남아서 잠긴 문을 다시 돌아보고.
또 터덜터덜 몇 걸음 걷다가. 어? 멈춘다. 어어. 해서 돌아본다.
거기 자동회전문이 저 혼자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영신, 놀라서 보다가 조심스레 다가간다. 유리창 안의 실내는 아직 어둡다.
영신이 심호흡을 하고 그 돌아가는 회전문으로 들어선다.
#53. 영화관 내부
들어오는 영신. 이내 멈춰 선다. 내부는 다 불이 꺼져서 어둡다.
솔직히 무섭다. 몇 걸음 더 걸어 들어온다. 다시 멈춘다. 들어온 입구를 돌아본다. 그 쪽은 환하다.
다시 돌아나가고 싶은 마음 잠깐.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걸어 들어간다.
// 코너를 돌았는데. 거기 복도에 마치 야간 활주로의 등처럼 작은 등불이 점점이 두 줄로 갈 길을 표시하고 있다.
영신, 그만 웃는다. 그 등불 사이를 걸어간다. 점점 빨리.. 총총 뛰듯이.
등불은 어느 상영관 입구까지 이어져 있다.
영신이 조심스레 그 상영관의 문을 연다.
#54. 상영관 내부 (VIP관?)
영신이 들어선다.
약한 조명만 밝혀진 상영관. 그 가운데 환한 등불이 있다. 그 자리로 간다.
거기는 테이블에 작은 램프와 팝콘과 콜라가 준비되어있다. 그리고 토끼 인형이 하나 놓여있다.
영신이 웃으며 인형을 집어 드는데.
영신이 한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에서 문자 수신을 하는 신호가 나더니 인형에서 소리가 난다. (민자의 베이비 버전?)
인형 : 어서 와. 채영신.
영신 : (그만 소리 내 웃는다. 다시 문자가 수신되며)
인형 : 어떤 영화를 좋아해? 고전명작에서 최신상영작. 코믹. 멜러. 액션. 원하는 대로. 말만 하셔.
영신이 인형을 안은 채 의자에 앉으며
영신 : 뭐가 좋을까.. 상영시간이 제일 긴 걸로 할까.
그러다 영신이 숨을 죽인다.
// 저 뒤쪽. 상영관의 문이 열린다. 그 문으로 들어서는 발(정후의).
// 영신이 뒤를 돌아보지는 않은 채 귀를 기울인다.
// 영화관의 양탄자 바닥인데도?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의 느낌? 정후다.
정후가 일반복 차림으로 걸어와 영신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저 뒤의 의자에 자리잡고 앉는다.
그 의자를 젖히고 앉는 소리의 느낌.
// 영신 그대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상영관의 실내등이 일제히 꺼진다. 영신이 앞 테이블에 있던 램프의 불을 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는 사운드.
// 정후가 앉아서 저 앞의 영신을 본다.
영신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영화를 보고 있다. 토끼 인형을 안은 채.
// 영신이 영화를 보고 있다가 아아.. 아쉬운 듯. 탄성을 낸다.
// 정후가 이제는 화면을 보고 있다. 이게 뭐야 싶은 얼굴로 불편하게 보고 있다.
인간이 나오는 영화는 본 기억이 거의 없다.
// 영신이 영화를 보다 하하 소리 내어 웃는다.
// 정후가 영화를 보며 활짝 웃고 있다. 진짜 웃기다.
그렇게 앞 뒤로 떨어진 채. 영신과 정후가 함께 영화를 보고 있다.
// 영화가 끝났다. 스크린이 어두워진다.
// 영신이 말없이 어두워진 스크린을 보고 있다. 약한 실내 조명등이 켜진다.
영신이 일어나 뒤를 돌아본다. 뒤에는 아무도 없다. 정후가 있던 자리도 이미 비어있다.
영신이 가방을 챙겨 등에 메고. 인형을 한 손에 안고 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 이만치, 영신 쪽에서는 보이지 않을만한 그늘 속에서 정후가 그런 영신을 보고 있다.
영신이 멈춰서더니 이쪽이 아닌 다른 쪽을 돌아본다.
단념하는 듯. 다시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정후가 소리 없이 벽에 붙어 그쪽으로 이동한다. 점점 빨리. 이렇게 그냥 보내기는 싫다.
// 영신이 거의 문으로 다가왔다. 문을 열고 나선다. 그렇게 막 나서려는데.
문 뒤쪽에서 뻗어 나온 손이 영신의 손목을 잡는다.
영신이 아.. 낮은 소리를 내며 멈춘다.
정후가 문 뒤에 숨은 채 영신의 손목을 잡았던 손을 미끄러뜨려 영신의 손을 편다.
이제 서로가 편 손바닥을 마주 대고 있다.
영신이 돌아보지 않은 채. 자신이 먼저 움직여 깍지를 낀다. 정후도 마주 깍지 껴잡는다.
그렇게 서로의 손을 얽어 꼭 잡은 채. 그대로.
영신이 어쩐지 눈물이 고이며 미소 짓는다. 이제 힐러의 마음을 전달받았다는 느낌.
잠시 후 손이 풀린다. 영신. 여전히 돌아보지 않은 채 미소 지으며 걸어간다.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정후가 영신을 지켜본다.
영신은 씩씩하게 걸어가고 모퉁이를 돌아간다. 돌아보지 않고.
#55. 민자 아지트
민자가 키보드를 드륵 뒤로 물리고 뜨개질하던 것을 올려놓는다. 코를 세어보며
민자 : 극장 앞에 차 대기시켜놨다. 잘 데려다 줄 거야. 그래서.. 너 그렇게 기어이 대답이란 걸 해서.. 뭐가..
그러다가 에잇. 관두고 뜨개거리를 퍽 밀쳐놓는다.
두 발을 테이블에 낑낑 올려놓고 뒤로 기댄다.
#56. 극장 내부 일각
정후가 걸어간다. 영신이 돌아갔던 모퉁이에 멈췄다가 가만 고개를 내밀어 본다.
회전문으로 나가는 영신의 뒷모습이 보인다.
#57. 극장 입구 밖
회전문을 통해 나오던 영신이 멈칫해서 본다.
거기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는데. 차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제복의 운전기사.
그 기사는 영신이 안고 있는 토끼인형과 페어가 되어 보이는 비슷한 인형을 안고 있다가 영신을 보더니 인형을 들어보인다.
영신. 웃음이 나오는데. 기사가 뒷문을 열어준다.
영신이 극장 쪽을 돌아본다. 유리창 내부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58. 극장 내부
정후가 이쪽을 돌아보는 영신을 보고 있다.
영신이 고개를 돌리더니 차에 탄다. 기사가 문을 닫아주고 운전석 쪽으로 간다.
정후가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 나선다. 그러나 차는 출발해서 가버렸다.
#59. 치수의 집 앞 / 밤
형사 중의 하나가 화장실에라도 다녀오는 듯. 잠복하고 있는 차에서 떨어진 이쯤에서 걸어가고 있다.
주머니에서 껌을 찾아 껍질을 벗기려다가 멈칫 선다.
기웃해서 보는 곳. 저 앞에 조심조심 가고 있는 그림자. 영신이다.
영신이는 잠복해 있는 차 쪽에만 신경 쓰면서 벽에 붙어 쭈그려 이동하고 있다.
형사가 이것봐라.. 해서 구경한다.
영신은 아까 넘어왔던 뒷담으로 넘어 들어간다. 형사가 허 웃는다.
#60. 문식의 집 정원 / 아침
오비서가 언제나처럼 노트북이 든 가방을 끼고 종종 걸어오고 있다.
그러다가 멈추며 돌아보는 곳. 거기 김의찬이 수행원과 빠르게 걸어오고 있다. 잔뜩 성이 나 있다.
오비서가 인사를 하려는데. 김의찬은 오비서를 거칠게 밀며 거칠게 안으로 들어간다.
#61. 문식의 서재
문식이 고개를 들어 본다. 성이 나서 들어서는 김의찬. 수행비서.
그 뒤로 조용히 들어와 문 가에 서는 오비서.
김의찬 : 김문식 사장.
문식 : 의원님. 어떻게 연락도 없이.. (일어선다)
김의찬 : 지금 돌아가는 이 판, 내가 모를 줄 알아요. 나를 이렇게 물 먹이고. 당신이 내 자리를 꿰어차겠다?
이거 대체 언제부터 꾸며온 수작이야.
문식 : (한숨을 쉬며 본다. 좀 성가시다.)
김의찬 : 김문호. 당신 동생. 그놈이 겉으로는 진보니 뭐니 빨갱이 같은 소리해 대면서 이제 보니 당신 앞잡이였구만. 맞지.
문식이 오비서 쪽을 보며 눈짓을 한다. 오비서가 밖으로 나간다.
계속 성을 내고 있는 김의찬.
김의찬 : 당신 동생 앞세워서 내 발목을 잡아채고. 당신은 뒷구멍으로 어르신한테 세치 혀를 놀리고. 에라이 간악한 인간아.
덤벼들려는 것을 수행비서가 잡아 말린다.
문식은 읽고 있던 서류철을 덮어놓고. 문 쪽으로 이동한다.
김의찬 : 어딜 가. 김문식이.
그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경호원 둘. 그들이 김의찬에게 다가선다.
문식 : 의원님께서 좀 흥분하셨네. 잠시 쉬게 해 드리고. 가시는 길 배웅해드리고.
그 뒤에서 계속 소리쳐대는 김의찬.
김의찬 : 나 김의찬이야. 이 정도 뒤통수 맞고 꺽일 거 같애? 천만에. 어르신이 김문식이 당신 따위한테 넘어갈 분도 아니고.
내가 그동안 바쳐온 충성. 김문식이. 넌 상상도 못해애.
#62. 문식의 집 거실? 부엌
문식의 옆을 따르며 오비서가 보고한다.
오비서 : 힐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결과를 들었다. 문제의 동영상은 약속대로 폐기하겠다.
문식 : 폐기를 해? 그거 우리가 받아야 하지 않나?
오비서 : (난처한 듯) 이렇게 말하더군요. 동영상은 사장님께 보여드린 맛배기용이 갖고 있는 전부였다. 사기 쳐서 죄송하다.. 라고요.
문식 : (웃으며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내 컵에 따르는..)
오비서 : 사실을 말한 건지는 확인을 해봐야..
문식 : 힐러. 내가 가져야겠어.
오비서 : 쉽지 않을텐데요. 이번에 우리가 살인범으로 몰아넣는 바람에..
문식 : 방법을 찾아봐. 지금은 문호와 계약되어 있다고 했지.
오비서 : 그렇게 추정됩니다.
문식 : 우리 언제나 그렇게 해왔잖아. 내가 가져야 하는 사람. 공을 들여 보고. 안되면 오비서가 처리하고. 하던대로 하자고.
오비서 : 알겠습니다. (하다가) 사모님께서는..
문식 : 준석이 부인을 만나러 갔어.
오비서 : (멈칫했다가) 기어이 알려주셨습니까. 그 부인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데..
문식 : 명희가 만나고 싶대잖아. 바라는 거 별로 없던 사람이 바라는 건데 해줘야지.
오비서 더 말을 안 하고 물러난다.
문식. 조금씩.. 찬물을 마신다. 사실은 속이 타고 있다.
#63. 까페
공간이 넓은(휠체어가 다닐만한) 까페다. 햇살이 환하다.
명희가 전동 휠체어에 앉은 채 햇살 가까운 테이블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거기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들어오고 있는 정후모친. 둘러보다가 명희를 보고 더욱 움추러드는 표정이 된다.
명희가 활짝 웃으며 손을 든다.
그러나 정후모는 모르게 고개를 숙여 보인다.
// 경과
점원이 차 두 잔을 놓아주고 간다. 맑은 유리잔의 허브티 정도?
앞의 정후모는 아직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명희 : (미안해하며) 차 드세요.
정후모 : 예. (그러나 그대로)
명희 : (웃으며) 정후엄마. 나 좀 봐요.
정후모 : 못 봐요. 내가 무슨 낯으로 봐요.
명희 : (한숨 쉬고) 이러실 줄 알았으면 괜히 만나자고 했나부다.
정후모 :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어떻게 찾아내셨어요. 정말 열심히 숨어 살았는데.
명희 : 나 지금도 우리 다섯 친구 사진, 침대 옆에 놓고 살아요. 내가 준석이를.. 정후아빠를 단 한순간이라도 의심했으면
그럴 수 없잖아요.
정후모 : 명희씨가 그렇게 말해준 거. 그렇게 믿어주는 거 알아요. 그치만 세상은 아니잖아요. 우리 애 아버지가 지 친구를 죽였고.
지 목숨까지 끊었대잖아요. 내가 어떻게 세상을 이겨요.
명희 : 정후엄마. (달래보려 하지만)
정후모 : 내 남편이 명희씨 남편을 죽였대요. 그러니까 명희씨는 나 찾아와서 보고 싶었다고 그런 말 하시면 안 되죠.
날보고 어쩌라구요.
명희.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정후모친의 손을 잡으려 하지만 정후 모친은 손을 거둬버린다.
명희, 머쓱했다가.
명희 : 얼마 전에 준석이하고 많이 닮은 청년을 봤어요. 그래서 정후 엄마 생각이 나더라고요.
정후모 : (그제야 시선을 들어 명희를 보는)
명희 : 그 때.. 정후를 위해서 떠나셨던 거 알아요. 사람들 손가락질 받지 않게 하려고. 어린 아들 놓고 떠나신 거 안다구요.
저도 아이 잃어봤잖아요. 만나서 손 붙잡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울지 않고. 느리지 않게,)
정후모 : (가만히 명희를 보는)
명희 : 우리.. 그때 친했잖아요.
정후모 : 명희씨.
명희 : 네.
정후모 : 우리 정후가 살인범 아들 소리 듣는 거. 그것도 물론 싫었지만요. 아뇨.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명희 : ?
정후모 : 그 때 정후아빠 누명을 벗겨보겠다고. 나 별 짓을 다하고 다녔거든요. 근데.. 그런 나 찾아와서 그러더라고요.
가만 있으라구요. 정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면 가만 있으라고.
명희 :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누가요?
정후모 : (빤히 보는)
명희 : 누가 그런 말을..
정후모 : 같이 살고 계시잖아요. 당연히 명희씨도 아는 얘기라고 생각했는데요.
명희가 멈춰서 정후모를 본다. 아직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오고 있다.
#64. 썸데이 건물 앞 / 아침
영신소리 : 좋은 아침입니다.
#65. 썸데이 편집국
활기차게 들어오는 영신. 스윽 내부를 둘러봤는데. 여기자와 장부장 뿐이다.
여기자는 모니터에 거의 코를 박고 작업 중이고.
장부장은 키보드를 열심히 두들기며 열심히 기사 작성을 하고 있다.
아무도 영신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영신이 여기자 옆으로 가서
영신 : 다들 어디 갔어요.
여기자 : 모릅니다. 제가 너무 바빠서요. 저는 정말 받는 월급에 비해서 너무 과중하게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의를 하지 않으니까 모두 너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역시 사람은 시시때때 불평불만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대접을 받는 겁니다.
작업은 계속 하는데 뭔가 화가 나 있다.
영신이 슬금슬금 피해 장부장 쪽으로 가서
영신 : 부장.
부장 : 부장 바쁘다.
영신 : 애들 다 어디 갔어요?
부장 : 취재 지시 받고 다 뛰어나갔지. 너처럼 이십오분씩 지각하는 놈 빼고.
영신 : 박봉수도 나갔어요?
부장 : 박봉수는 사장이 직접 비밀 오더를 내리더만.
영신 : 희한하네. 부장도 느꼈죠. 그 둘이 이상하게 친해. 뭐야. 왜 친해. 뭐 비슷한 데가 있길 하나. 통할만한 구석이 있나.
한 개도 없구만.
부장 : 너 오늘 에너지가 팔팔 넘쳐 보인다. 잘 됐네. 일루 와서 나하구 같이 검색 기사 좀 나눠쓰자. 얘. 채영신?
하고 고개 들어보면 영신은 이미 도망갔다.
영신이 슬슬 문호의 방 쪽으로 이동한다.
유리창 안의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문호는 서성이며 휴대폰 전화를 하고 있다.
문호와 눈이 마주쳤다.
영신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더니 문호는 미소를 띄며 유리창 쪽으로 다가와 블라인드를 닫아 버린다.
영신. 혼자 뻘쭘해졌다.
#66. 문호의 집무실
문호가 정후와 전화 중이다.
문호 : 내가 조사한 바로는 거기 검찰청 기록물 보관실에 니 아버지 기록이 있을 거야. 92년도 사건이라 서류로 보관되어 있을 거고.
#67. 검찰청 야외 주차장 / 혹은 근처
정후의 차가 도착해서 주차한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정후. 이어셋 전화 중. 마치 검사처럼 양복에 코트를 입고. 검사다운 안경을 썼다.
서류가방을 들고 차를 잠그고 걸어 나온다. 일상적인 일을 하는 것처럼 하면서 계속 통화중.
문호소리 : 근데 너 정상적인 방법으로 빼내려는 게 아니잖아. 그런 거면 밤에 가는 게 낫지 않나?
정후가 비웃음을 날린다.
#68. 민자 아지트
민자가 빠르게 키보드 작업을 하며 모니터를 보며
민자 : 밤에는 보안이 강화돼서 더 힘들지. 일단 뭐 평소대로 해보자고.
난 데이터베이스 뒤지고 있을 테니까 넌 들어갈 구멍을 찾아봐.
#69. 검찰청 근처 식당
들어서는 정후. 빠르게 내부를 훑어본다.
대부분 검찰 근처에서 일하는 넥타이들이 몇몇 테이블을 차지하고 국밥 정도를 먹고 있다.
정후는 적당한 곳에 서서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척 하면서 눈으로는 적당한 사람을 재빨리 찾고 있다.
저쪽 식탁에 앉은 신사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목에는 신분증을 목걸이처럼 늘어뜨리고, 겉옷은 벗어 뒤의 의자에 걸고 셔츠 바람으로 국밥을 먹고 있다.
그 신사복의 건너편에는 동료가 앉아서 밥을 먹고 있다.
정후가 휴대폰을 보는 척 하면서 슬렁슬렁 그쪽으로 다가간다.
그러다 건너편 동료 뒤편으로 다가갔을 때 발이 걸린 척 하면서 어이쿠 한 손으로 동료의 등을 짚고 엎어질 뻔 한다.
그 식탁의 사내들이 놀라고, 정후는 허둥대다가 또 넘어질 뻔 하고,
그를 잡아주느라고 어수선한 틈에 정후가 어리버리하면서 식탁을 짚으면서..
깍두기 접시를 아래에서 위로 친다.
접시가 정확하게 목표 사내의 셔츠로 튄다. 놀라고 시끄럽고.
그 와중에 식탁의 한 사람이 둘러보면 정후는 간 곳이 없다.
#70. 식당 화장실
신사복 사내가 세면대에서 물을 틀어놓고 신분증에 묻은 김치 국물을 닦는다.
에이.. 해서 신분증은 옆에 놓고. 셔츠에 묻은 국물을 젖은 휴지로 닦느라 애쓴다.
그 뒤의 칸막이 변기에서 나오는 정후. 스윽 지나가며 옆에 놓은 신분증을 가져간다.
하도 자연스러워서 옆의 사내는 정후가 화장실을 나갈 때까지 모른다.
#71. 검찰청 입구
드나드는 사람들에 섞여서 정후가 들어간다. 아까 얻은 신분증으로 보안대를 통과한다.
CCTV가 있는 곳을 지날 때는 휴대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얼굴을 숨긴다.
#72. 검찰청 복도
검찰청 직원이 카트에 사건기록지 등을 잔뜩 쌓아서 밀고 가고 있다.
그 뒤에서 다가가는 정후. 기록지를 잔뜩 안고 가고 있다. 빠르게 그 옆으로 가다가 보더니
정후 : 보관실 가죠? 이것도 좀 부탁해요.
하며 카트 위에 자기가 안고 있던 것을 턱 쌓는데. 그만 이미 있던 것까지 무너져 내린다.
정후 : 어이구 미안합니다.
어우 이거 하며 주워주느라고 법석을 떤다.
#73. 검찰청 보관실 앞
아까의 직원과 웃으며 나란히 걸어오고 있는 정후. 기록지를 얹은 카트를 정후가 밀고 있다.
직원 : 아니죠. 손흥민이 열두골 넣었을 때는 함부르크 때고. 이번 레버쿠젠에선 아직 열한골이요.
정후 : 아아.. 맞다. 함부르크...
직원과 함께 사이좋게 기록보관실로 들어간다.
#74. 보관실 내부 입구 쪽
직원이 카트를 그곳 담당직원 앞으로 밀고 간다.
담당이 서류를 내주고 그곳에 서명을 하려다가 직원이 돌아본다. 어..
방금까지 옆에 있던 정후가 없다. 어라..
#75. 보관실 내부 안 쪽
정후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일련번호가 붙은 상자들이 진열대에 주루루 늘어져 있다. 그 번호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민자 : 서준석 사건번호가 92형제8273 , 먼저 92년 항목을 찾아봐.
저 앞에서 누군가 온다. 정후가 자연스레 돌아서 다른 쪽으로 간다.
// 내부 다른 쪽. 상자를 짚어가던 정후의 손이 멈춘다. 사건번호가 적힌 상자.
정후가 주위를 살피며 상자를 꺼낸다. 바닥에 놓고 앉아서 상자 안에 있던 누런 서류 봉투를 꺼낸다.
꺼내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열어서 털어 보지만 비어있다.
두꺼운 파일이 있다. 꺼내든다. 표지에 적혀 있는 [ ] (별첨) 겉표지를 연다. 그리고 멈춘다.
두꺼운 파일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몇 장의 백지가 바인더에 묶여있지만 들춰보면 다 백지다.
#76. 문호의 집무실
문호가 전화를 받고 있다.
문호 : 하나도 없어? 진술서. 경찰 조서. 아무 것도? .. 생각했던 대로네. 일찌감치 빼돌린 거야. (마음이 안 좋다)
#77. 검찰청 내부 일각. 창문 앞
유리창 밖을 바라보며 전화를 받고 있는 정후.
정후 : 그러니까 누군가 그것들을 다 빼돌렸단 말은 그 누구가 누군지 알아봐야 한다는 말이네요.
#78. 민자 아지트
민자가 팔짱을 끼고 둘의 대화를 듣고 있는 중이다. 대단히 못마땅해서.
문호소리 : 짐작 가는 자가 몇 있는데 그 중에 누군지는 확실하지 않아.
정후소리 : 그럼.. 알아봐야죠.
문호소리 : 어쩔 생각이니.
정후소리 : 잘.. 해볼 생각입니다.
문호소리 : 정후야.
부르는데 이미 정후가 전화를 끊는 소리. 이어서 문호도.
민자가 재빨리 통화를 연결해서
민자 : 뭐할라고.
#79. 검찰청
정후가 유리창 밖을 보며 서있다.
정후 : 사건 기록이란 거 말야. 직계가족한테는 보여준다며.
민자소리 : 돌았냐.
정후 : 나 직계가족이잖아. (하며 품에서 지갑을 꺼낸다) 우리 아버지의 직계가족.
민자소리 : 돌았구나. 니가 드디어 맛이 갔어.
정후가 이어셋을 끄더니 지갑을 연다. 지갑에는 카드가 꼽혀 있어야 하는 곳에 카드 대신 주민등록증들이 주루루 꼽혀 있다.
정후의 사진만 같고 이름이나 내용은 다른 것들이다.
그곳 말고 저 안에서 주민증 하나를 꺼낸다. 내용을 본다. 그것은 서정후 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진짜 주민증이다.
#80. 민원실
민원실이라는 명패가 보이고. 거기 담당 직원이 앉아서 일을 하고 있다.
그 앞으로 다가서는 신사복. 정후다. 내용을 기록한 열람신청서와 그 위에 주민등록증을 얹어서 내민다.
직원이 받아 들더니 주민증의 사진을 보고 정후를 올려다본다.
순하게 마주 보는 정후.
직원 : 서정후씨? 본인이시죠?
정후 : 예. 제가 서정훕니다.
// 민원실의 대기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정후. 그 옆에 비치되었던 잡지를 재미가 없어서 뒤적거리고 있다.
// 직원이 키보드로 서준석 이름과 사건번호를 적어 넣는다. 그리고 엔터를 치는 순간. 화면에 팝업창이 뜬다.
[ 접근제한 문서 // 요청자 신병확보 우선 ]
직원이 다시 정후 쪽을 본다.
#81. 거리
오비서가 운전하는 차가 달리고 있다. 뒷좌석에는 문식.
전화 벨이 울리고. 오비서가 이어폰을 끼고 받는다.
오비서 : (낮은 소리로) 예 말씀하십시오. (잠시 듣더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통화를 홀드시키고 백미러로 뒤를 향해.) 사장님.
문식 : (보는)
오비서 : 서준석의 사건 기록을 열람하려는 자가 나타났답니다.
문식 : 누가.
오비서 : 서준석의 아들이라는데요.
문식 : (놀랐다)
오비서 : 뭐라고 지시할까요.
#82. 민원실
잡지를 뒤적이던 정후가 멈춘다. 고개를 들어보면 거기 수사관 혹은 보안직원이 몇명 다가오고 있다.
정후 그저 보고 있다. 그들이 정후 앞에 서는데.. 마치 포위하듯 둘러선다.
그 중의 하나가 묻는다.
수사관 : 서정후씨?
#83. 썸데이 앞
아직 밖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오비서가 모는 차가 도착한다.
오비서가 내리고 문식이 제 손으로 문을 열고 내린다. 앞을 보며.
문식 : 여긴가?
그렇게 문식이 보고 있는 건물은 썸데이 건물이다.
오비서가 문식을 안내하고 문식이 그 뒤를 따른다.
#84. 썸데이 로비
오비서와 문식이 들어선다. 걸어 들어오는데.
계단 위, 위층에서 들리는 영신의 목소리.
영신소리 : 고기만두 김치만두 반반씩 사오면 되죠? 영수증 처리 꼭 해줘야 합니다.
계단을 총총 내려오는 발소리.
문식이 멈춰서서 계단 쪽을 본다. 영신이 총총 내려오며 혼잣말.
영신 : 또 슬그머니 넘어가기만 해봐. 이게 몇 번째야. 응?
하다가 앞에 서 있는 문식과 그 옆의 오비서를 본다. 모르는 사람들이다. 대충 옆으로 비켜서 가려는데.
문식 : 채영신 기자?
영신이 멈춰서 돌아본다.
영신 : 예?
문식 : (만면에 미소를 띠고 다가온다.) 나.. 김문식이라고 해요. 김문호 기자의 친형.
영신 : 아.. 그럼 저기 제일신문에.. (진짜 놀랐다)
문식 : 채영신 기자 얘기 많이 들었는데. (한 손을 내민다)
영신 : (얼른 두 손으로 받으며) 안녕하세요.
#85. 검찰청 조사실
작은 조사실. 문이 열리며 정후가 떠밀려 들어온다.
정후를 방 안에 넣은 수사관이 밖에서 문을 닫는다. 밖에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정후가 방을 둘러본다. 한쪽 면이 검은 유리로 되어있다.
정후. 그 유리 앞으로 다가간다. 우리 너머에 뭐가 있는지 보기라도 할 듯. 고개를 기웃해서 본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