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이주노동자 박해, 부메랑을 쏘는 것입니다
남양주 외국인 복지센터 ‘샬롬의 집’ 이정호 신부
남양주 외국인 복지센터 샬롬의 집(이하 샬롬의 집)의 이정호 신부는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해 가장 애쓰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부당함과 불편함으로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한 평생 노력한 공로로2017 대한민국 인권상(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인권_ 원래는 이곳에서 한센인을 위해 봉사하며 하셨죠. 그러다가 우연히 이주노동자의 삶을 접하게 된 건가요?
이정호_ 이곳은 성공회가 마련한 한센병 환자들 정착촌이었어요. 전 1990년도에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이곳에서 한센인과 동고동락하며 지냈어요. 한 술잔에 술을 돌려 마시기도 하며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이웃임을 알리려 했어요. 최근에는 그분들과 유럽과 미주 여행을 함께 다녀오기도 했어요. 이주노동자 문제를 마주하게 된 것은 2000년대에 마석가구공단이 들어서며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후예요. 몇몇 이주노동자들이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저를 찾아왔어요. 그들을 위해 영어로 예배를 하기 시작했고,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어 번역을 해서 나눠주기도 했죠. 그렇게 친해지면서 그들이 겪는 임금체불, 산업재해, 인종차별 같은 어려움을 자연스레 알게 됐고 외면할 수 없었어요.
인권_ ‘샬롬의 집’은 지자체 최초의 외국인 복지관인데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어떤 지원이 이뤄지고 있나요?
이정호_ 법률 지원 및 상담을 하고 있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민간의료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어요. 입회비 2만 원, 매월 6천 원만 내면 3개월 후부터는 정식가입이 돼서 국내 건강보험처럼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죠. 고액의 수술 및 입원비를 감당 못해 병을 치료 못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거예요. 마침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부부의 여섯 살 아들인 ‘안젤로’도 맹장수술로 입원했다가 오늘 퇴원했는데 이러한 의료 혜택으로 숙식비 수준의 비용만 지불하고 열흘간 치료를 받을 수 있었어요. 이밖에 이주아동을 위한 교육과 보육사업, 문화사업 등을 지원하며 안정적으로 이주노동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행복도시락사업 같은 국내 결손·결식아동을 위한 봉사도 함께하고 있죠.
인권_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침해 실태는 어떤가요?
이정호_ 산업재해, 임금체불 등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이슬람교 이주노동자에게 삼겹살 같은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권하는 것 또한 매우 심각한 인권 침해에 해당돼요. 우리에게는 돼지고기가 그저 음식의 한 종류일지 몰라도 이슬람교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신념의 문제이거든요. 힘든 이주 노동생활 중에도 철저히 라마단(단식월)을 지키며 사는 이들인데 그것을 존중하지 않고 억지로 돼지고기를 먹게 하고 심지어 안 먹으면 ‘왜 못 먹느냐’며 때리기도 하고, 잘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해서 상욕도 서슴없이 해요. 못 알아듣는 외국어라 해도 나를 욕하는지 아닌지는 느낄 수 있잖아요. 그들도 다 압니다. 신장투석을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가 투석을 위해 병원에 가겠다고 요청하자 일이 바쁜데 병원 간다며 두드려 팬 고용주도 있었다면 믿을 수 있겠어요? 이로 인해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거나, 신체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이주노동자가 아주 많고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인권_ 국민 개개인의 의식 변화도 중요하지만, 국가 차원의 노력도 분명 필요하죠.
이정호_ 2010년에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 당시에는 정부가 나서서 인권탄압을 하기도 했어요. 이주노동자들이 정상회담이 열리는 삼성동 근처로 오지 않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마석가구공단에 보낸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이들은 바빠서 마석에서 강남구 삼성동까지 갈 일도 없어요. 대선 기간에는 이곳까지 찾아와 미등록체류자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해결을 모색해 주겠다는 약속도 하고 갔는데, 대통령 당선 후에는 도리어 대대적인 미등록체류자 체포가 이뤄지기도 했어요. 체포할 때에도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아요. 당연히 통역을 쓰지도 않지요. 이주노동자들은 자초지종을 알 수 없는 아수라장 속에 창문으로 뛰어 내려 다리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면 공권력을 꼭 그런 방식으로 밖에 이용할 수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점차 시스템과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인권_ 외국인 노동자의 이권을 수호하기 위한 주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이정호_ 프레임을 깨는 일입니다. 한 마디로 인식이 개선되어야 해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난민수용선언을 했잖아요. 인도주의적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독일이 과거 이주자를 수용한, 이주자와 함께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에요.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광부, 간호사가 독일에 가서 노동을 한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현재 성공한 이주민이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우리 국민 특유의 근면성실함도 있었겠지만, 이주노동자와 공존을 한 독일사회 분위기도 중요한 요소였어요. 그들을 보고 배워야 해요. 공존하지 않으면 공멸합니다. 설령 공존을 위해 내 몫이 줄어들지라도 그래야 해요. 다름을 인정하고 세계인을 우리 식구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죠. 지금부터라도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탄압이나 차별은 결국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거예요.
인권_ 이주아동의 인권 문제도 중요합니다. 샬롬의 집에서 운영하는 이주아동을 위한 교육·보육시스템은 어떤 건가요?
이정호_ 이주아동은 자신이 선택해서 이주민이 된 게 아니잖아요. 그들을 위한 기본적인 안전권, 생존권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24개월부터 7세 이하의 아이들을 위한 통합보육센터 ‘무지개 교실’을 운영하고 있어요. 7세 이후에는 초등학교장의 재량으로 초등학교 진학 여부가 결정이 되어요. 부모가 미등록체류자라고 아이들의 기본인권 마저 앗아가지 않는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습니다.
인권_ 20여 년을 이주노동자를 위해 애쓰셨어요. 앞으로는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이정호_ 정년이 4년 정도 남았어요. 그 기간 동안에는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애프터서비스 사업을 추진하고 싶어요. 국내 체류하는 이주노동자의 인권보호도 중요하지만 한국과 이주노동자 국가 간의 연결고리를 의미 있고 유용하게 발전시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로 지난해 1월, 우리나라 고등학생 스무 명과 방글라데시를 방문해 환경미화, 밥차 등의 봉사활동을 했어요. 거리에 그냥 투척하는 쓰레기를 이제 쓰레기통에 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레기통을 설치하기도 했고요. 함께 간 아이들이 느낀 게 많았는지 앞으로 사회복지를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친구들이 세 명이나 돼요.의미 있는 일이죠. 내년 1월에도 의료봉사 등을 추가해서 다시 방글라데시를 찾을 예정이에요.
이정호 신부는 인터뷰 내내 방글라데시, 네팔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실명을 다정하게 부르며 그들의 사연을 풀어놓았다. 누군가와의 추억에는 절로 웃음 지었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차오르는’ 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차별 없는 사회, 사람을 구분 짓지 않는 사회를 위해 달려온 그의 긴 발걸음이 우리 사회에 큰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