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과학수업을 하라고 하면....
솔직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혼자야 어떻게든 떠들어대겠지만 ..... 그리고 영어로 과학 연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솔직히 다 못 알아들었습니다. 강의하는 분은 13년 동안 미국에서 살다가 영어로 수업할 수 있는 교수가 필요하다고 해서 운좋게(?) 다시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며 영어가 자기 같은 사람 살린다고 농담을 하시더군요.
얼마 전 조선일보의 리포터가 블로그 방명록에 인터뷰 요청을 하는 글을 남겨 놓았더군요. 아이들 때문에 영어를 배우고 있는 엄마들에 관해 취재 중이라고. 제가 영어에 관한 책을 쓴 저자라고 엄마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그 때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과학 교사인 제가 영어를 쓸 일은 거의 없다고. 가끔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읽거나 전공 책을 읽을 때 말고는 과학 교사인 제게 영어는 그리 큰 쓸모(?)가 있는 언어는 아니라고. 모르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것이 없음으로 인해 곤란을 겪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근데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그 기사 나오기는 했는 지ㅎㅎㅎ
제게 있어 영어는 저 자신의 즐거움 중의 하나이고 또한 아이들과의 연결 고리로서 큰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정부의 준비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로 인해 영어로 과학 수업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한 모임에서 영어 수업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가 되어 한동안 의견들이 오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영어로 다른 과목 수업은 참으로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입니다. 수업을 하는 입장에서 한번 시도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그럴 기회가 올까 해서 미국초중등 과학교과서와 학습 자료들을 구해서 조금씩 공부해오기도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솔직히 자신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50분 동안 학생들과의 시간은 교사에게 거의 모노드라마를 하는 배우 같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말로 할 때도 ‘아’와 ‘어’의 미묘한 차이로 아이들로부터 열광을 또는 외면을 당하기도 하는 게 사실입니다. 저 같은 어눌한 영어로(물론 저 같은 실력의 소유자들에게 그 수업을 맡기지는 않겠지만요) 겨우겨우 수업 내용을 전달하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우리말로 된 교과서도 어려워 힘들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과학수업을 하면서 마치 국어 시간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교과서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 할 때가 정말 많거든요. 영어로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교과서도 영어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 과연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수업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영어로 수업을 하면 영어를 잘하게 될 것이다.>
영어가 교육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어로 수업을 하게 되면 영어를 잘하게 된다면 이제까지 우리말로 수업을 해왔으니 우리말을 아주 잘해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리고 공부할 사람과 가르칠 사람 모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어로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도 수업을 하거나 그것을 듣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와 우리 학생들이 지금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영어를 잘하게 하기 위해 영어로 수업을 한다고 하지만 그건 영어가 어느 정도, 말하고 듣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그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를 위해 영어로 수업을 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학을 간 아이들의 예를 들면서 환경이 그렇게 되면 다 한다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영어를 잘하게 되어서 무엇을 하죠?
떡볶이 집을 하는 것이 장래 희망인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떡볶이를 아주 잘 만들고 요리하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고 합니다. 학교 부근에서 테이블 두어 개 정도 놓을 수 있는 작은 가게를 하는 그 아이의 미래 설계입니다. 그 아이에게 영어로 하는 국어, 영어로 하는 과학 수업이 꼭 필요할까요? 세계 곳곳에 지점을 가진 대기업으로 키우려면 필요하다고 하면 될까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인 아이에게는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영어로 글을 써야 할 테니 필요하다 하면 될까요? 간호사가 될 아이에게 외국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올지 모르니 영어로 수업을 해야 한다고 할까요? 삼성 휴대폰 공장에 취직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는 세계인이 함께 쓸 애니콜을 만들기 위해 영어로 수업을 받아야 한다고 할까요? 9급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는 무엇을 위해 영어를 잘 해야 한다고 말할까요?
전문계(실업계) 학교 선생의 덜떨어진 생각일까요?
아이들은 지금도 학교에서 많이 힘듭니다. 힘든 정도를 넘어서서 학교에서 불행한 아이들도 참 많습니다. 한글로 되어 있는 교과서가 어려워 끙끙대는 아이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매일 듣는 우리말로 하는 수업도 어렵고 힘들어 죽고 싶다는 아이들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 아이들에게 영어로 된 국어, 과학, 수학 시험을 치라고 한다면.... 과연 그 아이들을 어디까지 몰아세우고 싶은 건지 묻고 싶습니다.
저희 반 영어듣기 시험 평균 50점이 안될 때도 있습니다. 또박또박 들려주고 문제는 한글로 되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만들지 않으려고 영어로 수업을 하겠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교육에서도 이미 ‘평등’의 개념은 깨졌다고 하지만 도대체 누구를 위한 영어란 말인지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영어를 잘 해야 만이 살 수 있는 일을 직업을 갖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요.
아이들에게 대학만이 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굳이 대학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가진 다양한 꿈을 이루면서 살라고 이야기 하면서 왜 아이들이 다양한 꿈을 꾸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주지 못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영어, 누구를 위해 필요한가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매일 매일 영어 써야하고 영어 안 쓰고는 일을 못하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지 궁금합니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와 관련된 직업도 수없이 많습니다. 자동차 디자이너부터 공장에서 만드는 사람들, 자동차 세일즈맨, 택시나 버스 기사들, 주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정비공장 사람들, 세차장까지. 과연 영어로 자유로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고 영어가 안 되면 안 되는 것일까요? 아이들에게 이렇게 다양한 직업이 있으니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말고 네가 하고 싶고 네가 해서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면서 그 일을 위해 즐겁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지는 못하는 건 지 답답합니다.
영어는 수단이어야 하고 도구이어야 하지 영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영어를 왜 못할까에 대해 의견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데도 영어가 안 되니까 영어로 수업을 해서라도 영어에 푸욱 절어(?)서 살게 해보자는 이야기까지 나온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어떤 경우도 학습에 있어서 자발적인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영어가 안 되는 이유는 어렵기도 하고 교수방법이 잘못되었기도 하고 등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아이들 스스로 영어를 잘 해보겠다는 절실한 동기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학을 못하는 아이들도 그 정도, 아니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유독 영어에만 이렇게 매달리는 이유는 영어가 다른 과목보다 실제적인 필요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교과목일 뿐입니다. 국어, 수학, 기술가정, 과학, 국사 등등 다른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수업하고 시험 치는 교과목일 뿐인 것이지요. 어른들이 말하는 하나의 언어로서 잘해보겠다는 동기보다는 시험 점수를 잘 받았으면 좋겠다는 동기가 아이들에게는 거의 전부일지 모릅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말 한마디 잘 못해서 영어 공부의 효과가 없다 통탄할지 모르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100점, 90점의 점수가 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 세대에도 10년 넘게 공부해도 영어 한 마디 못한다는 이야기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린 그것을 언어로 배운 것이 아니라 그저 교과목으로 공부했고 잘 나온 점수로 만족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듣기를 가르치고 평가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더더욱 그렇고요. 이제 겨우 영어를 언어로 인식하고 가르치려 시도하고 있는 정도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이들이 영어를 하나의 언어로 인식하게 하는 동기 부여로 영어 수업이 나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모든 아이들에게 그 방법이 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영어로의 수업을 생각하다가 문득 수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몇 해 전 저의 멘티였던 아이가 부모님 두분이 모두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혹여 그 아이의 부모님을 만나게 될 때를 위해 잠시 수화를 배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수화를 배우면서 저는 그 아이가 왜 저를 만나면 몇 시간이고 그렇게 수다스러웠는 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화를 통해서 할 수 있는 의사 전달은 참으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복잡하고 미묘하고 섬세한데 수화로는 그 다양한 것들의 일부분, 정말 너무 적은 부분만을 표현할 수 있어서 많이 놀라기도 했고 그로 인해 그 아이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요.
영어로의 수업이 그렇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는 것은 실력 없는 교사의 무책임한 변명일까요? 교사는 틀에 박힌 몇 몇 표현으로 지식을 전달하는데 급급하고 아이들은 우리말로 수업할 때도 모르는 게 있어도 손들어 질문하기가 쉽지 않은데 영어로 질문해야 할 상황에서 과연....
교실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 형성’인데 교사와 학생 서로 몇 가지 한정된 표현으로 겨우겨우 의사전달만 하는, 수화를 하면서 느꼈던 그 답답함을 가슴에 간직한 채 50분을 견뎌야 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누구보다 변화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좋아 한다 생각했습니다. 적절한 예는 아닐지 모르지만 옷가게를 하는 친구가 너무 디자인이 독특하거나 해서 도저히 못 파는 옷이 생기면 저에게 떠안깁니다. ‘너만은 이거 소화할 수 있을 거야’하면서요. 저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척척 입어내거든요. 이렇게 두려움이 없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 짜릿한 쾌감까지 느끼곤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정빈는 엄마를 세상에서 영어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왜 일까요? 선뜻 그래도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왜 일까요?
휴유..... 그리고 영어로 과학을 가르치면 저는 과학교사인가요 영어교사인가요? 제가 오늘 좀 꼬인 모양입니다.^^
첫댓글 이영미교사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영어가 필요할때 -남친이 한국 사람 아닐때 그는 한국어를 모르고 나는 영어, 아닌 다른 나라 말을 모를때! -트레킹 갔을때 여러 나라 사람 모였을때, 영어가 사람들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줌 떡뽁이 가게를 하고 픈 친구에게 영어가 필요 할때도 있지요 가게에 외국 사람 오면 영어 해야 되지요 , 당근! 음~! 제가 하고픈 말은 도데체 이 나라가 미쳐 가고 있다는 겁니다, 영어땜에! 제가 이러면 울 나라에 온 영어 원어민 교사들 -학원 강사들 - 너거 나라 미친거 아니야 더 많이 미쳐야 우리가 살지! 이러더군요! 아침부터...내가 오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