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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12월10일(토요일) 서울 청계천 탐방일정
탐방지 : 서울 청계천
[1760년 영조의 준천 당시에 청계천 본류에는 모전교,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하랑교, 효경교, 마전교, 오간수문, 영도교 등 9개의 다리가 있었다.]
탐방코스 : [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 ~모전교~광통교~광교~장통교~삼일교~전태일 기념관~수표교~관수교~하랑교터 동판~세운교~ 배오개다리~새벽다리~마전교~나래교~전태일다리(버들다리)~오간수교~DDP~맑은내다리~다산교~영도교~황학교~비우당교~무학교~두물다리~고산자교~신답철교~제2마장교~살곶이 체육공원~한양대역 3번 출구 ] (8km)
탐방일 : 2022년 12월 10일(토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 5시간40분)
09:00~09:05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탐방 출발하여 종로구 세종로 1-68 번지에 있는 광화문역 5번 출구로 나와서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첫번째 다리인 모전교(毛廛橋)로 이동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종로구 서린동 11번지와 중구 무교동 14번지 사이 청계천 무교동길에 다리를 만들고 옛 이름을 따서 모전교라고 하였다. 다리 이름은 이 근처에 과일을 팔던 모전(隅廛)이 형성되어 있던 데서 유래하였다. 폭 23m, 길이 19.5m로 대림산업(주)과 삼성건설(주)에 의해 2005년 9월 30일 준공되었다.]
09:05~09:10 사진촬영
09:10~09:15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2번째 다리인 광통교(廣通橋)로 이동
[조선시대 도성 내에서 가장 큰 다리로 길이 약 12m, 폭 15m로 길이보다 폭이 넓은 다리였다. 1958년에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작되면서 광통교의 난간만 창경궁·창덕궁 등으로 이전되었고 다리 본체는 그대로 다시 묻히게 되었다.
이후 2005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광통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두번째 다리이다. 광통교에 놓여진 석물인 신장석과 우석(隅石) 등에 새겨진 세련되고 정교한 조각은 당대 최고의 석공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예술적 가치가 높다.]
09:15~09:20 사진촬영
09:20~09:25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3번째 다리인 광교(廣橋)로 이동
[2003년 7월 시작된 청계천 복원공사의 일원으로 조선시대의 대광통교가 원래 있던 자리에 광교가 새롭게 놓였다. 광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세번째 다리이다. 광교에서 청계천 상류 쪽으로 155m쯤에 대광통교를 복원한 광통교가 놓여 있다.]
09:25~09:30 사진촬영
09:30~09:30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4번째 다리인 장통교(長通橋)로 이동
[서울특별시 중구 장교동(長橋洞) 51번지와 종로구 관철동(貫鐵洞) 11번지 사이의 청계천(淸溪川)에 있던 조선시대의 다리로 조선시대 5부 52방 가운데 하나인 장통방(長通坊)이 있던 자리라 하여 장통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청계천을 복개할 때 없어졌는데, 2003년 7월부터 추진된 청계천복원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 새롭게 건설되었다. 장통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네번째 다리이다.]
09:30~09:35 사진촬영
09:35~09:40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5번째 다리인 삼일교(三一橋)로 이동
[종로구 관철동 85번지와 중구 장교동 86번지 사이 청계천 삼일로에 있는 다리이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을 한 뒤 전국에서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는 시위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도로 이름을 삼일로라 하였고 다리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다리 인근의 인사동과 명동성당 등을 연계한 근대 건축의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 2005년 9월 30일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폭 43.5m, 연장 22.6m로 대림산업(주)과 삼성건설(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삼일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5번째 다리이다.]
09:40~09:45 사진촬영
09:45~09:50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05(관수동) 번지에 있는 전태일(全泰壹) 기념관으로 이동
[노동운동가 청년 전태일의 일대기를 담아 그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한 기념 공간으로, 청년 전태일이 활동했고 분신 항거로 했던 장소인 청계천에 있다. 전태일 및 노동 운동과 관련된 상설 기획 전시, 공연, 교육을 이용할 수 있다.
전태일은 1965년부터 서울 평화시장에서 시다, 재단사 등으로 일하면서, 시다를 비롯한 여공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권 침해를 체험하였다. 1969년 평화시장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하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근로기준법 위반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여 노동청에 진정을 하였지만, 노동자들의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69년 9월부터 1970년 4월까지 건축 노동자로 일하다가, 1970년 9월 평화시장으로 돌아와 ‘삼동친목회’를 조직하였다. 그와 동료들은 평화시장의 노동조건 실태 설문 조사를 하여 정부, 언론 등에 개선을 요구하였으나, 노동조건은 개선되지 않았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전태일을 비롯한 삼동회 회원들이 피켓시위를 벌이려다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당하게 되자 전태일은 휘발유로 자신의 몸을 적시고 불을 붙여 분신 항거하였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쓰러졌다. 한 회원이 불길 속에 근로기준법 책을 집어 던져 예정했던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완수하였다. 그의 분신 항거는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가족과 동료 노동자들 모르게 준비한 것이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언론은 노동문제를 특집 기사로 다루고, 종교계, 대학생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추모집회, 철야농성이 이어졌다.]
09:50~10:10 전태일(全泰壹) 기념관 관람
10:10~10:15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6번째 다리인 수표교(水標橋)로 이동
[1420년(세종2)에 만들어졌다. 당시 이곳에 마전(馬廛)이 있어서 마전교라 불렀으나, 1441년(세종 23)에 다리 옆에 개천의 수위를 측정 하기 위해서 수표석(水標石)을 세운 이후 수표교라고 하였다. 2005년 9월 30일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기존의 수표교를 청계천으로 옮겨오지 못해 임시로 종로구 관수동 105번지와 중구 수표동 54번지 사이 청계천에 다리를 가설하고 수표교라고 부르고 있다. 이 다리는 폭 8m, 길이 23.3m로 대림산업(주)과 삼성건설(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수표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6번째 다리이다.]
10:15~10:20 사진촬영
10:20~10:25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7번째 다리인 관수교(觀水橋)로 이동
[종로구 관수동 129번지와 중구 수표동 122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다리 이름은 인근의 동명인 관수동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이곳에 청계천 준설사업을 위한 준천사를 설치하고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으므로 1918년 일제가 지금의 청계천3가 사거리에 다리를 놓고 관수교라고 하였다. 청계천 복개로 다리가 없어졌다가 2005년 9월 30일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전통 한옥의 대청양식을 도입한 아치교 형태로 새로 건설하였다. 폭 25.5m, 길이 22.5m로 대림산업(주)과 삼성건설(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관수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7번째 다리이다.]
10:25~10:30 사진촬영
10:30~10:35 하랑교(河浪橋) 터 동판으로 이동
[1481년 이전에 세워진 하랑교는 1958년에서 1961년 시행된 청계천 복개공사 때 철거되었다. 하랑교 부근에 하랑위(河浪尉)의 집이 있었기 때문에 하랑교라고 불렀다. 현재 청계 3가 센츄럴 호텔 지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35~10:40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8번째 다리인 세운교(世運橋)로 이동
[종로구 장사동 182번지와 중구 산림동 200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다리 옆에 세운상가가 있어 다리 이름을 세운교라고 하였다. 세운상가에 조명가게가 많아 이를 특성화하여 다리에 빛을 표현하였다.
조선시대 이 자리에는 효경교(孝經橋)란 다리가 있었다. 효경교는 1958년에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사라졌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옛 효경교 자리에 다리를 새로 만들고 근처에 있는 세운상가의 이름을 따서 세운교라 이름 붙였다. 시공사는 대림산업이며 2005년 9월 30일에 완공했다. 폭은 25.5m이고, 길이는 23.4m이다. 세운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8번째 다리이다.]
10:40~10:45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9번째 다리인 배오개다리로 이동
[종로구 예지동 189번지와 중구 주교동 99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다리 이름은 현 종로4가 네거리에 배오개[이현(梨峴)]라는 고개가 있던 데서 유래되었으며, 배오개교라고도 불린다. 다리 형상은 배오개길을 넘는 사람들의 만남을 상징화하였다. 폭 25.5m, 길이 23.4m로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2005년 9월 30일 대림산업(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배오개다리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9번째 다리이다.]
10:45~10:50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0번째 다리인 새벽다리로 이동
[광장시장과 방산종합시장 사이에 있는 다리이다. 다리 동북쪽에 광장시장의 남문이 있고, 서남쪽에 방산종합시장의 북문이 있다. 그래서 청계천의 다리들 중 가장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활기가 넘치는 곳 중 하나이다.
이름은 순우리말이며 서울특별시지명위원회에서 지었다. 주변에 큰 재래시장들이 있기에 새벽시장의 활기와 향수의 의미를 담아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는 없었고 2000년대에 청계천 복원공사를 하면서 새로 지은 다리이다. GS건설과 현대산업에서 시공했으며 2005년 9월 30일에 완공했다. 새벽다리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0번째 다리이다. 길이 23.4m, 폭 6m 규모이다. 차량은 다닐 수 없고 오직 사람만 통행할 수 있다.]
10:50~10:55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1번째 다리인 마전교(馬廛橋)로 이동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와 을지로(乙支路) 6가(방산동) 사이의 청계천(淸溪川)에 있던 조선시대의 다리이다. 조선 태종(太宗) 때는 창선방교(彰善坊橋)로 부르다 성종(成宗) 때부터는 태평교(太平橋)로 불렀다. 마전교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영조(英祖) 때로, 다리 옆 광장에서 마필을 매매하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말전다리라고도 한다. 2003년 7월부터 청계천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지는 22개 다리 가운데 마전교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다산교(茶山橋)와 함께 2004년 12월 12일 개통되었다. 중구 청계5가의 교차로 위에 있으며, 규모는 연장 21.6m, 너비는 40.5m이다. 왕복 7차로이며, 자동차와 사람이 모두 다닐 수 있다. 마전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1번째 다리이다.]
10:55~11:00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2번째 다리인 나래교로 이동
[청계천의 다리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321번지와 중구 방산동 19번지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나래는 날개이다. 다리 주변에 있는 의류상권들이 세계 패션의 1번지로 힘껏 비상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는 없었고 2000년대에 청계천 복원공사를 하면서 새로 지은 다리이다. GS건설과 현대산업에서 시공했으며 2005년 9월 30일에 완공했다. 나래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2번째 다리이다.
길이 22.8m, 폭 6m 규모이다. 차량은 다닐 수 없고 오직 사람만 통행할 수 있다. 구조물이 나비 날개 모양이다.]
11:00~11:05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3번째 다리인 버들다리(전태일 다리)로 이동
[종로구 종로5가 319번지와 중구 을지로6가 17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보행자의 이동 편리를 위해 차도와 보도를 분리하여 퍼걸러를 설치함으로써 도심 속의 정원을 연출하였다. 다리 이름은 과거 오간수문 상류에 왕버들이 많았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버들다리는 전태일다리로도 불린다. 버들다리 가운데에는 노동운동가 전태일을 기리는 전태일 열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2005년 9월 30일 GS건설과 현대산업에 의해 폭 17m, 길이 23.3m의 다리로 준공되었다. 버들다리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3번째 다리이다.]
11:05~11:15 사진촬영
11:15~11:20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4번째 다리인 오간수교(五間水橋)로 이동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나가는 지점, 즉 동대문에서 을지로5가로 가는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이다. 조선시대 한성에 성곽을 쌓으면서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아치형으로 된 5개의 구멍을 만들어 홍예교라고도 하였다. 2003년 7월부터 청계천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청계천 역사유적을 발굴할 때 오간수문의 아래쪽 끝받침과 홍예(虹霓:무지개 모양의 구조물) 기초부, 돌거북 등이 발굴됨에 따라 2004년부터 복원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교통문제로 예전의 오간수문으로 복원하지 못했고 지금의 오간수교를 만들었다. 대신 오간수교 북측의 동쪽 벽면에 오간수문을 재현한 구조물을 설치했다. 오간수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4번째 다리이다.]
11:20~11:40 사진촬영 후 간식
11:40~11:50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이동
11:50~12:30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탐방
[◇ 세계 최대 규모 3차원 비정형 건축물, ‘환유의 풍경’ 담은 이색 구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DDP’에는 ‘꿈꾸고(Dream), 만들고(Design), 누리는(Play)’ 의미도 담겨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기도 한 DDP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의해 시공됐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2007년 12월 철거된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조성됐으며, 2009년에 착공해 2014년 3월에 개관했다.
동대문운동장의 공원화와 지하공간 개발에 따른 상업 문화활동 추진, 디자인 산업 지원시설 건립 등 복합 문화공간 건립을 목적으로 추진됐다.
동대문운동장의 공원화는 2000년부터 언론을 통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고, 2005년 서울시에서 동대문운동장의 기능대체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2006년 9월 공원화사업 계획을 수립했고, 2007년 8월 국제 지명초청 현상설계경기 방식을 통해 설계 작품을 선정한 뒤 10월에 건립 및 운영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2009년 4월에 착공, 10월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먼저 개장한 뒤 2013년 11월 전체 공사를 준공하고 2014년 3월 21일에 개관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훈련도감·이간수문 등 문화유산들을 유구전시장에 복원해 두는 등 문화유산 보호에도 힘썼다.
DDP의 설계는 이라크 태생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맡았으며, 건축 콘셉트는 '환유의 풍경(Metonymic Landscape)'이다.
환유(換喩)는 특정 사물을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수사학적 표현으로, 역사적·문화적·도시적·사회적·경제적 요소들을 환유적으로 통합해 하나의 풍경을 창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4만5133장의 알루미늄 패널을 제각기 다른 곡률, 다른 크기, 다른 형태로 설계해 건축물 외부와 내부에 직선이나 벽이 없이 액체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공간적 유연성이 특징이다.
최첨단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설계기법, 메가트러스(Mega-Truss·초대형 지붕트러스)와 3차원 배열의 스페이스 프레임(Space Frame) 구조 등을 통해 최소한의 실내 기둥으로 안전하면서도 우주공간처럼 느껴지는 대규모 공간감을 구현했다.
내부 마감 역시 외장 판넬과 같이 모든 면이 각기 다른 곡률과 형태로 설계된 3차원 비정형 형태로 곡면 구현이 가능하고 내화성이 있는 우수한 친환경 마감자재인 천연석고보드, G.R.G보드(Glassfiber Reinforced Gypsum Board), 코튼흡음재, 인조대리석 등으로 시공됐다.
동일한 모양이 하나도 없는 3차원 비정형 형태인 내부 마감공사도 일반적인 설계기법으로는 구현이 어려워 외장판넬 시공과 마찬가지로 최첨단 설계기법인 BIM을 도입했는데, 삼성물산은 본공사 시공에 앞서 비정형 내부 마감 형상의 실물 크기 모형(Visual Mock-up)을 수차례 제작함으로써 시공성 및 품질 향상방법을 모색해 높은 수준의 시공품질을 확보하기도 했다.
DDP가 완공된 후 설계자인 자하 하디드(Zaha Hadid) 또한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당시 언론과 시민 모두가 찬사를 보냈으며, 현재까지 학계와 동종타사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 상업시설은 물론 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지 지닌 복합문화공간
DDP의 규모는 대지면적 6만2962㎡, 건축면적 2만5008㎡, 연면적 8만6574㎡에 지하 3층, 지상 4층이다. 주요 시설은 알림터·배움터·살림터·어울림광장·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림터(art hall)는 알림1관·알림2관·국제회의장으로 구성되며, 컨벤션·신제품 발표회·전시회·패션쇼·콘서트·공연·시사회 등의 장소로 활용된다. 배움터(museum)는 디자인박물관·둘레길쉼터·디자인전시관·디자인둘레길과 어린이·청소년 및 가족 단위로 디자인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디자인놀이터로 구성돼 있다. 살림터(design lab)는 살림1관·살림2관·잔디사랑방·디자인나눔관으로 구성되며, 디자인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 활용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앞마당 격인 어울림광장은 24시간 개방되는 복합 편집매장인 디자인장터(design market)와 종합안내실, 유구(遺構) 전시장으로 구성돼 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동대문역사관, 동대문운동장기념관, 한양도성 성곽, 디자인 전용 전시 공간인 갤러리문, 이간수전시장, 예술 프로그램 공간인 이간수마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밖에 주차장과 의무실, 여성휴게실, 수유실, 물품보관소와 카페 공간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12:30~12:40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5번째 다리인 맑은내다리로 이동
[동대문구 창신동 430번지와 청계천7가 신당동 213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청계천을 순 우리말로 바꾼 이름이다. 나비의 힘찬 비상을 아치구조와 크로스 케이블로 조화시켜 힘찬 도약을 연출함으로써 패션 중심의 상징성을 부여하였다. 폭 13.5m, 길이 26.3m로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2005년 9월 30일 GS건설과 현대산업에 의해 준공되었다. 맑은내다리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5번째 다리이다.]
12:40~12:45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6번째 다리인 다산교(茶山橋)로 이동
[성동구 흥인동 1번지와 종로구 창신제1동 401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다산 정약용의 호를 따서 붙인 다산로로 이어지는 다리인 데서 다산교라고 하였다. 폭 44.4 m, 길이 29.5m로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2005년 9월 30일 GS건설과 현대산업에 의해 준공되었다.
다산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6번째 다리이다.]
12:45~12:50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7번째 다리인 영도교(永渡橋)로 이동
[청계천7가와 8가 중간, 즉 황학동에서 숭인동 숭신초등학교와 동묘로 나가는 교차로에 있는 다리이다. 조선 초에는 왕심평대교(旺尋坪大橋)라고도 하였다. 이 다리에는 단종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전한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귀양갈 때 단종비 정순왕후가 이 다리까지 배웅 나와 이별하였는데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영영 이별하였다고 하여 영이별다리, 영영건넌다리라고 불렀다. 2005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새로 영도교가 가설되었다. 영도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7번째 다리이다.]
12:50~13:00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8번째 다리인 황학교(黃鶴橋)로 이동
[중구 황학동과 성동구 상왕십리동 사이 청계천로에 있는 다리이다. 옛날 이곳 논밭에 黃鶴이 날아왔었다는 전설에 따라 동명이 黃鶴洞이 되었는데 다리 이름은 동명에서 비롯되었다. 청계천 복원공사와 함께 가설되었는데 폭 30.6m, 길이 45.1m로 (주)(주)현대건설 외 1개사가 함께 시공하여 2005년 9월 30일 준공되었다. 황학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8번째 다리이다.]
13:00~13:05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9번째 다리인 비우당교(庇雨堂橋)로 이동
[동대문구 신설동 100번지와 성동구 상왕십리동 12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종로구 숭인동에 조선 초기 정승을 지낸 柳寬이 장마철에 日傘을 펴고 비를 근근히 가리며 살 정도로 청빈하였는데, 조선 후기 실학자인 芝峰 李晬光이 이곳에 작은 집을 짓고 당호를 庇雨堂이라고 하여 청빈한 삶의 중요성을 알렸다고 한다. 이에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청빈의 정신을 살려 다리 이름을 비우당교라고 하였다. 폭 26.5m, 길이 44.6m로 2005년 9월 30일 (주)현대건설(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비우당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19번째 다리이다.]
13:05~13:11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20번째 다리인 무학교(無學橋)로 이동
[동대문구 용두제2동 255번지와 성동구 하왕십리동 596번지 사이 청계천 무학로에 있는 다리이다. 조선시대 無學大師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지리를 살피던 중 왕십리지역까지 왔으므로 도로명을 무학로라 하였고, 여기서 다리 이름이 유래되었다. 2005년 9월 30일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폭 34.8m, 길이 43.6m로 (주)현대건설(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무학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20번째 다리이다.]
13:11~13:17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21번째 다리인 두물다리로 이동
[성동구 마장동 527번지와 동대문구 용두제2동 129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보도교 다리이다. 다리 바로 아래쪽에서 청계천과 정릉천 두 물줄기가 합해지므로 두물다리라고 하였다. 폭 3~8m, 길이 43.8m로 도보교로 2005년 9월 30일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주)현대건설에 의해 준공되었다. 두물다리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21번째 다리이다.]
13:17~13:20 사진촬영
13:20~13:30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22번째 다리인 고산자교(古山子橋)로 이동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와 성동구 마장동 470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다리 이름은 이 다리를 지나는 가로명이 1984년 조선시대 지도 제작에 힘써 <대동여지도>를 만든 古山子 金正浩의 호를 따서 고산자로라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폭 43.2m, 길이 88m로 2005년 9월 30일 (주)현대건설(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고산자교는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22번째 다리이다.]
13:30~13:37 청계천변의 수크령길을 따라서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있는 신답철교로 이동 (고산자교~신답철교 : 400m)
[청계천 '수크령길' : 청계천의 가을 풍경은 해질녘이 제격이다.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살을 붉은색으로 받아내는 수크령과 물억새의 늘어진 자태가 제법 운치 있다. 바람에 쓸리는 풀의 합창도 들을 수 있고, 풀 속을 뛰는 곤충도 볼 수 있다.
풀 숲 드문드문 숨어 은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구절초, 벌개미취 같은 야생화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하다.
가을빛이 좋은 곳은 청계천 오간수교에서 하류쪽 구간. 걷는 내내 가을풀이 반갑게 맞아주고 신답철교를 지나면 청둥오리의 자맥질과 재갈매기의 날개짓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8월 개장한 '생태습지원'도 새로운 볼거리가 돼 준다. 담쟁이도 단풍이 들고, 좀작살나무와 산수유 열매도 색을 뽐내고 있다.
지하철 1,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에서 내려 오간수교로 들어서서 하류쪽으로 걸으면 된다. 산책은 오간수교에서 고산자교(2.66km)~신답철교(3.02km)~서울숲(7.42km)로 이어진다.
고산자교(2호선 용답역)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1시간. 거기서 더 내려가면 신답철교(2호선 신답역). 길 끝 서울숲까지는 2시간 코스다. 1시간 이상 산책하려면 하이힐보다는 운동화 차림이 편안하다.]
13:37~13:40 사진촬영
13:40~13:50 청계천변의 수크령길을 따라서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있는 제2마장교로 이동 (신답철교~제2마장교 : 723m)
13:50~14:25 청계천변의 수크령길을 따라서
청계천이 중랑천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살곶이 체육공원(서울 성동구 사근동 104)으로 이동 (제2마장교~살곶이 체육공원 : 2km)
14:25~14:30 휴식
14:30~14:40 서울 성동구 행당동 17-2 번지에 있는 한양대역 3번 출구로 이동하여 청계천 탐방 완료 (살곶이 체육공원~한양대역 3번 출구 : 700m)
서울 청계천 탐방지도
[오간수교~살곶이 체육공원] 구간 청계천 수크령길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