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人面獸心]이 활개를 치고 있는 세상, 이미 정상궤도에서 한참 벗어난 한국 사회 속에서는 분수라는 말을 함부로 꺼내놓기도 부끄러울 지경이 되지 않았는가를 종종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다가 인간의 탈을 쓴 짐승보다 못한 인간쓰레기들이 온 사회에서 저들의 세상인양 설치고 있으니, 도대체 정상적인 정신 상태의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과는 분리된 별천지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을 지경에 이른 것 같습니다.
차라리, 지난 1970년대 이전의 헐벗고, 굶주림에 비록, 살림살이가 많이 어렵기는 했어도 요즘 같이 인면수심[人面獸心]이 활개를 치는 도덕성이 완전히 상실된 세상은 아니었는데, 먹고살기가 많이 좋아지고 주머니에 돈을 챙길 수 있게 되고, 국제적으로 심심찮게 나들이를 즐기다가 보니,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분수를 망각한 채 딴 세상 사람인양 살고 있는 듯합니다.
마침, 어제가 봄이 오는 길목에 있는 경칩(驚蟄)이라는 절기였지요! 개구리와 뱀 등의 냉혈 동물이 월동(越冬)에 들어가 동면[冬眠] 중에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뜻으로 이와 관련된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도 저마다 해석을 하기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아래에, 청대언론사 사설 기사에서 좋은 글을 일부 스크랩하였습니다.
첫째는 진리론으로, 개구리는 인간처럼, 기억을 하지 못하므로 과거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배신론으로, 자신이 올챙이였을 때는 부모 등 주변의 도움 없이 성장하지 못하였을 텐데 개구리가 된 이후에는 이를 까마득하게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며, 셋째는 현실론으로, 현재의 일상이 벅차다는 핑계로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사치라고 여기는 것이고, 넷째는 미래론으로, 과거와 현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이기 때문에 올챙이 시절은 생각하지 말고 미래를 개척하라는 것이며, 다섯째는 보복론으로, 군대나 직장에서 나도 신입 때 고생하였으니 너도 당해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여기에 추가하여 반성론을 제기하고 싶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고 인간이 이를 비난할 수 없다. 인간은 불과 몇 분 전의 일도 모른다. 예를 들면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如廁二心)”.
현재 한국 사회는 수차례에 걸쳐 언급하였지만, 확실히 정상적인 사회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이상한 사회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감언이설로 선전선동하는 가짜 뉴스 생산자들이 사회 각 부문에서 주체적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부화뇌동[附和雷同]하면서 적극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다수의 무리들과 조직체가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따라서, 지난 세월 한 50년 동안 피와 땀을 흘리면서,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해외 노동자들 못지않은 더 많은 고난의 세월을 이국 땅에서 한국의 산업화를 위한 삼짓돈을 마련하고, 노사쟁의는 커녕, 일자리가 없어서 허득이든 노년 세대들 가운데는 차라리, 조속히 경제 공황의 물결 속에서, 현실을 제대로 가름하지 못한 채, 인면수심 [人面獸心]이 활개를 치는 세상을 간과하고 있는 청장년 세대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가지게 됩니다. 실제 가난의 맛을 체험하지 않고 스스로 우리 사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당연히 좋겠지만,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사회에서는 매서운 회초리를 맞아야만 한다고 생각됩니다.
끝으로, 오늘의 한국 사회가 재생될 수 있도록 초석을 마련한 아무리 멍청이 좌빨들이 뭐라고 하든 현대 한국의 잊지 못할 영웅 박정희 대통령의 생생한 일화를 첨부합니다.
죽은 金대중 金영삼 盧무현 좌좀 귀신들과 인간망종 文재앙은
위인 朴정희를 보거라!!
♤ 그리운 그 사람
"그 車가 네 車냐-?
그 車가 네 아버지 車냐-?"
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기인 김병희 전 인하공대 학장의 회고록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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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혁명시절
최고회의 의장실에 무상출입 하게 된 나는 박정희와 30년 지기였건만,
그때 나는 인간 박정희의 새로운 片貌를 보게 되었다.
내가 의장실에 처음으로 들어섰을 때의 첫인상은그 방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장식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특별한 기물도 없었다.
마치 야전사령관이 있는 천막 속을 방불케 하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그가 앉는 의자는 길가에서 구두 닦는 아이들 앞에 놓인 손님용 나무 의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피우는 담배는 국산 "아리랑"이었다.
당시에 내가 피우던 담배는 국산으로는 최고품인 "청자"였고,
때로는 선물로 받은 양담배 "바이스로이"를 피웠는데,...,
그것도 저것도 아닌 "아리랑"을 그가 피우는 것을 보고 놀랐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또 하루는 그 방에 들어갔을 때 마침 그는 점심을 들기 시작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단돈 10원짜리 냄비가락국수한 사발과 단무지 서너 조각이 그날 식단(食單)의 전부였다.
마침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10원짜리 가락국수를 50 그릇이나 살 수 있는 500 원짜리 고급 식사를 마치고 온 터라 몹시 양심(良心)의 가책(呵責)을 받았다.
"동서고금을 통해 한 나라의 최고 집권자가 이렇게 험한 음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깊은 감명(感銘)을 받았다.
朴의장의 애국심은 지나치다고 보일 때도 가끔 있었다.
그는 당시 장충단 공원에 있는 의장공관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 눈비 내리는 겨울 아침에 국민학교 6학년인 장녀 근혜 양을 운전병이 지프차로 등교시켜 준 일이 있었다.
그날 저녁에 그 사실을 알게 된 朴의장은 근혜 양을 불러다 꿇어 앉혀놓고,
"그 차(車)가 니(네) 차냐,?
그 차가 아버지 車냐?" 하고 힐책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울고만 있는 딸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차는 나라 차야, 나라 차를 니(네)가 감히 등교용으로 쓸 수 있는가 말이다!"
아득한 옛날, 대구사범 1학년 때 생각이 떠오른다.
박물 시간에 어느 식물 꽃 단면을 확대경을 보아가며 크고 세밀하게 그리는 작업을 한 일이 있었는데-,
여러 급우들이 그린 것들 중에서 최고 평점인 "G"를 박(朴) 군이 차지했었다.
그는 일찍 경북 선산군 구미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그와 같은 수석들 만이 응시했던
대구사범의 9 : 1이라는 입시경쟁을 돌파한 엘리트였고..,
그 엘리트들 중에서도 "G"라는 평점을 받을 만큼 그의 두뇌는 비상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천군만마를 질타하는 작전계획이라면 저 미국 육사 출신의 엘리트들 조차
우리 朴장군을 따를 수 없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랬기에 쓰러져 가는 이 나라의 구출을 위한 한강도강작전(漢江渡江作戰)에도 성공하지 않았던가-?
정희야-! 너와 나는 대구사범에 입학해서 본관 2층이었던 1년 2조(組) 교실에서 처음으로 만났지-,
이름 글자로는 드물던 "희(熙)"를 우리 둘은 공유했기에,나는 너에게 비록 성(姓)은 달랐어도 형제와도 같은 친근감을 느꼈었다.
내가 보던 너는 항상 모든 일에 총명했다.
게다가 너는 또 의분을 느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용감한 사나이였다.
어느 날은 박물교실의 뒤뜰에서 대구출신 S 군과 약골(弱骨)인 주재정君이 싸웠는데,
깡패와 같았던 S는 주 군을 단숨에 때려눕혀놓고, 그래도 모자라서 맥주병을 깨어 머리를 쳤는지라
유혈이 낭자(狼藉)했다.
모두가 겁을 먹고 도망쳤는데, 오직 우리 朴군만이 뛰어들어 그 S를 때려눕히고주 군을 구출했었다.
그 용기와 그 지모와 그 애국심이 朴군의 그날(5.16 혁명)을 있게 했건만-,
그에게 넘겨진 대한민국은 GNP 83弗의 세계 153개국 중152번째로 못 사는 나라였다.
헐벗은 백성들이 4月남풍에 대맥(보리)이 누렇게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른바, 우리 겨레의 비운(悲運)이었던 보릿고개를 알았기에, 그는 10원짜리 냄비가락국수로 점심을 때우면서도 그런 것조차도 못 먹는 불쌍한 동포들의 굶주림을 걱정했을 것이다.
또 체인스모커(chain smoker)인 그가 담배 없이는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니 피우기는 해야겠는데-,
그 옛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궐련은커녕 한 봉지의 장수연(長壽煙)이나 희연(囍煙) 조차도 손쉽게 못 얻어 피우시던 일을 회상하면, 그 "아리랑"을 피우기조차 송구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없었을 것이다.
인간 朴正熙-!
그는 이미 하늘나라로 가버렸으니 어찌 나의 이 추모의 情을 알리오.
오늘에 와서 그를 비방(誹謗)하는 일부 인사들도 많지만, 진정 그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그 당시 그를 가까이 모시면서 만사에 청렴결백했던 그를 보았지만 아무리 맑게 한다 해도,
후일의 가족을 위해 어느 구석진 곳에 그들의 생활비 정도는 나올 무엇인가는 마련해 두었으리라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보니 그것도 아니었으니, 이 세상에 그처럼 결백한 집권자가 또 어디 있었을까,
박대통령의 비리를 찾아보려고 26년간 뒤지고, 까고, 파고, 훑어봐도 찾을 수가 없으니,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그가 쓴 광화문, 화령전, 운한각, 현판도 뜯어내고-,
그 시절에 심어졌다 해서 나무까지 뽑아낸 좌파들-!!,
장관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제 자식 취직자리부터 챙기는 썩어빠진 것들이 박대통령을 매도하려 발버둥 친다.
좌파 놈들아-!!
똑바로 알아라!!
당신들 제아무리 폄훼하려 발광해도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은 대한민국 중흥의 시조로써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임을….,
박정희는 비록 비명에 갔지만 그는 죽어서 진정 그 가치를 세월이 흘러가면 갈수록 높이 평가받게 될 것임을….,
김병희 前 인하공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