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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숙-청해성 ] 여행기를 시작하며
황하의 거친 흙빛 물결
이 빚어낸 깎아지른 석림(石林)을
뒤로하고 서북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문득 대지는 마른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이곳의 협곡은 신생대 제3기의 붉은 사암과 이암이
겹겹이 퇴적된 뒤, 수백만 년에 걸쳐
황하의 하방침식(下方浸蝕)과 풍화가 조각해 낸 것이다.
물은 단단함과 무름의 층을 골라 깎아내리며,
마치 거대한 조각도처럼 첨탑과 병풍을 세워 놓았다.
지도 위에서 이 여정은 단순히 점과 선을 잇는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 전 실크로드의 대상(隊商)들이
마주했던 거대한 시간의 지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한 무제(漢武帝)가 흉노를 몰아내고
하서사군(河西四郡)을 설치하여
이 회랑을 중원의 판도 안으로 끌어들인 것도
바로 이 물길과 오아시스를 잇는 통로 때문이었다.
협곡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고대 무덤,
뢰대한묘가 품은 쓸쓸한 옛바람은 이 척박한 회랑이
단지 황량한 불모지가 아니라 흉노와 한족,
유목과 정주가 오래도록 길항해 온 경계였음을 속삭인다.
붓으로 그어 놓은 듯 붉고 노란 퇴적의 경이,
장예의 칠채산(七彩山, 단하지모丹霞地貌)으로 이어지며
대지가 지닌 가장 화려한 화폭을 펼쳐 보인다.
이 채색은 백악기 이래 쌓인 사암과 이암 속
철분과 광물이 서로 다른 속도로 산화하며 빚어낸 결과로,
히말라야 조산운동이 일으킨 습곡과 융기가 그 지층을
비스듬히 들어 올려 지금의 물결무늬를 완성했다.
수천만 년의 비바람이 다듬어 놓은 산등성이는
태양이 기울 때마다 붉은 비단처럼 펄럭이고,
여행자는 그 색채의 제단 앞에서 문득 자연이라는
절대적인 예술가 앞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러나 대지의 변모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더 깊숙이 내몽골과 간쑤의 경계로 접어들면,
대지는 이내 끝없는 모래의 바다,
바단지린의 품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드는
정지사구(定地砂丘)들이 모인 곳으로,
편서풍과 몬순이 오랜 세월 실어 나른 모래가
기반암 위에 겹겹이 쌓여 200미터가 넘는 능선을 이루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거대한 모래 능선이 우람한 곡선을
그리며 출렁이고, 그 황금빛 사구(沙丘)의 주름 사이마다
기적처럼 영롱한 파란 눈물 같은 호수들이 숨어 반짝인다.
지질학자들은 이 사막 속 호수들이 인근 산지에서
깊은 지하수맥을 타고 스며 올라온 물이라 추정하니,
생명이 깃들 수 없을 것 같은 가장 극단적인 건조의 땅에서,
모래와 물이 빚어내는 이 태초의 신비는
유라시아가 품은 거친 생명력을 가슴 시리도록 체감케 한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뒤로하고
치롄산맥(祁連山脈)의 품 안으로 발길을 돌리면,
대지는 고요하고 장엄한 산악의 풍경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그 길목에서 마주하는 치롄 줘얼산풍경구(卓爾山風景區)는
'동방의 소(小)스위스'라 불릴 만큼 이국적이면서도
웅장한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펼쳐낸다.
붉은 사암의 대지 위에 융단처럼 펼쳐진 초록빛 구릉,
그 뒤로 거대하게 솟아오른 줘얼산의 독특한 붉은 산봉우리가
눈부신 만년설을 이고 선 치롄의 주봉(아울랄산)과
대비를 이룬다.
능선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초원의 풀내음과
설산의 차가운 기운이 섞여 있고,
산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바바오(八寶) 강의 옥빛 물줄기는
초록과 붉은빛의 대지 위로 은빛 실타래를 풀어놓듯
아득하게 반짝인다.
산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하늘과 맞닿은 굽이굽이의 산줄기들이 마치 대지가 품은
거대한 주름처럼 끝없이 이어지며 여행자의 숨을 멎게 만든다.
치롄산맥의 능선을 내려와 다시 고개를 들면,
대지는 온통 눈이 부시도록 황홀한 노란빛의 바다로 변모한다.
치롄산맥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과 고원의 서늘한 바람이
빚어낸 문원(門源)의 유채백리도(油菜白里圖)다.
수십만 평의 거대한 구릉 대지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노란 유채꽃 카펫으로 통째로 뒤덮이고,
그 위로는 아직 녹지 않은 설산이 병풍처럼
하얗게 시위를 돕는다.
묵직하고 거친 사막의 여정 끝에 만난
이 눈부신 황금빛 대향연은,
차창에 기대어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단숨에 환히 밝히는
찬란한 위로이자 자연이 허락한 가장 거대한 시(詩)였다.
그 황홀한 꽃밭을 지나 남쪽으로, 다시 더 높이 고개를 들면
풍경은 순식간에 하늘과 맞닿은
칭하이(靑海)의 고원으로 도약한다.
해발 삼천 미터를 훌쩍 넘는 이 고원은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이 빚어낸 티베트고원의 북동쪽 가장자리로,
청해호 자체도 단층 운동으로 주저앉은 지구(地溝) 분지에
물이 고여 만들어진 중국 최대의 내륙 함수호(鹹水湖)다.
끝없는 초원과 맞닿은 쪽빛 호숫물은 바람마저 숨죽이게 만들고,
그 옆으로 펼쳐진 차카염호는 세상의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이 소금 평원은 빙하기 이래 마르고 채워지기를 반복한
옛 호수의 흔적으로, 증발이 강수를 압도하는 고원의 기후가
수천 년에 걸쳐 소금 결정을 침전시킨 결과다.
하늘과 땅이 하나로 녹아내려 발길 닿는 곳마다
거울이 되는 그 소금의 평원 위에 서면,
인간은 비로소 대지의 거대한 눈동자 속을 걷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일찍이 당나라 문성공주가 토번으로 시집가던 길도,
실크로드 남로의 대상들이 오가던 길도 모두 이 호수의
가장자리를 돌아 나갔으니,
청해호는 예로부터 한족과 토번,
몽골이 서로 다른 셈법으로 바라보던 전략적 요충이었다.
그리고 이 아득한 고원의 풍광이
마침내 인류의 온기와 기원으로 수렴하는 곳,
시닝의 타얼스(塔爾寺, 대사)에 이른다.
척박한 사막을 건너고 눈부신 고원의 호수를 지나
마침내 마주한 성스러운 사원에는, 티베트 불교의 묵직한
경쇠 소리와 함께 수많은 순례자들이 대지에 몸을 던져
올리는 간절한 기도가 켜켜이 쌓여 있다.
1560년대에 세워진 이 사원은 겔룩파(格魯派)를
창시한 총카파 대사의 탄생지를 기리는 곳으로,
몽골과 티베트, 그리고 중원의 문화가 거칠게 부딪치고
기적처럼 융합해 온 유라시아 교류의 살아 있는 심장부다.
황하의 물길에서 시작해 모래바다와 칠채의 산군,
줘얼산의 붉은 봉우리와 눈부신 유채의 바다를 거쳐,
하늘을 비추는 염호와 기도가 피어오르는 사원에 이르기까지.
이 길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판의 충돌과 물의 침식, 바람의 퇴적이
수백만 년에 걸쳐 새겨 놓은 지구의 연대기이자,
그 척박한 운명 속에서도 길을 내고 문명을 꽃피워 온
인류의 뜨거운 발자취를 더듬는, 영혼의 거대한 순례길이다.
9일간의 여정,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바라보던 거친 대지의 파노라마가
비로소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마음에 내려앉는다.
황하의 흙빛 물결에서 출발해 사막의 모래바다와
고원의 하늘 거울을 지나,
기도가 메아리치는 성스러운 사원까지,
버스의 창틀이라는 작은 액자 너머로 흘러넘치던
그 방대한 시간과 공간의 지층들을 이제 차분히 가라앉히며,
펜을 들어 다시 한번 그 길 위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 우루무치-카스 여행 ] 여행기를 끝내며..
우루무치에서 카스까지, 그 방대한 여정을 준비하던 순간부터 걱정은 이미 짐 속에 먼저 들어가 있었다.
쉽지 않은 일정과 적지 않은 인원. 누군가의 작은 불편이 전체의 공기가 되고,
한 사람의 피로가 열 사람의 표정으로 번지는 단체 여행의 속성을 잘 알기에,
출발 전부터 마음 한켠에는 묵직한 돌멩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중국을 여행한다는 것,
특히 신장위구르의 땅을 걷는다는 것은 그 대지가 품은 복잡한 결들을 이해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도처에 드리운 통제의 그림자와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지층 같은 갈등들.
그것을 외면한 채 그저 풍경만을 소비하는 것은 이 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불어오듯, 이 땅의 거친 역사도 그렇게 우리 곁을 서늘하게 스쳐 지나갔다.
타클라마칸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사막 횡단도로는 끝없이 이어졌다.
버스 창밖으로 모래언덕이 파도처럼 물결치고, 좌석 등받이에 기댄 몸은 고스란히 노면의 진동을 받아냈다.
식사 시간이 미뤄지고, 예정된 경로가 바뀌며, 때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낯선 길로 꺾어지는 상황,
여행이란 본디 혼돈을 기꺼이 마주하는 일이라 스스로를 달랬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체력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말을 타고 달리며 산을 바라본다는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는 말이 이토록 정확하게 들어맞는 여정이 또 있을까.
눈이 풍경을 다 담기도 전에 발걸음은 이미 다음 장소를 향해야 했다.
석두성(石頭城) 유지의 황량한 흙빛 성벽 앞에서, 무즈타그아타의 서늘한 만년설 아래에서,
그리고 라왁 사리탑이 품은 천년의 침묵 속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을 해야 했다.
아쉬움을 음미할 여유조차 사치였던 혼돈과 이동의 연속.
그 격렬한 리듬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이 여행의 속도에 몸을 맞춰갔다.
늦은 밤 도착한 숙소에서의 잠은 늘 짧았다.
몸을 제대로 뉘기도 전에 새벽이 창문을 두드렸고, 다시 캐리어를 꾸려 어둠 속으로 나서야 했다.
육체가 갈리는 것인지 정신이 닳아지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밤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지독한 피로의 한가운데서 오히려 선명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고단함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자 감각은 도리어 날카롭게 깨어났다.
카스 구시가지 골목에서 마주친 이국적인 얼굴들, 시장에 붉은 속살을 드러낸 채 쌓여 있던 수박 더미,
국경 너머로 아득하게 이어지던 파미르의 장엄한 능선—그 파편들이 유독 또렷한 낙인처럼 마음속에 남았다.
마지막 밤이 지나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 여행 가방을 꾸리는 손길이 평소보다 무겁고 느렸다.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기억들을 하나씩 접어 넣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는 순간, 묘하게도 이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직 그 거친 길 위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비로소 더 깊고 긴 여행이 시작됐다.
자료집 속에 갇혀 있던 딱딱한 활자들과, 두 눈으로 마주했던 압도적인 풍경들을 하나씩 꺼내어 맞추는 일이다.
활자 위에 풍경을 얹고, 풍경 위에 역사를 채워 넣는 내면의 여정은
실제의 발걸음보다 훨씬 느리지만 비교할 수 없이 풍요롭다.
좋은 여행 뒤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 남는다.
수많은 변수와 무리한 요구 속에서도 끝내 따뜻한 미소와 책임감을 잃지 않았던
가이드 경광 씨에게 이 글을 빌려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낯설고 고된 길을 묵묵히 함께 걸어주신 동행자분들께도 고개를 숙인다.
우리가 함께 나눈 고단함과 웃음, 그리고 광활한 대지 앞에서 공유했던 잠깐의 침묵들이,
언젠가 삶의 어느 무심한 오후에 문득 떠올라 작은 위로이자 기쁨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길 위의 여정은 끝났다.
그러나 이 여행은 이제, 우리 각자의 안에서 비로소 시작되어 계속 흘러갈 것이다.♧
♬- I Love You Every Day

첫댓글
이 더위에 여행 떠나셨어요
여행은 가을 바람과 함께하면 최고지요
폭염에 조심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