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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표적밖에 없다 2020-11-01
오늘은 몇 주간에 걸쳐서 말씀드렸던 구원의 진리를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라는 주제로 복음의 말씀을 정리해 드리고자 합니다. 주 예수님은 그 당시 하늘로써 오는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마16:4)라고 하셨는데, 표적이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드러내 주는 기적으로써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예시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 문제를 처리해준 역사라면 부활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준 역사입니다.
제가 이렇게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반복해서 말씀드리는 이유는 (PPT3) 빌립보서 3장 1절에 보면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라고 말씀하신 것 같이- 우리의 믿음이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반복해서 들을 때, 우리는 거기서 온전한 믿음이 얻고- 더 견고한 믿음 위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서 허물이 있게 됩니다. 이때,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범한 사람을 심판하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를 용서받으려면 반드시 죗값이 치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죄가 제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차를 몰고 가다가 보행자를 다치게했다면- 경찰은 나를 체포하여 법관에게 보낼 것입니다. 법관은 반드시 죄가 요구하는 대로 벌금을 내거나 형벌을 받도록 하기 전에는 결코 나에게 자유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
이처럼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결코그냥 지나갈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에 따라 심판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앞에- 사람은 사실상 대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가 마땅히 갚아야 할 죗값을 그분의 아들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대속의 은혜라고 하며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왜냐면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킨 하나님의 희생에서 나온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씻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피가 우리의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어떤 분은 주님의 피가 우리의 마음을 씻어 주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는 피의 효능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구약에서 피가 사백여 차례 언급되었지만, 단 한 번도 거짓되고 부패한 우리의 마음을 씻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은 히브리서 9장 14절에서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마음을 깨끗게 한다고 말하는 분이 있는데,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양심을 깨끗게 한다고 말씀한 것이지- 우리의 마음을 씻어 준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우리 마음은 우리 자신입니다. 이는 아담으로부터 온 것임으로- 우리 옛사람의 본성이 거짓되고 부패하기 때문에- 아무리 씻어내도 깨끗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피가 우리 마음을 씻을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고- 다만 양심을 씻어 준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양심은 우리 마음에 평안과 불안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피가 양심을 씻어 주었다는 것은 주님의 피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제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응당 받아야 할 형벌이 끝났고, 우리의 죄가 사함을 얻었음을 알고 믿기 때문에 주님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평안케 하는 겁니다. 이렇게 주님의 피는 우리 양심을 평안하게 해 주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제거되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피는 하나님 공의의 요구입니다. (PPT4) 출애굽기 12장 13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내가 그 피를 보고 너희를 넘어갈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피로 사람의 죄가 처리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피로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죄를 도말 하시고- 사람 속에 있는 죄는 십자가의 역사로 처리하시는 것입니다.
이와같이성경은 우리에게 두 종류의 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들로 이 죄는 복수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안에 있는 죄로 단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우리가 범한 죄들로써 일일이 셀 수 있는 것들이며,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사람으로 죄를 짓게 하는 일종의 세력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의 죄와 우리 안의 죄를 구분하여 처리해야 합니다.
시편 51:4에서 다윗은,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그의 목전에서 지은 죄입니다. (PPT6) 그런데 바울은 로마서 7장 20절에서 “내 안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한 것을 봅니다. 이렇게 성경은 죄를 구분해서 말씀해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의 방법도 두 종류로 말씀해 줍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지만- 사람 안의 죄는 사탄의 세력이고 법칙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후에는 다른 법, 곧 생명과 성령의 법에 적용되어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3절을 보시면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라고 말씀한 것을 봅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체가운데 죄가 있다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법칙으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법이란 변함없이 예외 없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만유인력은 하나의 법입니다. 어떤 물건이든, 손에서 놓으면 즉시 땅에 떨어집니다. 이것은 어디서든 동일한 법칙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죄의 법이라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의 거짓됨이나 부패함은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대동소이합니다. 10대 20대의 음란함이 60대나 70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일평생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람 안에 있는 죄의 세력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나,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죄의 세력은 우리 육신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하나님 앞에서의 죄들은 피로써 처리되지만, 육체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은 십자가의 역사로만 처리됩니다. 이는 우리 안에 죄를 처리하는 것은- 우리의 ‘옛사람’인 ‘나’를 제해 버려야만 처리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죄는 사람 안에서 죄를 짓도록 유혹하고 선동하는 일종의 세력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의 옛사람이 한결같이 죄짓기를 좋아하는 속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 만나기가 무섭게 달라붙듯이 죄와 옛사람이 바로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혹이 역사할 때, 그걸 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옛사람이 죄의 유혹을 참지못하고 허락할 때, 곧 몸이 죄짓는 일에 사용되는 겁니다. 몸이 없이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몸은 꼭두각시처럼 옛사람에게 순종합니다. 모든 합당치 않은 것이 모두 몸으로 실행됩니다. 그래서 ‘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보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들- 모든 합당치 않은 것들이- 다 몸에서 나옵니다. 이렇게 죄는 우리를 주관하고, 옛사람이 순종하게 되면, 몸은 실행합니다. 이 셋이 합작하여 사람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죄에서 우리가 해방되는 방법은 옛사람을 못 박아 죽이는 것뿐입니다. (PPT8) 로마서 6장 6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여기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옛사람임을 보셔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원문에서 과거형 동사로 쓴- 영원히 이루어진 것임을 보셔야 합니다. 옛사람이 주님과 함께 못 박혀야 한다. 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이미 못 박힌 것이라 말씀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못 박혀 죽으실 때, 우리 옛사람도 함께 포함되어서- 그리스도가 죽으실 때, 우리 옛사람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들이 용서받는 것도- 주님이 하신 일을 믿고, 받아드림으로써 용서받았듯이- 옛사람이 못 박혀 죽는 것도- 전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의 옛사람을 못 박아 죽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당신이 말씀으로 옛사람이 이미 죽은 것을 알았다면, 이제 당신은 즉시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6장 6절에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멸한다’의 원문의 뜻은 <실직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죄의 몸의 역할은- 곧, 몸이 하는 일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과거의 우리 입은 욕하는 데 썼고, 머리는 더러운 일을 생각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우리의 손과 발은 나쁜 일 하는 일에 사용됐습니다. 그런데 옛사람이 죽음으로 이제 입은 욕하지 않게 되고, 머리는 더러운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손과 발도 죄짓는 일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 몸의 지체들이 죄짓는 일에 실직하게 되는 겁니다. 비록 죄가 나를 여전히 유혹하고 재촉하지만, 옛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죄의 몸이 실직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새로 태어난 새 생명은 죄를 지을 수 없는 신성한 본성이기 때문에- 몸에게 죄를 요구하지 않으므로- 몸은 죄짓는 일에서 실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모든 문제는 오직 ‘믿음’에 달린 것입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이이미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을 화합하지 않으면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것 같지 않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믿음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영에 속한 것입니다. 이해하고 느끼는 것은 혼의 기능이지- 영의 기능이 아닙니다. 그가 믿어지지 않는 것은- 혼으로 육신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영의 일입니다. 곧 영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육으로 자신을 보는 것은 그쳐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이제는 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곧,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거기서 우리가 함께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은 이미 죽은 자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나의 옛사람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죽었음을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옛사람이 못 박힌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자신을 부활한 자로 여겨야 합니다. 이제 죄에 대하여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도 여겨야 합니다.
(PPT10) 로마서 6장 11절을 보시면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말씀해 줍니다.
여기서 ‘여긴다’라는것은 그렇다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 옛사람도 이미 함께 못 박혀 죽었음을 압니다. 이것이 참인 것을 안다면, 함께 부활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우리가 친구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다가 앞에 앉은 친구가 요금을 내는 것을 보았다면- 뒤에 앉은 사람은 내릴 때 요금을 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앞에 앉았던 친구가 이미 계산(count) 한 것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다 이루셨기때문에 우리는 이미 count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진리로 account(간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 자신의 느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계속하여 당신이 살아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느끼는 것이 어디입니까? 곧 당신의 육신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육신의 생각에 묶어두려고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들여다보면- 죽지 않은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겁니까? 아니면 자신의 느낌을 믿는 것입니까?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산 믿음은 “자신의 느낌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산 믿음은 ”하나님이 내가 죽었다고 말씀했으면- 나는 죽은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믿음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된 것입니다. 내 느낌이나 체험은 언제든 변할 수 있습니다. 변치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은,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바꾸어 말하면-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것은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죽으실 때, 당신도 거기서 함께 죽었기에-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진리를 믿고 받았다면, 이제 구원받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죄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의롭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이 복음을 믿지 않거나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게 되었고 거룩함을 얻었으며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 즉시 구원받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은 즉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을 받은 걸 알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리하면’이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았다> 혹은 <영생을 가졌다>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아직도 얻기를 바라고만 있다면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는 것이고, 그분과 하나 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의 모든 것이 다 나의 것이며, 그분의 모든 체험이 다 나의 체험이 된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믿음이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믿음은 생각 속에서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 속에서 옳다고 찬성하는 것은 교리일 뿐이지,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참믿음은 내가 이미 얻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오직이 믿음만이 참된 믿음이고-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많은 이들이 주 예수님이 모든 것을 이미 다 이루셨다는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고 뒤로 미룹니다. 장래에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실것이며-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실것을 마음을 다하여 믿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사람은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그의 죄가아직도용서받지 못했고- 미래의 어느 날 용서를 받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아직도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죄는 주님으로 인하여 다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미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는 구원받은 사실에 감격할 것이고- 아마 눈물을 흘리고 있거나- 기뻐 뛰며 찬양할 것입니다. 이렇게 참믿음은 이미 얻은 줄로 믿고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죄에서 해방되셨습니까? 로마서 8장 1,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말씀해 줍니다. 이 말씀에 <아멘! 하십니까?> 즉 당신은 죄에서 벗어났습니까?” 만일에 당신이 아직도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여긴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된 것입니까?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은 필시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즉 이성이나 느낌으로 곧 혼으로 자신을 보기 때문에- 도저히 자신이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믿음은 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불신의 죄보다 더 큰 죄는 없다고 말씀합니다. 믿지 않는 마음을 성경에서는 믿지 않는 악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복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마음을 제해 주시고- 이 진리를 믿을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어쩌면, 자신의 내면의 악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당신 안에 무서운 죄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함으로 인해- 거기서 벗어나려고 한 번도 진지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어본 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악한 죄인임을 깊숙히 회개하지 않고 거기서 벗어나려는 진지한 몸부림을 쳐보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 복음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 중심을 찢고- 회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진지하게 기도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가 한 번은 독일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돌아온 어느 자매님을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 그때,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셨던 말씀을 전하고 있었는데- 자기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성령께서 저더러 “자매님! 자매님이 이 여인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도전하고헤어졌었는데,며칠 후에 만났을 때, 놀랍게도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바로 사마리아 여인보다 나을 것이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고 곧바로 그 모든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복음이 믿어지게 되면서 참으로 자유롭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 자매님의 표정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자매 안에 이미 성령님이 오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이미 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 … 하였다’라는 단어는 과거에 완료된 사실입니다. 이는 ‘이미’는 지나간 것입니다. 부디 ‘이미’를 ‘장차’로 바꾸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그 아들을 통해서 모든 걸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시면, 예수님이 어느 마을에 들어가실 때, 문둥병자 열 명이 멀리서 소리를 높여 “예수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였는데 14절에서 “보시고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하신 말씀을 봅니다. 여기서 주님은단지“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하셨는데 이들 열 명이 모두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 것입니다. 레위기 14장에 보시면, 문둥병이 깨끗게 되었을 때, 저들은 제사장에게 가서 정결 예식을 치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하신 것”은 너희 병이 내 말로 인해 이미 깨끗케 된 것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들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치료해 주실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나를 치료(구원)하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간구를 들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나의 간구를 들으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로지 이 믿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나의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말씀은 나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믿음은 거짓된 믿음이며- 쓸모도 없고, 효력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말씀이 있어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있는 모든 것을 단지 믿기만 하면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과 풍성한 약속들은 이렇게 모두가 이루어진 사실을 근거로 하여-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얻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보여 줄표적이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는 말씀의 의미를 이제 확실하게 알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흘리신 보혈로 나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음을 믿을 뿐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또한 믿습니다. 이제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생명 주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한 자로써- 은혜와 의의 생명을 넘치게 받았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는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으로 말씀을 좇아 믿음으로 사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이제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사는 자임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