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불암산, 관악산은 각각 서울시의 북쪽, 동쪽, 남쪽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그럼 서울시의 서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은 어디일까? 정답은 은평구에 있는 '봉산(烽山, 209.6m)'이다. 조선시대 무악봉수로 이어지는 봉수대가 있어서 봉령산 혹은 봉산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서울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서울의 서벽'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봉산은 그 이름도 정다운 느낌이 들고 가까운 북한산이나 북한산 둘레길처럼 유명세를 타진 않은 덕에 조용하고 한가로운 산이기도 하다. 덕분에 주말에도 인파에 휩쓸려가지 않고 한갓진 산길을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봉산의 초입인 서울시 수색동에서 고양시 서오릉까지 약 9km의 긴 능선길이 대표적인 주능선으로 오르막 내리막길이 험하지 않고, 맨발로 걸어도 될 만큼 흙길도 부드러워 누구나 부담없이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산들처럼 봉산도 진입로가 많지만 수도권 전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5번 출구에서 찾아가는 초입길이 찾아가기 편하다. 전철역 앞 주유소를 지나면 대로변에 보이는 현대화 할인마트와 부동산 1번지 사이 골목길로 들어선다. 상가들과 주택들에 가려져 있던 산자락이 이제야 저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수색로12 길'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막다른 길까지 걷다보면 앉기좋은 평상이 놓여있는 작은 구멍가게가 나온다. 음료수나 간식을 사먹고 봉산능선길을 물어보니 바로 오른쪽편에 있는 목화연립과 삼성하이츠빌라 앞에 능선길 초입의 얕은 오르막이 보인단다. 골목을 오가는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좋겠다. 이제 푹신푹신한 흙길이 시작된다.
|
▲ 능선길가에 귀여운 애기똥풀과 봄까치꽃, 냉이꽃, 제비꽃등 색색의 예쁜 꽃들이 반긴다. |
ⓒ 김종성 |
| |
비단길처럼 부드러운 능선길
야트막한 오르막을 가뿐하게 올라서자 어디에선가 아카시아 나무의 향기가 봄바람에 실려와 달콤하게 맞아준다. 봉산은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어느 동네에나 있는 뒷산같은 평탄하고 걷기에도 편안한 산이다. 이렇게 능선 위에 오르면 서너 군데의 짧은 오르막길을 빼고는 평탄한 흙길의 연속이다. 그래선지 화려한 등산복을 갖추고 오르는 사람들이 조금 어색하게 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을 감상하며 능선길에 피어난 색색의 꽃들과 빽빽한 수목들 사이로 걷다보면 건너편의 북한산 못지 않는 산행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곳이다.
봉산 능선길은 서울 은평구 수색동에서 고양시 서오릉까지 쭈욱 이어져 있으며, 서오릉 북쪽의 앵봉산 구간을 연결하여 구파발, 북한산까지도 연계 트레킹이 가능하다. 능선길이 길어서인지 동네마다 산이름이 바뀐다. 신사동을 지날 땐 팻말에 덕산이라고 바뀌어 있고, 증산동쪽은 비단산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산 모양이 떡시루 같다고 하여 증산(시루 증甑, 뫼 산山), 한글로는 비단산이라고 한단다. 어쩐지 발바닥에 닿는 산의 능선이 거칠지 않고 비단길처럼 부드럽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쉬어가라는 듯 만수 약수터와 정자가 나타난다. 정자에 편안히 앉아 물을 마시며 보니 약수터에 이름이 있는 것도 이채롭고 정자에도 기둥에 한자로 이름이 써있다. 은향정, 구룡아정, 고은정…. 봉산 능선길에서 만나는 쉼터인 정자들마다 이렇게 이름들이 써있서 한결 운치있게 느껴지고, 정자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친근하기만 하다.
|
▲ 봉산 능선길의 매력은 맨발로 걸어도 되는 부드러운 흙길과 고요하고 한갓진 숲길이다. |
ⓒ 김종성 |
| |
도시인의 건강을 지켜주는 고마운 도심 속 산들
목을 축이고 일어서니 팥배나무 군락 팻말과 함께 밀림처럼 우거진 숲사이로 나무 데크길이 이어진다. 나무숲 덕분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봄햇살에 데워진 몸이 시원해진다. 독특한 이름의 팥배나무는 그 열매가 팥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안내 팻말에 나오는 참나무, 신갈나무 등 다양한 수목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데 초록의 숲이 보기만 해도 상쾌하다.
능선길 곳곳에 쉼터인 정자가 나타나고 운동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어 산행과 건강을 함께 챙길 수 있다. 걷다보면 다른 동네로 빠지는 갈래길이 나오기도 하지만 능선길을 따라 직진하듯 그냥 쭉 걸으면 되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터벅터벅 걸은 지 얼마 안 되어 전망대가 나타난다. 능선 전망대에 서니 은평구 일대 도심의 풍경이 손바닥처럼 보이고 지금쯤 산행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릴 북한산과 안산, 백련산 등이 손에 닿을 듯하다.
전망대에 있는 풍경사진과 다르게 도심의 녹색지대는 점점 사라지고 동네마다 아파트와 빌딩들이 차고 넘친다. 도심 속에 있을 땐 몰랐는데 이렇게 산 위에 올라서니 동네 전체가 차들이 내뿜는 뿌연 스모그 안에 둘러싸여 있다. 오염된 공기 속에서 사는 시민들의 평균수명이 줄지 않고 오히려 오르는 것은 아마도 봉산같은 동네의 고마운 산들 덕분이리라.
|
▲ 맨발로 산길을 걸으니 땅에 닿는 발바닥의 느낌도 참 시원하고, 저절로 올바른 보행자세가 된다. |
ⓒ 김종성 |
| |
맨발로 걷는 즐거움... 등이 저절로 펴지네
능선길에 앉아서 예쁘게도 피어난 냉이꽃과 제비꽃을 감상하고 있는데 왠 벌거벗은 발이 휙 지나간다.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나이 지긋한 어느 여성 등산객이 맨발로 걷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무척 자유롭고 시원하게 보여 나도 당장 따라해 보았다. 맨살의 발바닥이 땅위에 닿는 순간, 작은 전류가 머리까지 올라와 찌릿찌릿하다.
기분도 시원하고 흙길을 천천히 내디디며 걸을수록 나도 모르게 뒤꿈치가 먼저 닿고 발바닥에 이어 앞꿈치가 마무리하는 이상적인 보행자세가 된다. 걸음걸이가 바르다보니 등도저절로 펴지는 맨발보행의 효험이 신기하다. 그러고보니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다.봉산 능선은 어르신들도 맨발로 산행할 수 있는 부드러운 흙길이다.
목적지인 서오릉에 가까워오자 봉산의 깔딱고개라고 할 만한 나무 계단으로 된 긴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심장이 쿵쿵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숨이 차게 오르는데 이곳을 걷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계단보다는 계단 옆 산길을 타고 오른다. 하긴 계단보다는 흙, 낙엽을 밟으며 산길을 걷는 맛이 더 좋겠지. 덕분에 계단 사이사이 빈틈마다 풀들과 야생화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있다.
|
▲ 서오릉안 그늘진 나무밑에 앉아 있다보면 잠이 솔솔 몰려온다. |
ⓒ 김종성 |
| |
계단을 다 오르면 기가 막힌 전경이 펼쳐지는데 이곳이 봉산 능선길의 제일 높은 봉우리다. 저 앞 북한산의 산세가 웅장하기 그지없고 산행하는 사람들이 보일 것 같다. 봉산은 200여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위치에 따라 숫자로 표현되는 높이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구나 싶다. 능선길의 마지막 정자인 고은정 앞에 서니 철책을 두른 군시설이 있는데 예전엔 우회해서 가야했으나 이젠 시민의 품인 해맞이 공원으로 열려있어 그냥 직진하면 곧 서오릉길이다.
숲속사이 작은 오솔길을 걸어 조선시대 왕들의 무덤이자 후손들의 휴식공간이 된 서오릉에 내려서니 갑자기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인한 소음이 크게 들려와 조금 놀랐다. 몇 시간동안 고요한 봉산 능선길에 있다가 와서 그런가보다. 천원을 내고 서오릉에 들어가 나무 그늘밑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오월의 푸른 하늘을 보고 있자니 잠이 솔솔 몰려온다. 돌아올 때는 서오릉 앞 버스 정류장에서 가까운 전철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나오면 된다.
|
▲ 수도권전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5번 출구에서 가까운 봉선 능선길, 서오릉까지 약 9km의 거리이다. |
ⓒ NHN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