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 마인드셋’은 비행기도 회항시킬 수 있다?
인하대학교 영어교육과 12202766 오남경
<일명 ‘비행기 회항 사건’의 발단>
나는 국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이름만큼이나 국제적인 마인드를 중시했던지라, 학교에서는 항상 아이들에게 국제적인 마인드를 지닐 것을 강조하며, 학교 교육과정도 SAT, AP, IB를 기반으로 하여 흔히 국내 일반고등학교가 진행하는 수업과는 다른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곤 했다. 이 밖에도 국제이해교육, 국제반 운영 등의 차별점이 있었는데, 이 국제적 마인드셋 함양을 위한 노력의 정점에는 미국 수학여행이 있었다. 주변 학교를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는 ‘수학여행을 미국으로 가는 학교’로 인식되곤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친구들과 이 미국 수학여행만을 기대하며 힘든 학교생활을 버텨내곤 했다.
드디어 2학년이 끝나고, 대망의 미국 수학여행 날이 다가왔다. 부푼 마음을 가득 안고 간 미국은 상상 그 이상의 스케일을 지니고 있었다. 뉴욕은 영화에서나 볼법한 비주얼의 높은 빌딩들로 가득 차 있었고, 바쁘게 움직이는 일명 뉴욕커들은 나에게 처음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심어주었다. 미국 고등학교는 정말 하이틴 영화처럼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는 유한 분위기였던지라 앞으로 남은 2주간 하게 될 유타 주 여행을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뉴욕에서 유타로 넘어가는 당일, 우리는 델타 항공의 작은 항공기를 타기 위해 존 F. 케네디 공항으로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리 도착한 나를 포함한 우리 학교 일행은 탑승구 게이트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을 보면서 한 10분간 기다렸던가? 갑자기 선생님들께서 성난 얼굴로 스튜어디스 분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듯 보였다. 궁금했던 친구들과 나는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여쭤봤더니, 비행기가 안내도 없이 우리가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먼저 떠났다고 하셨다.
<사건의 전개: 직관인가 합리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당시 국제반의 회장이었던 나는 우선 우리 반 친구들에게 이 문제상황을 전달했다. 모두들 화가 나고 당황스러운 듯 보였다. 더불어 우리 학교 몇몇 선생님들은 이미 비행기에 타셔서 출발한 상태였는데, 추후에 들어보니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몇몇 사람들에게만 비행기가 일찍 출발한다는 정보를 알려주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침착하게, 또 합리적이게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그게 잘 안되었다. 비행기가 이미 출발하였고, 또 다른 항공편이 없었던지라 남은 일행들은 다음날 비행편을 타기 위해 공항에서 밤을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비행편을 끊기에는 금액의 문제도 있었고, 미리 비행기에 탑승한 일원들은 유타에 이미 도착해있고, 몇몇 학생들과 선생님은 뉴욕 공항에 남아있는 상태라 문제가 더 복잡하게 흘러갔다.
<위기: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흔히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의 머릿속에 천사와 악마 캐릭터가 대치하듯, 내 머릿속에도 직관과 합리의 마인드셋끼리 심각한 대치를 이루었던 것 같다. 문제 상황을 파악하고 이에 따른 합리적 해결방안을 계획하여 실천할 것인가, 혹은 즉흥적으로 내 마음과 생각이 이끄는대로 문제해결에 도전해볼 것인가에 대해 짧은 순간,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러다 문득, 회장인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어떤 용기와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탑승구 쪽에 계셨던 스튜어디스 분께 다가갔다. 그리곤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따졌다고 하는게 더 맞는 말인 듯하다. 본래 예정되어 있던 탑승 시간보다 더 일찍 비행기가 출발한 점, 그 사실을 승객 모두가 아닌 일부에게만 전달한 점, 그리고 안내 방송이 전혀 없었던 점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결말: 회항이 된다고?>
스튜어디스 분들도 처음에는 본인의 잘못이 아님을 주장하며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을 하시다가, 이야기를 하면서 점차 자신이 정보 안내를 충분히 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는 어디론가 무전을 하는 듯 했다. 그리곤 내게 ‘비행기가 5분 후에 다시 탑승구 쪽으로 올테니 채비를 하고 있어라’라는 말을 전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비행기 회항은 갑작스러운 결함이나 심각한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만 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회항을 할 수 있구나, 놀랍고 신기했다. 실제로 비행기는 조금 이따가 탑승구에 다시 도착하였고, 다시 게이트와 연결한 이후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했던 일행들은 무사히 비행기에 다시 탈 수 있었다. 나를 모르는 다른 반 친구들도, 우리 반 친구들도, 그리고 선생님들 모두 내게 덕분에 살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여담이지만, 이 날 이후로 나는 ‘수학여행 히어로’로 학교생활 내내 불리곤 했다.
<때때로 직관은 무서운 힘을 가진다>
비행기만 타면 곯아떨어지는 내가 이 날은 상공을 나는 내내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이게 된다고?’하는 놀라움이 계속 가시지 않았다. 내가 만약 스튜어디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면 남은 일행은 공항에서 자야 한다는 상상을 해보니 심장이 철렁하는 느낌도 들었다. 합리적인 마인드셋은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그 효과성을 발휘한다. 하지만 우리 삶에는 마치 나의 이 미국 수학여행 상황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즉흥적인 사건 사고들로 가득 차기 마련이다. 만약 내가 합리적 마인드셋을 이 상황에서 고집했더라면, 나는 비행기 회항을 실현 불가능한 해결방안으로 생각해버린 채 선생님들과 다음 항공기 편 티켓을 어떤 사이트에서 어떻게 구할지를 고민하는데 시간을 투자했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나를 포함한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하룻밤을 공항에서 보내야 했고, 이미 정해진 일정들이 모두 밀리고 뒤틀렸을 것이다.
과도한 계획과 생각은 오히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연한 대처를 불가능하게 하고, 한계적인 사고를 이끌어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문제 해결 방안 제시를 제한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던 것 같다. 인생의 크고 작은 즉흥적인 문제 상황에서, 합리적 사고방안만을 고집하며 계획에 따른 문제해결만을 추진한다면, 잘못하면 무언가에 얽매여 더 나아가지 못하고 유동적인 사고를 막을 수도 있겠다는 합리적 마인드셋의 크나큰 단점을 깨우치기도 한 날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직관적 마인드셋이 지니는 큰 힘을 알게 되었고, 계획적인 생활과 문제 해결을 중시하던 나는 이 이후 유연하게 대처하고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습관을 서서히 삶에 들였다. 지금은 어떤 문제 상황이 내게 닥쳤을 때 너무 많은 계획을 설계한 채 해결하기 보다는 다양한 해결방안을 고려해보며 보다 즉흥적이고 유동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 같다. 문제 해결뿐만이 아니라, 혼자 해외 여행을 가서 해외 친구를 사귀어보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일자리를 구해보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도 한다. 직관은 때로는 내게 새로운 친구를 선물하고, 예상치 못했던 추억을 제공하며, 또 어느 때에는 비행기를 회항시키는 큰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난 즉흥이 주는 크고 작은, 때로는 내게 이득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내게 손해를 주기도 하는 이 모든 변화들이 재밌고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더 많은 경험과 교훈을 위해 난 앞으로도 보다 즉흥적으로, 직관적으로 살아보려 한다!
첫댓글 합리적 마인드셋이 도움이 될 때도 많지만 학우님의 것을 포함해 다양한 에세이를 읽어보면서 직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함께 즉흥적으로, 직관적으로 살아보며 새롭고 좋은 경험과 교훈을 얻게 되면 좋겠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