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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2. 대민(주일낮)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롬1:11-13)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복음은 복음의 일꾼들에 의해서 퍼져 나갔습니다.
성도는 복음의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전하는 일에 자신을 헌신하는 자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낸 것처럼 그리스도로부터 파송 받은 복음의 일꾼입니다.
골로새서1장23절에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바울사도는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사도는 천국복음을 전하는 일꾼이요, 전도하는 일꾼이요, 교회를 세우는 일꾼이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일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 하든지 바울사도는 복음의 일꾼된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로마서1장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여기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복음 전하는 일로 욕도 많이 듣고, 고난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 복음 전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사도로서 충성을 다할 수 있었음은 그가 복음에 대하여 바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국가 대사를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 것 같이, 먼저 그가 이 복음을 받아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깨닫게 되고 믿게 된 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곧 특권으로 알았기 때문이고, 또 이 복음 전하는 일로 많은 고난을 받았으나 복음의 일꾼 된 것을 은혜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에는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이었고, 그것을 나눠주고 성도들이 복음에 바로 서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명이자 기쁨이었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딱 하나, 로마의 교회였고, 그 교회를 섬기고 싶은 열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복음속에서 찾으려고 노력하였던 것처럼, 오늘날도 복음을 전하고, 복음 속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1.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입니다.(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을 심히 보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을 받아오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얻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맡은 신령한 은사를 지금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나누어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것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3장6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사도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했던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것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나누어줄 것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나누어주고 싶은 뜨거운 열망이 언제나 가득 차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도 수없이 맞았고 감옥에 여러 차례 갇혔고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지만 한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신령한 은사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직까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형편을 제대로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떠한 은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무슨 신령한 은사가 되었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허락하신 은사를 나누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맡기신 신령한 은사를 로마의 성도들에게 나누어주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성도들을 견고하게 세워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더욱더 든든하게 세워나가고자 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목적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2-3절에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데살로니전서3장13절에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고 권면하십니다. 굳게 서지 못한 인격을 통해서는 성령님 열매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을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눠 주고 싶었고 이것을 받은 성도들은 믿음이 견고해진다 했습니다. 이 신령한 은사는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5)
복음이 신령한 은사이며 성도의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복음 위에 세워져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는 견고한 신앙이 됩니다.
본문11절에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어떤 유혹과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그들의 신앙을 세워갈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은사’란, 우리가 주로 아는 성령의 은사뿐만 아니라, 본래 ‘은혜로 인해 주어지는 선물’을 뜻하는 것이며, 특별히 로마서의 배경으로 볼 때, 그들에게 신령한 은사는 로마서 그 자체였습니다. 즉, 로마서는 아직 만나지 못한 로마 성도들에게 복음의 핵심을 전해 주어야 했기 때문에 ‘신령한 은사’는 복음을 아는 지식,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그리고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롬 12:2)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나아가 그들이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서로 섬기고 이끌어 가기를 원하였습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의 분량이 각기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크고 작음으로 평가하기보다, 마치 가족 안의 부모와 자녀처럼 서로 이끌어주고, 또한 따라가면서 함께 성장하며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편 견고케 한다는 말은 흔들리지 않게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을 든든히 세워준다는 말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서로 만날 때는 무엇보다도 서로 신앙을 흔들리지 않도록 든든히 세워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살면서 얼마나 신앙을 든든히 세우기가 어렵습니까? 신앙 지키기도 힘든 세상이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 만나 얼마나 신앙이 무너집니까? 그들은 우리의 신앙을 세워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틈만 있으면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텔레비전이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영화도, 직장 생활하면서도 많은 것들이 우리의 신앙을 으깨고 있습니다. 날마나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세속적인 것이면 얼마나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입니까?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다니면 믿음의 사람을 삼키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누구를 통하여 신앙을 세움받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형제 자매 아닙니까?
이렇게 주일 날 함께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영적인 가족이 아니겠습니까? 교회에서고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신앙인은 서로 서로 신앙을 든든히 세워주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믿음을 평생동안 유지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드러난 믿음은 견고히 됨을 필요로 합니다. 씨를 뿌려 싹을 났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열매를 맺을 때까지 견고하게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곧 로마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려 함입니다.
2.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입니다.(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바울이 그들을 보기 원했던 두 번째 목적은 서로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실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겸손한 태도를 반영합니다.
사도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주려고만 하지 않고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으려 한다고 겸손히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동일하게 은혜로 주신 믿음을 인하여 피차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이것이 영적 교제요 영적 교제의 유익입니다. 우리의 교제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데 그치지 말고, 이렇게 같은 믿음의 확인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주고 받는 교제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지금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격려가 필요하기에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차”라는 단어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만이 격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에게도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앞절에서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기 위함이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내가 사도로서 너희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눠 준다’는 식으로 말한 것처럼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다”라고 바로 잡아줍니다. 사도인 바울도 너희 믿음으로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로마교회는 믿음 있는 교회였습니다. 로마교회의 믿음에 대한 좋은 소문을 멀리서 전해 듣고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에 대한 소문으로 사도 바울도 위로를 받는다고 합니다. ‘아, 내가 전파하는 복음이 정말 역사하는구나, 이 일이 결코 헛되지 않는구나, 역시 복음이 변화를 일으키는구나’라는 생각에 그는 힘을 얻습니다. 사실 그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또한 “피차 안위함을 얻는다”는 말은 “서로 격려한다”는 말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가르침을 받는 사람 사이에는 서로 간에 안위가 있고, 격려가 있는 법입니다. 성도와 성도들이 사도와 사도들이, 사도와 성도들이 만나는 것은 서로의 믿음으로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기쁨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6장6절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영적인 것을 나누고 육적인 것으로 협력하는 것이 좋은 관계입니다.
가르침과 배움이 있어야 하고,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성도의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도 성도들로 인하여 안위함을 받아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목회자들을 통하여 격려를 받아야 다시 힘을 내어 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함께 모일 때마다 서로의 격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교회는 성장하고, 우리의 믿음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너희와 나의 믿음” 즉 사도적 신앙을 다 함께 가지므로 신앙적 안위를 갖는 것입니다. 좋은 믿음을 갖고 만족하는 생활이라야 안위를 맛볼 수 있습니다. 정통적 신앙과 사명 정신에 일치하는 동지를 만나면 정말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피차에 위로가 됩니다. 일방적으로 주는 것 같으나 받는 것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피차에 위로를 받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끊임없이 성도의 교제가 필요합니다. 자주 만나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의 가르침은 나는 가르치는 입장이고 너희는 배우는 입장이니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니라 신령한 어떤 것을 나누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개인적인 은혜를 서로 교환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내 은사만 소중하고 너의 은사는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아니라 서로 교통하여 평준화함으로 서로서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바울이 로마에 가서 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눠줌으로 그들의 믿음을 더욱 돈독하게 하고 이방인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된다면 이런 일이야말로 바울에게 있어서는 위로를 받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도자들이 교회에서 은사를 나눠주기도 하고 은사를 조정도 하고, 압제하고, 은사를 다스리고, 은사를 가르치고 해서 그 성도들이 정상적으로 자라고 은사를 통해서 견고해져 가고 교회가 튼튼해 갈 때 그렇게 지도한 자도자들도 그 성도들을 통해서 많은 격려를 받고 믿음이 자라갑니다.
이 성도들이 잘 자라지 않으면 지도자도 딜레마에 빠집니다. 지도자에게 영적인 침체가 옵니다. 서로 주고 받는 것 같은데 특별히 지도자들은 더 많이 주는 쪽에 있습니다.
지도자도 도움을 받는 성도들에 의해서 역으로 격려를 받아야 하는 그런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 교회에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바울이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피차 안위함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열매를 맺게 하려 함입니다.(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사도 바울이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고 로마에 가고자 한 것은 로마 관광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누구 만날 사람이 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또 잘 살고, 돈 많이 벌기 위해서 그곳에 가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그곳에 가기를 원했던 것은 그들에게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열매란 것은 15절을 보면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그곳에 가서 맺기를 원했던 열매는 복음의 열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도 복음 증거의 결실을 얻고 싶었습니다. 바울이 원래는 아시아 지역에서 선교하기로 작정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인도하여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유럽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여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제는 유럽의 중심 로마에서도 복음의 열매를 얻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복음 전파의 큰 그림을 그리려는 바울의 열정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이런 열정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로마서1장1절에서 밝힌 그대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택정함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자신의 삶 전체를 다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일평생 동안 그는 결혼하지 아니했습니다. 독신으로 지내면서 때로는 해로를 통해서, 때로는 육로를 통해서 마게도냐, 소아시아의 여러 지방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잠시도 쉬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복음전파의 열정과 함께 차분히 전략을 세우고 실천에 옮겼던 사람이었습니다. 보통의 경우 전략을 잘 세우는 사람에게는 열정이 부족하고, 열정이 있으면 전략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바울에게는 열정과 전략이 서로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놀라운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가졌던 복음전파의 전략 중에서 ‘로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컸었습니다. 그래서 장문의 편지를 써서 로마교회에 보내었습니다. 그 편지가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로마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로마에 가고자 사모했습니다. 왜 바울이 로마에 가고자 했습니까? 앞으로 로마가 선교전략 상 아주 중요한 곳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도자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결국 복음의 열매를 얻고자 함입니다. 따라서 그 신앙생활 과정이 아무리 탁월하고 훌룡하다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는 결국 아무 쓸모가 없고 아궁이에 던지울 풀과 같이 되고 맙니다.(마13:30)
복음의 열매는 그야말로 전천후적입니다. 모든 기후와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서 그리고 모든 세대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 복음의 열매입니다.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바울을 통하여 많은 복음의 열매가 맺혀져서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복음을 들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으면, 바울 사도와 같이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과 선교사들을 생산하여 내놓으므로 열매를 맺어 번식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께서 이 은총을 받은 우리를 향하여 기대하시는 큰 기대입니다.
성도 된 우리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과 희생이라도 감수해야 하며 최선의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생을 복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 불철 주야 수고하였습니다(고후11:2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복음전파 수단을 통하여 사람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기에 우리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가능한 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여야만 합니다.
복음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분명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냉대해도 복음의 열매는 반드시 있습니다. 복음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것이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것은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복음에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빚은 갚아야 합니다. 또 복음 전하는 것은 성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유는 가장 가치있는 일이고 생명을 살려내는 일이고 영생을 얻게 하는 일이니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아직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했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의 열매입니다.
성도의 믿음이 성숙해 지는 것을 알려면 전도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전도는 총제적인 신앙의 바탕위에 맺어지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1.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입니다.(11)
2.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입니다.(12)
3.열매를 맺게 하려 함입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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