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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노래로 찬송하라
시편 98:1~9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이 시인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해서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자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때마다 찬송을 부르는 것은 그와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고, 찬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큰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5절까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요한계시록에 보면 십 사만 사천이란 말이 7장에 나오고, 그리고 14장에 나옵니다. 7장에 나오는 십 사만 사천은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열 두 지파 중 각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씩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14장은 이 무리들이 땅에서 혹은 사람 가운데서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7장의 무리는 아버지의 인을 받았다고 했고, 14장의 무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을 둘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십사만 사천이란 숫자는 구원받은 사람들 모두를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처음에 들을 때는 얼마나 장엄한지 많은 물소리 같기도 하고 큰 뇌성도 같은데, 자세히 들으니 거문고 소리같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리듬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새 노래로, 구속함을 얻은 사람밖에는 부를 수 없는 노래입니다. 옛날 중국에 백야라는 사람은 거문고를 얼마나 아름답게 연주했는지 그가 거문고를 타면 물 속에 있는 고기들이 쭉 모이곤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심령의 아름다운 노래가 있을 때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답습니까? 물론 하늘나라에 가서도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송을 드려야겠지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하늘의 신령한 노래, 말하자면 새 노래를 부르며 한 걸음 한 걸음 하루하루 살아 나간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기리라 믿습니다.
에베소서 5장 10절에 보면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라”고 하였습니다. 목소리가 좋아야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성가대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할 때는 아무리 교회 봉사를 하고 싶어도 음치만은 사양하라고 합니다. 왜냐 하면 합창을 할 때는 한 파트만은 똑같은 음정의 소리를 내야 하는데, 음치의 경우는 tone-deaf가 되어서 귀가 어둡기 때문에 높고 낮은 것, 강하고 약한 것의 소리 자체는 알아듣지만 소리를 자기 마음대로 내기 때문에, 어떤 때는 2도 차이가 나고, 때로는 3도 차이가 나고, 어떤 때는 2도 반의 차이가 나서, 이런 때는 같이 노래 부르기가 여간 어렵지 아니합니다.
심방을 하게 되면 어떤 구역 책임자는 노래를 정확하게 하기 때문에 찬송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그분 나름대로 열심히 크게 부르시는데, 음이 맞지 않아 크게 부르면 부를수록 어려워 아예 그분의 음정을 따라가면 차라리 괜찮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새 노래로 노래한다는 말은 음정을 맞추어 노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새 노래를 부르는 구원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새 노래를 부른 데는 구원에 대한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모여서 예배드리면서 과연 이와 같은 감격으로 노래부릅니까? 우리 성가대가 찬양을 할 때 이와 같은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찬양을 합니까?
이 고달픈 세상 살아가면서 답답하고 맥빠지고 피곤하고 지칠 때, 하나님을 앙망하며 찬송 부르시기 바랍니다. 새 힘이 솟아날 것을 믿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마음 속에는 구원의 은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까? 조금 전에 읽은 요한계시록 14장에,
1. 이 땅에서 믿음으로 “그 이마에 아버지의 이름을 썼고”(14:1하반), “이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14:3하반)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함으로써 다시 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주 안에서 거듭나 새 사람이 된 경험이 없으면 새 노래를 부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배당만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아니요,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심령에 인을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을 맞는다는 말은 그의 소유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다른 말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뜻이요, 그리스도의 소유란 말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셨습니까? 아직 마귀에게 속해 있지 아니합니까? 그래서 마귀가 하고자 하는 대로 끌려다니는 분은 없으십니까? 완전히 주님의 소유가 되면 자연히 우리 입에서는 찬송이 나오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2.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순결합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계 14:4) 이 말은 결혼 생활을 정죄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 말은 세상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성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여자로 더불어란 말을 썼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유혹한 것이 하와였던 것처럼 여자는 유혹을 상징합니다. 아닌게아니라 여자에겐 그런 면이 많이 있습니다. 화장하는 것이나, 옷을 입은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웃는 것, 걸음 걷는 것이나 유혹적인 데가 많습니다. 민수기 25장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 모압 여자들이 화사한 옷을 입고 나와서 유혹하였던 사실을 읽어 볼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유혹하는 여자와 같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자칫 잘못하면 세상이란 여자에게 몸을 더럽히고 정절을 빼앗겨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세상에서 흰옷을 지키며 더럽히지 않고 정절을 굳게 지키는 성도들이 시온산에 계신 주님을 영접하며 찬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으로 더불어 그 몸을 더럽히고 정절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옛날 삼손은 데릴라에게 유혹을 받아 그 능력의 믿음을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다윗 같은 성군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 유혹되어 정절을 잃었습니다. 발람 선지자나 가룟 유다는 세상 물질에 유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명예에 유혹을 받아서 믿음을 잃고 불쌍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은 세상 유혹으로부터 단연히 손을 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했습니다.
3.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삶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어린 양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가 하나님의 종이지만,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굴복한 사람은 아닙니다.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어린 양 예수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순종하며 따라갑니다. 험한 길이든 평탄한 길이든, 괴롭든지 즐겁든지 순종하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려고 하면 목자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며, 또한 주의 계명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옛날 하나님의 사람 에녹을 보십시오. 그는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꼭 평탄한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가 우리의 목자가 되실 때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걸을 때가 있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안위해 주시는 것을 믿고 순종하며 따라 나아가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께 순종하며 따라가는 사람이 새 노래를 부를 수가 있습니다. 전에 요셉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감당키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그러나 그는 끝까지 순종하며 하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엔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려 하셨다”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가 있었습니다.
4.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진리를 말합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마귀와 반대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의 특징은 듣기는 좋으나 말이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항상 진리를 권하는 충성된 증인입니다. 거짓말은 “모든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인 마귀를 따르는 자의 본성인 것입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사람들이 하루에 거짓말을 얼마나 하는가에 대해서 통계를 냈는데, 그 통계에 따르면 정직하다고 하는 남자가 하루에 다섯 번 거짓말을 하고, 정직하다고 하는 여자가 하루에 열 번, 정직하지 못한 남자는 하루에 오십 번 이상, 정직하지 못한 여자인 경우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거짓말을 하고 산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이 세상은 거짓말로 가득찬 세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거짓말 많은 세상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5.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흠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완전무결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 하면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던 사람들이었으나 거듭나는 과정을 통해서 주께로 가까이 나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은 후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아무 죄도 없는 완전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2장 10절에 말씀한 것을 나타내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를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속에서 그리스도께 봉사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그 분과 함께 걸으며, 거룩하게 살기 위해 그 분의 능력에 의지하는 성별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는 이것이 우리 성도의 생활입니다.
새 노래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노래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일은 사실 기적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배워서가 아니요, 힘써서가 아니요,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권력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요, 순전히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 사실, 이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하여 새 사람이 된 것을 보십시오. 이것이 기적 아닙니까? 아브라함 같은 사람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기적입니다. 사울같이 강퍅하고 교만하던 사람이 바울로 변한 것이 기적입니다. 베드로 같이 다혈질적인 사람이 위대한 사도로 변한 것이 기적입니다. 미움과 시기의 사람인 보아너게가 사랑의 사도 요한이 된 것이 기적입니다. 더럽기 짝이 없고 버림받은 막달라 마리아가 천사와 같은 여인으로 변한 것 기적입니다. 토색하고 인색하던 삭개오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바른 사람이 되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회복된 것이 기적입니다.
이런 사람을 다 꼽으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생활 주변에는 얼마나 그런 사람이 많습니까? 아니,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역사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습니까? 이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 새 노래입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 내용을 보십시오. 모두가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실 뿐더러, 주의 귀한 직분을 맡겨 주셨다는 데 대한 감격의 표현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 이하를 보십시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2. 하나님 안에서 승리함을 노래합니다.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승리를 취하셨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는 어디에나 승리가 따릅니다. 하나님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은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시면 누구도 우리에게 도전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누구도 빼앗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면 온 세상이 우리에게 대적하여 일어난다고 하여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누가 가장 담대하고 용감합니까? 하나님 편에 서 있는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의 담대함을 보십시오. 다니엘의 용기 있는 기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담대함을 보십시오. 요셉의 용기를 보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붙드시고 도와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을 들어 보십시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1-37)
우리는 약하나 주 예수는 강하십니다.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반드시 이기게 되니 감사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과 더불어 승리하게 됨을 노래합니다.
3. 구원의 역사에 대한 계시를 노래합니다.
2절에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같은 말의 강조형입니다. 구원과 의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고, 따라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유대인에게 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인류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3절에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이 놀라운 구원을 노래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4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소리를 발하여 즐거이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수금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찬양할지어다 나팔과 호각으로 왕 여호와 앞에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거기 거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이 박수하며 산악이 함께 즐거이 노래할지어다”(4-8절)
이것은 주님의 나라가 모든 피조물에게 영광이 된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땅 위의 피조물들이 창조자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과 같이(시 19:1)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의 영광을 노래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며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찬양합시다. 주 안에서 승리하게 됨을 찬양합시다. 그리고 이 큰 구원의 역사에 대한 계시를 노래합시다. 그럴 때 하나님이 더욱 큰 은총을 베푸셔서 우리의 삶을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