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6일은 뜻밖의 해난사고를 당해 모두 476명의 승선인중 172명만 구조되고 9명의 실종자를
포함하여 304명의 귀중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世越號) 해난 참사를 맞은지 만 3년이 되는 날이었고
5월31일은 바다 관련 산업의 중요성과 의의를 높이고 국민의 해양사상을 고취하며, 관계 종사원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목적으로 제정된 바다의 날, 올해로 스물두번째를 맞는 '제22회 바다의 날'이다.
이번엔 해운이나 물류, 시황 얘기를 접고 잊을만 하면 재발되는 과거 해난 사례를 한번 쭉 살펴 봤다.
그래서 1971년 '청진항(淸進港)'으로 한국문단 최고의 등용문,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4권의 시집을 내고 300여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발표했던 외항선장, 고 김성식(金盛式)시인의 글 중에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첫 구절 "배를 타다 싫증나면 까짓것 청진항 도선사가 되는거야" 와 함께 "바다는
언제 잠드는가"라는 작품을 다시 한번 음미하며 진취적으로 개척해야 할 해양시대의 미래에 왜 바다가
해난사고로 인해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는가를 곰곰히 반추하게 된다.
특히 세월호 사고 당일 필자는 해운계 동료들과 대마도 여행길에서 돌아오는 여객선에서 사고 소식을
선내 TV 뉴스를 통해 승선중 해난사고를 접했기에 그 충격이 더욱 컸고 아직도 놀란 미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이와 같은 해난이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되겠단 뜻에서 광복 이후 과거 대형
해난사고를 상기해 봄으로써 해난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선사나 관련 기관 및 당국도 과거 겪은
해난을 거울삼아 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하는 계기로 삼고 대책 수립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무동력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크고 작은 해난 사고가 수없이 많았겠지만 먼저 1950년대를 시점으로
1953년 1월19일 부산항 기점 6.3해리 다대포 앞 해상서 부산/여수간을 오가는 정기여객선 146,24톤의
'창경호(昌景號)'가 삼각파도에 휩쓸려 침몰, 승객 271명이 사망하는 초대형 해난사고가 발생하여 당시
우리나라의 해난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최악을 기록했다. 선박에 의한 해난사고는 육지의 차랑이나 교통
수단에 비해 고립되는 지리적 여건때문에 구조의 손길이 닿기가 어려워 피해가 크게 마련이었다.
그후 18년만인 1970년 12월 15일, 당시 필자가 교통부 출입기자 시절로 교통부 관장업무 육운, 해운 및
항공, 관광 중 특별히 해운분야를 중점적으로 열심히 취재하던 때, 승객 325명과 화물을 싣고 서귀포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362톤급 정기여객선 '남영호(南榮號)'가 침몰, 승객 전원이 사망하고 밀감 6,231
상자, 기타 화물 28톤을 수장시키는 우리나라 해난사고 사상 최대의 대참사를 기록했다.
광복과 6.25를 전후 한 혼란기에 평균 선령 20년이 넘는 연안 여객선에만 의존하던 도서민의 교통에는
인재건 천재건 근원적으로 사고발생의 위험이 내포되어 있어 그 피해가 워낙 크며 참혹했었다.
구조의 어려움으로 국민에게 주는 충격이 너무나 컸고 행정적 기술적 결함을 노출시킨 사고라는 점에서
연일 신문과 방송이 앞다퉈 보도, 온 나라가 시끌벅쩍했던 기억이 새롭다. 특히 남영호의 경우 조난당시
SOS 무전을 타전했는데도 국내에서는 전혀 수신이 안되고 일본의 해상보안청 선박이 수신하여 구조에
임하면서 동시에 사고 발생을 주일대사관에 통보했다고하나 사고내용이 외신보도에 의해 처음 우리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은 정원초과, 화물과적, 선체불비 등 여러 요인을 두고 세인의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다.
당시 항로행정 책임을 맡았던 교통부 강상혁(姜相爀) 해사과장은 당해 사고후 퇴직하여 출입기자로 활동
했던 필자와 함께 당시 주요한(朱耀翰) 회장(대한해운공사 사장)이 수장이던 한국선주협회로 자리를 옮겨
조사부를 창설, 상무이사를 맡아 해운 조사 및 홍보활동을 함께 했기에 취재보다 상세하게 남영호 사고에
대해 듣을 기회를 가졌었다. 창경호 사고로 한마을 27가구가 한 날에 제사를 지내야했고 조손(祖孫) 3대가
제단을 같이 하는 슬픈 사연을 들려주기도 하며 강 상무는 지난 일을 회상하며 자주 수심에 젖곤 했다.
이어 1993년 10월 10일, 부안 위도의 110톤 규모 '서해페리호'는 정원이 221명이었지만 사고 당시 362명을
태우고 항해중 침몰하여 292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는 당시 국가적 비극으로 기억되고 있어 창경호, 남영호,
서해페리호와 아직도 온 국민의 가슴을 에고 있는 세월호 사고는 국내 해난중 빅4 큰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기타 1963년 1월 18일 '연호' 침몰 사고로 140명 사망, 1967년 1월 14일 '한일호'의 충남함 충돌사고로 인한
90명 사망사고도 귀중한 목숨을 앗아간 해난 사고로서 큰 희생자를 낸 사고에 속한다.
그밖에도 1967년 1월14일 남해 가덕도 앞바다 정기여객선 한일호 침몰로 94명이 사망, 12명이 구조됐었고,
2007년 5월12일 중국 대련항 근해 한국선박 오키드선호 침몰, 13명 실종, 2007년 12월25일 여수 해상 화학
약품운반선 침몰로 14명 실종, 2009년 3월10일 도쿄만서 제주선적 화물선 침몰 16명 실종, 2010년 3월26일
백령도 인근 해군초계함 천안함 침몰로 46명 사망 58명 구조, 2010년 4월2일 서해 대청도 근해 천안함 수색
작업 저인망어선 침몰 2명 사망 7명 실종, 2013년 10월15일 포항 앞바다 파나마 화물선 침몰로 9명 사망 2명
실종, 2014년 4월4일 여수 근해 몽골선적 화물선 침몰로 북한선원 2명 사망 11명 실종이 대형 기록이다.
한편 해외 해난사고로는 1912년 4월 15일 2,223을 태우고 영국의 사우스 햄프튼에서 뉴욕으로 향하다가 북
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하여 1,514명이 익사한 해난사고를 몇 차례나 사고 선명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었던
'타이타닉(Titanic)'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을 맡고 셀린디온(Celine Dion)이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을 불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며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고 자주 뱃길 해외
여행을 즐기는 필자는 갑판서 두 팔을 벌려 사랑의 환희를 만끽하는 주인공들의 러브신을 흉내내곤 한다.
기타 1915년 5월1일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어뢰에 맞아 1,198명이 사망했고, 1945년 1월 30일 독일
여객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가 어뢰 공격으로 5,400명 사망, 1948년 12월 3일, 중국 증기선 '키앙야'호가
기뢰사고로 3,902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또 1954년, 9월 26일 일본 연락선 '토야마루'호가 태풍
'마리'에 침몰하여 1,172명 희생, 1987년 12월 20일 필리핀 여객선 '도나파즈'호가 유조선과 충돌해 4,375명
사망, 1991년 12월 15일, 이집트카페리 '살람 익스프레스'호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 46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 1994년 9월 27일, 에스토니아 유람선 '에스토니아'호가 원인 모르게 침몰, 852명 사망, 1996년 5월21일
탄자니아 여객선 '부코바'호가 암초에 좌초, 500명 이상이 사망, 2002년 9월 26일, 세네갈 여객선 '줄라'호가
폭풍우로 침몰, 1,800명 이상 사망, 2005년 8월 17일 에콰도르 선박이 콜럼비아 인근 태평양 해상에서 침몰,
불법이민자 104명이 사망, 2006년 2월3일에는 승객과 선원 1,406명을 태운 이집트 여객선 '알 사람 98'호가
홍해서 선내 화재로 침몰, 이집트 사파가항 인근에서 1,100여명이 사망했고 2008년 6월21일에는 '프린세스
오브 스타스' 여객선이 침몰, 800여명이 사망한 기록을 보며 해난없는 바다 뱃길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