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하늘이 처음 열였던 날부터 천고 후까지, 휘달리던 산맥 들도 범하지 못하였으며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어준 이곳, 이 신성불가침의 시공간 속에서 흰눈과 흰말(白馬),매화 향기와 초인의 이미지, 대 서사적 시제와 감탄하고 묻고 명령하는 강렬한 정서는 한결 고무된다.
웅대하다는 말이 이 만큼 어울리는 시도 드물 것이다. '광야'는 항일 저항시의 압권인 동시에 그 언어의 밀도로 보아도 단연 다른 작품의 추종이 허락되지 않을 정도의 수작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 하나만으로도 '육사'는 '한국현대시사'를 장식 한 빛나는 성좌로 평가 되어야 한다.
님은, 경북 안동의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조부(祖父)로부터 엄격한 양반 교육과 한학을 배웠다. 시대적 추세와 함께 개화한 조부(祖父)는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노비들에게 토지를 분배해 주는등 반봉건 인간 해방의 실천적 삶을 보여 주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육사'는 항일 의식이 강한 친가,외가 의 영향을 받아 그의 이름 앞에는 지사, 독립투사, 혁명가 , 아나키스트, 테러 리스트, 의열단 단원등의 많은 수식어 가 따라 다닌다.
1925년 22세에 항일 무장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한 후 북경, 만주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였고, 1928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 되어 수감되었을때 수인번호가 64번 ,이를 대륙의 역사 라는뜻의 한자 '육사'(陸史)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 후 반일제, 반봉건, 민족해방, 인간해방의 선봉에 서서 17회의 옥고를 치르며, 머나먼 이국땅 북경에서 옥사 하면서 까지도 일제에 굴하지 않는 꿋꿋한 조선 남아의 기개를 보여 주었다.
님의 시는 화려한 상징과 은유를 상징해 독립에 대한 의지와 항일 투쟁정신을 표출하고있다. 또 님은 일제강점기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 으로 일제에 항거한 시인 독립투사로 각인된다. 식민지 시절 일본에 대항하고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던 님의 인고와 기다림은 초인으로 승화 된다. 님이 살았던 시대는 비록 척박하고 힘겨웠으나 님의 시 에는 희망이 담겨있다.
나를 던져 언젠가 조국이 독립하는 날이 오리라. 그 독립의 순간을 꿈꾸며 님은 이런 시를 썼으리라. 님의 시를 읽노라면 가슴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솟구쳐 오른다. 목숨을 걸만큼 절박했고 갈망했던 내 나라의 독립,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고 싶었던 그 노래, 우리가 맞이 했던 빛나는 광복의 순간에는 님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 의 눈물과 절망과 희망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