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다른 부부에 비해서 비정상적인 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스포츠에 관심이 많고 여자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나는 태생부터 인류의 평화와 번영 같은 큰 문제(?)에 관심이 치우치기 때문에 쪼잔 하게(?) 작은 공 굴러다니는 일에 일회일비 하는 스포츠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별로 없는데 아내는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서 테니스 오픈이나 월드컵 같은 경기가 벌어지면 TV 채널을 독차지 하고 앉아 있다. 그래도 나는 가끔 아내 옆에 앉아서 같이 구경을 해준다. 왜냐하면 내가 옆에 있으면 심심하게 혼자 중계방송을 보고 있던 아내가 계속 설명을 해주어 입이 심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는 이런 것이다. 관심 없는 이야기도 들어주는 것이다. 인간들은 기도랍시고 하나님이 전혀 관심이 없을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그래서 기도를 들어주는 신이 필요한 모양이다.
축구 구경을 하면서 아무 편이 이겨도 상관없는 경기가 있고 우리 편이 이겨야만 좋은 경기가 있다. 아무 편이 이겨도 괜찮은 경기는 게임의 질을 보지만 우리 편이 이겨야 하는 경기는 게임의 질과 상관이 없이 상대를 이겨야 좋은 것이다.
가령 축구 구경을 정치에 비유한다면 승패와 상관이 없이 게임의 질을 관전하는 것은 민주주의이고 게임의 질과 상관이 없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하는 것은 야만의 정치이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인 호주에서 야만적인 정치를 하는 한국을 보는 마음은 항상 무겁다. 더욱이 국제기준에서 한 참 떨어지는 박 감독 시대를 맞이해서…….
내가 월드컵 경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골을 넣는 장면보다도 경기 시작 전에 국가를 부를 때 선수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다. 각기 숙연한 마음으로 국가를 부르거나 눈을 감고 기원을 하는 장면을 보면 일종의 경건함이 느껴져서 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2010년 월드컵에서 브라질과의 경기 전에 북한 국가가 연주될 때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흐르던 정대세의 눈물이었다. 그날 경기장에서는 정대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스크린으로 지켜본 관중들과 외신기자들은 의아한 듯 웅성댔다고 한다. 그들은 국제경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으로 보고서 저 선수가 왜 눈물을 흘릴까 하고 수군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가 왜 울었는지. 정대세는 한국도 북한도 아닌 일본 내에서만 인정되는 진짜 나라는 없고 무국적상태의 형식상의 나라인 ‘조선적’을 가진 재일교포들에게만 있는 특수 국적인 가진 선수였다. 그런 그가 한국대표팀에 뽑히지 못하자 평소에 숙원이든 월드컵 진출을 위해 수차례에 FIFA에 직접 청원서를 내고 결국은 북한 대표 팀 일원으로 월드컵을 참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복잡한 사정 속에서 남과 북, 일본 3 나라의 경계 선상에 있는 사람으로서 북조선인민공화국 선수로 월드컵에 처녀 출전한 정대세의 눈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짐작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나 자식이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장례식장에서도 공개적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억제하는 서구인들로서는 아마 그의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월드컵 기간 중에 호주 TV 방송에서 월드컵을 소재로 한 코미디 프로에 이 장면이 나왔다. 사회자 코미디언이 “아니? 저 선수는 왜 웁니까?” 라고 하니까 다른 코미디언이 “Because BU~TI~FUL~ Music.” 라고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물론 코미디 프로이기 때문에 웃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분단국가의 모순을 한 몸에 앉고 국가를 들으며 주체 할 수없이 눈물을 흘리는 정대세의 마음 속 설음을 그들이 어찌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정대세는 경기 후 한국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세계선수권대회에 드디어 나오게 됐고 세계 최강 팀과 맞붙게 됐기 때문에 좋아서 그랬다"고 펑펑 운 이유를 밝혔다고 하지만 그가 북한 선수로 뛰게 되기까지의 사정을 한 순간에 마이크 앞에서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었겠나? 아마 ‘드디어 이 자리에 왔다’는 생각에서 감동해 눈물이 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선택에 의해서 외국으로 이민을 온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없는 처지에서 남의 나라에서 태어나 또 다시 남의 나라 선수가 되어 월드컵에 출전한 그 마음이 과연 어떠했었을까? 만일에 이번 대회에 정대세가 출전해서 애국가를 불렀다면 그 심정이 어떠했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