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쇼(The Truman Show), 1998
Ⅰ.서론
- 영화소개
Ⅱ.본론
- 영화 후, 트루먼은 행복할까
Ⅲ. 결론
감독: 피터 위어 (Peter Weir)
출연배우: 짐 캐리 (Jim Carrey) : 트루먼 버뱅크
로라 린니 (Laura Linney) : 메릴 버뱅크/ 한나 길
노아 에머리히 (Noah Emmerich) : 말론
나타샤 맥켈혼 (Natascha McElhone) : 로렌/ 실비아
거대한 돔 안에 도시를 짓고 5천대의 카메라를 곳곳에 설치하여 한 사람의 생애를 탄생에서부터 30년 동안 매일, 24시간 생방송으로 보여주는 독특한 줄거리를 지닌 영화. 자신의 일상생활이 생방송되는 줄도 모른 채 30년을 살아온 주인공 트루먼이, 언론과 수많은 시청자들의 공모로 인해 거짓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에서 진실을 되찾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희극화한 휴먼 드라마. <가타카>의 시나리오 작가 앤드류 니콜(Andrew Niccol)의 아주 독특한 발상이 전 세계를 감동시킨 피터 위어 감독의 수작이다. 나는 그가 거짓 된 인생을 벗어난 것이 정말 행복으로 가는 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후의 트루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영화는 끝났지만 인간 트루먼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트루먼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래서 그냥 그 의문들을 마음껏 풀어보려 한다.
우물 안 개구리는 불행할까 아니면 행복할까.
우물 안 개구리, 마치 트루먼의 처지를 비유하는 말 같다. 우물 안에 살면서 그곳이 세상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개구리. 트루먼은 세트(set)라는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다. 30년 동안은 자신이 우물 안에 갇혀있는 줄도 몰랐고, 알고 난 후에는 벗어나고자 하였으나 그 점프가 너무 미약하여 벗어나지 못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강한 도약으로 우물 안을 벗어난다. 그는 왜 그렇게 우물을 벗어나기를 소망했을까. 모든 것은 완벽하게 충족되어 있었는데. 영화 마지막에 트루먼 쇼의 기획자인 PD가 이런 말을 한다.
"트루먼 네가 살고 있는 세상은 천국이야. 현실은 쓰레기고 거짓이 넘쳐나."
그렇다.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트루먼에게 안정과 성공, 행복을 주었다. 부족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세트 안에서 전지자였던 PD는 그에게 성공할 수 있는 능력과 다정한 가족과 친구, 이웃들을 주었고, 어떠한 세상의 불합리함도 격지 않았으며, 모두가 그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평탄하고,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 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가 늙어 죽는 그 순간까지 그는 인간이 원하는 물질적, 정신적 행복을 영위하며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지, 트루먼은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늘 피지라는 구체화된 이상향을 꿈꾸었고 과거의 잃어버린 것들에만 늘 매달렸다. 현재 가진 것은 돌아보지 않았다. 늘 불안해했고 위화감을 느꼈고 그리고 결국은 진실을 찾아냈고, 세상으로 나왔다. 트루먼은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아버지를 잃지 않고, 첫사랑의 여자와 맺어 주었다면. 아니, 그래도 그는 결국 진실을 찾아 우물 밖으로 나갔겠지. 모든 것이 충만했어도 그는 그에 안주하지 못 했으니까. 그럼 그가 찾아낸 우물 밖 세상은 행복할까. 그는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난 ‘아니요’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가 우물 밖에서 온전히 그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우물 안에서의 그의 사회적 지위, 재산, 가족, 친구,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거짓이고 조작된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그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들이 아니라 쇼를 극적이게 하기위해 그에게 주어진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허울 좋은 ‘가짜들’이었을 따름인 것이다. 트루먼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고이고이 쇼의 각본대로 정해진 길을 따라 걸어 온 것이다. 우물 밖으로 나오면서 그는 30년 만에 다시 인생의 시작점에 서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한다. 현실은 냉정하다. 탈출 후에 그의 생활을 누가 보장해줄까. 나라? PD가? 아니면 그의 첫사랑이? 쇼의 시청자들이? 주민등록이나 되어있을까. 그가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이란 것을 무엇이 증명해줄 수 있나. 어느 것 하나 그에게 호의적인 것이 없다. 세트 안에서는 PD가 모든 것을 들어줬지만 이젠 그럴 사람도 없다. 완전한 혼자다. 그는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들 것이다. 30년 동안의 인생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알았는데 멀쩡할 수 있을까. 가족도 친구도 모두 거짓이었다. 친부모가 누군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쇼의 모든 시청자가 그의 사생활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그의 성격, 습관, 취미, 콤플렉스, 그의 모든 신상정보를 알고 있다. 스타? 허울 좋은 이름이다. 쇼는 끝났고 그는 곧 잊혀질 것이다. 나 같으면 미쳐버렸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르는데 그 사람은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치부까지도! 그에게 프라이버시란 없는 것이다. 세상 누가 자신의 치부까지 모두 드러내고 싶어 할까. 그것도 소수가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보통 사람이 그런 상황을 맨 정신으로 견딜 수 있을까. 내 생각에 반응은 세 가지다. 자신을 속인 세상과 사람들에게 분노해 날뛰거나 미쳐버리거나 아니면 자살해버리거나.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그의 첫사랑이 얼마나 의지가 되어줄 수 있을지, 솔직히 난 그를 데리러 와준 그의 첫사랑에 대해서도 매우 회의적이다. 왜 진즉에 데리러 와주지 않았을까. 너무 해피엔딩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억지라는 느낌이 물씬 들었고 한편으론 영화의 상업성을 위한 복선이라는 느낌도 드는 것이 주인공의 자아 찾기라는 소재만으로는 흥행성에 부족했던 걸까.
결국 트루먼이 마지막에 세트를 탈출하면서 몇 십 년을 트루먼쇼와 함께한 사람들은 우습게도 함께 기뻐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트루먼 쇼가 끝나자 아무렇지 않게 다른 채널로 돌린다. 또 자신들에게 자극을 줄 그 무언가로. 현실이란 이런 거다. 아무리 드라마가 재밌어도, 극이 끝나면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트루먼은 드라마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비현실적이며 생활과는 동떨어져있는 잠시의 유희거리 일뿐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트루먼의 인생을 건 탈출을 보면서도 내기를 했다.
PD는 트루먼에게 잔인한 신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의 가장 큰 이해자였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는 30년을 하루같이 트루먼의 인생을 지켜봐 왔으니까.
그는 영화 속에서 인터뷰 도중 사회자가 트루먼이 불쌍하지 않느냐고 묻자, 트루먼은 그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진실을 알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고, 현실에 안주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세상으로 나가려는 트루먼을 보며 넌 할 수 없다고 넌 나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건 마치 트루먼안의 자아가 트루먼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두렵지 않느냐고. 그건 트루먼의 속내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PD의 진심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사실 트루먼을, 트루먼이 살던 곳을 그의 인생을 부러워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트루먼이 우물 밖 세상에서도 PD에게 작별인사를 하던 그때처럼 웃으면서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 내가 본 트루먼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세상을 향해 나가는 데만도 그의 평생 치 용기를 모두 써버린 것 같았는데, 트루먼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자아는 찾았을지언정 행복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진실한 세계로 나아가도 그는 우물 안 개구리로 비추어질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 트루먼이 진실을 찾아서 행복했을까하는 의문으로 글을 이끌어 보았다. 트루먼은 마치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 개구리는 사람이 장난으로 던진 돌에도 맞아 죽는다. 그는 지금 돌에 맞아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진실이라는 돌에 맞아 죽어가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세상을 알았기 때문에 불행해질 것이다. 자신이 하찮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테니까. 때론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물 안 개구리, 트루먼에게도 우물 안이 전부라는, 그런 하얀 거짓말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