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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신문]숫자 3에 나타난 신앙과 역사의지 |
| 한국서 三은 신성한 聖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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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일은 나라를 처음 연 신성한 개천절이다. 왜 3일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숫자 3(삼)은 생명의 탄생 또는 생명의 시작이라는 신성한 의미를 갖는 기호이다. 고래로 숫자 3은 전체의 모든 것, 모든 것을 신중하게 결정함의 총칭성을 뜻한다. 서양에서는 로마에서 삼두정치가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승족ㆍ귀족ㆍ제3신분의 삼부회가 있었다. 프랑스혁명기에는 특권계급의 결속이 무너져 제3신분만이 우월하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한국에서는 ‘핵심적인 것의 전체’라는 핵심성과 전체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3이라는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개념을 뛰어넘는 의미와 상징성이 부여된다. 이것은 기독교와 불교와 유교를 비롯해 민속신앙과 민족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와 정치ㆍ문화ㆍ생활사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적용되었다. 유ㆍ불ㆍ선을 3교(三敎)라 하고 예수ㆍ석가ㆍ공자를 3성(三聖)이라 한다. 기독교에서는 성부ㆍ성자ㆍ성신의 삼위일체를 신앙하고 동양에서는 천ㆍ지ㆍ인을 우주의 근본으로 믿는다. 인류역사상 가장 큰 변혁의 사건이라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은 자유ㆍ평등ㆍ박애의 세 가치를 내걸고 3색 깃발을 상징했다. 계몽철학자 루소와 몽테스키외 등은 입법ㆍ사법ㆍ행정권의 분리를 전제로 하는 3권분립의 민주주의를 제창했다. 중국의 정치가 손문은 민주주의ㆍ민권주의ㆍ민생주의를 삼민주의로 집약하면서 반봉건ㆍ반제 타도에 나섰다. 독립운동가 조소앙은 정치ㆍ경제ㆍ교육적 균등의 실현으로 삼균주의를 내걸고, 이것은 임시정부의 건국방략이 되었다. 불교에서는 과거ㆍ현재ㆍ미래, 전세ㆍ현세ㆍ내세를 3세(三世)라 부른다. 과거세ㆍ현재세ㆍ미래세는 전생ㆍ금생ㆍ후생을 삼생(三生)이라 하고, 서방정토의 주불인 아미타불ㆍ사바세계의 주교인 석가모니불ㆍ중생의 왕생극락을 주도하는 부처를 3불(三佛)이라 한다. 마리지천ㆍ변제천ㆍ대학천을 3천(三天)이라 하며 불보ㆍ법보ㆍ승보를 3보(三寶)라 하고 사찰의 대웅보전 중앙에 안치한 부처와 그를 좌우에서 받들고 있는 미륵삼존ㆍ석가삼존ㆍ약사삼존을 3존불(三尊佛)로 받든다.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와 천계(天界)ㆍ지계(地界)ㆍ인계(人界)를 각각 3유(三有)와 3계(三界)라 칭한다. 과거세ㆍ현재세ㆍ미래세의 각 천(千) 불을 3천불(三千佛)이라 하고 경장ㆍ율장ㆍ논장을 3장(三臧)이라 한다. 유교에서는 군위신강ㆍ부위자강ㆍ부위부강을 3강(三綱)이라 하여 유교 도덕의 기본으로 친다. 공자가 쓴 ‘춘추’의 해설서인 ‘좌씨전’‘공양전’‘곡양전’을 3전(三傳)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고대에 복희ㆍ신농ㆍ황제를 3황(三皇)으로 받들고, 상고시대의 하나라ㆍ은나라ㆍ주나라를 상고 3대(三代)라 부른다. 천문ㆍ지리ㆍ인문을 3학(三學)이라 하였고 해ㆍ달ㆍ별을 3광(三光)으로 신성시했다. 한국은 고대사회부터 3자는 지극히 신성한 성수(聖數)로 인식했다. 단군 신화에 환인ㆍ환웅ㆍ환검의 3신이 나온다. 환인은 환웅을 인간세상으로 보낼 때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보냈다.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三聖祀)에서 삼신을 제사지낸다. 정월 초하루 아침은 해의 아침, 달의 아침, 날의 아침이라는 뜻으로 3조(三朝)라 불렀다. 상고시대에 한국 남반부에 자리잡은 마한ㆍ진한ㆍ변한을 삼한(三韓)이라 했다. 이는 우리나라 국호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원형이 되었다. 삼한의 해부루(解扶婁) 계통으로 고구려의 모체가 되었던 북부여, 금나라 계통인 동부여, 백제의 모체가 되었던 남부여를 삼부여라 했다. 고구려ㆍ 백제ㆍ신라를 삼국(三國)이라 하고 한국의 영토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삼천리 강토라 부른다. 삼국시대의 기록에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가 있다. 신라말기 위홍과 대구화상이 편찬한 신라 상ㆍ중ㆍ하 3대의 향가집을 ‘삼대목(三代目)’이라 하고, 고려시대에 사형수의 중죄자는 삼복제(三覆制)를 실시해 특히 사형수에는 세 차례에 걸쳐 심의토록 했다. 오늘날 3심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고려조는 무신정권기에 무력기반을 확충하고자 삼별초(三別抄)를 설치하고 원나라(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 크게 활약했다. 고려말과 조선 초기에 삼군통제부가 설치되었는데 좌익군ㆍ중군ㆍ우익군을 총칭한다. 조선왕조에서는 삼군문(三軍門)으로 훈련도감ㆍ금어영ㆍ어영청을 두었다. 조선조의 권력구조는 국왕을 중심으로 영의정과 좌의정ㆍ우의정의 삼정승체제를 골간으로 하고 이들을 삼공(三公)이라 불렀다. 정부의 견제기관으로 사헌부ㆍ사간원ㆍ홍문관의 삼사(三司)를 갖추고 있다. 또 법을 집행하는 형조ㆍ사헌부ㆍ한성부를 삼법사(三法司)라 불렀다. 조선시대 군왕이나 왕자ㆍ왕녀의 배우자가 될 사람을 고를 때는 세 차례에 걸친 삼간택을 실시했다. 고구려에서는 평양성을 수도로 삼아 구도인 만주통구의 국내성과 황해도 재령 지방의 한성과 함께 삼경(三京)이라 하고, 고려시대에는 개성을 중경, 평양을 서경, 한양을 남경이라 하고, 서경ㆍ남경ㆍ동경을 삼경이라 불렀다. 고려시대 개성의 서화담ㆍ황진이ㆍ박연폭포를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하고, 고려말 대학자 포은 정몽주ㆍ목은 이색ㆍ야은 길재를 삼은(三隱)이라 했다. 민족 만대의 치욕인 조선조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경기도 삼전도(三田渡)에서 항복하고 당시 주전론을 펴다가 청나라에 잡혀가 살해된 충신 홍익환ㆍ오달제ㆍ윤집을 삼학사(三學士)라 불렀다. 후일 송시열은 세 사람의 전기 ‘삼학사전’을 편찬했다. 사람의 태(胎)를 우리말로 ‘삼’이라 하고 탯줄을 ‘삼줄’이라 한다. 사람이 죽으면 삼일장에 이어 삼우제를 지내고 3년동안 초상ㆍ소상ㆍ대상의 삼상(三喪)으로 탈상하는 것이 전통시대 한국인의 상제(喪制)였다. 상주는 탈상기간 동안 초우ㆍ재우ㆍ삼우제를 지내고 제사에 올리는 술잔은 초헌ㆍ아헌ㆍ중헌의 삼헌을 올리고 절도 삼배를 한다. 한국인은 된장ㆍ간장ㆍ고추장의 삼장(三醬)으로 만든 음식을 하루 세 끼니로 먹고 콩나물ㆍ두부ㆍ북어를 넣고 끓인 삼태탕을 먹고 산다. 3월 3일을 삼짇날이라 하여 추운 겨울을 지낸 새생명의 약동의 절기로 삼았다.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해 나라 세운 첫날을 3일로 하고 섣달 그믐날 자정에 보신각 종을 서른세 번 치는 것은 겹삼의 의미를 새긴 것이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 33인 민족대표를 선정한 뜻이나 당초 3월 3일 궐기를 계획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지금도 각종 회의에서는 사회봉을 세 번 치고 만세도 삼창(三唱)으로 결의를 다진다. 삼세대(三世代) 전만 해도 아기는 삼신 할매가 점지해 주는 것으로 알았고 하늘에 소원할 때는 정한수 세 그릇을 떠놓고 빌었다. 제주도에는 태고시대부터 양을나ㆍ고을나ㆍ부을나의 삼신이 웅덩이에 살면서 탐라국을 세웠다고 해 이들을 모시는 신사를 삼성사(三聖祀)라 일컫는다. 한글의 글자는 초성ㆍ중성ㆍ종성의 3성으로 구성되고 충청ㆍ전라ㆍ경상 지방을 삼남(三南) 또는 삼도(三道)라 부른다. 국악에서 거문고ㆍ가야금ㆍ향비다의 세 악기를 3현(三絃)이라 하고 우리나라에서 만들기 시작한 줄 셋을 맨 거문고를 삼현금(三絃琴)이라 한다. 화재와 수재와 풍재는 3재(三災)라 하여 기피하고 인삼ㆍ산삼ㆍ해삼을 3삼(三蔘)으로 쳐서 가장 좋은 영약과 보신제로 여겼다. 홍어 한 점 돼지고기 한 점을 묵은 배추김치에 싸먹는 것을 삼합(三合)이라 해서 즐기는 식도락을 높이 친다. |
| ( 2005/10/19 15: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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