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하다 / 사사하다
“정치인은 연설문이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이 있는지 주변의 자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위의 말에서 ‘자문을 받는’이란 구절은 맞는 것인가 틀린 것인가. 물론 틀린 것이다. ‘자문하다, 자문 받다’는 흔히 쓰는 말이지만 위 예문처럼 잘못 사용하는 일이 많다. 자문(諮問)의 諮와 問은 다 같이 ‘묻다’를 뜻한다. 어떤 일에 관해 전문가나 전문 기관에 의견을 묻는 일을 말한다. 여기서는 정치인이 묻는다는 뜻이니, ‘주변에 자문을 받는’이 아니라, ‘주변에 자문하는’ 것이다. 자문은 질문과 뜻이 거의 같다. 어려운 한자어 대신 그냥 ‘주변에 묻는다’ 해도 된다. 윗말의 경우 정치인은 ‘자문을 하고’ 주변 사람은 ‘자문을 받는’ 쪽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자문(=질문)을 해서 답변을 구하는 행위를 ‘자문을 구하다, 자문을 받다’로 잘못 쓰고 있다.
그리고 자문(=질문)을 받은 사람은 그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자문에 응했다’고 말하면 된다. 요약하면, 대통령 자문 기구는 ‘대통령에게 자문(=질문)해 주는 기구’가 아니라, ‘대통령이 자문하는 기구’ 또는 ‘대통령의 자문(=질문)을 받아서 응답해 주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이와 유사한 말에 ‘사사(師事)하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을 가리켜 ‘사사(師事) 받다’라는 말을 쓰는 이가 더러 있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사사하다’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사(師事)라는 말 자체가 ‘스승으로 섬김 혹은 스승으로 섬기며 그의 가르침을 받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사라는 말 속에 이미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 있는데, 또 ‘(사사)받다’라고 하면 그 뜻이 중복되어 어긋나게 된다.
그러므로 “저는 박 선생님께 사사했습니다.”와 같이 쓰면 된다.
첫댓글 이해가 되도록 반복 해서 읽었습니다.
도움주신 박사님 고맙습니다.
늘 편안한 나날 되십시요.
다은 선생님 항상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